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화이트 벽면으로 마감해 갤러리처럼 꾸민 집. 조명등과 가구가 하나하나가 주인공이 된다. 2 오디오, 음악 CD 등 한 분야에 꽂히면 원하는 만큼 모으고야 새로운 분야에 관심이 생긴다는 김동광 씨. 그는 평생에 걸쳐 컬렉터의 길을 걸어왔다.
거실 중앙에 한스 웨그너의 CH28 체어가 놓여 있고, 아일랜드 테이블과 마주 보도록 아르네 야콥센의 3600 다이닝 테이블과 앤트 체어 블랙 컬러를 배치한 집. 뒤돌아서면 알바 알토의 A622 조명등이 오브제처럼 놓여 있고, 곳곳에 손 때 묻은 포울 헤닝센 조명등 시리즈가 걸려 있다. 벽에 걸린 낡은 뱅앤올룹슨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흘러나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마치 북유럽에서 태어난 거장 디자이너의 집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드는 이곳은 수집이 취미이자 특기인 김동광 씨의 연희동 주택. 집을 가득 메운 모든 가구와 조명등은 덴마크의 디자인 전성기라 불리는 1950~1960년대에 생산한 오리지널 버전으로, 국내에 북유럽 디자인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그가 하나 둘 모은 것이다. 15년 가까이 모았더니 여느 컬렉터 못지않게 방대한 가구를 보유하게 된 것. 오랜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연희동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5개월에 걸쳐 자신이 꿈꿔온 집을 하나하나 실현해가기 시작했다.
1 다다미방을 연상시키는 창문은 김동광 씨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아카리 조명등에서 흘러나온 따스한 불빛이 온기를 더해준다. 2 제각기 그림이 다른 타일을 조합한 강익중 작가의 작품.3 포인트 데코 역할을 하는 베르너 판톤의 플라워 포트. 루이스 폴센사에서 오래전에 제작한 빈티지 제품으로 온라인 경매를 통해 구입했다. 4 아일랜드 키친과 식탁이 마주 보는 주방은 가족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쓴 공간이다.
집은 우리 가족 갤러리
모던한 분위기로 꾸민 김동광 씨 집은 20년도 더 된 연희동 쌍둥이 주택 중 한 채를 기본 골조만 남기고 레노베이션한 것이다. 도로명도 없이 ‘68’이라는 숫자만으로 주소를 표시한 감각적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박공지붕의 이층집이 나온다.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도 연희동은 잘 알지 못했어요.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동네를 알아보던 중 조용해서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봤죠. 저녁 7시쯤, 해가 어스름할 무렵에 와서 집의 외관만 구경했는데 마음에 들었습니다. 집도 집이지만 도로에 인접한 점도 좋았고요. 다음 날 바로 계약하고 나서 내부를 둘러봤는데, 워낙 낡고 오래된 집이라 공사가 필요한 상황이었죠.” 현관을 지나 내부로 들어가면 곧장 넓은 주방과 다이닝 공간이 이어진다. 싱크대와 조리대, 바 공간을 모두 갖춘 대형 아일랜드 키친과 아르네 야콥센의 테이블&앤트 체어가 사이좋게 마주 보고 있으며, 거실에는 조지 나카시마의 우아한 원목 의자와 이사무 노구치의 한지 조명등이 어우러져 있다. 원목 패널 벽에는 이우환 화백의 단색화가 걸려 있다. 한눈에 보아도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조명등, 오브제까지. 인테리어 좀 한다는 이들도 포인트 요소로 하나 둘만 놓을 만한 것이 집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가족이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고, 함께 식사하는 집 본연의 기능에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를 더했습니다. 천장이 높고 창이 커서 카페 같은 느낌도 들고, 곳곳에 아름다운 가구와 조명등, 작품을 배치해 마치 갤러리처럼 보이기도 하죠. 손꼽아 기다렸던 전시를 보러 갤러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날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설렘으로 가득하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천장을 높여 박공지붕 형태로 정비하고, 키 큰 책장에 아끼는 서적을 빼곡히 꽂아 넣는 등 아파트에서는 해볼 수 없던 다양한 인테리어를 시도했다. 시간 날 때마다 조명등과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변화를 주는 일이 요즘 김동광 씨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자작나무 소재의 책장은 어반웍스 제작.
그의 말대로 집은 갤러리를 방불케 했다. 집 안을 채운 것은 가구뿐이 아니다. 오랜 세월 수집 활동을 해온 그는 시계, 안경, 오디오 시스템, 아프리칸 무드의 수공예품, 그림, 조명등까지 막대한 수집품을 소유하고 있다. 한번 빠져들면 원하는 만큼 모으고서야 새로운 것에 눈길이 간다고.
그가 사랑하고 아끼는 무수한 컬렉션은 2층 규모의 집과 지하 1층의 넓은 창고를 빼곡히 채울 정도다. 오로지 좋다는 이유만으로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전문 컬렉터에 뒤지지 않을 만한 분량이 되었다. 그가 사랑하는 가구는 대부분 아르네 야콥센이나 한스 웨그너, 조지 나카시마가 디자인한 오리지널 빈티지 버전으로, 주로 온라인 경매를 통해 구입한 것이다. 추운 북유럽 지역에서 자란 견고한 원목을 손으로 정성스럽게 깎고 다듬고 조립한 빈티지 가구는 요즘 생산한 가구가 흉내 낼 수 없는 정성과 편안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추었다. 시간의 더께가 자연스럽게 내려앉아 있다고 할까.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가구는 도통 정이 가지 않는다.
빈 캔버스처럼 마감에 공들인 집
북유럽 인테리어는 이미 10년 전부터 크게 유행했기 때문에 이제와서 새롭거나 신선하게 여겨지진 않는다. 그런데도 이 집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단순히 북유럽 인테리어를 추구했다기 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가구를 수집하고, 이들이 돋보이도록 집을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로 레노베이션했기 때문일 터.
특히 비례감을 중시해 벽면의 두께부터 천장 형태, 방문과 창살의 두께와 색상, 창살 간격까지 집 안을 이루는 모든 면과 선을 직접 치수를 재고 디자인해서 시공업체에 맡겼을 정도다. 골조만 남긴 채 천장과 벽면을 뜯어내고 새로 시공하면서 천장 높이를 기존보다 높이고, 지금의 좌우 반듯한 박공지붕 형태로 정돈했다. 그림이나 사진 작품, 가구, 조명등 등을 왜곡 없이 가장 정직하게 담아내면서도 오래 보아도 싫증 나지 않도록 내부 벽면과 천장 전체를 원목 패널로 감싸고 화이트 색상을 메인으로 도장했다. 대신 현관문이나 욕실 문 같은 출입문은 검정 무늬목으로 마감해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으며, 문틀은 최대한 작게 디자인하고 문턱은 없애 시선을 방해할 만한 요소는 최대한 배제한 것이 신의 한 수다. 1층은 거실과 부부 침실 그리고 햇볕이 화사하게 비치는 주방 겸 다이닝룸으로 구성했다. 부부가 모두 직장인이고, 형제는 2층을 사용하기 때문에 식구들이 유일하게 모이는 저녁 식사 때와 주말을 위해 주방&다이닝 공간을 넓게 할애한 것.
1 그가 아끼는 히로토 기카가와의 인형. 집 안 곳곳에 오브제로 자리 잡고 있다. 2 나뭇결을 살린 의자는 미국계 일본인 디자이너 조지 나카시마의 작품이다. 의자가 낮아서 보기보다 앉았을 때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이 난다. 3 책상 위에는 포인트 컬러를 사용하길 좋아하는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다. 4 숫자만으로 주소를 알린 대문을 통해 집주인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방과 거실이 있는 2층 공간이 나온다. 2층 역시 포울 헤닝센과 알바 알토, 이사무 노구치의 조명등이 곳곳에 놓여 있는데, 가구도 가구지만 특별히 조명등 배치에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3.5m 높이의 박공지붕 천장 면을 활용해 곳곳에 펜던트 조명등을 설치하고, 적재적소에 스탠딩 조명등과 테이블 조명등을 놓았는데 모든 벽면과 천장에 콘센트를 설치해 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조명등을 자유롭게 켜고 끌 수 있다. 조명등을 손쉽게 이동, 설치할 수 있도록 일본에서 천장용 조인트를 직접 공수해 올 정도로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기도 하다.
답답한 아파트에서 벗어나 주택으로 이사한 뒤 맞이한 가장 큰 변화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구와 조명등 위치를 바꿔 전과 달리 새로운 공간을 꾸밀 수 있다는 것. 지금은 베르너 판톤의 빈티지 플라워 포트 펜던트 조명등이 계단 위에 걸려 있지만 원하면 언제든 거실 천장으로 이동할 수 있고, 모던한 스타일로 바꾸고 싶다면 조지 나카시마의 원목 의자 대신 베르토이아의 다이아몬드 체어를 배치할 수도 있다. 전문 디자이너보다 서툴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애정을 갖고 꾸몄기에 곳곳에서 그의 취향이 드러나는 집. 아직 정돈되지 않은 지하 1층 공간도 그의 소소한 취미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시간의 숨결을 머금은 수많은 북유럽 오리지널 가구가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근사한 자태를 드러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