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들어 입힌 아이 옷이 계기가 되어 현재 15년 차 패브릭 디자이너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이선영 씨. 지난해 패브릭 브랜드 ‘자 서울’ (02-921-2018)을 론칭하며 안암동에 쇼룸 겸 작업실을 오픈했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기분 좋은 풍경이 되도록 만든 패브릭 쇼케이스가 인상적. ‘jaa Seoul’ 간판은 가로등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밤에도 환하게 켜둔다.
일과 육아에 매달려 정신없이 보낸 20대, 30대, 40대.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늘 바라왔지만, 막상 그런 시간이 삶으로 훅 들어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똬리를 튼다. 평범한 주부로 살다 바느질이 계기가 되어 15년 전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한 이선영 씨. “남편 공부 때문에 잠깐 영국에 살았는데, 그때부터 아이들 옷을 코트까지 직접 만들어 입혔어요. 요즘 유행하는 유럽풍 옷이었달까요? 우리 막내 옷을 보고 한 아동복 회사 담당자가 디자인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한국에 돌아와 2년 정도 아동복디자이너로 활동했어요.” 아동복 회사에서는 그가 패턴을 전문으로 배우지 않아 다른 디자인이 나온다고 판단했다. 옷을 만들다 보니 당연히 원단과 친해졌고, 원단을 들여다볼수록 색채 감각은 물론 홈 스타일링에도 관심이 생겼다. 가로수길 초창기 시절 취향이 비슷한 몇몇이 도모해 홈 스타일링 사무실을 열었다. 당시 나이 45세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히려 비전공자라는 것이 지금의 그를 이끈 원동력이 됐다. 패션 디자인, 패브릭 스타일링,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문으로 배우지 않았기에 다른 누구보다 많이 보려 노력했고, 잡지는 물론 원서지 챙겨서 공부했다. 마감하고 가구 제작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커튼, 침구 등 공간에 필요한 패브릭 스타일링까지 소화했다. “당시에는 인테리어 시공을 하면서 컬러를 자유자재로 쓰는 디자이너가 많지 않았어요. 커튼이나 침구를 제작할 때 일반적으로 한 브랜드 원단으로 통일한다면 저는 대여섯 개 브랜드를 마구 섞어 사용했어요. 패턴의 뉘앙스는 물론같은 색이라도 브랜드마다 채도와 명도가 달라 패브릭만으로도 공간에 다양한 레이어를 충분히 만들 수 있거든요.”
영국 AA에서 건축을 공부하다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며 자 서울을 이끄는 둘째 딸 지민 씨와 이 선영 디자이너.
부부의 주거 공 간. 거실 전면에 책장을 배치하고 길게 책상을 두어 서재, 다이닝룸, 미팅룸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 한다.
눈에 거슬리지 않는 간결 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느낄 수 있는 욕실.
정리란 좋은 빈틈을 만드는 것! 주방은 상부장 대신 작은 선반을 달아 작지만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조금 다르게 살면 어때요?
정형화하지 않는 작업 방식은 그가 살아온 주거 공간에도 오롯이 드러난다. 아파트 베란다를 확장하는 대신 목창을 덧대 주택처럼 개조하거나, 방 하나를 없애 부엌으로 바꿔 쓴 적도 있고, 남들은 없애는 벽체를 일부러 세워 복도 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아파트에서 가회동 한옥으로, 안암동 상가 주택까지 다양한 주거 형태에 도전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공간 디자이너 백진 씨가 안암동 상가 주택을 레노베이션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부차 들렀어요. 집 앞으로 낮은 천과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이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래된 동네 특유의 분위기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또 백진 대표를 비롯해 색깔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군집을 이루며 살아가고픈 바람도 있었죠.” 안암동 백남빌딩은 열두 가구가 거주하고, 세 개의 상업 공간이 있는 상가 주택이다. 이선영 씨 가족은 나란히 자리한 집 두 채를 부부 공간과 자녀 공간으로 분리해 사용한다. 백진 대표가 레노베이션한 공간의 최대 강점은 바로 시각적 거슬림이 없는 디자인(1층 커피스토어의 노출 벽면, 아일랜드 등에서 그의 디자인 철학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주거 공간은 넓지 않는 면적이지만 노출 천장과 군더더기 없는 마감 덕분에 답답한 느낌이 없다. 특히 거실이 널찍해 이선영 씨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맞는다. 전면에 폭이 좁고 긴 수납장을 짜 넣고 앞쪽으로 긴 테이블을 배치해 가족의 서재 겸 다이닝룸, 미팅룸 등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한다. 공간의 유일한 구조 변경은 책장 맞은편에 세운 초록색 가벽이다. 현관에서 길게 이어지는 복도 덕분에 거실과 침실 등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자연스레 분리된다. “평소에도 가구 배치로 공간의 레이아웃을 자주 바꾸는 편이에요. 생활하다 보면 공간의 필요성이 바뀌곤 하거든요. 처음 이사 왔을 때 여느 집처럼 거실에 TV를 두니까 오히려 거실을 활용하는 시간이 적더라고요. 남편도, 저도 집에서 업무를 보는 일이 많아 가족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배치했어요.” 주방 옆 패브릭 커튼 안쪽의 수납공간, 가벽에 붙여 사용하는 다용도 테이블, 파티션 역할을 하는 비슬리 철제 수납장 등 집 안 곳곳에서는 어떻게 하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그릇이나 책 수납장은 선반 폭이 깊지 않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작은 주방은 수납공간이 부족하더라도 상부장을 생략해 공간이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가벽에 그림을 매치하거나 선반이나 옷걸이를 달 수 있으니 벽 또한 최고의 수납템이 된다. 모두 살림을 해본 경험치로 터득한 실질적 아이디어다.
안암동 백남빌딩 레노베이션을 기획한 큐어리스 마인드 사무실. 오피스와 주거 공간으로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옛 건물의 맨살을 드러낸 노출 벽면과 공간의 구조감을 완성하는 긴 아일 랜드가 인상적인 1층의 커피스토어 안암. 커피스토어와 연결되는 지하층에는 백진 대표의 디자인 사무실이 있다. 우연찮게 색깔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취향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며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지 기대가 크다.
선반과 서랍장 속에는 가위, 골무, 줄자, 싸개 단추 등 바느질 도구와 재료가 가득하다.
문을 여는 순간 복숭아 그림이 기분 좋은 첫인상을 만들어주 는 자 서울 쇼룸 겸 작업 공간. 지하와 1층 사이의 바닥을 과감하게 털어내 지상층처럼 온종일 햇살이 들어온다. 합판 가벽 안쪽으로 원단을 수납하는 미팅룸과 바느질 공간이 자리한다.
자, 준비됐나요?
건물 1층과 연결되는 지하에는 이선영 씨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일을 시작한 둘째 딸 지민 씨가 론칭한 패브릭 브랜드 ‘자 서울’의 쇼룸과 작업실이 있다. 자 서울의 ‘jaa’는 치수를 재는 ‘자’와 숙면, 즉 ‘잘 자’의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선영 씨는 지난 2015년 6월 <행복>과 바느질 관련 인터뷰를 하면서 바느질 도구인 줄자를 모티프로 에코백을 비롯해 이불, 쿠션, 커튼 등을 선보이는 패브릭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는데, 지난해 안암동으로 이사하면서 계획을 실행했다. “자 서울은 지민이가 주축이 되어 운영하고 있어요. 지민이가 어릴 때부터 유독 동물 보호에 관심이 많았어요. 에어컨도 못 켜게 했으니까요. 제가 평소 천가방을 만들어 쓰니(자칭 타칭 에코백 전도사로 2009~2011년 <행복> 클래스에서도 에코백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다) 동물을 죽이지 않고, 소모하는 가방을 10년 이상 들 수 있도록 질 좋게 만들어보자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에코백이 에코eco가 아니잖아요.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좋은 원단만 골라 수작업으로 소량 생산하는 게 원칙이에요.” 쇼룸은 화이트 컬러를 주조색으로 합판을 더해 편안하게 꾸몄다. 원단과 바느질용품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쪽 벽에 선반장을 짜 넣고, 벽에 행어를 달아 패브릭 소품을 걸어두는 등 작은 공간을 실용적으로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자칫 복잡해지기 십상인 작업 공간의 핵심은 수납. 특히 원단 수납은 요리의 재료 준비 작업과 비슷하다. 식재료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손질하고 미리 데치거나 밑간을 하는 등 사전 작업을 해놓으면 요리가 더 재밌고 쉬워지는 것처럼 수납을 제대로 하면 바느질 작업도 훨씬 수월하다. 에코백에 가죽 가방 못지않은 디자인 감각을 불어넣는 것이 목표라는 지민 씨는 전시, 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에르메스 데다르, C&C 밀라노, 엘리티스 등 고급 원단에 세련된 디자인 감각, 예술성까지 가미한다면 핸드메이드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질 터. 얼마 전에는 오랜 인연인 펠트 작가 이지영, 이도경과 함께 도쿄 핸드메이드 페어에도 참가했다. 일본 핸드메이드 시장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파인 아트를 전공하고 영국에서 활동하는 큰딸 유진 씨는 자 서울의 유럽 진출을 위해 현지 편집매장을 알아보고 있다. 꼭 ‘자’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것보다 에코백의 관점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며 살 수 있나요?
에코백은 이선영 씨가 직접 제작한다(지민 씨가 대표, 그가 디자인실장이다). 손으로 하는 일일수록 감각을 유지하려면 지속성이 중요하고, 완성도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되도록 많이 연습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작업 시간을 정해놓고 하루에 에코백 다섯 개 정도는 꼭 만든다. 가방의 어깨끈이 흘러내리지 않으려면 너비가 몇 센티미터여야 하는지, 폭과 총길이의 비례, 안감의 소재까지 현재는 다섯 가지 디자인만 결정한 상태다. “인테리어 현장도 마찬가지예요. 현장을 지키는 것만큼 현장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시공할 때 한 현장에서 챙겨야 할 디테일이 2백 공정 정도 되거든요. 최고 기술자들이 모여 작업하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시행착오를 그만큼 줄일 수 있죠. 자재, 시공 등 모르는 것은 늘 현장에서 배웠어요.” 이선영 씨는 최소한 앞으로 10년, 70세까지는 현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영문학을 전공한 그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늦깎이 시공 공부를 시작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단 그뿐 아니라 미래에는 누구나 직업이 두세 개쯤 될거라 예견한다. 작가이자 큐레이터로, 건축가이자 조경가로, 엄마이자 디자이너로! 나이 들어서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원단’으로 돌아간 이선영 씨. 나를 찾는 일은 가장 나다운 라이프스타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클래스도 하고, 페어에도 나가보니 핸드메이드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 많고 의식도 성숙해졌다는 것을 알았어요. 더 천천히 고민하고 만들어야겠더라고요. 무언가를 어서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이 없으면 될 것 같아요. 빨리 달리는 것보다 ‘우연히’ 나타난 샛길을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소소한 일상이나 업무상 아이디어도 모두 어엿한 꿈이 될 수 있답니다.”
<행복> 독자를 초대합니다
디자이너 이선영 씨의 작업 공간이자 쇼룸에 독자를 초대합니다. 리넨 파우치를 만드는 원데이 바느질 클래스를 진행합니다.
일시 3월 6일(수)
장소 성북구 안암로5길 72 자 서울 쇼룸
참가비 4만 원
인원 8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오픈 하우스’ 코너에 참가하고 싶은 이유를 간단히 적어 신청해주세요.
- 디자이너 이선영 뭐든 시작해도 괜찮은 나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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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바느질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 새로운 직업이 되고, 현장에서 터득한 경험치가 모여 색깔 있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에코백을 중심으로 침구와 홈 패브릭 액세서리를 선보이는 브랜드 ‘자 서울’의 디자이너 이선영 씨의 기분 좋은 하루하루.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