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과 부엌 사이에 가벽을 세우니 자질구레한 주방용품과 식료품을 정리하는 수납공간이 생겼을 뿐 아니라 주방을 독립적으로 분리하는 효과까지 얻었다 .
부모와 함께 살던 79㎡(24평 형) 아파트를 둘만의 첫 보금자리로 개조하고 싶던 부부는 결혼식 준비는 차치하고라도 신혼집 인테리어와 가구에 대해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남편과 막역한 사이인 20년 지기 친구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에 신혼집 관련해서는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이 집은 친구들끼리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어요. 그래서 이미 집주인만큼이나 구조 구석구석을 꿰뚫고 있었고, 친구 성격과 취향, 취미, 직업 등을 잘 알고 있어 워밍업이 충분한 작업이었습니다” 라며 최혜리 디자이너는 결혼 전 친구와 맺었다는 ‘무언의 계약’에 대해 설명했다. 꼭 친구여서가 아니라, 인테리어와 스타일링에는 아내 보다 남편이 더 적극적이었다. 결혼 전에도 이케아 제품을 직접 주문해 들였을 만큼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남편이기에 집 전체에 남성적 감성이 흐르는 것이 영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남편은 면적이 적지만 안방과 서재는 물론 부부의 취미 공간과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은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집을 원했다. 반면 아내의 바람은 단 두 가지였다. 주방 동선이 효율적일 것 그리고 긴 책상을 놓을 수 있을 만큼 서재는 여유로운 분위기일 것.
1 작은 방에 꾸민 침실에는 붙박이장 자리에 화장대 공간을 만들었다. 위쪽에 선반을 만들어 수납 문제를 해결했다.
2 포인트 컬러는 집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현관에 집중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차단기 덮개를 제작하고 파이프와 볼 구로 조명등을 연결한 아이디어도 재미있다.
동선을 고려한 공간 분할
보통 20평대 이하의 집은 조금이라도 넓어 보이는 효과를 내기 위해 벽과 바닥을 밝은색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김정근ㆍ최유희 부부는 벽지는 화이트 컬러를 베이스로 하고 마루와 가구는 진한 월넛 톤으로 통일했다. 다소 좁아 보이는 단점이 있더라도 벽과 바닥에 색을 더해 공간에 깊이감을 주는 쪽을 택한 것이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거실 베란다를 확장하는 것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건물을 직접 받치고 있어 허물지 못한 내력벽에는 에어컨과 청소기 등을 수납할 수 있는 장을 짜 넣었더니 부족한 수납 문제를 한결 덜어내는 효과를 얻었다. 한편 거실과 연결된 주방은 아내의 바람대로 동선을 효율적으로 짜는 것에 주력했다. 식탁 대신 아일랜드 바를 설치해 아랫부분의 반은 수납장을, 반은 의자를 밀어 넣을 수 있도록 오픈했다. “아일랜드 바와 연결된 가벽은 현관과 이어져요. 현관에서 집 안에 들어설 때에는 조금 좁아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에 가벽을 세운 덕분에 냉장고와 그릇, 주방용품, 식료품 등을 보이지 않게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지요”라는 것이 아내의 설명.
덩치가 커 제자리를 못 찾고 우왕좌왕하던 김치냉장고는 과감히 주방을 벗어나 화장실 옆 벽에 넣었다. 아내는 면적이 좁은데도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자리, 효율적 동선까지 얻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일반집과 달리 서재를 큰 방에, 침실을 작은 방에 꾸민 점도 눈에 띈다. 처음에는 아내의 의견대로 서재에 넓은 책상을 들이고 한결 여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였지만, 실제로 완성하고 나니 책상과 붙박이장까지 설치했는데도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다.
1 아일랜드 바는 음식물과 물기에 강한 하이막스로 제작했고, 커피를 즐기는 부부가 쓰고 난 캡슐 커피를 아트워크처럼 진열할 수 있도록 가벽에 데커레이션 공간을 마련했다.
2 붙박이장이 있던 공간을 헐고 컬러 프레임을 설치해 개성 있는 화장대를 만들었다.
취향 반영한 디테일을 살릴 것
소파 맞은편에 설치한 TV와 홈 오디오 시스템은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이 유독 공들인 공간.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AV장을 따로 구입하지 않으면서도 근사한 홈 오디오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고, 복잡한 전기선ㆍ인터넷선ㆍ오디오 선은 일체 보이지 않게 가려달라는 것이 남편의 주문 사항이었다. 최혜리 디자이너는 부부와 상의한 끝에 AV장을 제작했다. 일반 MDF에 비해 견고하면서도 유기농 염료로 염색해 친환경적이어서 코팅제만 바르면 바로 사용 가능한 발크로맷을 이용했는데, 바닥 색과 같은 어두운 갈색 톤을 골라 제작했더니 집 안 분위기와 어색함 없이 잘 어우러졌다. 또 전기선을 정리할 수 있는 수납 박스도 함께 만들어 실용성도 놓치지 않았다. 한편 아일랜드 바와 맞닿는 가벽에는 커피를 좋아하는 부부의 취향을 반영했다. 먹고 난 커피 캡슐을 버리지 않고 진열할 수 있도록 홈을 판 것. 마치 하나의 아트워크처럼 집안 분위기를 잡아주어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블랙&화이트로 연출한 거실과 부엌이 딱딱해 보이지 않도록 현관의 신발장 문은 노란색으로, 바닥 타일은 바둑판무늬로 배치해 리듬감을 살렸다. 최혜리 디자이너는 “요즘 벽 한쪽에 포인트 색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자칫 촌스러워 보이거나 질리는 경우가 있으니 원색보다 채도가 한 단계 낮은 컬러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포인트 색 고르는 방법을 조언한다. 부부는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너무 작은 요소까지 까다롭게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실제로 생활하다 보니 그러한 작은 디테일이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리모델링을 앞둔 이들에게 감히 말한다. 작은 집이라 해서 없어도 되는 공간은 없다고. 오히려 큰 집보다 필요한 부분이 많으니 절대 디테일을 생략하지 말라고.
1 거실은 벽과 수납장, 바닥과 AV장의 색을 각각 화이트와 어두운 월넛 색으로 통일해 한결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2 큰 방은 서재로 꾸미고, 아내의 바람대로 긴 책상을 배치했다. 안정감 있는 조도를 위해 블라인드를 달아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게 했다.
3 문 틀에만에 컬러를 넣어 생동감을 주었다. 스타일을 통일하기 위해 철제 문 손잡이도 따로 구입해 설치했다.
4 바닥과 통일감을 주기 위해 어두운 갈색 발크로맷으로 제작한 거실 AV장. 각종 전자 기기의 크기에 맞췄으며, 전기선을 보관할 수 있는 수납 박스도 넣었다.
집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디테일 4
1 센스 있게 가려라
현관 벽의 차단기를 가리고자 스테인리스 스틸로 박스형 덮개를 만들었다. 이와 잘 어울리도록 파이프와 볼 구를 이용해 조명등도 직접 제작했더니 독특한 현관 인테리어가 완성되었다.
2 집의 선을 살려라
흰 벽에 흰 문을 더하니 심심해 보였다. 그렇다고 문에 색을 칠하자니 집이 좁아 보일 것 같아 프레임에만 컬러를 넣었다. 집의 선을 살리니 공간에 생동감이 느껴지는 효과를 얻었다.
3 문고리까지 효율적으로 써라
공간이 좁으면 문고리조차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화장실과 서재 사이의 코너 벽에 설치한 수납장은 원터치 방식 문고리를 설치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벽처럼 평평하지만 클릭하는 순간 고리가 튀어나온다. 작지만 유용한 아이디어.
4 벽에도 아이디어를 더해라
신발장 옆에 세운 가벽 위쪽에 수납 공간을 만들고 유리문을 달았다. 카페 인테리어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가벽의 답답함은 보완하고 물건을 쉽게 꺼낼 수 있어 실용적이다.
디자인과 시공 최혜리(blog.naver.com/h2_jun)
- 신림동 79㎡ 아파트 디테일이 집의 완성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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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호감도는 디테일에서 결정된다. 놓치기 쉬운 코너를 실용적・감각적으로 활용하거나, 작아도 생활에 편의를 더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집이 훨씬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김정근・최유희 부부의 신혼집은 크기가 작은 대신 디테일을 꼼꼼히 챙긴 덕에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