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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이 가득한 집 낙락헌 樂樂軒
집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피식 흘러나온다. ‘즐거울 락’을 연달아 쓴 낙락헌은 즐겁고 또 즐거운 집. 영어로는 knock knock(똑똑)! ‘허당虛堂(비우는 집)’이란 별칭을 붙일 만큼 유쾌한 세 식구가 모여 사는 이 집은 은평 한옥마을에 들어선 열 번째 한옥이자 한옥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담은 집이다.

북한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층을 특히 좋아하는 낙락헌의 안주인, 김은진 씨. 모던한 분위기의 아래층 위에 한옥을 얹은 낙락헌은 필로티 구조를 취해 전용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등 현재를 살기 위한 명민한 해결책을 담고 있다.
“이 동네에 있는 한옥 카페 이름이 뭐예요? 왜 커다란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2층 카페 있잖아요. 느티나무랑 마주 보고 서 있는!” 은평 한옥마을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열이면 열, 낙락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종종 카페로 오해받는 이 집은 방송 작가 김은진 씨와 이병철 씨 그리고 아들 연준이까지 세 식구의 첫 한옥이자 평생을 담을 집이다. 이 집은 여느 한옥과 출발선이 다르다. 한옥을 꿈꾸는 사람들이 으레 북촌과 서촌의 한옥을 알아보는 것과 달리 북한산이 굽이 내려다보는 이 마을이 마음에 들었던 부부는 이곳에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그들만의 한옥을 그리기 시작했다.


1 화이트 컬러로 모던하게 꾸민 아래층 공간. 복도 한쪽에 놓은 가구는 디자이너 하지훈의 ‘닫이’로 전통 반닫이를 재해석한 작품이고, 그 위에 놓은 도자기 오브제는 임의섭 작가의 작품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작은 뜰과 기와 조각으로 꾸민 벽이 그림 이상의 훌륭한 작품이 된다. 2 현관에서 바라본 아래층 거실. 전통 한옥에서 소화하기 힘든 현대식 주거 문화를 대부분 아래층에서 해소했다. 
반전 매력의 한옥
“한옥에서 살 계획이 있던 건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아파트가 아니면 생활하기 불편할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와서 동네 풍경을 보는 순간 조금도 반대할 수 없었어요. 한눈에 반해서 바로 필지를 구입했지요.”

한옥을 지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세 가족은 은평 한옥마을 조성에 참여한 구가도시건축의 조정구 대표에게 건축을 의뢰했다. 그는 다른 한옥이 필지를 따라 반듯하게 들어선 것에 반해 낙락헌을 북한산 방향으로 틀어서 설계했는데, 오후의 햇살만으로는 아쉬워서 담장 너머의 느티나무와 북한산 봉우리, 도로 건너편의 한옥 경관을 선택한 것이다. 낙락헌은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한옥을 얹은 독특한 형태로, 콘크리트 기둥이 주방을 떠받치며 필로티 구조를 취한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 서너 계단 내려가면 화이트 일색의 모던한 스타일을 띤 아래층(은진 씨는 1층, 2층 대신 아래층, 위층이라고 부른다)이 나온다. 벽과 바닥은 물론 소파, 커튼 심지어 벽시계까지 온통 화이트 컬러로 통일하고, 오직 식물과 블랙 컬러로 군데군데 포인트를 주었다. 반지층 같은 공간이지만 선큰가든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화사하게 채워진다.

그 누구도 한옥 안에 이처럼 백팔십도로 다른 공간이 있을 줄 꿈에도 몰랐을터. 조 대표는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은진 씨를 위해 아래층은 모던한 분위기의 현대적 주거 공간으로 디자인하고, 한옥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한 점을 해소해줄 요소를 가미했다. 가령 대청마루에 TV와 소파는 어울리지 않으므로 아래층 거실에 배치하고, 또 전통 한옥에서는 신발장이 없으니 넉넉한 크기의 신발장도 짜 넣었다. 모던한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연준이의 방과 동선을 편리하게 구성한 세탁실도 모두 아래층에 꾸몄다.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 만든 테이블과 달항아리만 놓아도 가득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드는 위층 한옥 공간. 선자연(부챗살 모양으로 펼쳐놓은 서까래)이 한옥의 풍취를 더해준다. 창 너머로 펼쳐지는 경관이 가히 일품인 이곳에서 가족은 날마다 힐링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하지훈 디자이너의 반닫이가 놓인 현관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아래층과는 대조적인 분위기의 위층이 펼쳐진다. 위층은 전통 기법을 사용해 한옥의 정취를 살렸다. 강원도 육송을 공수해 와 기둥을 올리고, 보와 서까래를 얹으며 한옥미학을 아름답게 부려놓았다. 이곳에는 몸을 뉘일 소파도, TV도 없다. 소박한 달항아리와 다구가 가지런히 놓인 나무 테이블만 있을 뿐. 하지만 이곳 역시 현대적 생활 양식을 가미해 공간을 구성했다. 빌트인 주방 가구와 아일랜드 테이블이 있는 주방 겸 다이닝룸, 드레스룸과 욕실이 딸린 침실까지…. 특히 드레스룸 천장 위에는 다락을 만들고 사다리를 연결해 악기부터 트렁크, 즐겨 보던 책과 앨범 등을 보관하는 수납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한옥의 정갈한 멋은 비울수록 드러나는 법. 물건을 하나 둘 정리하면서 이를 깨달은 가족에게는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이사하면서 짐을 굉장히 많이 버렸고 지금도 여전히 비우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처음엔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일상 을 살아가는 방식도 점차 심플하게 바뀌어가네요. 한옥 하면 막연히 불편한 점부터 떠올렸는데 그보다는 얻는 점,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 ‘한옥이라서’ 불편하다는 건 핑계일 뿐이에요. 우리 가족은 이 집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주방 겸 다이닝룸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김은진 씨. 북한산을 향해 펼쳐진 통창으로 좋은 기운이 들어온다. 통창 너머 보이는 느티나무 정원이 마치 낙락헌의 앞마당처럼 보인다.

검박한 멋을 담다
낙락헌을 보고 있자면 처마 선이 비교적 단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마가 긴 편인데도 곡선을 최대한 깎아서 끝이 들리지 않는다. 조 대표는 위압적인 한옥 대신 검박한 멋을 담고자 했다. 그렇다고 장식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청마루 천장 한편을 화려하게 꾸민 선자연, 이대로 물러나기에 서운했던 목수가 제 솜씨를 마음껏 부려놓은 곳이다. 굵기가 제각각인 서까래와 육송의 울퉁불퉁한 대패 자국에서도 그의 손맛을 느낄 수있다. 대청마루의 유일한 가구인 테이블은 목수의 선물. 원목을 통째로 반 가른 뒤 바닥에 닿는 부분만 평평하게 다듬었다. 육송은 갈라지기도 하고, 녹태가 서렸다 사라지기도 하면서 집 안에 자연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집에서 누리는 자연 풍류는 이뿐만이 아니다. 창 너머로 마주 보이는 느티나무 두 그루는 멀리 보이는 북한산 능선과 아름답게 이어지며 사계절을 작품처럼 담아낸다. 앞마당에 꾸민 작은 정원을 돌보는 일은 은진 씨의 큰 즐거움 중 하나. “앞마당에 야생화를 심어 아담한 정원을 꾸몄어요. 접시꽃, 달맞이꽃, 붓꽃 등 소박하고 예쁜 꽃들이 정원의 주인공이죠. 오늘은 이 꽃이 피면 저꽃이 지고, 내일은 또 다른 꽃이 피고….날마다 다른 풍경을 선물합니다. 정원 옆에 놓인 바보 석등은 직접 석재상에 가서 하나하나 맞춰온 건데, 정교한 석등보다 훨씬 정감이 가네요”라며 손수 꾸민 정원을 자랑하기에 바쁜 은진 씨. 낙락헌에서 가장 인상적인 하루가 언제냐는 물음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작년 6월 20일, 단오 때 상량문을 걸었어요. 예전부터 알고 지내온 풍물패 동료들이 와서 비나리를 하고, 아래층부터 위층까지 꾹꾹 지신 밟기를 하면서 올라왔지요. 상량문을 써서 걸었는데 ‘응천상지삼광 비인간지 오복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하늘에 세 가지 빛이 응답하시어 인간에게 복을 내려주소서)’이라는 문구를 쓸 때가 생각이 나요. 모두가 입 모아 ‘복 들어갑니다!’ 하고 외친 것도, 봄 가뭄이 심하던 때에 고마운 단비가 내려준 것도 생각나네요. 기분 좋게 들어와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낙락헌은 곧 행복이 가득한 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 침실 뒤편의 작은 공간을 활용해 드레스룸을 만들고, 천장 위로 다락을 만들어 수납 효과를 높였다. 2 첩첩이 이어지는 처마 선이 한옥의 아름다움을 배가해 준다. 곳곳에 눈에 띄는 콘크리트 소재는 모던한 분위기의 아래층 공간과 연결된 장식 요소. 앞마당에는 아담한 정원을 꾸몄다. 3 손님을 위해 꾸민 사랑방으로, 나무 계단을 오르면 아늑한 한 뼘 다락이 나온다. 가야금을 전공하고 연주자로 지냈던 은진 씨의 가야금이 사랑방을 더욱 고풍스럽게 꾸며준다.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대표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0년 구가도시건축을 설립했다. 도시 답사와 실측, 연구를 통해 과거의 삶과 현대의 일상을 조화롭게 버무리며 ‘우리 삶과 가까운 건축’을 지향한다. 개인 주택부터 작업실, 갤러리, 근린생활시설, 호텔 공간을 설계하며, 최초의 한옥 호텔 라궁을 비롯해 진관사 함월당, 수많은 도시형 한옥 대수선까지 폭넓은 한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설계와 시공 구가도시건축(02-3789-3372)

글 이새미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