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 돌담을 따라
‘정릉이 있는 동네’라 하여 이름 붙인 정동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근대건축 유산의 상징인 붉은 벽돌과 기둥을 마주하게 된다. 이를 배경으로 디딤돌처럼 드문드문 놓인 나무 스툴과 벤치. 전통 한옥의 기둥과 보를 형상화한 이들 가구는 서양식 건축양식과 대비되어 아름다움을 배가한다.
고궁의 회랑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가구는 고정호 작가(jeonghoko.com)의 회랑 시리즈.
훤히 드러난 속살
1928년 건립 당시에 시공한 천장의 해머 빔 구조가 그대로 남은 예배당. 모든 사물이 온전히 제자리에 남아 있지는 않다. 낡은 교회 의자 사이로 거칠고 차가운 금속 의자가 자리를 대신한 모습은 세월이 오래 흘렀음을 말해준다.
색색의 파이프를 로프로 엮어 만든 의자와 스툴은 강영민 작가(@young.min.k), 기하학 형태의 단면이 돋보이는 알루미늄 소재 의자는 최원서 작가(oneseochoi.com) 작품.
대담한 예술의 향유
서구 신문물이 물밀 듯 들어온 근대의 경험이 가득한 공간. 궤 모양의 옛 가구 반닫이와 동그란 베개를 결합한 현대적 소파가 중앙을 차지했다. 양옆에는 마치 나무의 속살을 들쳐보듯 다리의 빈틈이 절묘하게 보이는 스툴이 무대를 지켜본다.
반닫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보경 작가의 고즈넉이 소파, 나무가 지닌 색을 표현한 박찬훈 작가의 속살 스툴은 모두 피아즈 디자인(piazdesign.com) 판매.
계단 너머의 성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와 성수대가 보이는 경건한 계단 풍경. 찬연한 빛을 발하는 경외로운 시공간 속에 유한한 물질이 대비된다. 얇거나 길고, 두껍거나 휘어진 비정형의 다리는 저마다 나름의 무게를 견디고 서 있다.
석기로 빚어 질감이 도드라지고 제각기 모양이 다른 의자는 김자영 작가(jaroni6345@gmail.com) 작품.
겹겹이 쌓인 시간의 켜
92년 동안 쌓인 역사의 흔적을 걷어내거나 덧대어 고요한 여백을 만들어낸 공간에 색색의 소반 무리가 긴장과 생기를 더한다. 둥근 아치형 천장과 마찬가지로 활처럼 곡선을 이루는 소반 다리, 물결이 일렁이듯 홈을 판 상판이 빚어낸 경쾌한 운율을 감상해보자.
상판 가장자리에 V자 모양의 홈을 파서 완성한 소반 시리즈는 한동엽 작가(@han.dongyeop) 작품.
소탈한 익살
반듯하게 열을 맞춘 난간, 일정한 간격과 높이로 이어진 계단 위로 흘러내리기도 하고, 굵직하게 매듭을 꼬기도 한 이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의자의 일부다. 엄숙한 얼굴 앞에 익살맞게 웃어 보이는 발랄한 소년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말랑말랑한 실리콘 튜브를 사용해 마치 그림을 그리듯 형상화한 누들 체어는 정그림 작가(greemjeong.com) 작품.
- 감성을 일깨우는 데코 아이디어 정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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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 지은 구세군사관학교가 레노베이션을 거쳐 복합 문화 공간 ‘정동1928 아트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약 1백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이곳에 찾아온 국내 현대 아트 퍼니처의 시간 여행.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