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하기 용이할 것, 오래 쓸 수 있도록 쓰임새가 있을 것, 음식을 빛내주면서 그릇에 작가의 철학이 담겨 있을 것. 그가 꼽는 좋은 그릇이 갖춰야 할 요소다.
흔히 30대를 인생의 전환기라 이른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의 의미를 깨달았을 법한 지긋한 어른도 아니니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말 그대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시기가 서른 즈음이기 때문일 터. 나잇값을 하기 위한 몸살을 몸으로 마음으로 겪어내며 청춘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때인지라 새로운 삶을 위한 여정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이에게서는 빛이 나게 마련이다. 특히 서른셋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은 나이고, 알렉산더 대왕이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죽은 나이가 아닌가. 청춘의 정점이 있다면 바로 서른셋일 테니, 이 나이를 뜨겁게 살고 있는 이에게서는 영근 청춘의 기운이 느껴진다. 다이닝 오브제의 맹난영 대표가 그렇다. 그는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청춘이다. 순수 미술 전공자로 대기업 사업 전략팀의 마케터로 일한 특이한 이력을 살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오늘을 행복하게 산다. 도예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공예 살림의 기획자로,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좋은 그릇에 맛깔스럽게 담으며 밥상을 정갈하게 차리는 방법까지 일일이 제안하는 살림 스타일리스트로, 그릇 가게를 꾸려가는 수장으로, 한 가정의 안주인으로… . 혼자 여러 사람 몫을 거침없이 해내며 새벽 출퇴근을 매일 반복하면서도 그가 인터뷰 내내 말미에 입버릇처럼 붙인 말이 “너무 재밌다”이니, 이 팔팔한 생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주방에 있는 그릇장은 일상 상차림에 주로 사용하는 백자와 흑유로 가득하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
분식집 물만 셀프가 아니다. 나이라는 옷을 한 살씩 덧입을수록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것도 셀프다. 뭔가에 마음이 동해야 사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터. 최근 맹난영 대표가 한 가장 재밌는 일은 온라인 그릇 가게 다이닝 오브제의 오프라인 매장을 논현동에 오픈하며 활동 반경을 넓힌 것이다. “타고나길 한번 재미를 느끼면 파고드는 기질이에요. 결혼하고 살림하면서 삼시 세끼 밥상 차리는 일을 소꿉놀이처럼 즐겼는데, 지금은 예쁘게 살림하는 것을 일로 즐기고 있는 셈이죠. 도예가의 그릇을 소개하고, 쓰임새를 알려주는 일이 너무 재밌어요.”
온라인에서도 잘나가던 그가 다이닝 오브제를 오프라인으로도 오픈한 이유는 고객이 직접 도예가의 그릇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00% 수작업으로 빚는 도자기의 특성상 형태며 색상 등이 다를 수 있고, 태토(바탕흙)나 유약 성분에 따라 표면의 질감과 무늬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에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 “소비자에게는 단순히 그릇이겠지만, 작가에게는 자식 같은 존재가 도자기 그릇이에요. 손맛으로 빚어낸 도자기의 개성과 멋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데 온라인은 아무래도 제약이 있지요. 온라인이 쓰임새와 스타일링까지 알려 주는 소통의 공간이라면, 오프라인은 도자기 그릇의 멋을 직접 느껴보는 자리로 전시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에요.”
1 요리는 물론 테이블 세팅 솜씨도 남다른 그에게 요리책은 스승이나 다름없다. 푸드 스타일링은 셰프의 요리책을 보며 감각을 키웠다고.
2 살림을 소꿉놀이처럼 즐기는 그에게 조리 도구는 유용한 장난감이다.
도예가의 그릇이야말로 대중 명품 “비싼 돈을 주고 샀다고 그릇장에만 모셔둔다면 아무리 좋은 그릇도 쓸모없는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릇은 음식을 담았을 때 빛을 발하고 가치를 더하는 것 아닌가요?” 공예품이 익숙지 않은 이라면 생활에서 가장 가깝게 쓰는 살림살이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가격 또한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회사명도 ‘대중 명품’이라는 뜻의 매스티지 컬렉션으로 지은 것. 공예품 중에서도 히스토리와 콘셉트가 명확하고, 대중적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접할수 있는 것이 도자기 그릇이니 그가 도예가의 그릇을 선보이는 이유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오리지낼리티이자 공예품이 도자기 그릇이에요. 평소에도 웹 서핑을 즐기는데, 온라인에서도 여러 도예가의 그릇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한식 테이블을 돋보이게 만들어줄 알토란 같은 도자기 그릇을 선별해 소개할 공간을 꾸리기로 마음먹었죠.”
맹난영식 행동력과 특유의 친화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찾아간 도예가는 그가 평소에도 자주 쓰는 흑유 도자기를 만드는 강유단 작가였는데, 처음에는 온라인 사업이라는 소리에 혀를 내둘렀단다. 하지만 작가의 의사를 존중하고, 도자기를 직접 사용해보고 의견도 제시하는 등 그의 적극성에 성공적인 결과를 얻자, 그다음부터는 일이 술술 풀렸다. 손수 요리해서 스타일링하고, 사진 촬영까지 직접 하는 것도 모두 최고 파트너인 작가들의 자식 같은 도자기를 빛내주기 위해서다.
1 거실은 그가 아끼는 공예 살림살이를 전시하는 갤러리이자 다이닝 리빙룸이며, 스튜디오다. 모던한 장식장에 올린 도자기에서 다양한 도자기를 섭렵하는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2 수준급의 요리 솜씨는 어려서부터 밥상을 맛깔스럽게 차려준 친정엄마에게 물려 받은 것.
3 다이닝 오브제의 온라인 숍. 한식과 양식에 두루 어울리는 모던한 도자기가 많다. 논현동에 오픈한 오프라인 매장은 <행복> 7월호에 새로 생긴 숍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도예가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쓰임새라고 하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는 거죠. 그릇은 사용하기 나름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편안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었어요. 작가의 그릇을 빛내고 소비자를 배려한 것이긴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해요.”
그의 이러한 노력은 사장될 뻔한 도자기 그릇을 히트 아이템으로 변모시키기도 한다. ‘수육 접시’가 그러한데, 작가가 오래전에 야심 차게 선보였으나 재고로만 쌓아둔 둥글넓적한 흑유 접시에 수육을 올려 쓰임을 제안한 것이 그대로 이름이 된 경우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작가의 마음을 움직여 여러 작가를 소개받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몇몇 작가는 그를 소속사 사장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집에서 살림하던 솜씨를 살려 사람들이 공예품을 일상생활에 들이는 데 일조하고, 훌륭한 공예품을 만드는 작가가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온전히 소개하는 일은 그의 바람이자 사명감이다.
1 집밥은 종지를 반찬 그릇으로 활용해 1인 상차림으로 정갈하게 연출한다. 흑유 밥그릇과 국그릇, 종지는 강유단 작가 작품. 연한 청빛이 도는 백자 사각 볼과 직사각 접시는 이은범 작가 작품. 물고기 모양 수저받침은 라기환 작가 작품. 백자 저그와 물잔은 지인식 작가 작품으로 물잔은 술잔으로도 사용한다. 대나무 매트는 자연스럽고 정감 어린 느낌을 더하기 위한 것으로, 별다른 장식 없이도 운치 있는 밥상을 연출할 때 제격이다.
2 손님 초대 요리로 인기인 된장 소스 수육과 깻잎절임. 강유단 작가가 징을 모티프로 만든 흑유 접시는 그가 수육을 올려 스타일링하면서 이름도 수육 접시가 되었다. 기하학 형태의 백자 사각 접시는 이창화 작가 작품이다.
살림이 일이요, 살림꾼은 직업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인정과 지지라고 했던가. 맹난영 대표가 삶과 살림을 별개로 여기지 않고, 살림을 놀이처럼 즐기며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은 남편의 외조가 있기에 가능하다.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이 최고의 조력자인 셈. 음식은커녕 푸드 스타일링을 따로 배운 적이 없건만 수준급의 실력도 입 짧은 남편을 위한 노력이 쌓인 결과라니 천생연분이 따로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일이 전 참 행복해요. 맛있게 먹고 칭찬해주니까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하게 되죠. 좋아서 시작한 살림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일 수도 있구나 깨달았죠.”
반찬은 종지에 조금씩 담아 아기자기하게 1인 상차림을 하고, 합을 이용해 집에서도 나들이하는 기분을 내며, 레스토랑 음식과 담음새도 그대로 따라하고…. 밥상에서만큼은 최고의 호사를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도자기 그릇을 활용해 믹스 매치하고, 정성껏 요리해 담다 보니 실력도 늘었고, 좋은 도자기를 고르는 안목도 자연스레 갖춰졌다. 이 모든 것이 한식 테이블을 위한 공예품을 선보이는 다이닝 오브제의 자양분이 된 것.
타고난 감각이 뛰어나고 한식당을 운영하던 친정엄마의 맛깔난 음식을 보고 먹고 자란 탓도 있지만, 그는 요리책만 2백~3백 권 소장했을 정도로 요리와 푸드 스타일링 실력을 쌓기 위해 잡지와 다양한 분야의 요리 단행본을 두루 섭렵한 노력파다. “이 모든 것이 소꿉놀이의 연장선이에요. 장난감이 의미 있는 그릇으로 바뀐 것뿐이고, 더 재밌게 즐기려고 공부하는 거죠.” 그의 말마따나 음식은 먹고 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이고 삶 자체다. 살림도 놀이처럼 즐기는 그와 같이 일상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다면 주방도 신명 나는 놀이동산이 되지 않을까.
1 합은 디저트 용기뿐 아니라 반찬 용기로도 사용하는데, 빤한 요리도 합에 담아내면 나들이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 그릇의 쓰임새는 사용하는 이의 몫이니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면 살림하는 재미가 배가된다. 귀한 옛 그릇과 꽃을 그린 기명절지도를 뚜껑에 그린 3단 백자 합은 이정용 작가 작품. 백자 수저받침은 이창화 작가 작품. 동그란 백자 물잔은 라기환 작가 작품.
2 별미로 즐기는 비프 카레라이스. 밥을 스쿠프로 떠 올리기만 해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쓰임새가 많은 흑유 다용도 볼은 강유단 작가 작품. 매트로 쓴 아카시아나무 보드는 디저트나 치즈 등을 올릴 때도 유용하다.
- 다이닝 오브제 맹난영 대표 의미 있는 소꿉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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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테이블을 위한 도예가의 작품과 테이블웨어를 소개하는 ‘다이닝 오브제’는 그저 그렇고 그런 그릇 가게가 아니다. 빼어난 안목과 열정으로 ‘요리하는 재미, 담아내는 즐거움, 차려 먹는 행복’을 알려 주는 공예 살림의 기획자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맹난영 대표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일터가 놀이동산이요, 일은 소꿉놀이의 연장선이라 말하는 그의 공예 살림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