소제동 아트벨트의 시작점인 관사16호.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내·외부를 1백여 년 전과 똑같이 복원했다.
마당집 내부 전시장에서 바라본 박선민 작가의 ‘소제도감’. 신수진 예술 감독은 이 공 간을 보는 순간 박선민 작가를 떠올렸고, 작가는 소제동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을 심어 마당 자체가 여운이 있는 작품이 되게 했다.
대전은 ‘철도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해온 도시다. 사방으로 철도와 도로가 뻗어나가 전국 어디서든 편하게 오고 갈 수 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이러한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철도 기술자들을 대전으로 파견해 거주하게 했다. 그때 기술자들이 집을 짓고 살던 곳이 바로 대전역 부근의 소제동 철도관사촌. 이후 이곳은 대전 시민의 삶의 터전이 되었고, 일본의 건축양식과 한국인의 생활 문화가 1백 여 년간 중첩되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소제동 철도관사촌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생겼다.
대전, 철도 문화의 한가운데
까치발을 하고 뛰면 안이 보일 듯한 담장, 다음 코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대되는 모퉁이, 골목 너머로 사계절이 아름다운 대동천이 나타나는 특별한 동선과 정서를 지닌 곳. 하지만 재개발 논리로 이미 마을의 골목이 많이 사라졌는데 다행히도 이곳 소제동 철도관사촌의 일부에 작은 마음의 불빛이 켜지면서 조금씩 생기가 감돌고 있다. 이 불빛의 에너지원이 대전과 계룡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기업 씨엔씨티에너지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도시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업이 그 이윤으로 마음 에너지까지 공급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를 위해 씨엔씨티마음에너지재단을 별도로 설립했다. 근대사를 오롯이 간직한 복합 예술 문화 타운을 만들고, 그곳에서 청년과 예술가의 활동을 지원해 대전이 21세기형 미래 도시로 나아가게 하려는 사회 공헌 아이디어다. 그 장기적 비전을 위한 마스터플랜은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가, 프로그램과 운영 기획은 문화역서울284의 예술 감독을 지낸 신수진 예술 감독이 맡았다. 유현준 교수는 근대건축도 중요 요소지만 우리 옛 골목 풍경이 오롯이 남아 있는 모습에 감탄했다. 신수진 예술 감독 역시 소제동의 골목과 공간을 보는 순간 기꺼이 예술 감독을 수락했다.
소제동 아트벨트의 신수진 예술 감독. 씨엔씨티마음에너지재단은 문화역서울284에서 옛 역사 공간과 작품이 서로 빛나던 신수진 예술 감독의 전시 기획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그에게 소제동 아트벨트의 기획을 일임했다.
박선민 작가의 ‘소제도감’ 전시가 열리는 마당집.
옛 주인이 칠해놓은 핑크색 벽 사이로 묘한 공감각적 심상을 부르는 심래정 작가의 ‘바-스 하우스’ 전시.
“옛 모습으로 복원한 관사16호, 앞문과 뒷문으로 골목이 연결되는 특이한 마당집, 누군가 모든 벽을 기묘한 분홍색으로 칠하고 살았던 핑크집, 거주하던 사람들이 두충나무를 기르며 살았던 두충나무집 등 이 마을의 공간은 그 자체에 깃든 삶의 흔적과 이야기만으로도 예술 작품 같았어요. 각 공간을 볼 때마다 그 공간에서 전시할 작가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관사 네 곳을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소제동 아트벨트의 개관을 준비하면서 신수진 예술 감독이 정한 주제는 ‘오늘 꾸는 꿈’. 사람이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상상을 가지고도 오직 오늘만 살 수 있는 것처럼, 아픈 역사와 불확실한 미래를 지닌 소제동의 오늘 이 순간이 의미 있다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복합 예술 문화 에너지가 넘치는 아트벨트
아트벨트의 출발점인 관사16호에서는 자스민 샤이틀의 영상 작품과 함께 근대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관사의 마당 한 편에 있는 별채는 로봇이 지구 곳곳의 최고급 원두로 부드러운 핸드 드립 커피를 내려주는 역설적 카페다. 과거와 미래, 아날로그와 첨단의 교차점에 선 방문객은 다차원의 신선한 조화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작은 마당이 있는 마당집에는 박선민 작가가 식물학자와 함께 마을 곳곳을 다니며 발견한 각종 식물을 심었다. 마을의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 세찬 여름비를 맞고도 한가득 피어났으니, 그 모습 그대로가 설치 작품이다. “소제동 아트벨트는 골목과 마당 같은 생활 문화 공간을 전부 예술 무대로 활용할 수 있어 이곳에서 선보일 수 있는 작품과 활동은 무한합니다.” 신수진 예술 감독은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주요 전시와 함께 시간대별로 공연과 워크숍 등도 열리는 입체적 예술 행사를 기획했다.
길 건너 핑크집의 오묘한 공간에는 심래정 작가가 ‘바-스하우스’ 작품을 설치해 이야기를 더했다. 마지막 전시관인 두충나무집은 마당 한편에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도 높이 자란 두충나무가 있는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나무껍질을 벗겨서 차를 만들어 마시며 살던 목조 주택이다. 외갓집 사랑방 같은 이 관사는 방석을 깔고 앉아 안충기 작가의 유쾌한 그림과 글을 감상할 수 있다.
1백 년 가까이 이 정원에서 자란 두충나무는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나무껍질을 내주며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두충나무집에서는 소셜 미디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안충기 작가의 <명랑언냐 나.정.숙의 컨츄리라이프 2020 삽질일기>를 보며 오늘의 자유를 느긋하게 누릴 수 있다.
두충나무집 전시장 한편에는 대전의 청년 작가가 방문객을 흑백사진으로 찍어주는 작은 스튜디오를 준비했다.
청년과 예술가는 21세기의 개척자
씨엔씨티마음에너지재단은 아트벨트와 복합 예술 문화 센터 등의 앵커 시설을 건축해 마을의 버팀목이 될 계획이다. 그 주변으로 청년들이 여러 공간을 열어 마을에 신선한 공기가 되어줄 것이다. 재단은 이미 F&B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이 자생하도록 지원을 시작했다. 서천 갯벌 조개 파스타와 부여 깻잎 페스토 리조토 등 충남의 식재료로 맛의 향연을 펼치는 그로서란트, 모던한 공간 너머 울창한 대나무 숲의 반전을 선보이는 찻집 등 골목 곳곳에 멋진 공간이 생겨나면 마을의 즐거움이 더 풍성해질 것이다. 향후 새로운 복합 예술 문화 센터가 완공되고 대동천 변에 여러 공간이 열리면 더욱 다양한 분야와 협업이 가능해진다. 대전의 젊은 연구자들과 학자들, 해외 작가와 스타트업 경영자 등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앞으로 만날 에너지원은 무한하다. 소제동 아트벨트는 이처럼 젊음과 다양성이 가득한 도시를 꿈꾸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주소 충남 대전시 동구 수향길 19 문의 070-8633-8180
씨엔씨티에너지 황인규 회장
“고유성과 다양성을 지닌 청년들이 도시의 미래죠.”
씨엔씨티에너지는 대전과 계룡 지역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황인규 회장은 24년간 검사로 활동했고 2014년부터 가업을 이어받았다.
평소 문화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아 서울대 법대 동기들과 중창단을 했고, 지청으로 발령 나면 그곳 검사들을 모아 중창단을 구성했죠. 취미 생활로 미술 작품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고 사진과 건축도 좋아합니다.
청년 지원 사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전은 청년층 비율이 높은 도시니 청년, 예술, 해외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전이 독특한 문화 예술 도시가 되면 바로 해외 교류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러면 대전만의 정체성이 필요한데, 소제동 철도관사촌에는 대전의 역사와 생활 문화가 남아 있고 골목 풍경도 특별하죠.
다양한 전문가와 협업을 하시지요?
원맨쇼가 되거나 난개발하지 않으려면 전문가의 참여가 중요하지요. 그래서 유현준 교수, 신수진 예술 감독 같은 전문가를 초빙했습니다. F&B 분야에서도 다양한 청년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래 계획은 무엇입니까?
대전 원도심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여 소제동 아트벨트를 확대할 예정입니다. 대동천에는 독특한 복합 예술 문화 센터와 몇 개의 공간을 더 지을 계획입니다. 협업 요청도 많아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더 다채로워질 것 같습니다.
재단의 궁극적 역할은 무엇입니까?
산호초에 관한 책을 읽었어요. 파도가 거세면 산호가 살지 못하고 파도가 없으면 한 종만 번식합니다. 다채로운 산호초 군락이 형성되려면 해류가 적당해야 한다지요. 소제동 철도관사촌도 마찬가지예요. 재단은 앵커 시설을 제공하고 난개발을 막는 최소한의 관여만 합니다. 그 외에는 청년과 예술가들이 다양성으로 확장시키는 거죠. 과정이 쉽지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천천히 실행해갈 계획입니다.
아트벨트 투어
신수진 예술감독의 도슨트로 소제동 아트벨트를 투어하고 특별 공연도 관람합니다. 골목길 주변의 카페와 맛집 둘러보는 재미도 느껴보세요.
일시 9월 23일(수) 오후 12시30분~2시 30분
참가비 3만 원
장소 대전광역시 동구 수향길 19(집합 장소 별도 공지)
인원 12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신청하세요.
- 대전 소제동 아트벨트 1백 년 된 골목에서, 오늘 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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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 플랫폼에 내려 도보로 10분, 오래된 철도 관사가 나란한 골목 너머로 대동천이 이어지는 독특한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의 생기가 될 소제동 아트벨트는 대전의 청년과 예술가들이 꿈을 실험하며 미래를 향해 떠날 새로운 문화 플랫폼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