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먹먹한 아름다움
벨기에 건축 스튜디오 K2A가 설계하고 아르노 마송Arnaud Masson이 디자인한 브뤼셀의 ‘House WW’는 19세기 주택 두 채를하나의 현대적 주거 공간으로 탈바꿈한 복원 프로젝트다. 노출 콘크리트를 그대로 살리되 얼룩진 느낌으로 블랙 도장 작업을 한 것이 특징. 이 벽면은 그 자체로 장식이 되어 모던하면서도 빈티지한 분위기가 공존하는 오묘한 공간을 완성했다. 사진 Nicolas Schimp
“블랙은 공간을 차분하게 정돈하기 위해 선택한 컬러입니다. 단, 균일하게 칠하는 대신 일부러 얼룩을 내어 마치 석벽에 바른 듯한 빈티지한 느낌을 연출했습니다. 시크하고 차가운 속성을 지닌 블랙을 거꾸로 따뜻하게 해석하고 싶었죠. 옛 건축물에 대한 존중을 담은 것이기도 합니다.” _Oana Crainic(K2A 건축 스튜디오)
2 쿨한 첫인상
따뜻한 느낌의 먹색부터 화이트가 섞인 탁한 블랙, 광택이 도는 선명한 블랙까지, 블랙에도 여러 뉘앙스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까만 집에 사는 구자영 씨는 쿨한 느낌의 블랙 인테리어를 원했다. 특히 현관은 집의 첫인상인 만큼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여백을 살리고 벽지와 타일, 페인트까지 모두 질감이 다른 마감재를 활용해 다양한 뉘앙스를 완성했다.
“올 블랙이 단조로울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같은 블랙이라도 종이(실크 벽지와 합지 벽지), 타일(무광과 유광), 페인트(플랫과 에그셸) 등 마감에 따라 또 빛과 조명의 연출에 따라 다양한 톤앤매너가 연출돼요. 약간 반짝이는 텍스처를 선택하면 쿨한 느낌과 관리의 실용성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죠.” _ 조연희(인테리어 디자이너)
3 다양한 오브제의 시선 정리
형태도, 컬러도, 크기도 제각기인 문구를 보기 좋게 디스플레이하는 방법으로 ‘블랙’ 솔루션을 제시한 문구점 ‘포인트오브뷰’. 김재원 대표가 하나둘 모은 영국 앤티크 가구를 블랙으로 도장해 카운터와 진열장으로 사용한다. 자칫 분위기가 무거워 보일 수 있어 옐로 베이지 컬러를 배색으로 사용했는데(벽 마감), 동서양 스타일이 섞여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무드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좋다. 사진 박찬우
“문구라는 카테고리는 톤앤매너를 맞추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산만해지기 십상이에요. 영화 <팬텀 스레드>를 인상 깊게 봤는데, 영화를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블랙과 옐로 베이지 컬러를 키 컬러로 잡고, 가구를 모두 블랙 컬러로 도장했죠. 조각이 많아 다소 고루하게 느껴지던 앤티크 가구가 블랙 컬러와 만나니 오히려 장식성이 줄어들면서 묵직한 느낌은 배가되는 효과가 있어요. 가구를 리폼할 때 보다 선명한 블랙 컬러를 얻으려면 표면을 갈아내고 도장하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_ 김재원(포인트오브뷰 대표)
4 타일의 변주
블랙 타일로 마감한 벽면을 가로지르는 블랙 아일랜드. 내추럴한 소재의 클래식 가구 라인을 선보이는 파넬이 최근 경기도 용인에 오픈한 빌라 드 파넬의 카페는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한 장 한 장 미세하게 질감이 달라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레이어가 느껴지는 벽면의 블랙 타일은 최근 가구만큼이나 문의가 많다. 바닥 역시 타일로 마감, 블랙과 밝은 그레이 타일을 사선으로 시공해 공간에 리듬감을 부여했다. 사진 박찬우
“다양한 컬러 매치에 싫증이 나는 순간이 있었는데, 유일하게 싫증 나지 않는 색이 블랙이더라고요. 스타일에 상관없이 공간을 품어준다고 할까요? 벽면과 아일랜드는 모던 스타일, 바닥 타일은 네오 클래식 무드지만 ‘블랙’이라는 융화 작용 때문에 완벽한 짝이 됐어요.” _ 최정아(파넬 디자인 실장)
5 블랙은 실용적이다
이 집의 메인 컬러는 사실 화이트다. 하지만 취미 공간을 위해 마련한 멀티룸과 부부 침실만큼은 블랙이 강렬하게 작용한다. 멀티룸 벽에 자전거를 걸어 보관하길 원한 클라이언트를 위해 김지영 디자이너는 블랙 타일로 벽면과 일부 바닥을 마감했다. 덕분에 자전거에 묻어 들어온 오염 물질이 떨어져도 오염이 쉽게 눈에 띄고 닦기 쉽다. 침실은 천장(벽지)과 바닥(강마루)만 검은색으로 마감했다. 블랙 컬러 침대의 형태가 눈에 띄도록 고안한 방법이었지만, 위아래에 깔린 블랙 컬러가 시선을 옆으로 분산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봤다. 사진 김규한 기자
“블랙 컬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오히려 주거 공간에 적합한 실용적 컬러가 됩니다. 먼지나 얼룩에 자유롭게 블랙 타일로 마감한 멀티룸처럼 말이죠! 블랙을 시도하기 조심스럽다면 먼저 꼭 두고 싶은 블랙 오브제를 골라 한 공간을 꾸며보세요. 오브제 형태와 공간의 목적에 따라 자재를 결정하면 보다 현실적이고 아름다운 블랙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_김지영(인테리어 디자이너)
6 가장 따뜻한 색, 블랙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달앤스타일’을 이끄는 박지현 디자이너가 직접 꾸민 지하 주방을 보면 블랙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벽면과 바닥은 친환경 시멘트 마이크로토핑microtopping을 활용해 모두 검은색으로 칠하고, 틀어지기 쉬운 문은 검은색으로 도장한 철로 제작했다. 그런데도 주방이 차갑거나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초록 나무가 도처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테이블과 선반, 소품은 고재를 주로 사용하고, 공간 구석구석 대추야자와 홍콩대엽 화분을 두어 블랙 인테리어지만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 이창화 기자
“온통 블랙으로 꾸며도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는 결정적 이유는 공간을 감싼 소재입니다. 시멘트의 한 종류인 마이크로토핑을 반복적으로 얇게 도장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고, 붓질 텍스처를 살려 볼 때마다 다른 표정을 짓지요. 검은색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싶다면 원목 가구나 질감이 느껴지는 석재, 식물 등 자연 소재를 매치해보세요. 질감을 그대로 살린 자연 소재는 블랙 인테리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줍니다.” _박지현(인테리어 디자이너)
7 감각의 재생
재생 건축의 트렌드를 주도한 카페 ‘앤트러사이트Anthracite’가 ‘무연탄’이라는 뜻을 지닌 것이 우연은 아니다. 지난 7월 문을 연 연희점은 외관부터 내부까지 블랙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특히 일본의 마키시나미 작가가 나왕 합판에 먹을 올려 동양적 느낌을 가미한 선반장은 개별 가구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공간에 완전히 흡수되는 합일의 경지를 보여준다. 사진 이경옥 기자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 많은 것에 노출되어 있어요. 입구에서 카페 내부에 이르는 컴컴한 구간은 온통 검은색으로 둘러싸여 외부 자극을 배제하죠. 어둠 속에서 감각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롭게 일깨워주는 거예요. 또한 햇빛을 받으면 색이 점차 진해지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베이크라이트 소재의 테이블과 의자를 두어 공간에 빛과 어둠을 자연스럽게 담고 싶었습니다. 블랙의 창조성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_김평래(앤트러사이트 대표)
8 공간의 효율적 분리
주거 공간 전체가 아닌 주방이나 침실, 서재 등 한 공간만 올 블랙으로 포인트를 주는 방법도 있다. ‘옐로플라스틱’ 최지선 실장은 거실과 주방을 시각적으로 구분 짓는 동시에 공간의 개방감을 살리기 위해 컬러 대비를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바닥부터 천장, 유리 파티션, 조명까지 올 블랙으로 꾸민 주방은 유광 하이글로시 상판과 무광 필름 도어를 함께 사용해 실용성을 높이고 시선의 지루함은 덜어냈다.
“일반 40평대 LDK 구조의 집에서는 중문이나 가벽을 설치하지 않고도 컬러 대비를 활용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분리할 수 있어요. 이때 블랙은 눈의 피로도는 줄여주면서 집중도를 높이는 데 탁월하죠. 어떤 컬러와 매치해도 무게중심을 잘 잡아주는 포용력을 지녔다고 할까요.” _최지선(인테리어 디자이너)
9 자연과의 매개체
오스트레일리아 헵번 스프링스Hepburn Springs의 협곡 가장자리에 위치한 ‘오이코스 브레이크넥 고지Oikos Breakneck Gorge’는 보는 이에게 무한한 영감을 안겨주는 미학적 건축물이다. 2018년 ‘디진 어워드Dezeen Awards’ 주택 부문에 선정되었을 만큼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이곳은 어두운 석재 타일과 검은 광택의 시멘트 욕조, 자연 질감의 돌 소재가 어우러져 장엄한 풍경의 일부를 이룬다. 사진 Jack Lovel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집 내부로 조화롭게 들이기 위해 노력했어요. 검은색 벽돌을 사용해 석조 벽체를 제작했는데, 석조 조각들이 쌓여 만든 벽은 그야말로 자연의 일부로 느껴집니다. 사실 자연보다 더 나은 디자이너는 없습니다. 블랙 자연 소재들이 그 연결 고리가 되었죠.” _ Robert Nichol & Sons(건축 스튜디오)
10 연기로 공간을 완성하다
1927년, 상하이에 서구 문화가 들어오며 화려한 밤 문화를 꽃피우던 시기의 어느 중식당의 밤을 재현한 레스토랑 ‘덕후선생’. TG어소시에이션 송태검 디자이너가 시공한 이 공간은 바닥부터 천장, 사방의 벽까지 빼곡하게 채운 벽돌이 인상적이다. 오동나무를 태운 연기로 짙은 회색 벽돌을 검게 그을려 깊이 있는 블랙 인테리어를 연출한 것. 벽돌 사이의 이음매도 벽돌과 어울리는 검은색을 찾기 위해 다양한 제품을 섞어 완성했다. 사진 이창화 기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이 다른 차원의 공간에 당도한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마감재를 질감 있는 점토 벽돌로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표면이 우둘투둘한 벽돌을 페인트로 칠했을 때 나는 인위적 느낌을 피하고 싶어 오동나무를 태운 연기로 검게 그을리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_ 송태검(인테리어 디자이너)
11 전통과 현대의 공존
전복이나 조개껍데기 조각을 다양한 형태로 박은 우리 전통 가구 자개장은 대부분 배경이 검은색이다.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자개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담담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유일한 색이기 때문이다. 이혜미 도예 작가는 최근 작업한 진주 시리즈와 블랙 골드림 시리즈를 자개장 위에 나란히 전시했는데, 서양 정물화에 나올 법한 그의 식기와 자개장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사진 김규한 기자
“최근 작업한 진주 시리즈를 특별한 선반에 전시하고 싶었어요. 아는 분을 통해 구입한 건데, 문경에서 할머니가 쓰던 자개장을 가져오셨대요. 자개 모양이 과하지 않고 단아한 매력이 좋아 흔쾌히 구입했죠. 막상 자개장과 진주 시리즈를 함께 배치하니 검은색이 펄감을 균형 있게 끌어안는 느낌이 들어요.” _이혜미(도예 작가)
12 철과 옻의 만남
허명욱 작가가 최근 디자인한 카페 ‘한남작업실’은 나무와 철, 반짝이는 옻칠까지 다양한 물성의 블랙을 즐길 수 있다. 공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5m 길이의 아일랜드 테이블. 까만색 철판으로 제작해 스테인리스 스틸이 줄 수 없는 묵직한 쇠의 물성을 살리되 상판에 옻칠을 해 물이 닿아도 녹슬지 않고 식자재를 올려도 걱정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옻이 피면 더 깊고 먹먹한 블랙을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옻칠의 매력. 바랜 듯하면서도 중후하고, 하나만으로도 느낌 있는 공간이 완성된다. 사진 박찬우
“옻은 칠하면 칠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색의 기운도 함께 올라가요. 무수히 반복하는 시간의 켜가 깃든 덕분일까요? 인테리어를 새로 했는데도 낯설지 않고, 처음 찾는 분들도 편안하고 친숙한 느낌이 든다고 해요.” _허명욱(옻칠 작가)
- 블랙 인테리어_ 사례 낯선 새로움, 블랙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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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검은색으로 마감한 공간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는 블랙 마니아들의 리빙룸. 주거와 상공간, 클래식과 모던을 넘나들며 다양한 뉘앙스로 개성을 더한 블랙 인테리어를 모았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