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풍경이 하나 되다취병의 실제 모습은 창덕궁 후원 주합루에서 볼 수 있다. 1820년대 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동궐도’의 취병 모습과 취병 제작 과정이 담긴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를 고증해 1백여 년 전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것. 취병 풍경을 투명 필름에 출력한 뒤 공간에 띄워 설치하니 풍경이 창이 되고, 창이 풍경이 된다. 공간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추구한 장욱진미술관. 깃털 장식 등받이가 인상적인 자자ZAZA 체어는 케네스 코본푸에 제품, 코코넛 야자 껍데기를 이용해 둥지를 친화적으로 표현한 플로어 램프 쿠쿠는 하이브 제품으로 인다디자인, 통나무 패턴 쿠션&스툴은 메로윙즈 제품으로 SOP 판매.
“십 년을 경영經營하여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여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淸風 한 간 맛 져두고/ 강산은 들일 듸 업스니 둘러두고 보리라.” 조선 중기 문인 송순宋純의 시조다. 송순은 관리 생활을 마치고 고향 담양에 내려와 땅을 사놓고 10년을 구상한다. 여기서 경영이란 ‘설계’라는 말이 확장된 의미를 담고 있다. 땅을 사고,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설계・시공한 후 사람이 살기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 설계요 경영이다. 그런데 10년 동안 고민해 지은 집이 겨우 초가삼간이다. 절대로 돈이 없어서도, 청렴을 내세우기 위해 부러 초라하게 지은 것도 아니다. 한 칸에 바람이 들어오고, 한 칸에 달빛이 들어오고, 나머지 한 칸은 내가 쓰고 풍경은 들일 곳이 없어 둘러두고 보자는 달관의 경지다.
취병은 자연주의 사상과 떼어놓을 수 없는 핵심 개념으로 우리네 전통 건축을 이해하는 데 아주 도움이 되는 요소다. 서양인에게 집은 자신을 보호하는 셸터shelter 개념이지만 우리에게 집은 자연 속의 점 하나일 뿐이요, 조화가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 건축에는 공간과 자연을 가로막는 벽의 개념이 없다. 창호문이 열리고 들리고 닫히면서 무척 플렉시블flexible한 공간을 완성한다. 구조적으로 필요한 벽 대신 가림막이 되고, 장식이 되고, 접어서 치울 수도 있는 병풍을 애용했는데 취병은 바깥에 있는 병풍, 즉 울타리 역할을 한 셈이다.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의 관병법에는 취병의 소재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취병용 수종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상록수로 대나무, 향나무, 주목, 측백, 사철나무 등과 고리버들, 화목류, 등나무가 있다. 어른 팔뚝 굵기의 대나무를 두 줄로 촘촘히 땅에 꽃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패랭이꽃이나 범부채 같은 야생화를 섞어 심기도 하는데 꽃이 피면 오색이 찬란한 병풍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취병은 살아 있기에 그 의미가 더욱 심장하다. 잎이 졌을 때, 새순이 날 때, 수풀이 무성할 때 각각 느낌이 모두 다르다. 병풍에 자연을 그려 넣고 보는 것보다 더 라이브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우리 집에는 침실 창문과 담 사이 좁은 통로에 탱자나무가 있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여염집에서 가장 값싸고 편리하게 사용한 취병이다. 줄기가 구조체라면 날카로운 가시는 마감재 역할을 한다. 파란 열매가 점점 커지면서 노랗게 익는데, 그 색깔의 변화가 일품이라 관상으로도 손색없다. 마당이 있다면 임동초도 활용해볼 만하다. 지지대를 타고 올라가면서 꽃을 피우는데, 꽃도 화려할 뿐 아니라 꽃향기가 마당 전체를 압도한다. 전통 건축의 차경, 취병은 모두 세 칸 집에 돈 주고 살 수 없는 풍경, 즉 품 넓은 자연을 들여 대궐처럼 누린 조상들의 지혜다. 집은 작게 짓고 자연은 최대한 만끽하는 것, 꾸밈으로 시선을 현혹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다.
오후의 풍경 놀이
리넨&실크 소재의 볕 가리개 잇기 셰이드와 실크 소재의 물고기 풍경은 모노콜렉션 판매.
풍경을 꼭 소유해야 할까? 현관 앞 대나무, 자그마한 나무 한 그루로 자연을 두르고 본다는 도교적 이상을 구현한 젓가락 갤러리 저집. 현관, 창문 등 공간과 용도에 상관없이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패브릭 셰이드를 발처럼 연출했다. 대나무의 초록과 붉은색의 강렬한 컬러 대비가 시원하면서도 한국적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숲 속 친구들의 원더랜드
김리아갤러리에서 열린 신수진 작가의 <꽃-피우다>전은 관객도 나뭇잎을 매달아보는 참여 전시 방식으로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빨강 종이 펜던트 조명등 트윈 톤은 레인 제품으로 에이치픽스, 난쟁이 스툴은 카르텔 판매. 코튼 소재의 버섯 인형은 애나벨 컨 제품, 도트 패턴 조명등은 리 엘라제 라센 제품, 친환경 재생지를 사용한 키즈 암체어는 에센셜 제품, 울 펠트 소재의 버섯 오브제는 무스크하네 제품으로 모두 짐블랑 판매.
마치 깊은 숲 속에 들어선 듯 초록 잎사귀가 가득하다. 형형색색의 나뭇잎을 판화 기법으로 한 장 한 장 찍어 공중에 매단 설치 작품은 작가 신수진의 ‘공유하는 숲’. 친환경 재생지로 만든 소파, 종이 소재 펜던트 조명등, 난쟁이와 버섯 등 귀여운 오브제가 조화를 이루며 생동감 넘치는 원더랜드를 완성했다.
꽃담의 현대적 부활
동양 도자가 프린트된 화병은 세락스 제품으로 마이알레, 블랙 펄 컬러의 토끼와 장미 오브제는 오트마어 호를 작품으로 김리아갤러리 판매.
서양에서 담은 철저한 보안과 사생활 보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우리에게 담은 ‘대강’ 구분 짓는 표식의 용도다. 기와로 꽃잎 형태의 구멍을 만든 꽃담, 싸리 울타리, 탱자나무 울타리 등 기의 흐름을 중요하게 여긴 전통 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면 이런 형태가 아닐까? 마이알레의 그리드 형태 철제 파티션에 장미가 피어올랐다. 덩굴장미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정면과 후면에서 모두 꽃을 즐길 수 있는 아이디어다.
빛과 바람을 품은 방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린 <장응복의 레지던스> 전시. 보안여관의 1・2층 전시 공간에는 침실, 식당, 리셉션, 옥외 카페 등 호텔의 역할과 기능을 디자이너 장응복의 독창적 공간으로 재현했다. 면과 리넨 등 자연 소재로 쾌적하고 유지 보수가 용이하도록 디자인한 침구는 모노콜렉션 판매. 한식 침구의 장점과 실용성을 살려 합리적 가격으로 제안한다.
벽과 같은 구조체 없이 오직 패브릭을 드리워 완성한 침실. 근대와 현대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감성과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현관, 창문 등 장소와 면적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패브릭 셰이드는 디자이너 장응복의 소프트 인테리어의 핵심이다. 오간자 실크, 리넨, 모시 등 여름 소재를 사용하면 빛과 바람이 한결 유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무지갯빛 사계를 담은 방법
창문, 벽, 공간을 나누는 파티션으로 모두 활용 가능한 포켓 파티션. 빨간 후쿠시아, 덩굴식물 트리쳐스, 백일홍, 남천과 블루베리, 화이트스타 등 사계를 담은 플라워 연출은 리우플라워 류창숙 실장이 맡았다. 유리 조명등, 징크 테이블, 테이블 조명등, 랜턴은 모두 마담스톨츠 제품으로 메종드실비, 물뿌리개는 하우스닥터 제품으로 에잇컬러스 판매.
예부터 몽골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솔롱고스solongos(무지개)라고 불렀다. 봄에 새싹이 돋고 꽃이 피기 시작해 가을에 단풍이 드는 등 계절마다 형형색색 무지개처럼 다른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취병의 장점 역시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것. 잎이 졌을 때, 새싹이 돋을 때, 초록이 무르익을 때 모두 다른 풍경을 자아내 관상용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자라나는 벽
펜던트 조명등과 철제 테이블, 사다리, 캔들 홀더, 키친타월은 모두 마담스톨츠 제품으로 메종드실비, 블랙 다이닝 체어와 재활용 플라스틱을 땋아 만든 메르시의 용기는 라꼴렉뜨, 골드 컬러 곰 오브제는 김리아갤러리, 난쟁이 스툴은 카르텔, 블랙 가죽으로 만든 꽃 오브제는 하이브 제품으로 인다디자인 판매.
바닷속 해초를 형상화한 알그 모듈은 벽 장식으로, 공간을 나누는 파티션으로 활용할 수 있어 상업 공간이나 주거 공간 상관없이 인기를 얻는 제품이다. 하얗게 도장한 벽면에 조형 오브제를 설치할까 고민했다는 카페 피에의 이찬희 대표는 손쉽게 조각을 연결・분리할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어 알그를 선택, 밋밋한 벽에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파티션처럼 앞뒤로 레이어드하거나 가구를 타고 올라가도록 연출하면 한결 멋스럽다.
초록을 더하니 가구도 예술이 된다
뻐꾸기시계와 고사리 조화를 이용해 만든 조명등, 냉장고에 붙이는 생선과 채소 자석, 트럭과 레고 집을 화기로 사용한 그릭 웍, 분갈이 후 버리는 플라스틱 화분에 털실을 엮어 감싼 그린 웍은 모두 김윤하 작가 작품으로 다있다, 아보카도를 심은 빨간색 절구통 화분 다있다, 오크나무 소재의 나뭇잎 형태 선반장 주니퍼는 케네스 코본푸에 제품으로 인다디자인, 유쾌하고 장난기 넘치는 캐릭터를 표현한 세라믹 화기는 마이어-라빈 제품으로 이노메싸, 폐타이어를 재활용해 만든 세락스의 화분과 연그레이 컬러 무광 화기, 폴 스포턴의 블랙&화이트 까마귀 오브제는 모두 마이알레, 타공판으로 만든 파티션과 삼각형 단면의 선반으로 구성한 3단 선반장, RGB 색상을 사용한 시트와 전화선 등받이가 위트 있는 의자는 박길종 작가 작품으로 길종상가 판매.
가구를 식물 랙으로 활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오픈 선반, 책장을 이용하는 것. 식물 자체를 형상화한 디자인 책장이나 화분을 소담하게 담을 수 있는 바스켓 형태의 장식장, 조형적 디자인으로 그 자체가 포인트 역할을 하는 3단 장 등 개성 있는 제품을 선택하면 마치 하나의 설치 작품처럼 색깔 있는 공간을 완성할 수 있다.
글을 쓴 김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도서출판 ‘광장’의 대표이자 문화재위원,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그의 건축에는 늘 사람과 환경, 문화가 담겨 있는데 이는 도시 생태에 이어 한옥 보전을 외치는 행보로 이어진다.
스타일링 고은선 캘리그라피 강병인 어시스턴트 김미라 제품 협조 길종상가(bellroad.1px.kr), 김리아갤러리(02-517-7713), 다있다(daitta.kr), 디사모빌리(02-512-9162), 라꼴렉뜨(02-548-3438), 리우플라워(02-546-1634), 마이알레(02-3678-9468), 메종드실비(02-518-2220), 모노콜렉션(02-517-5170), 보안여관(02-720-8409), 에이치픽스(070-4656-0175), 에잇컬러스(070-8654-3637), 이노메싸(02-3463-7752), 인다디자인(02-546-0661), 장욱진미술관(031-8082-4241), 저집(02-3417-0119), 짐블랑(070-7803-3798), 카르텔(02-517- 2002), 카페 피에(02-6212-0219), SOP(070-7019-6826)
- 취병에 닢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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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색 병풍을 뜻하는 취병翠屛은 관목류・덩굴식물 등을 활용한 친환경 담으로, 창덕궁 후원과 사대부 집 정원에 사용한 조경 방식이다. 내부가 보이지 않게 가려주는 가림막 역할과 공간을 분할하는 담의 기능을 하면서 깊고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생기를 돋워주는 조형물로 한국 전통 정원의 백미로 꼽힌다. ‘취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여덟 가지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