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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프렌치 스타일로 꾸민 158㎡ 아파트 비로소 알게 된 행복
일곱 살, 세 살 두 아이와 함께 사는 집이 담백하고 차분할 수 있을까? 집은 사는 사람이 어떻게 정의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풍경이 달라지는 법. 가족의 삶을 감싸주는 포근한 품으로 변신한 아파트 개조 이야기다.

주방의 긴 아일랜드는 아내 김정현 씨와 첫째 수민, 둘째 수지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놀이 공간이다.

화이트 컬러 벽과 헤링본 패턴의 오크 마루, 패브릭 소파로 꾸며 따스한 온기를 품은 거실.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가 디자인한 카시나의 소파와 초록색 몬타나 TV장이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집을 둘러싼 담론은 무수히 많다. 시시콜콜한 살림 이야기부터 부동산 정책 관련한 뉴스에 이르기까지 매일 어딜 가든 들려오는 이야기만큼 집에 대한 관점도 천차만별이다. 투자 가치가 있는 재산으로 보기도 하고, 사적 취향을 투영한 예술 세계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집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쉼’에 있지 않은가. 건축사학자 임석재 교수가 “인간의 일상이 집과 하나가 되려면 집에서 정신적 안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집은 지친 몸을 누이고 위로받을 수 있는 따뜻한 품속 같은 공간이어야 한다. 인천 송도에서 남편 이영식 씨, 아내 김정현 씨, 일곱 살 수민이와 세 살 수지, 그리고 배 속에 4개월 된 아기까지 다섯 식구가 함께 사는 집이 꼭 그러하다. 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여 직접 지은 단독주택에서 어머니가 알뜰히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보고 자란 김정현 씨에게 집은 어릴 때부터 줄곧 삶의 중심이었다. “몸을 가꾸는 일보다 몸이 머무는 공간을 가꾸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어요.” 그런 그가 결혼해 처음 꾸린 신혼집은 안 써본 컬러가 없을 정도로 오색 빛깔의 ‘무지개 집’이었다. “처음엔 마냥 재미있고 유쾌했지만, 어느 순간 피곤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자극적 음식을 주식으로 매일 먹지 않는 것처럼 겉치장이 화려한 집은 주거 공간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1년 만에 옮긴 두 번째 집은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집중한 모던&그레이 컬러의 집이었다. 저녁에 와인 한잔 마시는 일이 일상인 부부는 주방에 와인 랙을 달고, 패션 회사에 다니면서 모은 5백 켤레 이상의 신발을 보관할 거대한 슈즈 랙을 벽에 설치했다. “신혼이니까 둘만을 위한 실용적 공간이 필요했어요. 내심 과시하고 싶은 욕심에 비싸고 좋은 가구를 모아놓기도 했지요.” 그러다 부부의 세상이 또 한 번 뒤바뀐 것은 바로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부터다. 마침 남편의 발령지와 가까운 송도로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드디어 세 번째로 집을 꾸밀 기회가 왔다.

남편의 서재 겸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조성한 공간은 책을 충분히 수납할 수 있는 책장을 제작해 배치하고, 톤 다운된 보라색 컬러를 사용해 시각적으로 피로하지 않도록 했다.

현관에서 중문을 기준으로 왼쪽에 침실과 서재, 오른쪽에 거실과 아이 방이 있다. 입구 정면에 걸린 액자 프레임의 디스플레이는 가족사진을 슬라이드 화면으로 재생한다.

네 식구가 나란히 누워 잠잘 수 있도록 침대 두 개를 이어서 배치했댜. 정갈한 화이트 침구와 프릴 장식, 앤티크 조명등으로 프렌치 무드를 가미했다.
두 번의 이사 끝에 찾은 취향
패션 회사와 건설사에서 일한 아내 김정현 씨는 경력을 살려 직접 시공하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일과 병행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취향과 가장 잘 맞는 디자이너를 찾아 나섰다. 첫째는 주부 입장을 더 세심히 고려해줄 수 있는 여성이자 어머니일 것. 둘째는 따뜻한 분위기를 아는 사람일 것. 조건은 이 두 가지였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따뜻한 프렌치 스타일을 선보이는 디자인폴 박미진 대표와 작업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첫 미팅 자리에서 바로 계약까지 속전속결이었다. 김정현 씨는 하얗고 깨끗한 집을 구상했다. 주위에서는 “아이가 둘인데 벽에 낙서를 하면 어쩌려고 하얀 집에서 사느냐”고 걱정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머무는 공간을 예쁘게 꾸미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에 반항심이 일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랴. 아이가 낙서하면 페인트를 새로 칠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였다. “무엇보다 따스한 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특히 차가운 느낌의 그레이는 꼭 제외해달라고 요청했죠.” 박미진 대표는 전체적으로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컬러와 마감재 선택에 우선적으로 집중했다. 던-에드워드 페인트의 빛을 머금은 느낌의 바닐라 화이트를 메인 컬러로 하고, 바이올렛과 스카이 블루 등 파스텔컬러를 포인트로 사용했다. 바닥은 노란빛이 도는 내추럴 오크 마루를 헤링본 패턴으로 깔고, 거실 중앙에는 부드러운 패브릭 소파를 배치하는 한편, 주름을 많이 잡은 커튼으로 집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는 느낌을 주었다. 여기에 웨인스코팅 벽 장식과 앤티크 조명등으로 그만의 특기인 프렌치 스타일을 가미해 우아한 기품이 감도는 집을 완성했다.


원목 다이닝 테이블 위로 설치한 디에디트 조명등은 아일랜드의 블루 컬러와 조화를 이루어 한결 풍부한 공간감을 선사한다.

두 딸아이의 취향을 고려해 분홍색을 포인트 컬러로 칠한 욕실. 욕조 벽의 큰 타일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

지붕 모형을 덧댄 침대에서 자매가 정답게 노는 모습이 마치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처럼 친밀해 보인다.

푸른색 웨지우드 장식이 박힌 앤티크 벽등.


클래식한 골드 장식 손잡이와 도어노커.
순순한 삶의 태도가 녹아든 집
유일하게 구조변경을 한 곳은 주방이다. 원래 조리대에서 다이닝 테이블이 놓인 자리까지 가벽이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철거 가능한 조적벽임을 확인하고 허물었다. 넓은 시야와 개방감을 확보하고 냉장고가 있던 자리에 3m 길이의 아일랜드를 설치했다. 이렇게 긴 아일랜드는 단지 조리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미술과 공작을 하는 또다른 놀이 공간이 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아일랜드 위에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색연필로 칠하는가 하면 장난감을 갖고 노는 무대이기도 하다. 김정현씨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거나 식재료를 다듬는 순간에도 아이들이 시야 안에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편 욕실에는 큰 타일을 시공해 욕조 안에서 타일을 스케치북 삼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놀 수 있도록 배려했다. 미술 놀이가 끝나면 목욕하면서 정리도 한꺼번에 할 수 있어 부부와 아이들 모두 홀가분하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공간은 비단 거실과 주방뿐이 아니다.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일곱 살 수민이의 침실이 따로있지만, 안방 침실은 네 식구가 함께 누울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크기의 침대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그 옆방은 아이가 아빠와 함께 쓰는 서재 겸 놀이방이다. 남편 이영식 씨가 책상에서 책을 읽거나 업무를 보면, 중앙 테이블에서 수민과 수지도 동화책 읽기에 열을 올린다. 박미진 대표가 곧 태어날 아기까지 세 명의 자녀가 생활하는 공간임을 감안한 또 다른 부분은 현관이다. 돌 소재로 시공한 바닥은 흙이나 때가 묻어도 타일보다 덜 오염된다.

이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미취학 아동이 둘이나 사는 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고 정갈하다. 비결은 보이지 않는 수납으로, 모든 생활용품과 장난감을 수납공간 안에 정리한 데 있다. 시각적으로 정돈된 상태를 보는 것 자체가 정서적 안정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또 셋째를 임신하면서 태교와 교육 차원에서라도 내 몸에 자극을 주는 것을 피하기로 결심했죠.” 습관처럼 마시던 저녁의 와인 한잔도 끊고, 잔잔한 내용의 영화나 다큐멘터리 외에는 TV도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 이러한 무자극의 삶이 무기력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상이 밋밋하고 때로는 시시하게 느껴졌지만, 점차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미세한 감각의 변화를 감지했다. “남편이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들과 누가 간식을 한 입 더 먹었네 아니네 하면서 옥신각신하더라고요. 이전에는 아이들을 얼른 재우고 우리끼리 와인 한잔하기 바빴는데 말이죠.” 불필요한 자극을 차단하니 주말이면 항상 늦잠을 자던 남편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부부가 소파에 앉아 있는데, 잠들었던 둘째 수진이가 부스스 눈을 떴다. “막둥이가 깨서 쪼르르 달려와 남편과 제 다리 사이에 끼어들어 애교를 부렸죠. 그 순간이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무미건조한 무자극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이전에 느끼지 못한 소소한 기쁨이 점차 즐거운 자극이 되었다. 집이 작은 행복의 지류가 흘러 들어가고 또 뻗어 나가는 원줄기인 셈. 건강한 생활 태도가 진정한 집의 가치를 부여한다는 사실이 이곳에 숨어 있다.


가족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디자인폴 박미진 대표는 프렌치 스타일 인테리어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다. 만화가이던 그가 우연한 기회에 시공한 프렌치 스타일의 집이 네이버 카페 ‘레몬테라스’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으면서 스타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클래식부터 모던한 감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프렌치 무드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선보인다.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과 시공 디자인폴(blog.naver.com/tmdvy21)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