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산 자락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작업실.
이용기 작가가 나무를 처음 만난 곳은 고향인 경남 의령. 지리산 자락, 지천이 나무로 둘러싸인 의령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태동부터 나무를 느꼈고 나뭇가지를 갖고 놀며 자랐다. 부산디자인고등학교의 전신인 부산공예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나무를 만지기 시작했는데, 기능 경기 대회와 취업을 위해 우리의 전통 기법을 뿌리부터 꽃잎까지 이치에 맞게 배웠다. 미술대학에 진학해서는 디자인을 배웠고 대학원도 마쳤다. 그러니 그는 디자인을 먼저 배우고 기술을 고명처럼 얹은 다른 목공예가와 달리 도정을 해 쌀을 불리고 밥을 짓는 것부터 고명을 얹고 멋스러운 차림으로 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30년간 충분히 갈고닦았다. 그리고 재작년에 이름 앞에 부산공예명장이라는 명예로운 칭호의 테를 둘렀다.
“대학 시절 오사카에서 열린 조지 나카시마의 작고 후 기념전을 보러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나무의 형태와 질감을 그대로 활용해 작 업한 가구를 보고 전율을 느꼈지요.” 이른 나이에 목공예를 시작했기에 “나무 만지는 게 별것 아니네!” 하고 한창 코가 높아질 무렵 거장 조지 나카시마의 작품 앞에서 그는 크나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가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아직도 나무에 관해 더 공부해야겠구나!” 하는 난감함에도 직면 했다. 그리하여 대학원 졸업 후 일본 규슈 대학으로 가서 나무의 건조법과 밴딩 기법을 두루 익혔다. 그것으로도 다 배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일본에서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것과 한국의 기후에 맞추어 나무로 작업하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1 제재소에서 우연히 벌이 집 짓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정교한 벌집 모양의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2 오랫동안 지켜본 이 나무는 그 자체로 훌륭한 테이블이 되었다.
“대학원 시절 논문을 쓰려고 통영 소목장 인간문화재 천상원 선생님을 만나 그 작품을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그분은 전통 목가구를 제작할 때 나무의 뼈대와 알판을 싸매어 온돌방 장 안에 넣어두고 함께 생활을 하셨어요. 같은 방에서 자고 지내며 나무를 우리 삶에 적응시킨 후 시간이 지나서 그걸 꺼내서 작업을 하셨죠. 그렇게 우리 선조들의 지혜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첨단의 밴딩 기술 없어도 수백 년간 유지되는 목가구를 만든 것이죠.” 이용기 작가의 나무 가구 제작 작업은 인내의 여정이다. 나무 형태와 결을 보고 용도에 맞게 잘라 10년이 넘는 세월을 실외와 실내에서 건조시키고 기다려, 제 형태와 결을 드러내며 숨을 쉬는 아름다운 목가구를 우리 삶에 놓아준다.
형태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무의 성질과 그 속에 담긴 시간까지 모두 읽어야 하는 일. 이것이 진정한 목가구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이용기 작가에게 가구 제작은 ‘디자인’이 아니라 ‘인내와 기다림’이 되었다. 다른 작가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무를 만지는 작가에겐 특히 이것이 중요하다. 30년간 나무를 만져 왔으나 지금도 여전히 나무의 성질을 다 파악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겸손한 작가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산청, 경주 등 경남과 부산 일대의 제재소에서 좋은 통나무가 나왔다는 전화를 받으면 찾아가 구입하는 이용기 작가는 그 나무를 몇 년간 묵혀둔다. 그리고 나무의 형태와 결을 보고 식탁, 의자, 벤치 등의 용도를 결정하고 그 두께대로 켠 다음 다시 자연 건조시킨다. 그 기간은 무려 10여 년이 넘는다.
3, 4 나무 형태 그대로를 살리면 손에 쏙 잡히는 구두주걱, 포크, 손잡이 등 기능적 작품이 된다.
차갑고 뜨거운 대지 위의 비닐하우스에도 두고 서늘하고 온화한 실내로도 옮겨 온다. 겨울에 사람의 피부가 트듯 나무의 피부 역시 트기도 하고 뒤틀리기도 하니 결국엔 나무 성질을 알고 잘 이해해 작업하는 것이 디자인에 우선한다는 게 이용기 작가의 믿음이다. “나무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먼저 살펴보고 그다음에 디자인을 합니다. 판재를 세워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 또 봅니다. 어떤 용도로 어디에 놓을 것을 만들지 오랜 기간 생각하고 그다음에 재단을 해서 작업하는 것이지요. 디자인을 먼저 하고 나무를 자르는 것과 정반대로 말입니다. 관찰이 곧 디자인이에요.”
이런 교감은 우리 삶에도 적용된다. 거목을 옮겨놓은 듯한 멋스러운 그의 테이블을 애써 들여놓고 조심스러워 유리를 덮어 사용해야 하는지 묻는 고객에게 그는 이 같은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작품이기 전에 가구니 편하게 쓰는 즐거움을 느끼시라고 말합니다. 절대 유리 같은 것은 얹지 마시라고 이야기하지요. 나무는 촉감을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모양이나 형태도 중요하지만 나무를 그대로 쓰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지요. 자연과 소통하는 자체가 목가구가 주는 미감이니까요.”
시대가 변하고 우리가 사는 공간의 형태도 변화했다. 유선형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고 실내가 유리벽으로 구분되거나 하나의 너른 공간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많아졌다. 그러니 벽에 그림을 걸거나 조각품을 놓아 실내를 장식하는 미적 감상은 이전 방식이 되었다. 이때 오픈된 공간에 놓아 조형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가구다. 무엇보다 자연 그대로의 질감과 피부가 살아 있는 나무 가구라면 더욱 좋다. 디자인하고 재단한 나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관찰해 자연의 조형을 집으로 들이는 이용기 작가의 노력으로 한 그루 나무가 우리 삶으로 들어온다. 수십 년을 걸어 그 결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우리 삶을, 공간을 장식한다.
- 글 김민정 수석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나무가 우리 삶에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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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