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가족의 일상에 대해 누군가가 세세하게 물어봐주고, 또 그것을 공간에 반영해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집을 레노베이션하고 1년이 지났지만 집을 인테리어할 당시의 생생한 감동은 여전하다는 집주인 박지수 씨. 외국 생활을 해본 경험으로 마감재와 가구를 선택하는 안목이 과감했고, 디자이너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려는 존중마저 컸기에 공간 디자인과 데커레이션 모두 집주인과 디자이너가 의도한 콘셉트에 꼭 맞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화이트로 도장한 공간에 고재 원목, 패브릭 등의 소재를 믹스 매치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 거실. 주방과 거실의 열린 공간 구성으로 평면적 아파트 구조의 단조로움을 없앴다.이 집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 완벽한 수납, 거실과 주방의 열린 배치 그리고 오리지널 디자인 가구와 미술 작품이 조화를 이루는 스타일링이다. 지은 지 10년 정도 된 아파트는 층고가 낮고 모든 마감재가 체리목으로 통일되어 다소 답답하고 중후한 느낌이었다. 기존에도 아파트 생활을 했던 가족은 거실을 중심으로 한 평면적 구조와 부족한 수납공간을 단점으로 꼽았다. 한편 스타일은 단조롭지 않되 이 집에 오래 살아도 지겨워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으니 전반적으로 믹스매치 스타일링이 필요했다. 디자인을 맡은 이길연 실장은 메탈릭 소재와 거친 돌의 질감이 살아 있는 타일, 매끄러운 페인팅과 고즈넉한 나무 등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고급스러운 소재 매치에 힘을 줬다. 벽체는 모두 화이트로 도장한 후 타일과 마루재 외에 블랙 철제 프레임의 효과적 사용이 돋보인다. 대부분의 집이 안주인의 취향과 계획에 따라 완성되는 데 비해 이 집은 남편, 아이의 의견을 존중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보통 아이 방은 엄마가 ‘아이 눈높이’로 고른 가구와 벽지를 세팅하지만 이 집의 경우 철저히 아이가 직접 고르게 했어요. 내가 직접 고르고 참여한 공간은 더 애착이 가게 마련이잖아요. 이사하고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일이 잦아졌다고 하니 저 역시 엄마 디자이너로서 마음이 뿌듯해요.” 아내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침실, 남편의 서재, 아이 방, 피아노와 페인팅 보드가 있는 취미 방까지…. 주말이면 여느 가족처럼 집 밖으로 나가는 게 일상이었다면 이사한 후 한동안은 따로 또 같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하니 공간이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는 말이 실감 난다.
1 주방 가장 안쪽 보조 주방을 없애고 그 자리에 작은 아일랜드와 그릇장을 배치해 자주 쓰는 그릇과 장 본 물건을 정리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2 아래쪽에 수납장을 구성한 아일랜드 앞쪽으로 빅 테이블과 테이블 가운데로 곡선을 이루며 떨어지는 조명등을 매치해 공간감을 극대화했다.
3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 허명욱 작가의 옻칠 테이블, 김정옥 작가의 도자 등 모던한 가구와 한국적 감성의 작품이 어우러진다. 4 욕실 통로 파우더룸에서 바라본 침실. 붙박이장 거울로 비추는 침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Kitchen&Dining
보이지 않게 수납하라
복도를 중심으로 왼편에 주방과 다이닝룸, 남편의 서재가, 오른편으로 거실과 침실이 나란히 자리하는 구조. 이중 주방과 다이닝룸은 가장 많이 구조 변경을 감행한 공간이다. 기존 주방은 가려진 벽면 뒤에 ㄷ자형 싱크가 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벽을 털어내고 거대한 아일랜드와 빅 테이블을 거실과 나란히 가로로 배치해 주방과 거실을 열린 구조로 완성했다. 그릇이나 살림살이를 모두 보이지 않게 수납하길 원했던 집주인의 의견을 반영해 아일랜드 아래쪽에 수납 공간을 꼼꼼히 구성하고, 뒤편의 보조 주방 대신 낮은 수납장을 배치해 늘 사용하는 그릇을 두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모던한 디자인의 테이블은 월터&놀 제품으로 3m가 넘는 크기지만, 익스텐션 기능으로 용도에 따라 공간에 맞게 조율해 사용할 수 있다.
Living Room
전형적 가구 배치를 벗어나라
주방과 거실이 하나로 트여 있는 LDK 구조는 자칫 각 부실이 산만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디자이너는 이런 단점을 마감재 선택과 가구 배치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주방이 차콜 컬러 타일과 스테인리스 스틸 등 다소 무거운 마감재를 사용해 묵직한 느낌을 더했다면, 거실은 화이트와 베이지 컬러로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 아이보리 컬러의 패브릭 소파와 허명욱 작가의 옻칠 테이블, 반닫이,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페인팅 등 모던한 가구와 한국적 오브제, 작품의 매치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등받이가 높지 않은 미니멀한 디자인의 소파를 주방과 등지게 배치하고 뒤편에 낮은 나무 벤치를 두어 주방, 복도, 거실 라인을 자연스럽게 구분하면서 또 열린 공간을 완성. 바닥재는 헤링본과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비엔나 시공법을 선택해 이국적 감성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1, 2 벽면을 투톤으로 도장하고 가구와 소품으로 아기자기한 느낌을 더한 자녀방. 아이들이 자라면 벽면 컬러, 소품 등을 교체해 다른 분위기로 바꿀 수 있다.
3 블랙과 화이트로 모던하게 연출한 침실. 루이스 폴센의 PH 펜던트 조명등과 레드 컬러 암체어로 포인트를 주었다. 4 디자인에 관심 많은 남편의 위시 리스트로 꾸민 서재. 장 프루베의 책상, 의자와 코퍼 소재 테이블 램프, 폐목재 질감의 벽지 등으로 소프트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을 연출했다.
Bedroom&Library
자신만의 취향으로 조합하라
안방은 침대에 초점을 맞췄다. 원래는 고정된 침대 헤드보드를 제작하려고 했으나 잠자는 방향을 중요시하는 집주인 의 의견에 따라 자유롭게 침대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디자인을 고민했다. 굳이 벽에 붙여 사용하지 않도록 침대 뒤편에 선반이 달린 제품을 제안한 디자이너의 의도가 돋보인다. 실제 반대쪽 벽에 붙여, 몇 주는 창가 쪽에 붙여 사용하다 지금의 자리를 찾았다고. 남편 서재는 침실, 파우더룸과 연결되는 원래의 동선을 그대로 유지하되 철제 소재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남성적 개성을 더한 가장 반전 있는 공간이다. 책상과 의자 등은 박지수 씨가 평소 좋아하는 비트라의장 프루베 제품을 선택하고, 포인트 벽지는 거친 나무 질감의 피트 헤인 에이크 제품을, 책장은 앵글로 제작했다.
Kidsroom
내 방의 주인공은 바로 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방은 모두 아이들 의견을 100% 반영했다. 핑크를 좋아하는 딸아이 방은 철저히 공주풍으로 완성했고, 프라모델과 아기자기한 캐릭터 소품을 좋아하는 아들 방은 자신의 컬렉션을 조르르 올려둘 수 있는 낮은 장과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선반을 설치했다. 원래 두 아이 방은 미닫이문으로 구분된 구조로 얇은 벽체를 세운 뒤 양쪽에 책장을 설치해 책 수납도 하고 차음에도 효과적이다. 또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까지 고려한 것이 특징이다. 전형적인 핑크, 블루 컬러를 사용하되 베이스 컬러는 그레이로 선택, 아이가 성장하면 핑크색 침대 캐노피를 떼어내는 등 소품을 교체히고 도장한 벽은 부분적으로 컬러만 바꾸면 ok.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갖되 각자의 취향에 맞는 마감재, 컬러, 아이템 등을 적재적소에 믹스매치한 덕분에 10년을 살아도 한결같이 새로운 가족 모두를 위한 집이 완성된 것!
디자인과 시공 이길연(http://www.kilye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