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amc asia 고영하 대표 보통의 행복
몸과 마음이 한없이 나슨해지는 주말 정오, 어쩌면 가장 사사로운 시간에 고영하 씨 가족의 집을 찾아갔다. 주말이면 가족 전담 요리사로 변신하는 남편은 부엌에서 브런치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두 딸은 거실 소파에서 각자의 휴대폰에 몰입한 평평범범한 가족의 모습. 주중에는 회사를 이끄느라 일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삶의 축이 주말에 전망 좋은 집에서 가족과 일상을 함께하며 균형을 되찾는다.

채광과 전망이 훌륭한 펜트하우스 거실에 모인 고영하 대표 가족. 놀Knoll 소파와 마르셀 브로이어와 핀 율이 각각 디자인한 암체어 두 개, 세르주 무이Serge Mouille의 플로어 스탠드, 칼 한센앤선Carl Hansen&Søn의 식탁과 의자 등 고영하 대표가 좋아하는 가구로 채워져 있다.
동쪽과 남쪽으로 난 창에서 빛이 쏟아져 내린다. 동호대교가 가로지르는 한강과 그 너머 풍경이 묵음으로 담긴다. 고영하 대표의 펜트하우스는 채광과 전망만으로도 충분히 감탄스럽다. 그가 이 집을 택한 데에도 이 두 가지가 크게 작용했다. 이를 집 안으로 고스란히 들이고 싶어 창에 커튼도 블라인드도 달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그가 이 은혜로운 공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다. “주중에는 치열하게 일하고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들어올 때가 많아요. 그래서 주말에는 거의 집에만 있어요. 집은 나를 완전히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이죠.” ‘집=안식처’라는 등식이 하루하루 가열차게 일하는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진부한 말, 그 이상의 절대적 진실이다.

가족은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주춧돌
여유롭고 화려한 인스타그램 피드와 별개로 그의 삶은 숨 가쁘고 고달프다. 2013년,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마케팅 회사의 한국 지사를 열고 대표로 일하면서, 아니 그 전부터 그는 100m 달리기의 속도로 오래달리기를 해왔다. “스물일곱 살 때부터 외국계 회사의 지사장을 맡고 스타트업을 세 번이나 창업했어요. 그 과정에서 극한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며 극복해왔죠. amc asia를 시작하고도 해마다 몇백 퍼센트씩 성장시키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직원 다섯 명으로 시작해 마흔다섯 명이 된 지금은 마케팅회사로는 규모가 꽤 큰 편이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에만 신경 쓰느라 소소한 행복은 모르고 살았지요. 친구만날 시간도 없었고, 단풍이 드는지 지는지 모르고 주말에도 일할 때가 많았으니까요.”

그의 고운 모습 뒤에 이런 치열함과 고생이 딸려 있으리라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고등학생과 중학생 딸 둘이 있다. 여성이 아이 둘을 키우면서 일에서 보편적인 성공을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성공은커녕 일을 지속하기도 쉽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어요. 산후조리원에 일주일도 안 있고 나와서 바로 일할 정도였어요. 남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겠죠.” 그는 심지어 amc asia를 창업하기 전 2년간 시카고 대학교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남편의 대단한 지지와 희생은 필수 조건이요,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결코 버텨낼 수 없는 길이다. “그런데 아이들한테는 늘 부족한 엄마니까 미안한 마음이 커요. 얼마전에 큰아이한테 앞으로 뭐하고 싶은지 물으니 ‘엄마가 하는 일 하고 싶어요’라고 하는데, 이 한마디가 큰 위안을 주면서 ‘그래도 내가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지지해준 남편 양조셉 씨는 고영하 대표 같은 워커홀릭에게 가정은 성공의 걸림돌이 아니라 삶의 주춧돌이 된다고 말한다. “결혼 안 하고 아이도 없었다면 일에만 빠져 살았을 거예요. 일로는 더 성공했을지 몰라도 가정에서 느끼는 행복은 몰랐겠죠. 집과 아이들이 중심을 잡아주니까 그나마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거예요.” 회사가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삶의 축도 조금씩 가족으로 향하고 있다. 적어도 주말에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통의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밝은 기운의 그림. 프랑스 화가 장프랑수아 라리외의 ‘해피 트리’.

파리 출장 때마다 사 모은 아스티에 드 빌라트 접시로 세팅하는 고영하 대표.

우유 대신 생크림을 넣어 부드럽게 만든 프렌치토스트와 직접 만든 체리 잼 등 남편이 제대로 준비한 주말 브런치.

집은 삶의 깊이와 취향을 담아내는 공간
두 개의 층으로 이뤄진 이 집 구조는 독특하다. 파노라마 전망으로 둘러싸인 거실과 부엌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부부 침실과 두 딸의 침실이 모여 있고, 다른 쪽에는 옥상 테라스와 그곳으로 이어지는 방이 자리한다. 공공의 공간과 개인의 공간이 확실하게 구분된다. 지난해 봄,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원래의 클래식한 장식을 모두 덜어내고 흰 바탕으로 깔끔하게 개조했다. 거실과 부엌을 막고 있던 벽을 헐어 기둥만 남기고 창도 모던한 스타일로 바꾸었다. 가구는 대부분 전부터 사용하던 것들인데, 해마다 받는 연말 보너스로 ‘디자인 살림’을 하나씩 늘려가고 있다. 작년에는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오디오를 구입했고, 올해에는 한스 웨그너가 디자인한 1950년대 빈티지 데이베드를 들여왔다. 2라는 숫자가 새겨진 세르주 무이의 플로어 스탠드를 3개월이나 기다려 받거나, 파리 출장 때마다 아스티에드 빌라트의 접시를 사 모으기도 했다.

옥상 테라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내려다본 거실.

옥상 테라스와 연결되는 방. 이동기 작가의 그림 컬러에 맞춰 가구를 배치했다. 한스 웨그너가 디자인한 1950년대 빈티지 데이베드와 페테르 빗트Peter Hvitdt가 디자인한 빈티지 의자, 디터 람스의 오디오 등을 놓았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귀처럼 “마케팅의 주체이면서 마케팅의 노예. 그래도 탁월한 안목을 지닌 노예라고 해두자!” 그가 또 애정을 가지고 모으는 것은 그림이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그림을 왜 좋아하고 소장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림을 봐도 큰 감흥을 못 느꼈는데, 사업을 하면서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그림으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작가가 이런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는 아닐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 감정이입을 했어요. ” 현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밝은 오렌지 색감의 그림은 보이는 그대로 긍정의 기운을 쏟아낸다. 프랑스 화가 장프랑수아 라리외Jean-François Larrieu의 ‘해피 트리Happy Tree’라는 작품으로 결혼 15주년 기념으로 구입했다. 집 안 곳곳에는 그림에 소질 있는 둘째 딸의 그림을 여러 점 놓았다. 그중에서 거실 한쪽에 파란색 앤티크 장과 짝을 이룬 그림은 피카소의 ‘블루 누드’ 를 모사한 것으로 작년 생일 선물로 받았다.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옥상 테라스. 잔디가 푸릇한 늦가을까지 일광욕을 하거나 두 딸과 요가도 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만찬을 즐기는 장소.

벽을 터서 거실과 연결한 부엌에서 고영하 대표의 남편 양조셉 씨가 요리를 하고 있다.

부부 침실 안쪽에 있는 욕실에는 히노키 욕조를 놓았다.

시어머니가 사용하시던 앤티크한 장을 튀르쿠아즈 블루로 칠했다. 이와 색을 맞춰서 놓은 그림은 둘째 딸이 피카소의 ‘블루 누드’를 모사한 것.
관계 맺기는 삶의 폭을 넓히고 다지는 태도
그는 재작년부터 이스라엘 화장품 브랜드 아하바AHAVA를 수입해 유통부터 판매, 홍보까지 도맡고 있다. 처음에 선물로 받아 6개월 정도 썼는데, 악건성이던 피부가 완전히 달라지면서 그 효과를 체감했고, 수입까지 하게 되었다. “제품 수입과 유통은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예요.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또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어요. 아하바를 통해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해보고, 이를 기존의 클라이언트 일에 접목하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플랫폼 기획도 고민하고 있고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그에게 사업 이외에 하고 싶은 일을 물었더니 한참을 고민한다. “개인적으로 취미 삼고 싶은 일은 별로 없어요. 그것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우리나라의 여성 스타트업이나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겁니다. 그들이 사업을 하면서 단계별로 겪는 상황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 그리고 실질적인 마케팅 방법 등 제가 경험한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어요. 특히 여성은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서 네트워킹을 다질 기회가 많지 않은데, 여성 소상공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 도울 수 있는 장도 만들고 싶습니다.” 그가 당장 실천하고 있는 일은 해마다 회사에서 준비하는 명절 선물을 여성 소상공인의 제품으로 엄선해 구성하는 것이다. 올해 추석 선물로는 어머니에게서 딸로 30년간 이어져온 육포 브랜드, 정육포를 선보였다.

한 회사의 대표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자리다.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간간이 그의 승승장구를 막아섰고 그런 고난을 계기로 그는 삶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진짜 내 사람이 누군지 되돌아보고, 다른 사람 입장에서도 바라볼 줄 아는 사려 깊은 어른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올 수 있잖아요. 그런 일이 닥칠 때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며 자기 길을 계속 가는 것, 두 딸에게도 그런 힘을 길러주고 싶어요.” 그가 두 딸에게, 후배 사업가에게 전할 수 있는 진짜 노하우는 이런 삶의 태도가 아닐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삶과 일의 균형을 위해 보통의 행복을 조금 더 자주 챙기라는 조언도 덧붙이면 좋겠다.


오픈 하우스
고영하 대표의 전망 좋은 집으로 초대합니다. 집주인과 차 한잔 하며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일시 12월 13일(금) 오후 2시~3시 30분
장소 서울 용산구 한남동(추후 공지)
참가비 2만 원(정기 구독자 1만 원)
인원 6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유를 적어 신청하세요.

글 박진영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