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배윤목ㆍ허성경 부부가 각각 자신의 이름 마지막 글자를 골라 지은 목경헌. 부부와 두 아들, 그리고 배윤목 씨의 어머니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고 있다. 이곳은 현관을 지나 거실을 통해서 들어올 수 있는 마당.
은평 한옥마을에 주거 공간으로는 가장 처음으로 준공한 ‘목경헌’의 주인 배윤목ㆍ허성경 부부는 분양을 시작하자마자 땅을 구입했다. 집 한 채도 없는 허허벌판에 투자 가치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두 아들과 함께 살 순수한 목적으로 이 마을을 선택했다. 그래서 필지를 분양받은 후 곧장 자료를 수집하고 ‘한옥 짓기’ 작업에 들어가 마을에 가장 먼저 입주한 가족이 되었다.
목경헌은 현관 입구부터 독특하다. 일반 한옥과 달리 마당으로 통하지 않고 현관을 통해 바로 거실로 들어간다.
3년 전 한옥으로 이사하자고 설득한 것도, 1백50여 필지 중 이 땅을 선택한 것도 모두 남편 배윤목씨였다. 광고업에 종사하는 그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하루라도 휴일이 생기면 집 안에서 편히 쉴 수 있길 소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속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왔다. “아파트에서 살면 주말에 텔레비전만 보고 달리 할 일이 없어요. 박스 안에 갇혀 사는 기분이랄까, 정말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옥에서 꼭 살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즈음 우연히 은평 한옥마을 기사를 봤지요.” 기사를 읽고 마을 위치를 찾아본 그는 망설임 없이 필지를 구입했다.
대문 밖에서 본 목경헌. 문화재 복원이 전문이기도 한 시공 업체 고진티앤시가 돌담을 만들었다.
한옥의 매력은 서까래 아닌가요
진관사 초입 대로에 인접한 집터는 마름모꼴이다. 네모반듯하지 않은 이런 부지를 택한 이유는 땅이 비정형적이면 집이 좀 더 재미있게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다. 은평 한옥마을은 SH공사에서 땅만 분양할 뿐 어떠한 지원도 없이 설계와 공사는 모두 집주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부부는 한옥 설계로 최고라는 건축가 황두진에게 설계를 의뢰했고 한옥 전문 시공 업체인 고진티앤시에 시공을 맡겼다. 과감하게 땅을 골랐는데도 기대보다 더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 건 설계팀과 시공팀을 잘 만난 덕이라 연신 강조했다.
거실 끝에 있는 부부의 침실. 창밖으로 보이는 마당의 단풍나무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좋은 집이 탄생할 수 있는 요건 중 하나는 건축주의 요구 사항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 부부가 집을 짓기 전 고집한 건 딱 두 가지인데, 집 안 어디에서든 서까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거실에 벽난로를 놓고 싶다는 것이었다. 집을 지을 때 실내공간을 넓히려면 마당을 포기하면 된다. 하지만 한옥의 백미인 마당을 포기할 거라면 굳이 한옥에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마당을 줄일 수도, 그렇다고 내부 공간을 양보할 수도 없어 대안으로 생각해낸 것이 2층 한옥이다. 하지만 한옥을 2층으로 올릴 경우 1층에서 서까래를 볼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그래서 부부는 1층 천장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하면 2층 면적이 그만큼 줄어들지만, 부부는 그 공간 대신 서까래를 선택했다.
2층에는 양옆으로 배민욱, 배민영 두 아들의 방이 있다. 둘째 아들 방 창문에서 바라본 반대편 방.
천장에 서까래가 보이지 않는 한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층에 있는 두 아이의 방은 작아졌고 층간 방음도 잘되지 않지만, 현관을 들어서 가장 처음 마주하는 거실의 높은 천고 덕에 집이 훨씬 넓어 보인다. 목경헌의 또 다른 특징은 거실에 놓은 검은 주물 벽난로다. 얼마나 자주 사용할지 모르지만, 벽난로는 남편의 로망 중 하나였다. 부부는 툇마루에 둘러앉아 난로를 바라보는 구조로 설계해달라고 의뢰했다. 그래서 마당에 사용한 돌과 같은 것으로 거실 안에 작은 마당을 만들었다. “실내에 마당을 만들면 그만큼 공간을 버려야 한다며 다들 반대했어요. 하지만 지하의 AV룸이 넓어 거실처럼 사용할 수 있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아요.”
부부 침실에 붙어 있는 욕실에는 히노키 욕조를 놓았다. 창문을 열면 주차장으로 통하는 작은 마당이 연결된다.
아마도 목경헌에서 가장 예상하지 못한 공간은 바로 지하일 것이다. AV룸이자 배윤목 씨의 작업 공간이기도 한 이곳은 한옥의 멋을 살린 1, 2층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벽과 천장을 하얀색으로 마감하고 한 벽면에 벽돌을 쌓았다. 한옥을 현대건축으로 재해석한 건축가답게 황두진 소장은 마당의 툇마루를 강화유리로 만들어 지하 천창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지하에서도 천창을 통해 처마 밑 서까래가 보여 한옥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집 안 어디서든 서까래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부부의 소망이 이뤄진 셈이다.
현관으로 들어와 바로 마주하는 거실 풍경. 1층 거실에서도 2층 서까래를 볼 수 있고, 실내에 작은 마당을 만들어 벽난로를 설치했다. 이 두 가지는 건축주가 필수로 요구한 것이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겼어요
각각 광고와 의상이 전공인 부부는 디자인에 관심이 많고 가구와 소품을 고를 때도 취향이 분명하다. 이사 오기 전 대부분 새로 장만했는데,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반닫이 외에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 가리모쿠 뉴 스탠다드 등 특정 브랜드에 편중된다. 지극히 프랑스적이고 일본스러운 것들이 한옥과 잘 어우러져 집주인의 감각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한옥은 현대인의 살림을 보관하기에 수납공간이 부족한 편이다.
부부 침실 쪽에 있는 옷장 겸 화장대. 왼쪽 미닫이문 안에는 허성경 씨의 화장대가 숨어 있다.
그렇다고 서랍장을 놓자니 ‘비움’이 미덕인 한옥의 매력이 반감된다. 그래서 가족은 이사하기 전에 필요 없는 짐을 덜어내고 간소하게 사는 법을 익혔다. 현재 은평구 한옥마을은 집 짓기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이 완성되려면 아직 몇 년은 더 걸리겠지만, 벌써부터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부쩍 늘어났고 한다. 목경헌은 마을에서도 자동차가 다닐 만한 넓은 도로에 접해 있고, 지대가 낮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선 담을 높이 쌓아야 했다. 대문을 마당과 연결하지 않고 거실로 통하도록 폐쇄적으로 설계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덕분에 실내를 통해 들어가야 하는 마당은 가족만을 위한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주방 테이블 위에 건 샹들리에가 한옥과 잘 어우러진다.
한옥에 관한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다면 배윤목ㆍ허성경 부부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옥에 살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많다. “흔히 한옥은 냉난방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엔 성능 좋은 창호가 많아 괜찮아요. 그보다 방마다 창이 있어 방음이 잘 안 되고 집 안에 조그마한 벌레가 많다는 것이 더 걱정이죠.” 하지만 부부는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도 한옥에서 살 만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집 안 구석구석 조그마한 벌레가 기어 다녀 많이 놀랐는데, 흙과 나무로 만든 집이기에 당연한 일이고 벌레가 사는 건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걸 방증한다”며 허허 웃었다. 둘째 아이가 한달에 두세 번 꼴로 알레르기성 발진을 앓았는데 이사한 이후로 한 번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니, 말 그대로 한옥의 건강함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지하 1층은 위층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거실 쪽 툇마루와 연결된 천창을 통해 빛이 드라마틱하게 들어온다.
한옥마을에 현재까지 완공한 집은 열 채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목경헌을 힐끗힐끗 훔쳐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부부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자신들의 고집대로 지은 집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편리한 아파트를 떠나 한옥에 사는 게 괜찮을까 걱정하던 아내 허성경 씨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옥의 매력에 푹 빠졌다. “처음에는 왜 불편한 한옥에 살려고 하냐며 반대했지만, 남편이 워낙 좋아해 그냥 의견을 따랐어요. 그런데 막상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집이 예쁘다고 해서 기분 좋고, 사는 것도 생각만큼 불편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우리 집에 온 손님들이 모두 힐링하고 돌아가서 만족스러워요. 은평 한옥마을이 북한산 한韓문화체험특구로 지정되었다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 마을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 배윤목ㆍ허성경 부부의 한옥 건축기 2층 한옥, 목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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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은평구 진관사 초입에 한옥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부지를 분양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내로라하는 한옥 전문가가 모두 참여해 한옥 설계의 각축장이라 표현하는 이곳에 주택으로는 첫 번째인 목경헌이 모습을 드러냈다. 20년 동안 아파트에서만 살던 배윤목ㆍ허성경 부부는 한옥 생활이 더없이 만족스럽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