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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더하기 예술 구하우스
평소 취재를 하면서 화가, 설치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를 만날 기회가 많다. 작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해 생생한 예술 현장을 보기도 하고, 멋진 작품으로 단장한 집 꾸밈에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예술은 다가가기 어렵고 특별한 그 무엇이다. ‘예술과 생활의 공존’을 테마로 한 미술관 ‘구하우스’. 미술관을 관람이 아닌 향유의 대상으로, 아트를 기꺼이 리빙으로 끌어들인 좋은 예다.

우리의 일상적 삶에 예술을 풍덩! 빠뜨린 집, 구하우스. 마스코트 ‘융’이 한가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는 화이트 구조물은 이소정&곽상준의 ‘디 오아시스The Oasis’로 스틸 파이프에 무수한 실을 매달아 바람 부는 날 앉아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예술 커뮤니티가 활발하기로 유명한 양평 문호리에 자리한 ‘구하우스’는 이름처럼 집을 테마로 한 미술관이다. 시각디자인 회사 디자인포커스 구정순 대표가 30년간 모은 자신의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지난 7월에 오픈했다.

기획 단계부터 소장품 각각의 배치를 염두에 둔 전시실은 효율적 동선과 빛의 활용으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1층 통로에는 구 대표가 수집한 블랙 디자인 체어를 일자로 배치했고, 다카시 구리바야시의 펭귄으로 위트를 더했다. 
“의식주 중에서도 아직까지 ‘주住’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부족해요. 돌잔치도 집에서 안 치르고요, 집들이를 해도 차나 마시지 밥 한 끼 나누는 일이 드물죠. 저는 생일날 아침밥을 친구들과 집에서 먹었어요. 그러다 보니 생일 전에 는 집을 한동안 정리 정돈하고 꾸미는 거예요. 그림 위치도 바꿔보고, 소품을 꺼내 이리저리 매치하고… 밤을 새우고 해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집이 단순히 잠만 자는 베드 하우스가 되지 않으려면 ‘집 안’에서의 충분한 문화적 자극과 경험이 필요하죠.” 예술과 디자인이 주는 즐거움을 일상 속에서 누리는 일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증명하고 싶었다는 구정순 대표. ‘집’은 생활 속에 서 미술을 친근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우리 집도 이렇게 꾸며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그의 첫 번째 바람이다.


담담한 회색 건물 양쪽으로 마당을 품고 있는 구조의 구하우스. 미술관이면서 집 같은 편안한 무드를 담고 싶어 건축물의 양쪽 끝을 둥글게 마무리했다. 
우리 집에도 미술 작품 한 점 들여볼까? 건축은 애초에 조용하면서 도 튀지 않는, 주변 자연환경과 최대한 조화를 이루는 데 주력했다. 도로 이면 골목 안쪽으로 비켜나 마당을 품은 구조로, 밖에서 봤을 때는 내부 모습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설계는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건축가 조민석이 맡았다. 미술관이면서 집 분위기를 내기 위해 안과 밖, 직선과 곡선 등 대치되는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했다.

블랙으로 마감한 2층 ‘다락’. 조형미가 돋보이는 책상과 의자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의 작품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건축물처럼 보이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건축과 혼연일체가 된 소장품으로 눈이 때아닌 호사를 누리게 된다. 엄청난 수의 소장품을 빽빽하게 전시했지만 명료한 동선 덕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각 방과 복도에 걸린 작품을 느린 걸음으로 감상하다 보면 자신이 사는 집에 어떤 그림이, 어떤 작품이 어울릴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시원하게 열린 창은 마치 밖에 나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바깥 풍경을 가감 없이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집 안 구석구석 숨어 있는 보물로 오감이 풍요로워진다.

에르빈 올라프의 ‘The Keyhole’. 
회화보다는 문화의 최전방에 있는 21세기 현대미술가 작품이 주를 이룬다.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작가 에르빈 올라프Erwin Olaf의 사진과 비디오 설치 작품 ‘The keyhole’, 다니엘 뷔렝Da n iel Bu r e n의 ‘9 Isosceles Triangular Prism and 9 Flat Mirrors-No.1’, 조아나 바스콘 셀루스Joana Vasconcelos의 ‘The Weired of Oz’는 그의 특별한 심미 안을 엿볼 수 있는 컬렉션이다.

렉슨 오디오 디자인으로 유명한 마르크 베르티에 Marc Berthier의 책상과 의자, 고트프리드 호네거Gottfried Honegger의 모더니즘 조각이 어우러진 패밀리룸.
‘구하우스’라는 이름만큼 전시실의 명칭도 남다르다. 1층에는 클락룸, 컬렉션룸, 프런트룸, 장 프루베룸, 라이브러리, 리빙룸이 자리하고 2층은 베드룸, 패밀리룸, 다락방이 있다. 관람은 1층 입구 오른쪽에 자리한 클락룸에서 시작한다. 아이와 함께 온 관람객을 위해 아이 의자를 배치해 의자에 앉거나 자전거를 타볼 수도 있다. 조아나 바스콘셀루스의 작품을 포장한 크레이터를 개조해 실제로 관람객의 외투를 거는 용도로 사용하는 아이디어도 재밌다. 라운지 맞은편에 자리한 컬렉션룸은 관람 순서로 따지면 마지막에 해당한다. 퐁피두 미술관이 기금 마련을 위해 17인의 작가와 협업한 거울 컬렉션이 벽을 장식한다. 맞은편 진열장에는 향수와 유리공예품, 피겨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자비에 베이앙의 ‘모빌(르 코르뷔지에)’ 작품이 인상적인 라이브러리는 실제 서가처럼 연출했다.
전시실로는 첫 번째 방이 될 프런트룸은 대형 작품이 많다. 윌리엄 켄트리지 William Kentridge의 영상 작업 ‘Anti Mercator’를 주요 작품으로 꼽는다. 잭슨 홍, 데미언 허스트의 스몰 웍을 지나 라이브러리에 도착하면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han의 ‘모빌’이 공간을 압도한다. 집 같은 느낌 때문에 실제 관람객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조지 나카시마의 ‘코노이드’ 벤치와 드럼은 구대표가 집에서 실제 사용한 제품. 거대한 서가를 함께 구성해 누구나 의자에 앉아 예술, 디자인 서적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건물의 코너에 해당하는 리빙룸은 낯익은 디자인 퍼니처가 가득하다.

디자인 체어가 펼쳐진 리빙룸. 관람객이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단을 구성한 비정형 구조가 인상적이다.
토머스 헤더윅의 ‘스펀’ 체어부터 톰 딕슨의 ‘필론’ 체어까지 장 프루베, 카림 라시드, 필립 스탁, 조지 나카시마, 프랭크 게리 등의 가구는 오리지널 에디션이나 프로토타입으로 희소성이 있다.

장 프루베룸과 욕실.
라이브러리 안쪽의 장 프루베룸은 장 프루베가 디자인한 책장과 램프, 의자, 침대까지 직접 앉아보고 누워볼 수 있는 오브제로 가득하다. 벌거벗은 남자가 새장 속에 갇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잉 펑의 브론즈 조각 ‘Jiu Peng’과 화장실 변기의 배치, 장 프루베의 시그너처 코드인 동그라미를 화장실 타일에 적용한 감각이 돋보인다. 분명 미술관인데 인테리어 전문 기자가 봐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디어가 가득한 이곳. 설치와 영상 작품부터 가구까지 장르를 막론한 수많은 컬렉션의 기준이 궁금할 수밖에. 

“좋은 미술 작품에 대한 답은 없어요. 자신의 마음을 이끄는 이미지를 찾고, 그것을 보면서 눈이 즐겁고 기분이 좋아지고, 더 나아가 마음에 위로까지 얻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지요.”

미술을 즐기고 싶은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공간에 어떤 그림을 거는 게 좋을지, 조금 더 쉽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 고민이라면 이곳을 방문하라. 매끈하게 개조한 집이나 비싼 가구로 단장한 집과는 달리, 집주인의 고유한 향기와 가치관까지 묻어나는 구하우스. 구정순 대표가 말하는 예술을 일상에서 향유하는 아주 쉬운 세 가지 노하우는 다음과 같다.


1 아주 작은 컬렉션부터 시작하라 “여행할 때마다 그 나라를 상징하는 건물 오브제를 사기 시작한 게 컬렉션의 시작이었어요. 작은 소품으로 여행을 기억하게 되더라고요. 작은 촛대, 피겨 등 일상의 조각을 하나 둘 모으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 더해져 자신만의 컬렉션이 됩니다.” 관람 순서로 가장 마지막 방에 해당하는 컬렉션 룸은 향수병도 하나의 컬렉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몇몇 관람객은 그것을 보고 “우리 집에 있는 건데!”라는 말을 많이 한단다. 있는 물건을 꺼내 그 물건에 얽힌 추억을 더듬고 공간에 배치하며 일상을 큐레이션해보자. 누군가 “이건 뭐예요?”라고 물으면 그 용도와 어디서 어떻게 가지고 왔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수도 있으니!

2 매일 하나씩 바꿔보라 구 대표가 지난 30년간 수집한 작품은 4백 점이 넘는다. 나머지 작품은 수장고에 보관 중이지만 때때로 작품을 교체할 계획이다. 실제 사전 답사, 인터뷰, 촬영까지 미술관을 세 번 방문했는데, 방문할 때마다 작품 위치가 조금씩 바뀌어 있었다. “대부분 습관처럼 관성의 법칙으로 물건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사용하잖아요. 특히 가구요! 조금만 움직이면 더 편리하고 더 예쁘게 배치할 수 있는데 말이죠. 저는 ‘오늘은 집에 들어가서 뭘 바꿀까’를 자주 고민했어요. 자리를 조금 바꿨을 뿐인데 전혀 예상치 않은 변화를 초래할 때도 있지요.” “뭘 새로 살까?”가 아닌 “뭘 바꿔볼까?”로 생활 감각의 근육을 키워보라는 것. 예컨대 죽은 공간이라 생각한 곳에 엉뚱한 물건(조각상, 그림 혹은 식물이 될 수도!)을 두면 그곳은 나만의 스토리 월이 된다.

3 가구도 모으면 예술이 된다 시각디자인 회사 디자인포커스를 운영하며 KB국민은행, 금성사, 국립중앙박물관, 굿모닝증권, CGV, 삼양사 등 기업 CI와 BI 작업을 해온 구정순 대표. 시각 디자이너로서 그가 생각하는 ‘블랙’의 매력은 제각각의 형태를 실루엣으로만 가장 정직하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1층 복도 라인에 펼쳐진 블랙 체어 시리즈는 세상의 수많은 의자에 대한 컬렉터의 객관적 시각을 방증한다. 아주 쉽게는 식탁의자에 적용해볼 수도 있다. ‘세븐 체어’도 좋고, ‘개미 의자’도 좋고, ‘와이 의자’도 좋아 선택 장애에 빠진 당신, 갖고 싶은 제품 다 골라도 된다. 컬러만 블랙으로 통일한다면!



1층에서 2층 포트레이트룸까지 전시 공간을 둘러본 뒤 계단을 통해 바로 라운지로 내려올 수 있다. 카를로 스카르파의 다이닝 테이블과 최정화 작가의 ‘Alchemy’, 디터 람스 셸빙 시스템 등을 실제 체험하는 공간.
미술관을 한 바퀴 다 돌고 나면 계단 아래 라운지가 펼쳐진다. 관람객이 자유롭게 차를 마시는 공간이지만 디터 람스의 606 셸빙 시스템, 카를로 스카르파의 테이블, 허명욱 작가의 조명등까지… 의자와 테이블 모두 작품이다. 샤를 로트 페리앙의 프리폼 바에는 다과도 준비되어 있다. “손님이 선물로 가져온 과자나 차 등을 드실 수 있도록 올려둬요. 얼마 전에는 옥수수를 가득 쪄서 뒀어요. 우리 집에 온 손님이라고 생각하면 나눠 먹는 게 당연하죠. 영리를 목적으로 연 게 아니다 보니 아트 숍, 카페는 앞으로도 할 계획이 없어요.”
전형적 형태를 탈피해 작품과 일상의 경계 없이 예술을 감상하는 구하우스. 왜 많은 사람이 집에 그림 한 점 들이라고 하는지, 예술이 장식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매개체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제 집으로 오라!

주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무내미길 49-12 문의 031-774-7460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