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교통도 편리하고 전망도 괜찮은 편인데 단 하나, 인테리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실의 한쪽 벽에 덕지덕지 붙은 이미지 월이나 침실에 있는 촌스러운 붙박이 화장대 등 몇 년 전 유행했던 마감재와 스타일로 급하게 치장한 아파트는 리모델링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리모델링을 해볼 요량으로 우선 동네 인테리어 업체에서 막 공사를 끝낸 집을 몇 곳 방문했더니 아니 이런, 집집마다 마감재는 물론 인테리어 스타일까지 거의 비슷한 것이 아닌가.
리모델링한 집을 취재하다 보면 이처럼 인테리어 업체의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된 집과 집주인의 스타일로 완성된 개성 있는 집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사는 데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굳이 많은 돈을 들여 다른 집과 비슷하게 고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한다. 리모델링을 하기로 결심했으면 먼저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왜 집을 리모델링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에 따라 집을 어떻게 고치고 꾸밀 것인가, 즉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 그런데 머릿속에 대충 그린 피상적인 그림만 갖고 리모델링 업체를 방문하면 십중팔구 업체의 매뉴얼에 맞는 개성 없는 집을 얻게 된다. 업체에서 권한다고 이유와 목적 없이 베란다를 거실로 확장하고 한쪽 벽에 꽃무늬 벽지를 바르면 분명 얼마 못 가서 불편함과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인테리어 잡지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스크랩하는 것이다. 이를 꾸준히 하다 보면 감각과 안목이 생길 뿐만 아니라 수납 방법과 가구 배치, 구조 변경 등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잡지에 소개된 마음에 드는 공간을 디자인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스타일리스트에게 리모델링을 의뢰할 수도 있다. 인테리어 에디터이다 보니, “집을 리모델링하고 싶은데 어디에 맡기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러면 인테리어 업체보다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스타일리스트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이 확실하고, 리모델링 공사에 계속 매달릴 수 있다면 업체에 바로 의뢰해도 되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인테리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훨씬 좋다. 물론 어느 정도의 추가 비용은 부담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는 향후 5년 이상을 내다봤을 때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라 할 수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스타일리스트는 잡지를 통해 검증받은 뛰어난 감각과 노하우를 갖춘데다가 ‘콘셉트’에 맞는 집을 꾸미는 데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의 차이가 무엇인지.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말 그대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스타일리스트는 데커레이션이나 인테리어 스타일을 연출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차이인데, 점점 이 둘의 경계가 없어지고 스타일리스트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거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스타일링을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특히 스타일리스트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정상 씨나 문인화 씨가 그런 경우이다). 그렇지만 분명 각각의 전공에 따라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잘 파악해서 자신에게 적절한 전문가를 선택해야 한다.
재미있고 독특한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적용하기에도 스타일리스트가 제격이다. 얼마 전 방문한 집은 스타일리스트 이정화 씨가 리모델링한 곳이었는데, 가족들이 주로 모이는 다이닝 룸 벽에 엄마, 아빠의 어릴 적 사진부터결혼 사진과 아이 사진 등을 이어 붙여 한 가족의 역사를 재미있고 따뜻하게 풀어낸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스타일리스트는 이처럼 꼭 커튼이나 벽지 스타일링이 아니더라도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신선한 아이디어(그동안 잡지를 통해 소개했던 아이디어)를 얼마든지 제안해줄 수 있다. 또한 스타일리스트는 매달 잡지 스타일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시장 정보가 풍부하기 때문에 집주인이 원하는 제품을 보다 쉽게 찾아줄 수 있다(스타일리스트 주혜준 씨는 집주인과 마감재나 가구 쇼핑을 함께 다니는 소소한 재미 역시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신소재나 컬러 등을 과감하게 사용해 새로운 스타일을 연출하기도 한다.
스타일리스트의 또 다른 장점은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잡지야말로 트렌디한 정보와 신제품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매체니까 스타일리스트는 잡지를 통해 얻은 정보와 자극을 인테리어 디자인에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해외 인테리어 박람회를 방문해 최신 트렌드를 익히는 그들은 세련된 스타일에 대한 본능적인 ‘감’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집주인의 머릿속에 맴도는 막연한 아이디어도 얼마든지 잡지 화보처럼 세련되게 포장해줄 수 있다. 물론 트렌디한 디자인이 집 인테리어에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집은 한두 달 살 곳이 아니라서 너무 트렌디하면 쉽게 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스타일리스트들이 입 모아 확신하건대, 집주인이 강력하게 원하지 않는 한 집 전체를 최첨단 스타일로 리모델링할 스타일리스트는 없다고. 그보다는 트렌디한 요소를 적절히 활용해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멋진 공간을 완성해줄 확률이 더 높다.
이런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스타일리스트에게 리모델링을 의뢰하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들이 시공이나 하자 보수 같은 하드웨어적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대부분의 스타일리스트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다. 그래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겸하는 스타일리스트는 대부분 디자인팀과 별도로 시공팀을 꾸리고 있다. 꼼꼼한 시공과 감리는 물론 시공 후의 하자 보수 역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스타일리스트에게 리모델링을 맡기기 전에는 많은 경험과 탄탄한 실력을 갖춘 시공팀과 연계되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데커레이션은 쉽게 바꿀 수 있지만 시공은 한 번 잘못하면 고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타일리스트가 리모델링한 집을 미리 방문해서 그에 대한 의견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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