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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이루어진 메종 에르메스의 꿈
회색 빌딩 숲 사이로 따사로운 빛을 반사하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2006년 처음 문을 연 이후 도산공원 부근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이곳이 얼마 전 새롭게 단장한 모습을 공개했다. 차근차근 준비해온 이번 레노베이션은 아뜰리에 에르메스와 에르메스 홈 컬렉션 공간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모습이다.

2014년에 선보인 퍼니싱 패브릭 컬렉션과 조명등, 가구로 채운 3층 쇼룸. 
패션 하우스가 리빙 디자인에 눈을 돌린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들 명품 브랜드는 자신만의 노하우로 마치 가방을 만들 듯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가구를 만든다. 이 흐름에 에르메스를 빼놓을 수 없다. 메종 에르메스는 에르메스가 2011년 가구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위한 전초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리, 뉴욕, 도쿄에 이어 2006년 네 번째로 문을 연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가 얼마 전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번 기회에 홈 컬렉션을 보강하고 라이프스타일 부티크인 메종 에르메스의 본래 목적을 재정비했다. 이번 레노베이션의 주인공은 지하 1층과 지상 3층. 원래 3층에 있던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카페 마당이 있는 지하 1층으로 이사했고 3층은 에르메스 홈 컬렉션 전용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한 층을 에르메스 홈 컬렉션으로 채우면서 그동안 메종 에르메스가 꿈꿔온 모습에 한층 더 가까워진 듯하다.

1 신발과 왁스, 브러시 등을 수납할 수 있는 코프르 아 쇼슈르. 
2 시게루 반의 모듈 아쉬와 필리프 니그로, 장-미셸 프랑크의 가구로 꾸민 거실. 

제자리를 찾은 에르메스 홈 컬렉션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떠난 3층은 가구, 텍스타일, 테이블웨어 등 다양한 컬렉션으로 더욱 풍성하게 꾸며졌다. 생-루이 크리스털과 퓌포카 실버 등 그동안 공간이 부족해 소개하지 못한 컬렉션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고, 에르메스가 2014년 밀라노 가구박람회에서 선보인 컬렉션을 추가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엇보다 올해 상반기에 론칭한 컬렉션.

에르메스는 지난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통해 조명등 분야에 도전했는데, 이탈리아 디자이너 미켈레 데 루키Michele de Lucchi가 도형을 확대ㆍ축소할 때 사용하는 제도기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한 ‘팡토그라프Pantographe’와 말을 탈 때 사용하는 마구馬具를 떠올리게 하는 ‘아르네 Harnais’, 프랑스 비주얼 아티스트 얀 케르살레Yann Kersale가 디자인한 모듈형 조명등 ‘랑테른 데르메스The Lanterned’Hermès’ 등 총 세 가지 컬렉션이 이번에 처음 한국에 상륙해 실제 모습을 드러냈다.

1 생 루이 크리스털과 퓌포카 실버 등 다양한 테이블웨어 컬렉션을 진열했다. 
2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외관. 

여기에 필리프 니그로의 ‘퀴리오지테 데르메스The Curiosités d’Hermès(맞춤 홈 컬렉션)’ 중 구두를 최대 열여덟 켤레 보관할 수 있게 디자인한 신발장 ‘코프르 아 쇼슈르Coffre à Chaussures’도 주문 제작으로 판매를 시작한다. 사진으로만 보던 컬렉션을 직접 만날 수 있다 는 게 이번 레노베이션이 안겨준 가장 큰 즐거움일 듯하다. 또 2011년에 론칭한 엔초 마리, 안토니오 치테리오와 함께한 컬렉션도 새로운 소재와 색상으로 추가했고 기존에 공간이 없어서 설치하지 못한 시게루 반의 ‘모듈 아쉬Module H’도 쇼룸 한편을 장식했다.

2013년에 필리프 니그로가 디자인한 레 네쎄쎄어 데르메스Les Nécessarie d’Hermès, 새롭게 출시한 퍼니싱 패브릭이나 벽지 컬렉션도 각 공간마다 아트월로 전시되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지하로 내려갔지만 3층에도 전시 공간을 조그마하게 남겨두었다. 입구 가까이에 검은 카펫으로 구획한 이곳에서 에르메스 시계나 크리스털 제품 등 한 가지 테마로 기획한 전시를 주기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1 침대 옆에 놓은 조명등은 2014년 컬렉션 아르네. 가죽 지지대와 유리 갓을 안장용 못으로 고정한 것이 특징이다. 
2 엔초 마리가 디자인한 책상과 필리프 니그로의 행어 등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컬렉션이 제자리를 찾았다. 

이번 레노베이션은 2006년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사각 유리 건물을 디자인한 르나 뒤마 건축사무소(RDAI)가 진두지휘했는데, 레노베이션을 결정한 후 디자인과 설계 도면을 받고 완성하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다고 한다. 전 세계 다섯 곳밖에 없는 메종 에르메스이기에 에르메스 홈 제품을 더 돋보이도록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지하 1층에 놓인 대형 미술 작품이 갤러리를 방불케 한다.

3 갤러리 옆 카페로 탈바꿈한 지하1층 카페 마당. 
2 도안을 축소하거나 확대할 때 사용하는 팬터그래프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한 팡토그라프 조명등. 

에르메스는 기존에 3층에 있던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해 좀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지하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 있던 카페 마당을 축소하고 그 자리에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들어섰는데, 천장이 뻥 뚫린 메종 에르메스의 심장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카페 마당은 오크를 주 소재로,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흰 벽과 콘크리트로 분위기를 확연히 구분했다. 카페 마당은 공간이 작아졌지만 현대미술을 즐길 수 있는 ‘갤러리 옆의 카페’로 새롭게 시작한 셈이다. 지하 1층으로 내려와 더 넓어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는 현재 첫 번째 전시 <컨덴세이션Condensation>전이 열리고 있다. 앞으로도 이곳은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 등 다양한 행사와 전시로 채워갈 예정이다.

1 석탑처럼 은도금 오브제를 쌓은 오유경 작가의 작품은 공간을 초현실적으로 만든다. 
2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가엘 샤르보. 
3 작품이 스스로 생각한다는 의미로 거울을 배치했다. 

지금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거친 16인의 작품전 <컨덴세이션>
오랜 세월 이어 내려온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장인과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대미술 작가의 만남은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낼까. <컨덴세이션>은 엘리자베스 S. 클라크, 안드레스 라미레즈, 오유경, 가브리엘레 키라이 등 에르메스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 열여섯 명의 결과물을 공개하는 자리다.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란 2008년 설립한 에르메스 재단이 2010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베르사유 궁전 전시로 화제를 모은 주세페 페노네, 터너상 수상 작가 리처드 데콘, 수잔나 프릿셔, 엠마뉴엘 소니에 등 세계적 작가 네 명에게 추천을 받아 해마다 젊은 작가 네 명을 선발한다.

선발된 작가들은 각자 다른 공방으로 흩어져 그곳 장인에게 제작 기법을 배우고 일정 기간 동안 습득한 노하우와 장인의 도움으로 작품을 구상해 직접 제작한다. 주세페 페노네의 추천으로 퓌포카 실버 공방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지낸 오유경 작가는 마치 석탑처럼 은도금 오브제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달의 탑’을 선보였는데, 돌을 쌓아 소원을 비는 한국 문화를 표현한 그의 작품은 어두운 방 안에서 빛을 반사하며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베르뉴에 있는 사야 가죽 공방에서 작업한 엘리자베스 S. 클라크는 흰 가죽으로 감싼 지름 4.07m 원형 오브제 작품 ‘…너머로’를 만들어 아트리움을 장식했다.

이 외에 텍스타일 공방에서 배운 날실 날염 기법으로 아름다운 섬유 추상화를 선보인 가브리엘레 키라이, 생-루이 크리스털 공방에서 크리스털을 탐구한 올리비에 세베르 등 작년까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거쳐간 작가 열여섯 명의 작품 16점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한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컨덴세이션>전은 파리의 팔레드 도쿄와 도쿄 긴자의 메종 에르메스에 이어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열리는 전시. 세 전시의 기획은 모두 예술 평론가이자 독립 큐레이터인 가엘 샤르보Gael Charbau가 맡았다. 11월 30일까지. 수요일은 휴관이다.

4 아트리움에 건 엘리자베스 S. 클라크의 작품이 공간을 압도한다. 
5 아뜰리에 에르메스로 변신한 지하 1층.

interview 전시 기획자 가엘 샤르보
큐레이터로서 이번 전시 작업 방식은 어떠했나 <컨덴세이션>전은 큐레이팅이 쉽지 않았다. 보통 전시는 테마를 먼저 정한 후 작품을 고르는데, 이번 경우는 이미 작품 16점이 정해진 상태에서 전시를 기획해야 해서 평소와 정반대 방식으로 작업했다.
어떤 점에 중점으로 두고 기획했는가 지난 4년 동안의 이야기, 즉 작가와 에르메스 장인 사이에서 탄생한 작품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생각했다. 정신분석학적 차원에서 각각의 작품을 하나의 꿈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였다.
서울 전시는 앞서 파리와 도쿄에서 열린 전시와 어떻게 다른가 같은 작품을 각 도시의 문화에 따라 다르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파리 전시는 장인의 모습을 강조하고 싶어 나무를 많이 사용했고, 도쿄 전시는 굉장히 유명한 건축물에서 열려서 그 건축물 안에 작품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할까에 초점을 맞추었다. 서울은 전시장에 거울을 놓았다. 마지막 전시인 만큼 작품이 작품 자신을 바라보고 생각의 시간을 갖게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글 김민서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