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신도시 단독주택지 단지에 지은 월 하우스. 가운데 중정을 둔 폐쇄적 구조가 일반적인 설계라면 이 집은 다섯 개의 월을 파티션처럼 세우고 벽마다 창의 위치를 달리해 외부 길에서는 실내가 들여다보지 않도록 설계했다. ⒸSergio Pirrone
가족, 자연, 이웃과 소통하는 집
판교 신도시 단독주택 부지에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이 들어섰다. 공간과 공간을 가르는 벽으로 이루어진 집. 이름도 월 하우스Wall House다. “2007년 필지 분양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기반 시설이 여러모로 부족해 이사를 결정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지난해 어머니와 합가를 결정하고 집 짓기를 시작했지요. 3세대가 함께 사는 집으로 듀플렉스 홈duplex home이나 땅콩집을 제안하는데, 그렇게 지으면 과연 같이 사는 느낌이 들까 싶더라고요. 설계를 맡은 운생동과 회의할 때 이런 부분을 말씀드렸더니 집의 테마를 ‘소통’으로 잡아주셨지요.”
옥상에도 월을 높게 세웠다. 사각 프레임의 레이어를 통해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과 하늘을 조망할 수 있다.
단독주택은 3세대가 함께 사는 집으로 꽤 이상적이다. 위층과 아래층으로 분리해 살면 세대 간 독립성이 확보되고, 두 집이 함께 하니 비용은 물론 집 짓기에 대한 부담이 가벼워진다. 최근엔 듀플렉스 홈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 정작 ‘함께 살기’의 의미를 얼마나 충족하는 것일까 의구심이 든다. 신효영ㆍ이필종 부부 역시 단독주택에 살면서 식사 때마다 핸드폰으로 식구들을 불러 모으고, 오히려 얼굴 보기 더 힘들어졌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무엇보다 ‘소통’의 의미를 강조했다.
일괄적으로 필지를 분양한 판교 단독주택 부지의 단점, 즉 닫힌 구조의 집에서 탈피해 벽을 통해 열린 구조를 구현한 월 하우스. 가장 남쪽의 월 안쪽으로 중정을 구성했다.
운생동의 장운규, 신창훈 소장은 가장 구조적이며 건축적 어휘인 ‘벽’을 통해 주거를 구성했다. 현대사회의 가족 단절과 해체를 벽의 단절로 인식하고, 이를 변형함으로써 소통하는 가족으로 다시 되돌리겠다는 ‘관계 회복’의 의미를 담은 것. 전체적으로 다섯 개의 벽 사이에 외부 공간을 중간중간 삽입해 자연이 관통한 집을 제안했으며, 벽으로 애워싼 정원, 반외부 테라스, 옥상 테라스 등을 구성해 외기를 즐기는 집을 완성했다. 유리창 없이 네모 구멍만 뚫은 창은 계절마다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프레임이요, 정원을 수직으로 둘러싼 빨간 벽은 하늘과 극명한 컬러 대비를 이뤄 신선한 시적 감성을 불러 일으킨다.
북쪽 벽 귀퉁이에 현관 입구가 자리한다. ⒸSergio Pirrone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반영해 1층은 어머니 방과 가족이 함께하는 거실과 다이닝 공간으로, 2층은 두 딸과 부부의 공간, 가족실로 구성. 가족 구성원 각자의 방과 공용 공간이 서로 소통하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이다.
2층 부부 침실에서 바라본 자녀 방. 중정을 중심으로 통창을 내 소통의 의미가 크다. 두 자녀의 방 역시 다락방 계단을 사이로 연결되는 구조다.
예컨대 거실에서 2층 서재가 슬래브 틈새로 보이거나, 부부 침실을 연결하는 복도에서 1층 거실과 주방이 보이는 식이다. 2층의 백미는 가족실로, 두 층을 넘나드는 높은 통창과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이 인상적이다. 자매의 방은 다락방으로 오르는 계단을 중심으로 마주 보며 연결된 구조. 작은아이가 더 자라면 다락방을 침실로 사용하는 등 공간을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저희 방에서 중정을 통해 둘째 아이 방이 보여요. 통창으로 마주하니 관찰이나 감시, 간섭의 의미보다는 소통의 의미로 받아 들이는 것 같아요. 벽마다 창의 위치를 조금씩 달리해 외부 길에서는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했지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창이 많아 불안하고 불편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주택에 살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요. 그때는 골목길에서 집집마다의 사정을 다 알고 지냈잖아요. 가족은 물론 이웃과 도 소통할 수 있는 집이 되길 바라죠.”
1층 주방. 주방은 사용하기 편리한 동선으로 콤팩트하게 구성했고, 보조 주방, 다이닝과 연결되는 덱으로 편의성을 더했다.
‘다름’이 주는 가치
건축주가 한 가지 더 강조한 것은 ‘아파트와 다른 주택’이다. 주택이라고는 하지만 냉난방 효율성과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창의 크기를 줄이고, 공간을 규격화한다면 결과적으로 ‘아파트’의 평면을 수직으로 옮겨놓은 것과 다르지 않을 터. 장운규, 신창훈 소장은 우선 높은 천장고로 주택 설계의 묘미를 살렸다. 판교 단독주택 부지의 경우 층수 제한은 있지만 고도 제한은 없는 터라 전체 높이를 11m로 정하고 1층과 2층 층고를 최대한 높인 것. 물론 냉난방 효율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했다. 남측에 세운 벽은 여름에 직사광선이 깊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겨울에는 낮아진 태양 고도를 깊숙이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옥상에는 벽과 벽 사이에 태양광 시스템을 적용해 주택 대부분의 전기 에너지를 담당한다. 최첨단 홈 오토메이션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특징. 기기 간의 통상 제어가 가능한 홈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방재ㆍ방범은 물론 가전제품, 냉난방, 조명등을 제어할 수 있다.
2층에서 다락방으로 향하는 계단의 뒷면. 자칫 차가울 수 있는 징크 소재를 실내 공간에 적용한 게 특징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집 전체는 물론 내부까지 마감한 붉은 벽돌이다. “처음 작은 모형을 봤을 때는 하얀 집이었어요. 마치 갤러리나 도서관 같은 차가운 이미지였죠. ‘집’ 하면 막연히 유럽에 있는 빨간 벽돌집이 떠오르잖아요. 형태가 모던하다면 물성만이라도 따뜻한 터치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고, 소장님들도 흔쾌히 벽돌로 해보자 하셨죠. 판교는 물론 혜화동 방송통신대학까지, 붉은 벽돌 건물의 사례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벽돌 색과 질감, 크기 등을 결정했어요.”
북쪽 면으로 접한 벽을 두 층 높이의 통창으로 구성한 2층 가족실. 온 가족이 모여 책을 읽거나 여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벽돌로 짓되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창틀, 내부 기둥 등의 골조에 철제 프레임을 최대한 활용했다. 집 외관을 감싼 붉은 벽돌이 내부까지 확장되어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문 것이 특징. 주방은 나뭇결 무늬 타일 바닥재를 선택해 거실, 1층 덱과 시각적으로 연결감 있게 구성했다. 기둥과 천장 일부를 마감한 구로 철판의 딱딱한 느낌을 중화하는 장치로 문과 책장, 장식장, 수납장 등의 맞춤 가구는 자작나무 합판으로 소재를 통일했다. 1층 거실, 2층 자녀 방으로 향하는 복도 입구에 자작나무 슬라이딩 벽을 설치해 차가운 공기(웃풍)를 막아준다. 마치 우리네 전통 주거인 한옥처럼 ‘창’을 통해 하늘과 풍경을 차용하고, 창의 겹침으로 새로운 레이어를 만들어내는 월 하우스.
현관에 들어서면 복도를 통해 부엌 조리 공간이 정면으로 펼쳐진다. 가구를 최소화기 위해 장식장, 주방용품을 수납하는 그릇장을 맞춤 가구로 짜 넣었다 .
사실 형태를 강조한 건축은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다. 건축에는 ‘멋지다’ ‘디자인이 좋다’ ‘감각적이다’라고 하는 보편적 표현 그이상의 깊은 의미와 가치가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 하우스가 독특한 형태 안에 품고 있는 ‘소통’이라는 관계회복의 메시지는 많은 이에게 통通한 듯하다. 국내외 건축 전문 잡지에서 앞다투어 취재 요청을 하는 것은 물론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으니! 무엇보다 집앞을 지나는 이웃들과 눈 인사를 나누는 일이 즐겁단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거실을 분리하기 위해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다. 천장 높은 집의 냉난방비를 효율적으로 운용해주는 아이디어다.
건축가가 이 집을 설계하며 정리한 콘셉트로 글을 마무리한다. “건축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월 하우스를 제안한다. 공간 소통의 회복은 가족 스스로 주거에 대한 사용과 이해를 회복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가족은 피동적 주체에서 자율적 창조자로 변화하며, 이는 장소의 점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노부모, 부부, 자매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확보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소통이 삶의 궤적에 따라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구조를 완성하는 것이다.”
1층은 거실과 주방, 어머니 공간으로, 2층은 가족실, 부부 침실, 자녀 방으로 구성했다. 대지 면적 255.2㎡, 건축 면적 228. 78㎡.
건축가 장운규, 신창훈은… 운생동 건축의 공동 대표. 변화와 움직임은 운생동의 중요한 테마로 건축을 넘어 문화적 확장을 위해 갤러리정미소, 운생동출판, 운생동아트를 운영한다. 대표작으로는 크링복합문화센터, 예화랑, 생능출판사, 성수복지문화센터, 오션어스사옥, 코오롱에너지플러스 하우스 등이 있으며 건축과 예술, 테크놀로지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인다.
설계 운생동(02-764-8401, www.usdspace.com)
- 판교 월 하우스 '벽'과 '소통'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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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건물의 도면을 받았다. 거실과 주방 중심의 1층, 개인 공간과 가족실로 구성한 2층, 다락방까지 층별 구성은 비교적 무난해보이나 입면도는 일반 건물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마치 지붕 없이 벽만 세워진 형상이랄까? 게다가 이 벽이 소통을 위한 장치라니, 그 발상이 흥미롭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