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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옥주현의 그릇 이야기 온전히 나를 찾는 시간
어떤 목적 없이 그저 그러하고 싶은 마음. 직관은 마음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무대와 하나 된 삶을 사는 뮤지컬 배우 옥주현이 직관에 따라 일상에서 자신을 돌보는 시간은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순간이다. 오롯이 시간을 즐기며 삶을 한 뼘 성숙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그의 취미 생활을 들여다본다.

손에 꼭 맞아 편안하고, 일상에서 손이 자주 가야 좋은 그릇이라는 옥주현. 주로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그릇답게 그가 빚은 그릇에는 유연한 자연미가 서려 있다. 
“흙을 만지고 그릇 빚는 일이 좋아요”
생각해보면 옥주현은 늘 자기 관리에 철저한 배우다. 그의 일상은 공연과 맞닿아 있어 무대를 떠나서도 필라테스와 발레로 몸의 리듬을 관리한다. 공연에 맞춘, 공연을 위한, 공연에 의한 생활 패턴으로 무대에서는 맡은 배역으로 살기 때문에 취미 생활만큼은 홀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오롯이 즐긴다. 분장을 지우고 말간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배우가 아닌 ‘인간 옥주현’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공연은 여럿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뤄야 하는 일이기에 일상에서는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점점 더 갈망하는 것 같아요. 함께 색깔과 모양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크지만, 부담과 책임감도 그에 못지않거든요. 도예는 잡념을 없애주고, 시간을 찬찬히 즐기게 해주어 힐링이 돼요. 일부러 고민하고 찾은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이 갔어요.”

사발 모양의 볼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릇으로 솔리튜드 시리즈. 다완처럼 위는 넓고 밑은 좁은 모양으로 음식을 모아주어 식사할 때도 편하며, 쓰임새가 다양한 것도 매력이다. 
유대교 잠언 중에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주의 깊게 귀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마음이 보내는 직관의 메시지를 무시하면 결코 꿈과 행복을 이룰 수 없으니, 흙을 만지며 그릇을 빚는 시간은 그가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이다. 그가 목표지점 없이 발길 닿는 대로 한강을 따라 쭈욱 걸어갔다 되돌아오는 것을 휴식으로 여기는 것처럼.

“불현듯 흙내가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오늘 뭘 해야지’ 작정하고 공방을 찾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가 더 많아요. 그냥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날의 심경에 따라 주무르고 모양을 내죠. 물레 돌리는 속도로 지금 내 상태가 이렇구나, 느끼기도 하고요.” 흙과 먹을 경험해본 사람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더니 흙을 만지며 그릇을 빚는 과정은 결국 흙과 대화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사람이 일방적으로 흙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흙과 사람이 서로 존중하며 소통해야 비로소 그릇 빚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흙을 다루며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인간성의 수련이요, 엄청난 노동인 것. 그렇다보니 도예를 배우면서 생활은 물론 공연에도 도움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바른 자세와 호흡으로 흙과 대화하며 얻은 배움이리라.

샐러드와 파스타는 손님을 초대 했을 때에도 자주 선보이는 메뉴. 그의 요리 솜씨도 그릇 빚는 실력만큼 수준급이다. 
“물레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물레를 돌리고 10kg 가까이 되는 흙을 만지다 보면 몸을 물 흐르듯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아요. 호흡 조절을 잘해야 가능하거든요. 도자기를 빚을 때도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멈췄다가 내뱉었다 하며 몸의 균형을 잘 맞춰나가야 그릇 또한 바른 모양새를 갖추고요. 도예를 배우면서 다지게 된 호흡 조절과 올바른 자세가 공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에요. ”

뮤지컬 배우로 활발히 활동하는 옥주현은 취미도 공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즐기는데, 흙을 만지고 도자기 그릇을 빚는 시간은 그에게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휴식 같은 시간이다. 
혼자라도 행복한 식사를 위해
도예를 배우기 시작한 지는 어언 4년째. 일주일에 두 번 도예 수업을 받을 때도 한 시간 일찍 아카데미에 도착해 따로 연습할 만큼 그를 사로잡은 도예의 매력은 무얼까. 계기는 역시 음식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다. 취미로 즐기던 요리도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 과정을 수료하며 수준급의 솜씨를 인정받은 그가 아닌가. “전 음식을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대단히 좋아해요. 그렇다 보니 그릇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더군요. 음식을 만드는 기쁨은 그릇에 담아내는 순간 완성되고, 요리의 완성도도 어디에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그의 말마따나 그릇도 곧 음식인지라 나와 잘 맞는 그릇 하나가 우리 삶 속에서 생활 태도와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도예를 가리켜 일상 속의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일 터. 그래서 좋은 그릇은 일상에서 쓰면서 미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손에 꼭 맞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릇, 모시고 보관만 하는 작품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몸에 부비며 쓰는 그릇, 그가 생각하는 좋은 그릇의 정의다.

다양한 흙을 사용하지만 검은 빛깔이 도는 블랙 마운틴을 유난히 좋아하는 그가 풀빛, 하늘빛 등 자연스러운 색감의 유약을 칠해 만든 그릇들. 
“그릇을 사러 갈 때도 어쩐지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그릇이 손짓하는 순간이 있어요. 말로 표현할 순 없지만 그냥 마음이 끌려서 손이 가죠. 그런 그릇은 생활에서도 애착이 가요. 제 경우엔 손으로 들기 편한 사발 형태의 볼이 그래요.” 그의 볼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서 뭘 만들지 정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빚으면 늘 볼을 빚는데, 면기보다 작고 일반 국그릇보다 큰 사이즈로 오목한 형태가 특징이다. 이름하여 ‘즐거운 고독’을 의미하는 솔리튜드solitude다. 홀로 있다고 반드시 외로운 건 아니듯, 혼자 하는 식사도 외로움(loneliness)으로 점철된 궁상을 확인하는 의식은 아니다. 외려 고독을 즐기며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건강한 식생활이라는 평소 그의 가치관과 식생활을 투영한 그릇이다. 그가 혼자 식사할 때도 볼 하나가 주는 행복감이 적잖아 자주 만들다 보니 어느덧 일가를 이뤄 시리즈로 이름까지 명명하게 된 것.

그릇 테두리를 초승달 문양으로 만든 달 시리즈.
“원체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집 안도 예쁘고 꾸미고 깔끔하게 정리하기보다는 시쳇말로 막 늘어놓고 살아요. 하지만 음식만큼은 아무 데나 담아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싶지 않아요. 먹는 즐거움은 생활에서 가장 크고 건너뛰면 안 되는 부분이니까, 그릇 하나에 밥과 반찬을 모두 담아 먹더라도 식사가 편안하고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릇이 중요하고, 볼을 특히 좋아해 자주 만들고 종종 지인에게 선물도 하죠. 자기 자신을 대접하라는 의미에서요.” 물론 볼 이외에 플레이트도 다양하게 만드는데, 같은 종류라 하더라도 저마다 개성이 넘친다.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고, 유약의 흐름과 흙 반죽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 손을 끼워 들기 편하게 한 것 등 그가 빚은 도자기를 찬찬히 살펴보면 뛰어난 손재주는 물론 정서까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릇 바닥면의 ‘玉옥’ 자는 그의 서명. 
“저는 풀포기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해요. 영감도 주로 자연에서 얻죠. 가능하면 흙의 고유한 질감을 살리고, 유약도 자연의 색감을 입히려 해요.” 그래서 솔리튜드 시리즈의 볼에 사용한 흙이나 유약도 풀빛과 하늘빛이 대부분이고, 달 시리즈의 그릇 테두리는 초승달을 모티프로 한 것. 그가 빚은 도자기에 유현한 기운이 서린 것은 자연을 닮고자 하는 마음의 공덕 때문이다.

바른 자세와 호흡 조절을 잘해야 몸을 물 흐르듯 움직이며 그릇을 제대로 빚을 수 있어 공연에도 도움이 된다.
나를 찾는 취미 생활
“제가 만든 도자기 그릇에 대단한 의미나 이렇다 할 특징은 딱히 없어요. 좋은 결과물을 얻으면 행복하지만, 전문 도예가가 아니니 무대에 오를 때처럼 성과에 큰 부담감을 갖지도 않아요. 다만 정형화된 모양보다는 그릇마다 개성을 입히려고 노력해요. 그걸 사람들과 나누는 의미가 또 큰 즐거움을 주거든요.”

도예에 이르는 길이 그러했듯 형태도 마음이 동하는 대로 직관에 따라 만드는 것. 자로 잰 듯 그릇을 똑같이 빚는 숙련의 경지에 오르려면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만, 그의 도예 실력은 결과물만 언뜻 봐도 취미로만 즐기는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다. 실제로 소속사 ‘포트럭’의 모회사인 프레인글로벌에서 운영하는 광화문의 카페 ‘퓨어아레나’에서는 일부 메뉴에 그의 도예 작품을 사용하는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래서 적은 수량이나마 온라인이나 팝업 스토어에서 선보일 계획도 있다.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날의 심경에 따라 그가 빚은 그릇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 
요즘은 뮤지컬 <엘리자벳>을 한창 연습 중인데, 기회가 된다면 정성껏 만들어서 모아둔 그릇을 함께 나누는 자리도 마련하고 싶다. 직업으로 삼는 일부터 재미로 즐기는 취미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근성은 어쩌면 그의 또 다른 재능인지도 모른다.

“저는 집중하는 시간을 좋아해요. 하지만 일과 달리 취미로 즐길 때는 시간을 투자한다는 개념도, 어떤 목적 의식도 없이 시작해요. 심지어 건강에 관해서도 말이에요. 목적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안겨주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그냥 마음 가는 것이라면 뭐가 됐든 직접 시도해봐요. 그래야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거든요. 취미를 찾는 것은 나를 찾고 깨닫는 시간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건강한 것 아닐까요.자신과 맞는 취미를 찾으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다 보면 건강은 물론 일과 생활에도 긍정적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옥주현에게 도예는 재주를 살리는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니다. 삶의 치유제요, 그를 점점 더 성숙하게 만드는 자아 성찰의 도구다. 그리고 그가 점점 더 유연하고 유현해지는 이유다.

손재주가 좋은 옥주현은 취미 생활이 잡념을 없애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요, 삶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재주를 재주답게 만드는 덕목은 직관, 노력, 정성임을 그가 빚은 도자기에서 다시금 되새긴다.

메이크업 손주희(정샘물 인스피레이션 이스트 원장, 02-518-8100) 패션 스타일링 황혜정 장소 협조 정샘물 인스피레이션 이스트, 이도아카데미 강남점(070-4942-1338)

글 신민주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