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우리건축의 김원천 소장. 한옥 호텔 혜화 1938 바로 옆엔 이 공간을 만든 참우리건축의 사무실이 있다.
기존 벽을 허물고 새로 벽을 세우면서 호텔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걸터앉아 쉴 수 있게 데이베드를 설치했다. 데이베드 밑은 수납공간으로 활용한다.
지역 특유의 정취가 깃든 곳을 방문하면 좋은 기운을 느끼곤 한다. 취재차 방문한 혜화동이 그랬다. 혈기 넘치는 대학로 메인 거리를 조금 벗어나니 정말 거짓말처럼 한적한 골목이 펼쳐졌는데, 그야말로 ‘동네’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얼마 전 문을 연 한옥 호텔 ‘혜화 1938’이 어우러져 있었다. 이곳은 2014년 시작한 참우리건축이 만들고 운영하는 곳이다. 참우리건축은 한국 고유의 건축물인 한옥을 전문으로 짓는다. 건축가가 지은 호텔은 많이 봤지만 직접 짓고 운영까지 하는 한옥 호텔이라니 더 특별하다. “2014년 사무소를 바로 옆 한옥에서 시작했어요. 한데 직원이 늘어나면서 공간이 협소해졌고, 마침 주거 공간이던 이곳을 사용할 수 있게 됐죠. 사무실로만 사용하기엔 공간이 넓어 방안을 모색하다 건축가만이 할 수 있는 서비스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고, 한옥 호텔을 만들기로 결정했지요.” 올해로 일흔아홉 살인 이 한옥은 일제강점기에 조선 한복판에 대량으로 들어선 주거 형태로 시작했고, 1980년대 이후 대학생의 하숙집으로 30년간 사용했다. 하숙집을 운영하던 주인이 식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는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을 하나둘 받았듯, 참우리건축도 사무실로 사용하고 한편을 손님들과 공유하니 모양은 다르지만 취지가 비슷해 동네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듯했다.
옛것과 새것이 교차하다
한옥은 남동 사면으로 흐르는 정방형 대지 위에 16평 정도의 집이 ㅁ자형 평면으로 앉아 있다. 전면은 여러 집이 이어진 겹집 형태라 사무실과 이어지는 벽을 허물고 내부를 이어 결과적으로 호텔을 방문하는 손님은 ㄷ자형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호텔은 두 개의 객실로 구성하며, 본래 대청이던 곳은 다이닝룸으로 널찍하게 남겨뒀다. 건축가들이 처음 이 한옥을 마주했을 때 세월의 자취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목수가 서까래에 새긴 글씨, 1980년대 가정집에서 볼 법한 패턴의 나무 천장, 각기 다른 색감의 나무 기둥 등 한옥의 골조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러 시대가 혼재한 것. 건축가들은 이러한 요소를 유지하되 그들만의 개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새로운 것 또한 변화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언젠가 이 한옥이 과거의 일부로 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건축가들과 이 공간을 디자인할 때 한 가지 원칙을 정했어요. 바로 ‘원 구조만 부수지 말자’였죠. 이 집은 최대한 원래 구조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이곳이 다른 한옥에 비해 독특한 점은 신을 신고 출입할 수 있다는 점. 마당은 콘크리트 디딤돌로, 한옥 내부는 타일로 마감한 덕분이다.
혜화 1938은 벽, 바닥 등 한옥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색을 찾는 묘미가 있는 공간이다. 본래 이 집의 일부였던 창호는 버리지 않고 침대 위 벽걸이 에어컨을 가리는 데 사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대청 바닥을 25cm 낮추니 마당과의 접근성이 좋아졌다. 바닥을 낮추며 나온 폐석재로 작은 객실 앞 돌담을 쌓았다.
한옥 외벽의 일부를 파란색 타일로 꾸미니 오가는 어르신들이 “옛날 우리 집에도 쓰인 타일이 여기에 쓰였네”라며 반가워하신다고. 길가에 위치한 사랑방은 유리창으로 내부를 볼 수 있게 했다. 이곳은 작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참우리건축의 건축가들은 이 원칙 아래 그동안 한옥을 지으며 시도하고 싶었던 아이디어를 마음껏 표출하기 시작했다. 타일이 깔려 있던 마당은 5cm 두께의 콘크리트 발판을 징검다리처럼 배치하고 틈새엔 흙 대신 굵은 모래를 깔았다. 서울 도시 한옥은 보통 마당을 중심으로 대지 경계까지 건물이 꽉 들어차 빗물이 마당으로 고스란히 떨어지며 배수구로 흘러가는데, 굵은 모래가 물길 역할을 해 배수구로 빠져나가지 못한 낙엽이 배수구 주위에 옹기종기 모이기도 한다. 대청엔 신을 신고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기존 바닥을 25cm 낮춰 입식 공간으로서 높이를 확보하고, 바닥을 낮추면서 나온 폐석재를 모아 마당에 돌담을 쌓았다. 한옥의 바닥은 으레 나무로 마감하지만 타일을 시공해보기로 했다. 대신 기둥과 주춧돌이 돋보이도록 다이닝룸의 테두리는 직선으로, 가운데는 대각선으로 시공해 마치 카펫이 깔린 것처럼 연출하니 기존 구조와 잘 어우러졌다.
오랜 세월을 품은 이곳은 그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욕실 천장의 나무 색감이 다른 곳에 비해 약간 어두웠지만 참우리건축 건축가들은 이를 그대로 살렸다. 어두운 색감 덕분에 휴식 공간인 욕실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마당의 콘크리트 디딤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벽돌을 이용해 건축가들이 그린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널찍하게 비워둔 다이닝룸. 왼쪽 벽에 박훈성 작가의 작품을 걸어 공간에 힘을 더했다. 참우리건축의 건축가들은 엔티크 가구 매장에서 고른 가구와 조명등으로 한옥 호텔을 손수 완성했다.
모두가 완성하는 곳, 공간에 문화를 심다
사실 건축가가 자신이 만든 공간을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사무실이 호텔 옆에 붙어 있고, 직접 관리하기 때문이다. “북에서 남으로 바람이 흐를 수 있도록 낮은 창을 하나 냈어요. 얼마 전 가족이 투숙했는데, 어린아이가 이 창을 문으로 사용하는 거예요! 생각지 못한 쓰임새, 그리고 저희가 만든 공간을 그들 식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지요.” 모든 벽을 막지 않고 길에 닿아 있는 사랑채 창문을 유리창으로 만들고, 앞에 작은 마루를 두어 주민이 쉬어 갈 수 있게 했다. 또 이곳은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쇼룸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강의, 공연 등 문화 행사를 열어 투숙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할 수 있게 할 예정. 한옥은 분명 예스러운 건물이라 현재 서울 풍경에서는 튈 수도 있는 존재다. 하지만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할 것인지 관점을 확립하고 대한다면 지금 이 시대에도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을 터. 한옥 호텔 혜화 1938은 앞으로 한옥이 발전해야 할 바람직한 모델이 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 건축가가 만들고 운영하는 한옥 호텔 혜화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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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 다시 대중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20년 전의 일이다. 이 시절의 도시 한옥은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한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한옥이 천천히 발전하며 시대를 품어왔다면 어땠을까? 최근 오픈한 한옥 호텔 ‘혜화 1938’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