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분위기를 최우선으로 집을 꾸민 이승민 씨 가족의 집. 소파 옆의 작은 소반은 박홍구 작가의 작품이며, 라운지 소파는 웬델보, 다이닝 체어는 칼 한센앤선, 조명등은 구비 제품.
침실과 거실을 잇는 자투리 공간은 빌트인 옷장과 옷걸이를 설치해 드레스룸으로 활용한다.
조리 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 식기와 식재료를 보관하는 용도로 제작한 팬트리와 테이블은 송태검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수납을 강조한 이승민 씨의 요구를 반영한 팬트리는 내구성이 뛰어난 블럼의 하드웨어로 제작해 무거운 도기를 수납해도 뒤틀림이 적다.
거실 소파 뒤편 창 너머로 영동대교와 한강이 한 눈에 보인다. 원래 보일러와 세탁기가 있던 다용도실을 터서 사색의 공간으로 꾸민 것.
마주하는 순간 미니멀한 공간임을 암시하는 유리 중문.
오래전 구입해 가족의 손때가 묻은 앤티크 가구는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미니멀 인테리어에 따뜻함을 더한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아들이 1년에 두 번 오고, 해외 출장이 잦은 남편과 함께 사는 이승민 씨 가족은 최근 녹음이 감싸 안은 판교 타운하우스를 벗어나 강남 한복판 타워형 아파트로 이사했다. “남편이 강남으로 출근하게 되면서 이번 기회에 도심 속 아파트에서 살아보자고 결정했는데, 의외로 만족스러워요. 특히나 주차부터 생활 쇼핑, 운동까지 한 건물 안에서 가능한 주상 복합 아파트의 편리함에 푹 빠졌지요.” 공항을 이용할 일이 많은 가족인 만큼 인근에 도심공항터미널이 있다는 것도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아파트먼트 라이프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처음으로 전체 인테리어 공사를 결심한 이승민 씨는 같은 아파트를 시공한 경험이 있는 TG어소시에이션의 송태검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찾았다.
내 쉴 곳은 내 집뿐이리
인테리어의 콘셉트는 유학 중인 아이의 한마디로 결정되었다. “사실 저는 대리석 소재를 활용한 인테리어를 원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들과 통화를 하는데, 하루 종일 신발을 신고 생활해야 하는 미국식 생활 방식이 힘들다고 털어놓더라고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집은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여기에 간결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안주인 이승민 씨의 의견도 함께 반영해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넓어 보이게 하는 데 집중했다. 거실의 천장과 벽면을 모두 흰색 페인트로 도장하고, 벽면마다 음영의 차이를 두었다. 빛에 따라 그림자 색이 달라지면서 공간에 깊이감이 느껴지는 마감은 눈에 띄지 않는 디테일까지 챙기는 송태검 디자이너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업이다. 하얀색 바탕에 짙은 갈색이 감도는 원목 소재의 바닥과 가구를 선택해 일반 미니멀 인테리어와 달리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약간 바랜 듯한 자연스러운 질감이 돋보이는 원목 바닥재는 벨기에 브랜드 라마떼Lamatte 제품으로, 집의 인상을 부드럽게 만드는 주요 요소다. 훈증 과정을 거쳐 한 번 더 가공해 스크래치와 물에 강하고, 뒤틀림이 없어 오랫동안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다. 몸집이 큰 거실 소파는 배경처럼 스며드는 밝은 회색으로 선택해 공간을 더 넓어보이게 했다.
아들 방에는 쓰던 가구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아들이 어릴 때부터 좋아한 오크 원목 침대를 그대로 남겨달라고 당부했기 때문. 오랜만에 집에 왔을 때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옷장이나 수납장도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대신 새로 구입하는 가구는 기존의 클래식한 프렌치 스타일 가구와 함께 두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으로 골랐다. 남편과 아들이 함께 쓸 수 있도록 책상을 나란히 배치한 서재도 특별하다. 아들과 함께하는 짧은 시간이지만 부자지간의 정을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 되었다. “이사 오기 전에는 남편의 서재가 따로 있었어요. 그런데 아들이 공부한다고 들어오면 꼭 자리를 비켜줘야 할 것 같다는 거예요. 본인도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색하던 것처럼요. 이렇게 둘이 붙어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으니 진로 이야기도 하고 야구도 함께 보면서 사이가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아요.”
유학 중인 아들이 이사한 집에 왔을 때 편안함을 느끼도록 원래 사용하던 가구를 그대로 옮겨왔다. 오크 원목의 어두운 색에 맞춰 벽은 회색 톤으로 칠했다.
욕실은 빌레로이앤보흐Villeroy&Boch 세면대와 이탈리아의 욕실&주방 브랜드 보피Boffi의 수전 등 사용감과 디자인을 고루 만족하는 고급 자재로 시공했다.
부자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서재. 전자 드럼은 남편 윤경원 씨가 최근 시작한 취미 생활이다.
다채로운 색을 은은하게 뿜어내는 글라스 이탈리아의 시머 스페치Shimmer Specchi 거울에 비친 이승민 씨.
주방과 거실의 경계를 허물다
인테리어 공사를 의뢰할 때 이승민 씨가 강조한 또 다른 조건은 수납이었다. TG어소시에이션 송태검 실장은 주방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아파트 단지는 70평대와 55평대의 구조가 똑같지만, 주방 너비에서 차이가 있어요. 이 집은 55평형인데 거실과 주방 사이의 벽을 철거해 보다 넓어 보이지요. 가구는 최대한 빌트인으로 제작해 공간 효율을 높였습니다.” 싱크대 위 상부장을 모두 없애고 식기와 식재료를 넣을 수 있는 빌트인 팬트리를 주방 한쪽에 설치했다. 중앙의 넓은 식기장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보조 냉동고를 넣고, 오른쪽에는 약이나 간식 등 실온에 두어도 되는 것을 보관한다. 일반 주방이라면 곳곳에 흩어져 있을 것들이 한쪽에 모여 있으니 동선이 훨씬 간결하다. 팬트리 내부 시스템은 오스트리아 브랜드 블럼Blum의 하드웨어로 제작했다. 문을 활짝 열면 조명이 켜지고, 슬라이딩 하부장이 부드럽게 열린다. 특히 무게가 나가는 도자 그릇의 하중을 견딜 정도로 견고하다. 넓어진 주방은 거실 역할을 겸한다. 이승민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도 바로 이곳이다. 거실과 주방을 나누는 4인용 테이블은 한쪽에만 다리가 있는 캔틸레버 타입으로 제작, 싱크대와 자연스럽게 연결해 식탁과 책상을 겸한다. 독일제 건식 무늬목은 아노다이징anodizing 코팅한 반무광 금속 싱크대 상판과 이질감없이 어우러진다. 세 식구가 모여 앉았을 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테이블 폭은 약 10cm 더 좁게 디자인했다(보통 수입 테이블은 폭이 900cm 이상인 제품이 많다). “저는 동그란 테이블을 두고 싶었어요. 그런데 디자이너는 주방이 더 좁아질 것이라며 빌트인 테이블을 제안했는데, 지금은 디자이너의 의견에 따르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 자리에 앉아서 밥도 먹고 책도 읽고요. 앞만 보게 되는 소파보다 이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많거든요.” 다이닝 체어로 사용하는 칼 한센앤선의 CH24 체어는 만족도가 가장 높다. 수종과 마감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데, 송태검 디자이너는 화이트 오크 수종에 무광으로 매끄럽게 소프soap 마감한 의자를 추천했다. 일반 오일 마감보다 감촉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에이징되기 때문이다. 남편 윤경원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거실 뒤편의 구석 자리. 세탁기와 보일러, 수도관이 있던 다용도실을 터서 만든 자투리 공간인데 창 너머로 영동대교가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풍경이 아까워 디자이너가 제안했다. 암체어 하나만 배치한 이곳에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차곡차곡 정리된다. 언제고 다시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건 삶에 큰 위안을 준다. 집이 취향을 과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요즘, 가족 모두가 따뜻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 이승민 씨 가족의 아파트먼트 라이프가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송태검은 이탈리아 I.E.D(Istituto Erupeop Design school) 인테리어학부를 졸업하고, 도무스 아카데미 석사 과정을 마쳤다. 밀라노 디자인 스튜디오 파워에서 유명 브랜드의 매장 인테리어를 담당한 경력이 있다. 현재는 건축·인테리어 스튜디오 TG어소시에이션(tg-association.org)에서 주거·상공간을 두루 아우르는 작업을 펼친다.
- 삼성동 아이파크 181.81㎡ 아파트 간결한 디자인이 품은 따뜻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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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km 밖 북한산까지 보이는 큰 창을 통해 햇빛이 포근히 내려앉는다. 빛이 거실 끝 복도에 다다르자 창백하던 흰색 벽이 온화하게 표정을 바꾼다. 이 집은 화려한 색을 배제하고, 꼭 필요한 가구만 배치해 정갈하게 꾸민 세 식구의 보금자리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