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회건축연구소 김재관 소장의 명륜동 산기슭 다가구주택. 강정교회, 풀향기교회 등 개신교 교회 설계로 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2010년부터 낡은 집과 허름한 집, 한물간 집을 골라 수리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집수리 전문 목수로 살고 있다. 용접과 조적에 자신 있다는 그는 무심한 벽돌 하나로, 철판 하나로 훌륭한 집을 짓는 게 목표다.
명륜동 꼭대기, 산기슭에 들어선 길이 18m, 폭 3m의 다가구주택. 그동안 많은 집을 취재해봤지만, 솔직히 이런 집은 처음이었다. 대문 안쪽으로 여전히 어수선하게 자리한 건축자재들. 산기슭을 축으로 기대고 있는 듯한 계단을 지나 새로 고쳤다는 3층 집으로 올라서도 번듯한 새 집의 요소를 찾아보긴 힘들다. 가설재인 아시바(철제 파이프)를 기둥 삼아 공간을 나누고 비계(안전 발판)로 바닥을 덮은 마감이라니!
거실 평상에서 바라본 주방과 복도. 야생의 산기슭과 내부를 마감한 미송 패널이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룬다. 타일 바닥 밑에 구들을 설치하고, 타일 위에 나무 패널을 깔았다. 난방을 하면 패널 사이사이로 온기가 전해진다.
환경친화적 재료로 천천히 고친 집
시쳇말로 재료가 지닌 날것 그대로의 원초적 감성을 이만큼 잘 살려낸 집이 있을까? 거창한 이름 대신 ‘철민이네’로 불리는 김재관 소장의 명륜동 집은 건축 현장에 있는 가설재를 마감재로 사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보통 임시로 설치하는 가설재를 최종 마감재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 어디서든 구하기 쉬운 평범한 재료인 반면, 마감재로는 결코 쓰지 않는 재료니 그 자체로 특별하지 않은가. 이 집은 ‘주거’가 주 용도지만, 집수리 전문 건축사 사무소 ‘무회 건축연구소’의 자재 보관을 염두에 둔 탄약고 같은 공간으로 아시바, 비계 등 건축자재를 다른 현장에서 필요하면 다시 뜯어 간다는 가벼운 생각도 한몫했다.그야말로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틀에서 벗어난 집. 여느 건축가처럼 설계 도면과 씨름하며 신축하다 무분별한 개발로 땅이 변하고, 이로 인한 건축의 인문학적 단절이 아쉬웠다는 김 소장은 2010년부터 신축 대신 오래된 집을 수리하고 보수하는 집수리업자의 길을 택했다.
1 단열을 위해 안쪽에 벽을 하나 덧대었다. 창문에 두꺼운 턱이 생겨 책이나 작은 소품 등을 장식하기 좋다.
2 화장실 크기를 최소로 줄이고 화장실 옆으로 선반을 짜 넣어 작은 서재를 마련했다. 아내가 컴퓨터를 쓰거나 화장을 하는 공간.
“설계는 실제 현장에서 다르게 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수리는 형식적 도면 외에 현장에서 꼭 필요한 도면만 그리고, 계획과 시공을 함께 한다는 장점이 있지요. 대신 도면과 실제를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해요.” ‘어떻게 설계할까’보다 ‘어떻게 만들까’를 더 많이 고민하는 그의 건축 철학이 담긴 집은 그래서 카탈로그처럼 눈에 익은 것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집 외벽을 둘러싸고 있는 수납장(집 밖에 책장이 있고, 책이 꽂혀 있다!)을 비롯해 파티션처럼 움직이는 공구장, 소나무 평상, 철제 연못까지 모두 손으로 직접 제작한 것. 화학 성분의 접착제는 물론, 그것을 사용해 만든 합판과 MDF 등 자재 역시 공장 제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방부제 처리를 하지 않은 소나무 원목과 현대식 창호인 플라스틱 베니어, 철제 파이프 등은 기계로 짠 기성 제품보다 정밀도가 떨어지지만 몸에 해롭지 않고 그 자체로 환경친화적이다. 이는 표준화된 규격 제품보다 오히려 비경제적이고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삐뚤빼뚤 일정하지 않은 형태지만 ‘슬로푸드’처럼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 믿는다. 집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기는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안쪽에 자리한 안온한 침실은 명륜동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인생 중반기, 진짜 살고 싶은 집을 고민하다
“이 집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하나, 숲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에요. 산과 도시의 경계가 의식되지 않고 그냥 쓱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느낌이 좋았죠. 말하자면 도시 농촌이지요.”
비탈진 언덕에 자리한 3층 규모의 다가구주택. 한 층 면적은 12평 정도로, 1~2층은 세를 주고 김재관 소장 부부는 3층을 사용한다. 직장 생활하는 딸과 유학 후 독립할 일만 남은 아들, 12평이면 두식구가 생활하기 충분한 공간이다. 내부 공간은 비틀어진 각도에 따라 미송 패널을 세심하게 짜 맞춘 것이 특징. 부실과 부실을 나누는 벽체가 없다. 주방은 마치 큐브 타입의 구조물을 넣은 듯한 형태로 천장 연결의 흐름이 끊기지 않아 집이 확장돼 보이는 효과가 있다. 거실로 향한 주방 벽은 창문처럼 일부는 오픈하고, 상부는 플라스틱 베니어로 마감해 조명등을 켜면 부엌 자체가 하나의 등 박스가 된다. “크다, 작다의 의미는 오픈 스페이스에 따라 결정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벽, 막힘이 없으니까 폭이 좁고 긴 집이 답답하지 않고 개방감이 느껴지죠. 산과 도시의 경계에 자연스럽게 들어앉은 집처럼 거실과 다이닝, 주방 등이 분절되지 않고 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문을 여닫으며 다양한 레이어를 만드는 한옥처럼요.”
현관 입구의 가장 큰 방을 터 거실로 사용한다. 거실에는 소파 대신 언제든 편하게 누울 수 있는 평상을 짜 넣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한옥이 늘 그리웠다는 김 소장은 집 안에 한옥의 요소도 넣었다. 현관 앞쪽 타일이 드러난 부분이 마당, 소파 대신 언제든 편하게 누울 수 있는 평상을 짜 넣은 거실이 사랑채인 셈이다. 내부 마감재와 수납장 등은 모두 가공하지 않은 소나무 원목으로 직접 제작했다. 복도 한쪽에 자리한 수납장은 각진 공간에 맞춰 짜 넣었기 때문에 폭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폭이 작은 선반에는 카메라 등 작은 물건을, 폭이 넓은 선반에는 여행 가방 등 큰 물건을 수납한다. 방문과 화장실 문, 옷장 문도 모두 나무 프레임 안에 플라스틱 베니어판을 넣어 만들었다. 아내의 입김이 작용한 주방 공간은 철저히 실용 위주다. 다용도실 등 허드레 공간이 외부와 연결될 수 있도록 주방 안쪽에 문을 만들어 사용하기 편리하다.
1 싱크대를 11자 병렬식으로 구성해 작지만 사용하기 편리한 주방.
2 거실의 네모난 창은 어떤 벽 장식보다 시적이다.
설계는 작곡이요, 집수리는 편곡이다
김 소장은 집의 기본 구조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새로 짓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아니다. 고쳐서 쓰는 것도 충분하다는 확신이 더 크기 때문이다. “설계만 하는 것이 일종의 새로운 레시피를 만든 것이라면, 집수리는 같은 재료로 손맛과 간을 달리해 음식을 완성하는 거죠. 이 집이야말로 야생을 즐기는 나와 햇볕 쨍쨍한 날 빨래 널기를 좋아하는 아내, 마당에서 펄쩍펄쩍 뛰노는 반려견을 위해 최적화한 집이에요. 이른바 ‘집밥’이라 할 수 있죠.”
그는 방치돼 있던 산비탈 역시 파거나 메우지 않고 경사를 그대로 살려 마당으로 충분히 활용한다. 공사장에서 흔히 쓰는 안전 발판(비계)을 비탈길에 띄워 길게 깐 것. 길 위쪽엔 토마토를 아래쪽에는 상추와 바질 등을 심어 부부가 아주 좋아하는 채소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 비계는 조립하기도 편하고 잘 미끄러지지 않아 기능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자재라는 설명을 듣고 보니 미완성의 산물 같았던 그것들이 전혀 낯설지 않고, 맞춤옷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1 12평 남짓한 작은 집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갈매기가 날고 있는 것처럼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어져 있다.
2 현관에서 바라본 산기슭의 너른 마당.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있는 집을 만난 것 이야말로 도시 생활에서 찾은 가장 큰 행운이다. 부부는 바람이 잘 통하는 나무 아래서 매일 아침 함께 차 마시고, 저녁이면 조촐한 와인 모임도 즐긴다.
열한 번째 자신의 집을 수리하기까지, 집수리를 할 때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늘 지도(도면)를 품고 다닌다는 김재관 소장. 그는 집을 수리할 때 번뜩 떠오르는 훌륭한 영감 같은 건 없다고 고백한다.
“집수리는 해결하는 거예요. 로직을 잃지 않으면서 그 집에 맞게 진단하고, 삶의 방식에 맞게 처방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지요. 중요한 건 작곡도, 리메이크도 아닌 ‘편곡’이라는 점이에요. 새로운 화음과 리듬으로 변화를 주고 애드리브를 추가해 긴장감을 부여하기까지, 편곡에 따라 집의 장르가 달라지니까요. 단, 정석을 배우고 변칙을 해야 원곡을 해치지 않는 좋은 곡이 완성됩니다.”
설계와 시공 무회건축연구소(02-323-6652)
- 집수리하는 건축가 김재관 작곡과 편곡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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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집수리 기술자들이 점점 사라져갈 무렵, 건축가 대신 집수리업자의 길을 택한 이가 있다. 자신을 ‘작곡자가 아닌 편곡자’라 소개하며 열한 번째 집수리로 자신의 집을 ‘편곡’한 무회건축연구소 김재관 소장을 만났다.#무회건축연구소 #김재관 #집수리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