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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사는 옻칠
‘칠’의 한자 표기는 옻나무를 뜻하는 ‘漆’이다. 그만큼 옻칠은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공예 기법으로, 내구성과 기능성은 물론 미학적으로도 현대적 표현이 가능한 재료다. 최근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뿐 아니라 가죽, 금속, 도자기, 한지 등 다양한 재료에 옻칠을 하며 예술 작업으로 승화시키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오래 사용할수록 깊어지는 고운 색감에 항균, 방염 효과가 알려지면서 식기나 가구뿐 아니라 자동차나 가전제품까지 천연 마감재로 이용하고 있는 것. 지난봄 기아자동차는 <메이드인코리아> 전시의 일환으로 옻칠공예로 차량 내부를 장식한 K9 퀀텀을 선보였고, 오디오와 전기밥솥 등 옻칠을 더한 가전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옻칠의 현대적 쓰임을 소개하고 있다. 쓰임과 기능, 장식성이 조화를 이룬 이 시대 옻칠의 정의.

01 천 겹의 빛, 율동
옻칠은 마감재이면서 강력한 접착제이기도 하다. 옻칠과 풀을 섞어 삼베에 바르면 단단해져 그 자체로 구조가 완성된다. 한국 옻칠공예 분야에서 최고 장인으로 꼽히는 정해조 작가의 오색광율은 삼베로 형태를 만드는 협저태 기법으로 완성한 작품. 형태를 디자인하고 디자인에 따라 스티로폼으로 성형, 삼베를 여러 겹 겹쳐 호칠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옻칠을 더해 완성한 오방색의 역동적 조형물이다. 수십 번을 겹겹이 올린 옻칠에서 배어 나오는 강렬한 컬러와 율동감 있는 비정형 형태 위에서 반복되는 반사가 오묘한 미감을 완성한다. 


 원시 조형과 옻칠의 본질 속에서 빚어낸 천연의 광율을 표현한 정해조 작가오색광율 시리즈. 빛과 색의 근원에 대한 작가적 통찰을 보여준다. 



02 시대의 재해석, 융합
옻칠 가구는 옻과 안료의 만남으로 특유의 색감과 원목의 특징인 나무 질감을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장르다. 가장 대표적 아이템은 소반. 의도한 색감과 자연스러운 질감을 내기 위해 상판에 옻칠을 하고 갈아내고 다시 칠하는 등의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고유한 미감을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나무뿐 아니라 스틸, 아크릴 등 다양한 소재와 형태로 재해석한 작품이 인기. 실용적 소재, 모듈형 디자인, 조형미 등 현대인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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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칠에 자개 장식을 더한 국화문 호족반과 주칠 미니 소반은 나은크라프트, 화형 원반과 강원반, 주칠한 화형 마족반은 양병용 작가 작품으로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판매. 아크릴 다리와 옻칠 상판을 더한 소반 ‘정, 반 그리고 합’과 원뿔형 다리와 금속 상판 프레임을 결합한 모듈식 소반은 문채훈 작가 작품으로 하이픈프로젝트 문의.



03 익숙한 듯 낯선, 변주
금속에 옻칠한 사이드보드와 도자에 옻칠한 조명등, 붉은 달항아리의 매치! 이정미 작가의 붉은 달항아리는 나무에만 가능한 옻칠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해 도자 예술의 변모를 보여주는 작품. 옻칠을 함으로써 도자의 강도는 높아지고, 특유의 빛깔과 광택까지 묘한 운율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평범하고 일상적 공간에 옻칠을 더하면 낯선 시각적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문짝을 옻칠로 마감한 그릇장과 세라믹에 옻칠한 펜던트 조명등, 아톰 오브제는 모두 허명욱 작가 작품으로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니트 새 오브제는 이정자 작가 작품으로 윤현핸즈 판매.



04 건강한 일상, 천연 생활
옻칠의 장점은 나무, 도자, 철 등 다양한 소재와 만나 각기 다른 미감과 기능을 만들어낸다는 것. 예부터 무기와 갑옷에 적용했을 정도로 쇠에 옻을 씌우면 녹이 슬지 않고 나무에 옻을 씌우면 천연 항균 효과가 배가되는 것이 특징이다. 접시와 찻잔, 문구까지 일상용품에 옻칠을 더해 건강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려보자.


 한옥 창살을 모티프로 옻칠로 마감한 다용도 문구함 ‘SC 시리즈’는 김대건 작가 작품, 옻칠로 빈티지한 결을 표현한 미니 합과 뚜껑에 옻칠 채식으로 원형 문양을 만든 티포트는 이도핸즈, 스틸 보디 위에 옻칠로 빈티지한 결을 표현한 이바지 찬합은 박미경 작가 작품으로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유기에 옻칠로 부분 채색한 뉴문 찬기와 접시는 문채훈 작가 작품으로 하이픈프로젝트, 도자 곤충 오브제는 마이알레, 동 소재 위에 옻칠한 주전자와 차통, 시트에 초록색ㆍ파란색 옻칠로 포인트를 준 철제 스툴은 모두 박성철 작가 작품, 물푸레나무에 옻칠한 트레이는 허명욱 작가 작품으로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판매.



05 면 분할의 묘미, 모던아트
옻칠을 하면 나무가 썩지 않고 천년을 거뜬히 버틴다. 또 습기를 흡수하거나 방출해 항상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는 특성이 있어 예부터 비단옷이나 보석 등 귀한 물건을 보관하는 함은 꼭 옻칠로 마감했다. 전통 함을 간결한 형태로 완성한 뒤 각각의 면을 다른 컬러로 채색한 색동 함은 모던한 공간에 포인트를 주는 인테리어 오브제로 손색없다.


 몬드리안 작품처럼 컬러 면 분할이 돋보이는 색동 보석함은 박만순 작가 작품으로 하이핸드코리아, 주칠에 자개 장식으로 포인트를 준 미니 보석함은 석문진 작가 작품으로 이도핸즈, 원목 자석 블록은 브리오 제품으로 아이큐박스 판매.



06 자연을 품다, 교감
깊은 색감의 옻은 실험적 디자인에 무게감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을 형상화한 형태와 옻칠의 조합이 돋보이는 금속 장신구는 옻칠 특유의 담백한 기품과 매끈한 광택으로 옷차림의 격을 높여주는 아이템. 인체에 무해한 천연 도료이므로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에 적용하면 더욱 빛을 발한다.


★ 고목 오브제는 디자인알레 제품, 장수하늘소와 벌 모양 금속 오브제는 브로스테 제품으로 마이알레, 옻칠한 바를 결합한 목걸이 ‘트리오’는 강희정 작가 작품으로 해브빈서울, 민화 속 화병과 꽃을 형상화한 브로치, 초록색 동그라미 꽃 브로치, 주전자 브로치는 모두 박수이 작가 작품으로 수이57아뜰리에 판매.


 
07 맛있는 행진, 운율
투명 옻칠로 전체를 마감해 나무의 내구성을 높인 뒤 부분적으로 채색하거나 문양을 입혀 디자인적 완성도를 높인 젓가락이 식탁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표면에 견고한 막을 형성해 광택이 나고, 오래 사용해도 변하지 않는 성분으로 천연 마감재 역할을 하는 옻. 직접 입에 닿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옻칠로 마감하면 세균이 번식하는 것을 막고, 뜨거운 물에 닿아도 안전하게 방수 역할을 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초록색 교칠 젓가락은 정은진 작가 작품으로 저집, 상단에 각각 핑크색ㆍ민트색을 더한 젓가락과 가운데 놓인 초록 옻칠 접시와 꽃잎 형태 수저 받침, 레드ㆍ핑크ㆍ은빛 도트 문양으로 포인트를 준 젓가락은 모두 박수이 작가 작품으로 수이57아뜰리에, 물결 형태로 조각한 초록색 젓가락과 중간 부분을 채색한 젓가락, 주칠한 어린이용 젓가락은 모두 채화칠기 장인 박경옥 작품으로 저집 판매.



08 회화와 조각 사이, 사색
옻칠한 나무 표면에 자개를 붙이는 나전칠기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숲과 강을 표현한 채림 작가. 자개에 아교칠을 해서 인두로 지져 붙이는 전통 기법과 달리 나무 판을 옻칠로 마감한 뒤 은침으로 된 지지대에 자개를 띄워 고정하는 보석 세팅 기법을 접목해 화려함을 극대화했다. 밑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해 자개를 오려 붙이고 40여 공정의 옻칠까지 수십 가지 공정을 해내야 하는 인고의 작업. 평면적이지만 입체적이고 전통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이며, 회화인 듯 조각 같은 복합적 아름다움이야말로 옻칠과 자개, 나전칠기의 가능성이다.


 호수에 산과 사물이 비쳐지듯 거울처럼 모든 것을 반사하는 옻칠 위에 십장생 문양으로 깎은 자개를 보석 세팅 기법으로 띄워 고정한 채림 작가의 ‘숲 속을 거닐며’ 연작. 지난해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국제 전통 문화유산 박람회’와 올해 ‘아트엑스포 뉴욕 2016’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09 공간에 색이 피다, 성숙
최근에는 옻칠 본래의 색 외에도 안료를 섞어 다양한 색을 입히는 작업이 늘고 있다. 뉴트럴 톤과 간결한 디자인이 만나 모던한 제품과도 불협화음 없이 어우러지는 것이 요즘 옻칠 아이템의 특징. 특히 옻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색이 깊어져 이를 “색이 핀다”고 표현하는데, 색의 변화를 감상하는 것 또한 옻칠을 즐기는 또 다른 묘미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색이 좋아지고 ‘숙성’이야말로 인위적으로 광택을 입힌 것과는 확실히 다른, 옻칠만의 고유한 미감.


★ 물푸레나무 상판에 삼베를 입힌 뒤 그린, 브라운, 레드, 올리브그린 등으로 채색한 테이블은 허명욱 작가 작품, 바닥에 연출한 옻칠한 물방울 형태 트레이는 박미경 작가 작품으로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나뭇결이 살도록 얇게 옻칠한 원형 나무 쟁반은 오도타니, 그린 테이블 위 원형 삼베 접시는 나은크라프트, 코발트블루 컬러의 옻칠 접시는 이익종 작가 작품으로 하이핸드코리아, 네이비 컬러 원형 트레이는 문채훈 작가 작품으로 하이픈프로젝트, 자개 꽃무늬로 포인트를 준 블루 원형 접시와 브라운 테이블 위에 올린 핑크색 삼베 옻칠 접시는 나은크라프트, 올리브그린 원형 테이블 위에 올린 파란색 옻칠 도자 접시와 브라운 테이블 위에 올린 핑크색 옻칠 도자 접시는 이익종 작가 작품으로 하이핸드코리아, 니트 파와 아이스바 오브제는 이정자 작가 작품으로 윤현핸즈, 빨간색 테이블 위에 올린 자개 장식 원형 접시는 김환경 작가 작품으로 하이핸드코리아 판매.



10 캐릭터와 만나다, 위트
옻칠이라는 소재를 주목하며 순수 미술과 공예의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업을 펼치는 허명욱 작가. 그가 새롭게 발견한 매개체는 바로 ‘아톰’이다. 우리가 쉽게 소비하는 만화 캐릭터에 천년의 세월을 품은 옻칠을 더해 마치 살아 있는 듯 감정과 개성을 더한 오브제가 탄생. 브론즈, FRP 유리섬유로 사실적인 틀을 만든 뒤 여러 겹의 색을 도포한 후 갈아내는 옻칠의 교칠 기법을 사용해 1백 개의 다른 형태와 색감을 입은 설치 작업을 완성했다.


아톰 오브제는 허명욱 작가 작품, 도자에 옻칠과 금칠한 사과 합은 이정미 작가 작품으로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판매.


 스타일링 고은선(고고작업실) 어시스턴트 장세현(고고작업실), 이인영 제품 협조 김대건 작가(010-2970-2839), 나은크라프트(02-779-2259), 마이알레(02-3678-9466), 문채훈 작가 by 하이픈프로젝트(www.hyphenproject.kr), 수이57아뜰리에(02-6402-5757), 아이큐박스(031-794-6405), 오도타니(010-8936-0036), 윤현핸즈(02-540-6650), 이도(070-4942-1321), 저집(02-3417-0119), 정해조 작가(www.ottchi.com),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02-541-8484), 채림 작가(02-3442-3447), 하이핸드코리아(02-797-3553), 해브빈서울(070-4415-1508)

#옻칠 #공예 기법 #옻칠 가구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