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을 주요리로 잣꽂이, 생강란, 냉오미자차를 함께 낸 추석 전식 테이블.
조은숙 관장이 촬영팀을 위해 떡집에서 맞춘 송편을 합에 담아 주머니에 넣고 있다.
누구나 ‘추석’ 하면 떠오르는 심상이 저마다 있으리라. 어떤 이에게는 “추석을 마중 가는 길이라서 반달은 물색없이 밝기만 했고”(이문구, ‘공산토월’) 누군가는 “너도 달 보거라. 달 보고 울지 마라”(공선옥, ‘명랑한 밤길’)는 말로 마음을 위로했을 테다. 그리고 대부분은 열나흗날 저녁 밝은 달 아래 가족이 모두 모여 송편을 빚었더랬다. 촬영 하루 전날, 청담동 한복판에 자리한 갤러리에서도 이와 비슷한 광경이 벌어졌다. 조은숙 대표와 동생인 조선숙 실장, 이수현 대리까지 갤러리 식구가 한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잣눈을 떼어낸 잣을 솔잎에 하나씩 끼우고, 그렇게 끼운 잣꽂이를 또 한 묶음씩 빨간색 실로 묶었다. 손으로 두세 알 집어 입속에 털어 넣으면 그만인 잣을 이리도 곱게 내놓다니 뭔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조은숙 관장에게 “추석 상차림을 보여주십시오” 요청하며 어떤 음식을 준비하실지 묻는 질문에 “알아서 장만할 테니 걱정 말라”고 타이르듯 답한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큰 접시 위에는 그 귀하다는 가을의 별미, 송이회가 깨끗하게 말린 솔잎과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9월호 촬영은 8월 초에 진행하므로 송이 철이라기에는 제법 이른 시기였다!). “여러 시장과 백화점을 돌아보다가 가락시장에서 어렵게 구했어요.” 예로부터 송이는 매우 귀한 버섯이었다. 고려시대 학자 이인로는 “송이는 소나무와 함께하고 복령의 향기를 가진 송지”라 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송이는 값이 아니라 정성”이라 기록된 진상품이 아니던가. 송이버섯을 결대로 쪽쪽 찢어 소금 섞은 참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그윽한 솔 향이 콧속을 가득 채운다. 생강을 곱게 갈아 조린 다음, 잣가루를 고루 묻힌 생강란과 배를 마름모꼴로 얇게 썰어 넣은 냉오미자차까지 화려한 요리는 아니지만 무엇 하나 정성이 깃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한들 추석이면 자고로 송편을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부담스럽지 않게 딱 한 번 먹을 양만 주머니에 담아 들려 보내면 간편하고 멋스럽잖아요.”
촬영이 있던 8월 초, 구하기 힘든 귀한 송이를 솔잎과 함께 가지런히 놓은 송이회의 진한 내음은 황홀할 정도로 싱그러웠다. 대구전과 고기산적도 빼놓을 수 없는 추석 시식.
잣을 솔잎에 일일이 끼운 잣꽂이와 조린 생강에 잣가루를 묻힌 생강란, 육포로 구성한 정갈한 디저트.
삼베 주머니에 실을 꼬아 만든 끈으로 포인트를 준 감각 있는 포장법.
1년 중 가장 큰 만월이자 절정. 추석상의 정점은 바야흐로 송편이 찍는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한들 추석이면 자고로 송편을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보름달을 닮은 둥그런 송편을 추석상에 내고 남은 것은 싸서 양손에 들려 보낸다. “부담스럽지 않게 딱 한 번 먹을 양만 합에 담아 삼베 주머니에 넣으면 간편하면서도 멋스럽잖아요. 주머니는 버리지 말고 나중에 다른 물건을 담을 때 써도 되고요.” 그의 스타일링은 애써 힘주지 않아도 그 어떤 치장한 것보다 아름답다. 추석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일화나 풍경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런 거 없어요. 어제 일도 다 잊어버리는걸” 하며 너스레웃음을 웃는 그에게 추석은 그저 맛있는 음식으로 즐겁고 마음이 풍족한 날이다. 봄부터 착실히 가꾼 곡식과 과일을 수확해 정성스레 상 위로 옮겨 담는 일 말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기억이 존재하는 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를 위해 이 문장을 살짝 바꿔보려고 한다. 함께 먹은 음식이 존재하는 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 조은숙 갤러리_조은숙 관장 가을에만 맡을 수 있는 그윽한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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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가득 차오르는 만월에는 풍요로운 우리네 최대 명절, 추석이 기다린다. 한 해 농사의 결실을 입으로 충만히, 그리고 멋지게 누릴 수 있도록 남다른 감각의 소유자 3인의 추석 상차림과 추석 음식 선물 포장법을 소개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