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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화백과 맏딸 김현주 창작의 열쇠가 된 목기 컬렉션
동시대 사람과 함께 살되 시대를 벗어난 미감美感을 갖도록 변이된 사람이 예술가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물건 앞에서도 다른 미감을 느끼고 미감이 스며 있는 일상을 산다. 지난 8월 16일까지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 열렸던 <김종학 컬렉션, 창작의 열쇠>는 이런 명제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인테리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착상도 하기 전인 무려 45년 전부터 김종학 화백은 놀이이자 공부로 목가구를 수집해왔다. 선조들이 그저 삶의 상식과 솜씨로 나무를 깎아 만든 생활 공예품인데도 화가는 옛사람의 피에 본능적으로 흘렀을 구조와 비례, 색감과 배치의 미감을 오롯이 느꼈다.

“45년 전 나는 갓 대학을 졸업해서 가난하니 도자기나 그림 같은 걸 수집할 수가 없었지. 대신 목기를 샀어. 특히 나주 반닫이처럼 짜임새가 간단하고 장식이 특이하며 조형적 비례감이 좋은 목가구를 좋아했지.”

45년간 인사동, 청계천, 장한평 등을 수시로 다니며 한눈에 반해 집으로 데려온 애인의 면면은 농기구부터 옹기 굴뚝, 성글게 짠 바구니, 꽃 자수를 놓은 베개까지 아주 다채로웠다. 집과 마당, 창고와 컨테이너 등에 보관한 그 수는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다. 먼지와 곰팡이와 벗하며 쌓여 있는 잡동사니 같지만, 몇가지 골라 꺼내보면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따져보지 않아도 희한하게 비슷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풍구’, 150x119x54cm, 연대 미상. 오른쪽 정갈한 조형미가 빼어난 목가구와 보자기를 배치해 한국 고가구와 전통 색채의 미니멀한 현대적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 2층의 전시 공간. 
“김종학 화백은 색색의 꽃을 많이 그린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분의 그림에는 한국적 요소가 많다기보다 한국적 느낌이 난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아요. 일본의 예술 작품이 강남 아가씨처럼 완벽하게 치장한 여자 같다면, 김종학 화백의 그림과 수집품은 시골에서 만난 볼이 발그레한 여인의 얼굴을 닮았어요. 굉장히 소박한데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얼굴 같죠.”

지난 3년간 먼지와 곰팡이와 씨름하며, 김종학 화백 자신도 잊어버린 수많은 수집품을 꺼내고 닦아 그 옛날 벨기에 영사관이던 아름다운 남서울생활미술관에 거짓말처럼 전시해놓은 김종학 화백의 맏딸 김현주 스튜디오 일치 이사의 설명이다. 각각의 목가구가 가진 조형적 아름다움에 선택과 집중이라는 배치의 미학을 더해 리듬감 있는 설치미술 작품처럼 전시해놓았으니, 한국 고미술을 전공했느냐는 질문을 수시로 받는다. 하지만 열다섯 살부터 해외 생활을 했고 외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한국 고미술을 별도로 공부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친구들인 한국의 대표 화가들을 늘 만났고 집 안 곳곳에 목가구와 소품이 있었으며, 생일에는 아버지에게 목기 골동품을 선물 받았고, 외국으로 시집가서도 소파와 식탁 외에는 아버지가 결혼 선물로 준 한국 목가구를 놓고 닦으며 살았으니 일상이 곧 한국 미술사의 교실이었던 셈이다.

1 ‘삼층 찬장’, 127x118x49cm, 조선시대. 김종학 화백은 딸이 시집갈 때 수집품 중에서 이 삼층 찬장과 삼층 책장을 선물했다. 김현주 이사는 오랜 해외 생활에도 이 목가구를 사용했으며 나무에 윤을 내는 기름 중 가장 좋은 것은 사람의 손길이라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닦아 최상의 상태를 유지했다.
2 화려한 배색 조합과 형태에서 김종학 화백의 그림부터 몬드리안의 조형미까지 다채로운 현대미술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선조들의 베개 모음.
3 ‘망건통’, 9.5x9.5x12cm, 조선시대.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 동양 사상, 동양 철학, 동양 미학에 대해 세뇌 교육을 엄청나게 받았어요. 그래서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제 자존감이 무척 높았어요. 그런데 이제야 한국에 돌아와보니 디자이너나 예술가까지도 요즘 젊은이들은 외국을 공부하고 따라가는 데 시간을 많이 쓰더라고요. 우리 자신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안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이런 마음 때문에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어 먼지 더미에 주저앉아 울면서도, 그 어려운 일을 하느니 도망가라는 지인들의 조언을 들으면서도 김현주 이사는 지난 나날 매일 마음을 다잡고 아버지의 그 많은 소장품을 정리하는 데 3년의 시간을 오롯이 바쳤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서울대학교가 아닌 인사동 대학을 나왔다고 해. 조형이 아름다운 저런 물건을 보면서 내 안목이 높아지면 미술 작품을 판단하는 안목도 높아지지. 화가는 안목이 높아야 해. 그래야 내 작품을 작업할 때도 높아진 안목으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일상에서 사용한 모든 물건 중 그만의 미감으로 조형적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모든 것을 종류 불문하고 모았지만, 김종학 화백이 특히 좋아하고 중점적으로 모은 것은 사랑방의 가구다(가장 우수한 수집품 2백80점은 지난 1989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옛 부인들은 안채에 갇혀 살았으니 안방의 가구는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게 많았다. 대신 선비의 일상적 거처이자 남자 손님을 맞는 공간이던 사랑방은 책장과 사방탁자 등 별다른 장식 없이 오직 조형적으로 놀라운 미감을 발휘하는 ‘한 차원’ 높은 가구다. 그 가구가 지닌 비례와 색감은 현대의 시선과 감각으로 보아도 매우 미니멀한 감성이 담겨 있어 탄성이 나오는 것이었고, <창작의 열쇠>라는 전시 제목처럼 지난 45년 간 지속된 이러한 감동이 김종학 화백의 작업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4 1층 전시장에는 김종학 화백이 반해 수집한 여러 종류의 농기구를 모아 마치 설치미술 작품처럼 전시했다.
5 사람의 체취가 묻은 베개와 향낭 등의 직물류는 보존 상태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색채와 문양이 마음에 들어 수집했다.
6 안채의 화려한 가구와 달리 선비를 위해 정갈하게 만든 사랑방의 목가구.
7 한곳에 배치하니 마치 현대미술의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목등경 모음. 

“<창작의 열쇠>는 제가 한국에 들어와 아버지 작품이나 소장품으로 큐레이팅한 아홉 번째 전시예요. 다음 전시는 부산에서 열리는 김종학 화백의 ‘설경전’이 될 거예요. 아버지가 화려한 꽃을 주로 그리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겨울 그림이 좀 더 추상적 느낌이 강해서인지 외국의 갤러리 관계자들은 아버지의 겨울 그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앞으로 김종학 화백의 작품 세계를 좀 더 폭넓게 조망하는 전시를 기획할 계획입니다.”

대학 졸업 후 외국의 대형 갤러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딸이 그의 미감으로 아버지의 작품을 갈무리하고 노화백은 여전히 꿈꾸듯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놀랐어. 딸한테 고맙고 흐뭇하지. 어떤 건 높여야 살고 어떤 건 낮춰야 살고 또 어떤 건 한데 뭉쳐야 살고 또 어떤 건 적당히 받쳐줘야 하고. 그런 배치를 이렇게 잘해내다니…. 그래서 나도 처음으로 그 실력을 인정해 줬어. 앞으로 나는 그림만 그리면 되겠어. 인물도 그리고 싶고 풍경도 그리고 싶고 여전히 그리고 싶은 것이 많아.”

우리 선조가 가진 일상의 미학과 노화백이 가진 천생의 미감, 그리고 그 아버지의 감각을 이어받은 딸이 깨우친 뿌리의 미감이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미술 관계자가 아니어도 김종학 화백처럼 일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는 눈을 기르고 싶은 사람에게 창작의 열쇠를 건넨다. 누구나가 가지고 있지만 쉽사리 다듬지 목하는 ‘안목’의 가치와 중요성, 그것을 다시금 돌아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을 좀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창작의 열쇠일 것이다.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