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집과 작은 집을 이어주는 마당 덱에 세 가족이 모였다. 왼쪽은 언니 박지영 씨와 남편 민준식 씨, 쌍둥이 남매 병현ㆍ시현, 그리고 친정어머니 김영자 씨. 오른쪽은 동생 박지은 씨와 남편 이재철 씨, 여섯 살 하준. 바비큐를 좋아하는 덕에 덱에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파티를 연다.
마룻바닥과 블랙&화이트로 꾸민 언니 박지영 씨네 1층 거실. 중층을 만든 덕에 천고가 높아 탁 트인 느낌을 준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장 큰 요인일 테지만, 요즘은 아이를 외가에 맡기는 등 비교적 ‘친정(처가)’과 가까워지는 추세다. 오죽하면 “출가외인은 딸이 아닌 아들이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더시 스템랩의 김찬중 소장이 최근 작업한 집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여실히 반영한다. 결혼한 자매가 한집에 살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본디 같은 아파트에 살았어요. 저희가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네는 근처에 살았지요. 동생네 부부가 일찍 출근을 하다 보니 부모님이 조카를 데리러 왔다 갔다 하시는 것이 참 불편하더라고요.”
언니 박지영 씨와 동생 박지은 씨는 ‘같이’ 사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러고선 곧 용인 기흥구에 429.75㎡ (130평)의 땅을 공동으로 구입하고, 함께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설계하는 데만 꼭 1년이 걸렸다는 김찬중 소장은 자매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날이었어요. 자매가 저희 사무실을 찾아왔는데, ‘집이 복잡하다’는 말로 시작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흥미로웠습니다. 자매 둘이 함께 사는데, 자매를 중심으로 나머지 식구들도 모여 산다는 거예요. 문득 ‘모계사회’ 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예컨대 고려시대를 생각하면 데릴사위제 같은 거죠. 전문 직종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두 자매는 집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그전에는 아이 봐주는 사람을 각각 따로 고용해 직장과 가정을 유지했다면, 이제는 가장 합리적 방법을 찾은 것이 아닐까요?”
대가족인 데다 워낙 손님을 초대하는 일을 좋아해 지하 창고는 게스트룸으로 꾸몄다. 간단하게 개수대와 작업대로 미니 주방을 만들고, 앞쪽에 좌식 형태의 간이 소파를 두었다. 소파 테이블은 남편 민준식 씨가 자투리 나뭇조각을 모아 취미 삼아 만든 것.
큰 집의 3층에는 가족실 겸 작업실을 꾸몄다. 커피를 좋아하는 부부를 위해 개수대와 커피 머신을 갖춘 책상.
친정 부모님까지 모신, 그야말로 3대가 사는 집의 설계 조건 중 하나는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 공동생활을 하면서도 프라이빗한 라이프스타일은 유지하길 원한다는 점에서 전통 모계사회와는 차이를 보인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일이 ‘당연’하면서도 ‘필요’한 일이 된 셈이다. 가까이 살고는 싶지만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것은 피하고 싶었던 두 자매의 집은 하나의 입구로 들어와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형태로, 지하나 발코니는 서로 연결돼 있으니 공동생활과 사생활을 모두 만족시킨다.
3층 구조의 집은 중간에 있는 ‘구름다리’를 중심으로 두 갈래로 나뉜다. 큰 집은 부모님을 모시며 한창 사춘기인 쌍둥이 남매가 살고 있는 언니네 집으로 198.34 ㎡(약 60 평), 작은 집은 여섯 살 된 하준이가 살고 있는 동생네 집으로 132.23㎡ (약 40평)다. 재미있는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 설계를 두 번이나 변경한 것.
“처음에 저희가 땅을 샀을 때만 해도 앞쪽 건물이 무리 지어 들어설 줄은 몰랐어요. 처음 설계에서는 마당을 중심으로 작은 집이 반대쪽에 자리했거든요. 기역자가 니은 자가 된 거예요”라는 언니 박지영 씨는 앞쪽 건물이 마당을 내려다보는 구조를 막기 위해 설계를 변경했다고 했다. 그리고 설계가 1년 남짓 걸리다 보니 자녀들이 사춘기가 되어 방 배치를 수정하기 위해 또 한 번의 설계 변경을 감행했다. 이 또한 ‘사람’이 사는 집이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아이들이 중학생이다 보니 방을 꾸밀 때에도 아이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 유난히 각진 형태의 아들 방에는 2층 침대를 두고, 오른편 벽장은 히노키나무로 마감한 것이 눈에 띈다.
공간 설계에 심리학을 적용하다
김찬중 소장은 3대가 모여 사는 이 집을 하나의 ‘마을’처럼 여겼다. 아파트에서 오래 살던 건축주의 상황을 고려하고, 자매가 고민하던 사생활 부분에 대한 심리적 보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집에 사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도록 짚어낸 건축가의 디테일은 바로 벽이다. 사람이 공간 속에서 벽 두께를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창문이다. 대개 창문의 형태대로 구멍을 내 창틀을 끼우는 식인데, 이 집은 창문을 감싸는 주변 벽까지 모두 창문 쪽으로 말려 들어간 듯 두툼하게 처리했다. 집의 벽 두께가 굉장히 두껍다고 느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창문 있는 부분은 모두 곡선으로 마감했다. “외부에서 바라보면 이 집이 견고한 성처럼 느껴질 거예요. 두껍고 단단한 느낌인데, 이러한 디테일이 사람을 심리적으로 강화하고 안정감을 주지요”라는 것이 김찬중 소장의 설명이다.
마당과 이어지는 1층 주방 공간. 중문을 활용해 지저분한 살림살이는 가리고, 때에 따라 여닫으며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두 번째는 ‘차경’ 효과를 노린 것이다. 김 소장은 대부분의 창을 시원하게 내지 않고 적당히 걸리도록 설계했다. 이는 한국 전통 건축의 개념인데, 파노라마처럼 통창을 열어 풍경을 ‘정복’하는 서양식 사고방식과 달리 우리는 작은 구멍 하나를 뚫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풍경을 ‘빌려온다’는 개념을 선호하는 성향이라는 것. 이렇게 하면 마치 프레임을 통해 보듯 시선이 제한되기 때문에 바깥 풍경이 넘쳐흐르거나 지루하지 않다.
10년 넘게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운영해온 언니 박지영 씨는 김찬중 소장의 건축 설계에 맞춰 실내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같은 디자인 관련 일을 하는 이답게 김 소장의 설계는 존중하고, 건축물의 분위기를 최대한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집 안을 디자인했다.
큰 집에 비해 한결 아늑한 구조의 작은 집. 오픈형 주방에 4인용 식탁을 두고 거실과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소파나 거실 바닥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면 주방 옆으로 난 창문을 통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데, 바깥 풍경을 ‘빌려오는’ 느낌을 강조하고자 창문 프레임을 두껍게 설계했다. 김찬중 소장이 말하는 차경 효과를 노린 셈이다.
큰 집과 마찬가지로 가족실로 꾸민 작은 집의 3층 모습. 기자인 엄마와 어린 아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개방형 구조의 큰 집, 독립적 구조의 작은 집
큰 집과 작은 집은 구조부터 완전히 다르다. 큰 집은 좁고 긴 형태로 계단이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형태이기에 방 배치가 비교적 개방적인 동양식 구조에 가깝다. 반면 작은 집은 층마다 독립성을 강조해 프라이빗한 느낌이 강하다. 박지영 씨가 디자인한 큰 집의 기본 콘셉트는 블랙&화이트 그리고 심플&모던. 넓은 집은 아니지만 나무 마루에 흰색으로 벽을 도장하니 덩어리가 커 보여 문이나 핸드레일, 중문이나 소품 등에 검은색을 사용해 포인트를 주었다. 2층에는 부부의 침실과 딸 방 그리고 작은 집과 이어지는 욕실이 있고, 3층에는 가족실 겸 작업실을 마련했다. 3층 가족실은 1층 거실보다 탁 트인 천고와 덱 덕분에 한층 쾌적한 분위기다.
작은 집 또한 나무 마루와 흰색 도장으로 벽을 마감했지만, 원형 계단에도 마루를 깔고 2층의 침실 벽면에도 히노키나무로 마감해 큰 집보다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다. 3층 역시 큰 집과 마찬가지로 가족실 겸 작업실을 마련하고, 여섯 살 아들을 위해 작은 장난감 공간도 선물했다. 언니 박지영 씨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지하. 게스트룸 콘셉트로 완성한 이 공간은 남편이 자투리 나무에 프레임을 만들어 끼운 소파 테이블과 이전 집에서 사용하던 테이블, 인테리어 현장에서 쓰고 남은 각기 다른 조명등 등을 모아 만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자연스러움이 조화롭게 묻어난다.
1 동생 박지은 씨네 침실. 여섯 살 하준이와 늘 함께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침대 두 개를 붙였다. 독특한 것은 침대 헤드보드 벽면을 히노키나무로 마감한 것. 침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삼림욕 효과를 기대하며 디자인했다.
2 큰 집의 계단 구조가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형태라면 작은 집은 계단이 둥글게 말리는 듯한 형태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라 안전을 고려해 계단 역시 마루로 마감했다.
두 가족 모두 캠핑과 바비큐를 즐기는 탓에 매주 주말이면 마당에 모여 가족 저녁 식사를 한다는 박지영ㆍ박지은 자매와 가족. 동생 박지은 씨는 “아들 하준이는 큰 집에서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요. 이렇게 함께 살다 보니 사촌과 형제의 구분이 없더라고요. 외동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누나도 있고 형도 있다고 말해요” 라며 다 함께 사는 장점 가운데 가장 좋은 점이라고 했다. 자매지만 결국 ‘가족’ 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라는 것이다.
김찬중 소장은 땅에 본능적으로 집착을 보이던 과거와 달리, 삶을 존중하는 경향이 훨씬 강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자매가 함께 사는 구조는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의견을 내비쳤다. 일반적으로도 둘이서 집을 같이 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자매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까지 했다면 낭만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더더욱 현실적인 일이다. 여럿이 함께 살다 보면 당연히 부딪치는 일도, 어그러지는 일도 많을 테지만, 50 대 50으로 내 마음과 네 마음을 나누기보다는 한쪽을 전적으로 밀어주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를 낳을 거라는 조언을 덧붙인다.
마당 옆쪽으로 난 계단을 이용해 지하 차고와 게스트룸으로 내려간다.
건축가 김찬중 소장은 고려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스위스와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경희대 건축대학원 설계 전공 교수이자 건축사무소 더시스템랩의 대표다.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최근 한옥 리조트 ‘구름에’를 설계해 <행복>에 소개되기도 했다. 주거 공간은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비교적 예민하고 세심하며,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그 모습에 적합한 것을 고려해야 하기에 늘 초심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그는 주거 공간 작업을 통해 공간 속에 사는 사람의 심리까지 짚어내며 스스로 놓친 감성을 회복한다.
설계 더시스템랩(02-3444-9534) 디자인 이현디자인그룹(02-540-8883)
- 모녀 3대가 사는 용인 타운하우스 자매의 집
-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조차 ‘신모계사회’라는 용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아닌, 여성을 중심으로 가정이 재편되는 것. 이러한 시대를 입증이라도 하듯, 용인에서 만난 두 자매는 집 한 채에 세 가족의 일상을 합리적 방법으로 담았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