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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움건축 오신욱·노정민 부부 건축가는 가장 현실적인 예술가다
듀오 디자이너마다 제 스타일이 있지만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따로 또 같이’가 아닐까? 부부 건축가로서 이런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 덕에 동료 사이에서 취재해볼 만한 부부로 추천받은 라움건축의 오신욱ㆍ노정민 소장. 부산의 지역적 특색을 고려하고, 디자인이 담긴 건축 설계를 하며 현대 주거 사회에 대한 해법을 건축물로 제시하는 그들을 만났다.

사무실 중정에 선 노정민・오신욱 소장. 중정 가운데에 엔조 작가의 ‘병아리‘ 작품을 설치했다. 오 소장 주변에 전시한 시멘트 고양이는 김경화 작가의 작품 ‘길고양이‘. 
서울로 치면 명동 한복판의 노른자 땅, 부산 서면 중심가에 자리한 라움건축은 신축 15층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있다. 3년 전 이 건물의 설계를 맡아 골조가 올라가고 있는 무렵, 부부의 머릿속에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옥상을 사무실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부부는 곧장 옥상 대지를 구입했다. 유휴 공간으로 남을 뻔했던 옥상이니 건축주 입장에서는 이게 웬 떡이겠냐마는, 부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건물명에 라움건축의 이름을 새기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이 꼭대기 층에 직접 살고 있는 데다 건물명에 자신의 사무소 이름까지 걸었으니, 라움건축 입장에서는 자존심을 세울 수 있고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신뢰를 줄 수 있는 혜안이었다.


1, 2 중정을 통과해 사무실로 들어가며, 사무실의 모든 창과 문은 중정을 향해 오픈한다. 사무실 벽마다 작가 작품을 전시해 그 자체로 갤러리다.
우리에게는 일터가 행복이 가득한 집
사실 건축가가 자신의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밖에 안 되느냐 질책받을 수도, 업業을 생활로 푼다는 것 자체가 부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겁이 났어요. 하지만 이제는 이 사무실이야말로 저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자 집에 대해, 도시에 대해, 건축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라 확신합니다.” 오 소장은 의도적으로 중정이 차지하는 비율을 높였다. 옥상이고 꼭 대기 층이라 난간이 낮거나 중정 구조가 아니었다면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꼈을 조건. 실제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바로 공간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중정을 거친 후 사무실에 들어서다 보니 마치 대지 위에 1층짜리 건물 입구 같은 분위기다. “우리는 밖을 내다보지 말고 중정을 보자고 계획했어요. 중정으로 모든 창과 문을 오픈하니 실제로 가용 면적은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넓게 느껴지거든요.” 직원의 동선에 따라 공간을 배치한 터라 가장 자주 가는 화장실을 사무실 중앙에 배치했다.

일터가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오신욱・노정민 소장과 라움건축 직원들. 중정에 삼삼오오 모여 티타임을 즐기거나 자유롭게 회의를 하는 등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 일터인 만큼 보다 쾌적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형성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 오 소장의 바람이다. 
“집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곤 해요. 어떤 이는 자연이 좋아서 아파트를 떠나고, 어떤 이는 아파트가 싫어서 도심에 집을 짓죠. 또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공동주택을 짓기도 하는데, 저는 일터도 곧 집이라 말합니다. 사옥이라는 것도 집의 확장 개념이거든요.” 오 소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야말로 집의 의미를 지니며, 그렇기에 집보다 더 좋은 환경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우리에게는 행복이 가득한 집이에요. 오후에 짬나면 직원들을 불러 핸드 드립 커피를 내려요. 그러면 나른한 햇살 아래 커피를 한 잔 하며 담소를 나누죠. 오늘도 직원 한 명이 생일이에요. 깜짝 파티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놀래주나 고민 중일 거예요.”


젊은 작가 엔조의 스틸 소재의 선으로 표현한 작품 ‘Box+Ball’ 시리즈와 ‘벽+문+액자’. 

건축가가 예술을 품는 법
부부는 사무실 내부에 문화 공간도 마련했다. 그래서 오픈 후 몇 달간은 중정과 회의 공간을 개방해 주말마다 건축 관련 세미나를 열었다. 강사를 섭외하고 주변 사람을 초청하면서 직원, 주변 직장인, 학생들을 초대했다. “자기 작품을 선보일 기회조차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에요. 그래서 사무실 일부를 ‘아트스페이스 라움’이라 이름 붙여 작가들이 전시할 수 있도록 오픈했습니다. 물론 새로운 작가가 전시할 때마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파티도 열어요. 미술계, 문화계, 건축계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죠.” 어떤 분위기의 작품이 놓이느냐에 따라 공간의 표정도 확연히 바뀐다. 설치미술가 김경화 씨는 시멘트로 만든 40여 마리 고양이와 80여 마리 비둘기로 이곳을 채웠는데, 나무 덱 위로 어지러이 놓인 고양이와 비둘기 덕분에 실제 거리 같은 분위기였다고. 지금은 엔조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젊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Drawing of line’이라는 주제 아래 스틸 소재의 선으로 표현한 동물, 도형, 인체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오 소장은 전시와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의 프로젝트에 감정이입하고, 도용 또는 따라하기부터 융합까지 예술적 감상을 건축적 아이디어로 승화시킨다고 했다. 내년에 전시가 예정된 작가는 세 명. 이 외에도 많은 신진 작가가 아트스페이스 라움에서 전시를 열고 싶어 오신욱 소장에게 포트폴리오를 보내온다고 했다. 예술가들의 포트폴리오로 뒤덮인 건축가의 메일함이라니! 


디테일을 고집하고 관계에 집중하는 디자인
라움건축의 프로젝트들은 언뜻 보면 기괴한 형상인데, 자세히 보면 평범하고 요란한 듯 뒤틀려 있으면서 절제미가 있는 등 뭔가 다른 한 끗 차가 있다. “비평가들은 그게 저만의 스타일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건 비례감에서 기인해요. 크기가 같은 창문도 위치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예컨대 제가 스케치한 집을 직원들이 모형으로 만들 때도 정말 한 끗 차이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요. 폭이 2m냐 2m 10cm냐 1m 90cm냐를 끝없이 그려보고 논의한 뒤 확신이 섰을때 설계를 마치죠.” 오 소장은 의도치 않았지만 흰색으로 외관을 칠한 집이 많아 자신의 심벌 아닌 심벌이 됐다고 털어놨다. 대개 외관을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흰색 페인트로 칠하는 것은 가격대가 합리적이기 때문. 부산의 햇살이나 기후에 맞고, 작은 건물이 많다 보니 부피가 커 보이는 효과도 있지만 이것은 부수적 문제다. 색을 쓰지 않고 재료 자체의 물성을 드러내는 편이다 보니,흰 집들이 늘어난 것이지, 건축가 입장에서도 하나의 스타일로 고착되는 것은 피하고 싶으리라. 작년에는 ‘2015 신진건축사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자신을 딩크족이라 칭하는 30대 부부의 인터화이트는 건축주의 주거 공간과 세입자의 상업 공간을 완벽하게 분리해 기존에 답습해오던 상가 주택의 형태를 벗어난 프로젝트다. 그는 주인의 관점을 넘어 세입자의 주거 환경도 고려했다. 세입자지만 내 집처럼 느끼고, 당당하게 출입할 수 있도록 두 동으로 분리해 프라이버시를 존중한 것. 상가 주택에 대한 사회적 해법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지방에는 디자인이 가미된 건축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저희는 디자인할 수 있는 건축가거든요. 적정한 예산에 적정한 디자인으로 주변 가치까지 끌어올리지요.” 노 소장의 설명대로 그들이 지은 건물 하나로 동네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고, 상권이 살아나는 순기능을 경험할 때면 건축의 존재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가 만든 건축물이 작지만 역사에 점 하나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홀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공유하는 것이기에 더 뿌듯하고 사회적 책임감을 느낍니다.”

직접 만난 오신욱·노정민 소장은 다세대주택이나 상가 주택의 신개념 모델을 제안하며 세입자의 주거 환경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고심하는 사람들이었다. 집주인과 세입자를 나누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게 쾌적한 조건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건축을 넘어 예술과 문화 전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경제적 논리에 치우치는 대신 뜨겁고 치열하게 사는 또 다른 부류의 예술가, 건축가 입장에서 아티스트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위로받았다. “건축가도 예술가니까요. 건축가라면 누구나 그림, 음악, 예술에 대한 미련 아닌 미련이 있을 거예요. 건축이 예술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고, 그렇게 디자인하고 설계한 공간 안에서 도시와 사람,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사람과 사람 등 많은 것이 ‘관계’를 맺어나가기 바랍니다.”


지난 프로젝트로 보는 라움건축


인터화이트


오랜 시간 답습해온 전형적 상가 주택의 형태에서 탈피해 눈길을 끈 작업. 층층이 올라가는 수직적 구성이 아닌, 임대 공간과 단독 주거 공간을 수평적으로 구성했다. 이렇게 구성하면 단독주택은 독립성을, 임대주택은 연속성을 지닐 수 있다. 또 상가 주택에서 늘 상가가 주가 되고, 주거 공간이 상부 층으로 내몰려 마당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점을 보완했다. 두 공간은 계단으로 이어지며, 상가 주택의 경우 층마다 분리하고 비틀어 조형미를 더했다.


남산 파티오


한국에서는 왜 테라스와 발코니가 있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까? 금정구 남산동에 위치한 남산 파티오는 이런 물음에 답하듯 가운데에 하늘을 향해 뚫린 중정을 두고 에워싼 듯 지은 다세대주택이다. 각 층에는 수평으로 개별 공간을 만들었는데, 특히 테라스와 발코니에 이를 가로막는 유리창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공간은 외부 거실, 진입 마당, 텃밭, 가사 공간이 되기도 하는데 이 덕분에 도시에 있는 주거 공간임에도 자연과 바로 이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 서도 집주인과 세입자 구분 없이 모두 당당하게 주거 공간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개별 입구를 구성하는 등 세대별 프라이버시에도 신경 썼다.


양아재(아토피하우스)


다각형의 부정형 모양 땅에 지은 아토피하우스는 중증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딸과 부모를 위한 집이다. 그래서 환기와 채광은 기본, 화학약품 처리를 한 공산물을 사용하지 않고 지어야 했다. 라움건축은 콘크리트 구조를 선택해 집을 지었다. 신체와 접촉하는 모든 재료는 황토・해조류・한지 등 천연 재료를 사용했고, 가구 역시 직접 제작했다. 내부에는 작은 마당과 옥상을 만들어 놀이, 풍욕, 이불 소독 등 아토피를 극복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가족을 위해 미술가의 도움을 받아 아이의 꿈을 집 외벽에 그려냈다.


월내 반쪽집


기장 바다가 보이는 국도 변의 작은 집은 국도가 확장되면서 집과 땅이 반쪽으로 잘려 나갈 위기에 처했다. 반쪽이된 집을 풍족하게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손실된 공간은 2층으로 보완하고 공간의 구분을 없애 협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했다. 거주자의 움직임에 따라 큰 창을 내 넓은 공간감을 꾀했는데, 창마다 색다른 주변 풍광을 볼 수 있다. 주차장에는 얇은 구조물을 세워 자리를 확보했으며, 층마다 뒤틀린 듯 자연스럽게 배열해 단조로움도 보완했다. 하지만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잘렸다’는 느낌이 온전히 느껴지는 외관. 이상하리만치 평평하고 꼿꼿하게 선 하얀 외관이 뒤쪽에 펼쳐진 푸른 기장 바다와 오묘하게 어우러져 기장의 명소 아닌 명소가 됐다.



오신욱 소장은 동아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2001년부터 아내이자 동료 건축가인 노정민 소장과 함께 라움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 외국어대학교 마스터플랜 현상 설계에 당선되었고, 건축가의 의자전을 기획해 책 <짓는 의자>를 출판했다. 현재 부산시 공공 건축가이자 동아대학교 건축학과 겸임 교수로 활동 중이다.

문의 라움건축(051-816-1405)

글 손지연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