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디자이너 김상윤 오래된 미래
창가에 드리워진 대나무 발을 올리면 갈대밭, 산 등 풍경 영상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가장 뷰가 좋은 곳에 다이닝 공간을 배치한 전통 가옥을 재현해 냈다.
“소쇄원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리조트라고들 하지요. 휴양림인 데다 손님을 환대하기에 최적화한 구조로 정자를 분리해 설계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마치 소쇄원의 정자에 앉아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며 먹고 마시는 것처럼, 그 모습을 상상하며 이 공간을 꾸몄습니다.” 리슨 커뮤니케이션의 김상윤 대표는 한국적 라이프스타일을 재해석해 건축, 인테리어, 제품 등 다양한 디자인으로 풀어낸다. 전통과의 ‘균형’을 강조하는 그는 자연과 동화된 전통 가옥 호텔의 다이닝룸을 꾸몄다. 옛집의 창가에 드리워진 대나무 발을 형상화하듯 벽 한 면을 메우고 일부만 말아 올린 후 스크린을 설치해 갈대밭, 산, 풀잎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영상을 반복 재생시켰다. 또 바닥과 같은 소재로 낮고 넓은 좌식 테이블을 만들어 연못 위에 떠 있는 듯, 구름 사이의 바위에 앉은 듯 신선놀음을 즐기도록 한 것. “한옥은 자연이라고들 표현하잖아요. 자연과 건축물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문 하나 열면 바람 통하고 향기 통하는 물아일체의 공간이죠. 그중 제일 목 좋은 공간에 다이닝룸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주장이에요. 자연 속에서 누리는 한 끼 식사야말로 최고의 만찬일 테니까요.”
전통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미가 드러나는 문 오키드 조명등은 리슨 커뮤니케이션이 디자인한 것으로 여백의 미를 드러낸다.
전시장에 자연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는 일부러 공간을 비워냈다. 중간중간에 한지 조명등, 대나무로 난을 형상화한 문오키드 조명등, 디지털 아트 작품 등을 배치해 점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것. 아무것도 없지만 오히려 여백의 미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 추가하고 덧댈수록 자연과 멀어지는 섭리를 담아낸 걸까? 오래전 소쇄원에서 일어났을 법한 장면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지향하는 궁극적 다이닝룸이기도 한 이 공간을 통해 ‘오래된 미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공간 디자이너 신용환 원더 월
필요에 따라, 스타일에 따라 욕실과 드레스룸을 가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벽. 레이아웃이야말로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노르딕브로스 디자인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약 중인 신용환 디자이너. 로프트 호텔 콘셉트의 욕실과 드레스룸을 유연하게 연출했다. “욕실과 드레스룸은 좁고 기능적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어릴 때 놀던 다락방을 떠올렸어요. 창고처럼 자질구레한 물건을 넣은 박스들이 쌓여 있었는데, 이를 레고처럼 재조립해 저만의 아지트를 만든 기억을 요.”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레이아웃이라 말하던 그의 철학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겹쳐진 형태의 독특한 벽을 중심으로 네 가지 공간을 가변적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구성하면 네 개의 공간 중 하나만 분위기를 바꾸어도 색다른 느낌을 연출할 수 있어요. 원더 월의 핵심은 언제나 변화 가능한 ‘유연함’이거든요.”
욕조는 캠핑용 에어 베드와 나무줄기로 연출해 보는 이로 하여금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
욕실 가구와 드레스룸 가구에도 힘을 줬다. “요즘은 세면대가 꼭 욕실에 있지 않아요. 침대 옆에 있기도 하고, 파우더룸에 따로 배치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데커레이션 효과에 집중해 디자인했습니다.” 욕조는 인스피레이션을 줄 수 있는 형태로 꾸몄다. 공기를 넣어 사용하는 캠핑용 에어 베드에 물줄기가 떨어지는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구불구불한 나무줄기를 매치했다. 드레스룸 가구도 인상적이다. 옷장은 선물 상자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으로 밴드와 식물 리본을 더했으며, 거울은 조형미 있게 연출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값비싼 작품처럼 보이도록 오브제 같은 거울을 디자인했다. 특별할 것 없는 사각형 공간이지만, 벽을 더하니 공간을 짜임새 있게 나눌 수 있고, 공간을 구획하니 분위기를 손쉽게 바꿀 수 있어 자연스럽게 데커레이션이 가능한 구조. 이것이야말로 원더 월이 원더풀한 이유 아닐까?
공간 디자이너 김윤수 夢(꿈) In a Dream
본디자인의 김윤수 대표는 도자기 요소를 활용해 흑백이 대비되는 담백한 공간을 꾸미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몽환적 분위기의 침실을 연출했다.
오리엔탈적이고 내추럴한 공간을 제안해온 본디자인의 김윤수 대표. 그는 자연과 도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몽환적 분위기의 침실을 선보였다. “호텔에서도 ‘룸’ 하면 우리는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요? ‘잠을 잔다, 휴식을 취한다’처럼 원초적 이미지가 떠오르죠. 여기에 ‘꿈’을 더하면 그때부터는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 없게 됩니다.” 그가 연출한 부스는 꿈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모호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치유와 쉼을 경험할 수 있다. 출발점은 오리엔탈적이고 내추럴한 공간. 이를 위해 그는 대중에게 익숙한, 하지만 공간 요소로는 낯선 소재인 도자기를 택했다. 대나무를 형상화한 도자기 파티션과 비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천은 규격화된 부스 안에 프라이빗한 침실을 완성했다. 육각형 도자기 모듈 패널은 죽부인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으로, 공간에 자연을 끌어들이고 사용자에 따라 형태와 크기를 변형할 수 있다.
비현실적 요소로 사용한 구름. 풍선 위에 젖은 휴지를 겹겹이 붙여 만들어 부스 곳곳에 배치했다.
파티션이 현실적 요소라면, 구름은 그야말로 비현실적 요소. 풍선 위에 휴지를 겹겹이 붙여 뭉게구름처럼 만들고 부스 곳곳에 배치했다. 도자기 패널과 종이 구름은 모두 하얀색. 이와 대비되면서도 담백한 공간을 꾸미고 싶었다는 그는 부스 전체를 블랙 컬러로 덮었다. 물론, 대부분의 꿈은 흑백 영상으로 기억되기에 의도적으로 고른 것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에 갔을 때 파크 로열 호텔에 머문 적이 있어요. 호텔 진입로에서 객실로 들어가는 길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마치 호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숲인 듯 랜드스케이프화되어 있었습니다.” 호텔은 일상이 아닌, 오히려 일탈에 가까운 공간이다. 이러한 낯선 곳에서 편안함을 부여하는 건 오직 자연뿐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산업 디자이너 최중호&플로리스트 박지선, 신수정 어번 이그조틱
거실과 테라스에 트로피컬한 무드를 조성해 도심 속 리조트를 완성한 박지선 플로리스트와 최중호 디자이너, 신수정 플로리스트.
공간 디렉터이자 산업 디자이너, 최중호 스튜디오의 최중호 대표와 스타일지음의 플로리스트 박지선・신수정 대표가 협업 전시를 기획했다. 주제는 ‘어번 이그조틱’. 마치 방갈로 호텔, 리조트에 온 것처럼 트로피컬한 무드가 지배적이지만 이곳은 도심 한가운데, 그러니까 집이 될 수도 있고 사무실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공간이다. 여기에 식물을 들여 힐링 기운을 더했다. 행잉 식물은 실내와 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코너에 꾸민 정원은 실내에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식물 패턴의 벽지는 두 플로리스트가 직접 식물을 채집한 뒤 그려서 만들었다. “기존 벽지는 열대식물로만 패턴이 그려져 있었어요.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식물이거나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식물로 패턴을 그리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무작정 시도했지요. 자세히 보면 호박잎과 아카시아잎 등 눈에 익은 잎사귀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바 테이블과 바 체어, 행잉 식물로 연출한 테라스. 철제 가구지만 라운딩 디자인과 따뜻한 색감을 입혀 조금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 공간을 디렉팅한 최중호 대표는 관람객이 자신의 공간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부스의 두 벽면은 벽지를 붙이고 남은 쪽은 차분한 그린 컬러를 칠한 뒤 하인영 작가의 그림을 건 것. 한국과 방콕, 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하인영 작가의 작품은 화려한 색채를 활용해 트로피컬한 무드에 잘 어울린다. 반면 공간은 모던하게 꾸몄다. 가구도 모두 그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패브릭 소파는 최대한 깔끔하게 만들고 차가운 물성을 지닌 철제 테이블&의자는 라운딩 디자인한 뒤 부드러운 컬러로 도장해 상반된 이미지를 표현했다. 공간을 하나의 무드로 채우면 그만큼 단조로운 것도 없을 터. 중앙에 철제 테이블을 놓아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았다. 그야말로 어번 이그조틱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 2016부산디자인페스티벌 리뷰 내 집을 호텔 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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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디자인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 전시인 ‘디자이너스 초이스’는 네 팀의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공간 솔루션을 제안했다. 올해는 ‘내 집을 호텔 룸처럼’이라는 주제로 일상 속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생활 공간을 디자인함으로써 일상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공유했다. 디자인, 패션&뷰티, 다이닝, 소셜라이징 서비스가 응축된 호텔을 모티프로 4인이 재해석한 인스피레이션 공간에서 달콤한 휴식에 취해보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