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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 안정애 씨 댁 집, 모드리안의 그림이 되다
평창동에 새로운 랜드 마크가 생겼다. 앞으로 이 집은 ‘그 빨간 집’ 또는 ‘그 알록달록한 집’으로 불리며 동네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이정표 노릇을 할지 모른다. 과감한 원색과 분할된 면이 마치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떠오르게 하는데, 이 모든 컬러 매치와 디자인은 집의 안주인 안정애 씨 손끝에서 완성되었다.

1 과감한 원색의 외관을 자랑하는 집. 어느 방향에서 보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21 평창동 안정애 씨 댁그림이 되다몬드리안의집,
2 철판 마감에 파란 페인트칠을 한 거실 모습. 이를 배경으로 뱅앤올룹슨 스피커가 놓여 있다. TV가 없는 이 집의 거실에는 항상 음악이 흐른다. 페인트는 친환경 제품을 쓴 덕분인지 칠할 때 냄새도 덜했고, 마르는 동안에도 새 집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3 선명한 빨간 페인트칠 벽과 노란 타일 마감 벽으로 현관에서부터 강한 보색 대비를 보여준다. 

20세기 추상화의 선구자 몬드리안이 캔버스가 아니라 집 위에 그림을 그렸다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평창동을 오갈 때마다 과감한 원색 대비로 시선을 끌던 이 집에 <행복>이 초대를 받았다. 아마도 이 기사를 보면서 ‘그 집이 이 집이었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을 게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용기 내지 못할 파격적인 형태에 튀는 컬러. 이처럼 개성과 색감 넘치는 집의 주인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디자인을 시도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누구일까? “특별히 도움받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없어요. 제가 직접 구상한 것들이랍니다. 마감재 고르는 것부터 페인트 색깔 정하는 것까지 모두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하나씩 완성한 것이죠.” 이 집의 안주인인 안정애 씨의 설명. 마치 남미의 브라질에라도 온 듯한 현란한 보색 대비를 자랑하는 이 집이 그저 마음가는 대로 칠하고 꾸며서 완성된 것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1 오렌지와 블루 컬러, 뱅앤올룹슨 오디오와 전통 이층장이 유쾌한 대조를 이루는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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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핑크 컬러와 반짝이는 샹들리에, 파티션에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액세서리가 화려한 딸아이 방. 창문에 커튼처럼 걸어둔 조각보는 안정애 씨가 직접 만든 것이다.
3,4 딸아이 방의 계단식 수납장을 딛고 올라가면 뾰족지붕 다락이 나타난다. 안정애 씨는 에어컨 하나를 선택할 때도 탁월한 컬러 감각을 발휘한 듯. 핑크빛 벽에 걸린 보랏빛이 감도는 에어컨, 그 아래에 놓인 진홍색 곰인형이 유쾌한 컬러 매치를 보여준다.

안정애 씨 가족은 지난해 6월부터 이 집으로 이사 와 살고 있다. 몇 년간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선택한 단독주택. 지하층 딸린 낡은 2층 주택이었던 이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평소 관심과 열정은 많았으나 아파트라는 한계 때문에 펼칠 수 없었던 인테리어 ‘솜씨’를 원 없이 부려보았다. 그중 집 안팎을 장식한 화려한 원색은 그가 가장 바라왔던 오랜 숙원사업. 줄곧 꿈꿔왔던 원색의 그림은 철판 ‘캔버스’ 위에 그려졌다. 안정애 씨는 기존 집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그 위에 철판을 덧대고 시멘트로 마감해 반듯하게 정비했다. 본격적인 그림을 위한 깨끗한 바탕을 만든 셈. 여기에 평소 원색을 좋아하는 그의 기호를 십분 살려 선명한 보색 대비를 이루도록 페인트를 칠했다. 그저 빨간 페인트, 파란 페인트를 칠한 것이 아니라, 원색 컬러 중에서도 원하는 색감을 얻기 위해 직접 페인트 가게에서 조색을 받아와 완성한 것이다.

몬드리안 색면 추상화 같은 빨갛고 파란 외부, 브라질 거리에서 옮겨온 듯 강렬한 오렌지 컬러의 1층 갤러리. 그리고 선명한 빨간 벽이 인상적인 현관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가면 2층에는 파란색과 오렌지색이 대비를 이루는 거실, 입맛 돋우는 노란색 주방이 나타난다. 노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만나는 3층은 가족들의 온전한 프라이빗 공간이다. 핫핑크 컬러의 딸아이 방과 차분한 푸른빛의 아들 방. 공간마다, 각 면마다 달라지는 컬러는 이 집을 구경하는 가장 큰 재미다. 눈에 거슬릴 법한 파이프도 오히려 벽면과 대비되는 보색으로 단장해 이를 장식으로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명쾌하고도 시끌벅적한 색의 향연. 그러나 과감한 원색이 멋있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사는 데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전혀요. 원래 원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집에 컬러가 있으니 생활이 훨씬 생기 있고 밝아지는 것 같아요.”

이집의 색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마감재다. 안정애 씨는 타공 철판, 무늬 철판, 시멘트 벽돌 등 보통 주택에 잘 쓰지 않는 거친 마감재를 적극 이용했다. 표면에 규칙적인 굴곡이나 패턴, 질감이 있는 이 소재들은 선명한 컬러를 입고 집을 한층 개성 있게 만든다. 그가 좋아하는 이런 소재들은 가격도 일반 주택용 마감재들보다 저렴한 편이라고. 이와 일관성을 갖도록 집 내부에도 시멘트 마감 면을 그대로 노출해 거친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거실 천장은 이처럼 완성했지만 2층 천장은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공사하는 분들이 깨끗하게 마감을 끝내놓았다. 어찌 되돌릴 방법이 없어 못내 아쉬웠다고.

1스위스 여행길에 구입한 고양이 인형.
2 주방 앞에 걸린 시계 역시 이 집의 외관을 닮았다.
3 터키 여행길에 산 고양이 등 알록달록하고 재미있는 소품이 많다.



1 선명한 빨간색이 돋보이는 마지스의 ‘체어 원’ 위로 안정애 씨가 찍은 딸의 사진이 걸려 있다. 노란 계단을 올라가면 가족들만의 온전한 프라이빗 공간인 3층이 나온다. 
2 파란 콜랜더colander로 만든 갤러리 화장실의 조명. 주방에서 흔히 보는 콜랜더지만 노란 벽을 배경으로 선명한 컬러 대비를 이루어 훌륭한 조명으로 변신했다. 
3 아들 방 창가에 스위스,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컬렉션한 소 인형들이 진열되어 있다. 아들이 소띠인지라 행운을 비는 의미로 모은 것들.
4,5, 터키 여행길에 산 고양이 등 알록달록하고 재미있는 소품이 많다.

아기자기한 컬렉션과 취향으로 개성을 더하다
처음에는 이 집의 강렬한 컬러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곳곳에 놓인 컬렉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빨간 선형 디자인이 돋보이는 마지스Magis의 ‘체어 원’ 등 유명 디자이너의 의자부터 갤러리 아트 숍에서 구한 예술적인 오브제들, 아기자기한 동물 인형, 눈사람 인형 그리고 옹기 같은 한국적인 소품과 그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전통 이층장까지. 알록달록한 집은 컬러풀한 가구, 소품과 선명한 색상 대비를 이루고, 반닫이장, 장독 같은 한국적인 오브제와도 의외의 조화를 이룬다. “귀여운 동물 조각이나 친근감 있는 인형을 좋아해요. 계단 창가에 놓인 고양이는 스위스 여행길에 구입한 것이고, 주방 입구 벽에 걸린 목각 물고기는 인테리어 박람회에서 찾은 것이지요. 아들 방 창에는 소 인형을 나란히 놓아두었는데, 아들이 소띠인지라 재미있는 소 인형이 보일 때마다 하나씩 컬렉션했지요.”

1 파란색 페인트로 마감한 아들 방. 군대 간 아들 대신 옆 방 딸아이의 소지품이 이 방으로 조금씩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2 김중만의 사진 작품이 걸린 2층 복도. 짙은 브라운에 선명한 레드가 가미된
사진의 색감이 공간과 하나인 것처럼 멋지게 어울린다.
3 화장실 앞에 마련된 간이 세면대. 노출 콘크리트 마감에 철판 선반 등 거친 마감재가 시선을 끈다. 옆으로 보이는 빨간 문은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으로 사다리꼴 형태를 띠고 있다.
4 철판에 간단한 처리로 독특한 곡선 패턴을 만들어 마감했다. 위쪽으로 애매하게 남는 자투리 공간에는 색색의 타일을 붙였더니 안성맞춤이다.
5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는 높이가 딱 맞는 키 큰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주인의 아기자기한 취향이 곳곳에 자리한 덕분일까. 이 집은 어디를 보아도 가득 찬 느낌이 든다. 컬러도 많고, 동양과 서양을 오가는 가구의 스타일도 다양하며, 자투리 선반에 어김없이 장식된 동물이나 인형 오브제도 셀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정신없고 어지럽다기보다는 생동감 있고 활기차다. 예사롭지 않은 조합의 결과. 이는 집주인 부부가 모두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필리핀에서 지냈던 몇 년간의 외국 생활과 여행의 경험 또한 배어난다. 사다리꼴 형태의 화장실 문, 문을 닫으면 감쪽같이 벽처럼 보이는 드레스 룸, 딸아이 방 계단식 수납장을 올라가면 나타나는 뾰족지붕 아래 다락 등 예측할 수 없는 자유로운 공간 구조도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안정애 씨의 다채로운 취향과 경험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방마다 아이들의 선명한 사진이 장식되어 있는데, 알고 보니 사진은 그의 오랜 취미. 그리고 그림에도 조예가 깊다.

그는 지금도 꾸준히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다. 때문에 별도로 분리된 이 집의 1층 공간을 보았을 때 갤러리를 떠올린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1층에 마련한 갤러리 ‘그안’은 이사 오면서 생긴 또 하나의 행복한 덤. 앞으로 이곳에서 안정애 씨의 그림은 물론 지인들, 교류하는 젊은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예정. 화가들은 부담 없이 전시할 수 있어 좋고, 관람객은 보다 편하게 그림을 감상하고 원한다면 구입까지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2층의 야외 데크에도 그림을 전시할 계획. 야외 데크는 집을 지을 때부터 이 같은 전시를 고려해 조형적으로 꾸며놓았다. 시멘트 벽돌과 철제 H빔으로 만든 프레임이 그 너머로 보이는 풍광을 그림처럼 담고 있다. 프레임 옆에는 멋스러운 나무들을 설치해놓았는데 그중 조각처럼 서 있는 하얀 나무는 안정애 씨가 어렵사리 완성한 것. 동네 원예상을 수소문해 죽은 나무를 구하고 직접 나무껍질을 벗겨 칠을 하는 수고 끝에 탄생했다. 집의 어느 구석 하나 그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있을까. 야심 차게 꾸민 데크는 야외 갤러리로서 그 임무를 훌륭히 완수할 듯하다.

1 2층의 야외 데크 공간. 시멘트 벽돌과 철제 H빔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바깥 풍경을 그림처럼 담고 있다.
2,3 1층에 마련한 갤러리 ‘그안’(02-379-9593).
이곳에서 앞으로 안정애 씨의 작품을 비롯한 여러 화가들의 전시를 꾸준히 이어갈 계획. 
4 파이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색을 칠해 색감을 강조했다.

그림에 이어 안정애 씨가 또 하나 애정을 갖는 취미는 가드닝. 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드디어 마음껏 화초를 심고 가꿀 수 있는 넓은 화단을 얻게 되었다. 때문에 그는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고 있다. 색색의 집에 소복이 눈이 쌓인 겨울 풍경도 장관일 테지만, 갖가지 꽃들이 만개할 따뜻한 봄에는 얼마나 많은 색들이 이 집을 채우게 될까. 화사한 5월에, 꼭 다시 한 번 이 집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손영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