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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표식품 박진선 대표 잘 지은 집밥이 입맛 수준을 높인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지만 내실 있는 장맛을 알아보는 입맛도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로, 식품업계에서는 전통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샘표식품의 박진선 대표는 ‘집밥’에 관해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생각한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소비자의 입맛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전통을 이어가면서 현대의 식문화에도 어울리는 제품을 선보이고자 고민하는 그를 만났다.



가족이 모두 바빠 집에서 함께 모여 식사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음식 문화의 근간이 되는 발효 식품인 장을 생산하는 식품 회사의 대표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노력하는지요?
기업에서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품을 생산해도 소비자가 구입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지요. 이유 불문하고 양질의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을 집에서 해 먹는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소비자의 입맛 수준이 높아지면 당연히 제품의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식품 회사 입장에서도 소비자의 입맛을 끌어올리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이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고 식품 회사의 양심이니까요. 그래서 샘표도 된장 캠페인을 진행하고 ‘우리발효연구중심’이란 연구소를 만든 거고요. 단순히 많이 팔고 돈만 벌자고 했다면 연두 같은 제품도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전통 간장을 새롭게 해석한 요리 에센스 연두는 우리 음식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꿀 제품을 만들겠다는 노력으로 태어난 제품이니까요. 소비자의 입맛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새로운 간장도 개발했습니다. 한데 출시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 한식을 훨씬 더 맛있게 만들어줄 간장이라고 기대하지만, 그간 접하던 간장에 대한 소비자의 고정관념이 워낙 강하거든요.

입맛의 수준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수탈 당하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고요. 1960년대부터 급격히 산업화하면서 ‘빨리, 많이, 싸게’ 만드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지요. 먹는 것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빨리빨리 대충대충 먹고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지, 맛있고 좋은 음식을 즐기는 문화를 잃어버리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짜게 먹다가 맵게 먹고, 달게 먹고, MSG를 엄청 넣어서 먹게 된 거지요. 입맛이 엉망이 된 겁니다. 좋은 음식도 경험해봐야 아는 법이에요. 그래서 좋은 식당에서 최고 음식도 맛보고, 집에서 좋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매일’ 먹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러면 미식이 생기고, 맥이 끊긴 우리 음식 문화도 다시 찾을 수 있겠지요.

요즘에는 미식에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미식, 맛있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맛있다’는 것은 훌륭한 음악이나 그림을 접했을 때 느끼는 감정과 같습니다. 행복감을 주지요.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객관적 기준은 있습니다. 음식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최고를 경험하면 행복하게 마련이거든요.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맛본 사람은 그보다 못한 재료를 써도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 맛을 내려고 노력합니다. 맛있는 음식, 좋은 식품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기는 건 물론입니다.

‘집밥’은 집에서만 식사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샘표식품의 박진선 대표는 ‘집밥’의 수준이 입맛을 살린다고 강조한다. 좋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소비자 스스로 입맛 수준을 높이면 시판 제품은 물론 농산물의 품질도 함께 올라가고, 맥이 끊긴 우리 음식 문화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샘표와 스페인의 알리시아 연구소가 함께한 ‘장 프로젝트’는 우리 전통 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통 식품의 계보를 이어가면서 현대의 식문화를 선도하는 데 고민이 많은 듯합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옛날 음식만 먹자는 식이면 곤란하지요. 현대 식문화와 동떨어지니까요. 세상이 바뀌었으니 현대 기술로 옛것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더 맛있게 즐겨야지요. 스페인에서 장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장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된장을 먹이자는 ‘된장 캠페인’을 하면 엄마들의 한결같은 이야기가 된장으로 찌개, 국, 나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 공식을 만들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요. 한데 외국인은 우리 장에 대한 편견이 없으니까 메뉴가 다양하게 나오더군요. 서양 음식에 적은 양의 된장, 고추장, 간장을 넣어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도 요리의 큰 즐거움일 겁니다. 그것이 전통 장을 현대 밥상에 올리고, 나아가 우리 장을 세계의 밥상에 올리는 한식 세계화의 일환이 아닐까 합니다.

직원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2004년 이천 간장 공장에 만든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가 식당 건너편에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댁의 주방과 식탁에도 가족의 행복을 위한 장치가 있나요? 식당은 직원들이 매일 한 번씩 꼭 찾는 곳이지요. 집에서는 식탁이 가족 모두 모이는 공간이에요. 좋은 그림을 보고 좋은 음악을 듣는 것도 행복을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집에도 다이닝 공간에 사석원 화가의 ‘당나귀’ 작품을 포함해 그림 네 점을 걸어두었습니다. 다른 장식은 없습니다.

예술에 대한 안목도 남다르지만 음식에 대한 안목도 그 못지않은 미식가잖아요. 집에서도 ‘미식’을 즐기나요? 메뉴가 특별한 게 아닙니다. 집에서는 제철 식재료가 기본인 한식을 즐깁니다. 다만 1974년에 미국 유학을 가는 바람에 MSG가 밥상을 점령하는 시대를 교묘하게 피할 수 있었어요. 지금도 MSG를 많이 넣은 음식을 먹으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납니다. 엄마 손맛은 MSG 조미료 맛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던데, 제게는 그런 유전자가 전혀 없는 겁니다. 우리 연구원들은 새로운 제품을 내놨을 때 제가 맛있다고 하면 얼굴 표정이 죽상이 돼요. 소비자 입맛에는 안 맞는다는 방증이니까요.(웃음) 우리 연구원들의 입맛이 대중적이니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려면 그게 맞는데, 내 생각에는 그렇게 하면 우리 제품의 수준이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을 것 같아 정말 고민스럽습니다. 연구원들의 입맛을 끌어올리는 것은 우리 비즈니스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제품도 업그레이드하고 소비자의 입맛 수준도 높일 수 있을 테니까요.


샘표식품 박진선 대표의 집밥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발효 식품은 항암 효과는 물론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고 간 기능을 회복시키므로 어릴 때부터 꾸준히 먹으면 면역력도 높아지고 비만도 예방할 수 있다. 또 외부 자극으로 일어나는 음식물 오염을 막아주어 음식의 맛과 향을 증진시킨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도 짜고 맵게 만들면 그 맛과 향을 즐길 수 없다. 건강식으로 각광받는 우리의 한식을 즐기고 수준 높은 입맛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것을 올바르게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화병으로 쓴 샴페인 잔과 테이블 매트는 쉬즈리빙. 병어구이를 올린 접시를 제외한 찬기와 밥그릇, 국그릇, 물컵, 전골냄비는 정소영의 식기장. 병어구이 접시는 우리그릇 려.

우리 장으로 현대화한 밥상
“샘표식품과 스페인의 알리시아 연구소가 함께한 ‘장 프로젝트’는 우리 장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이었다. 장 프로젝트에서 각광받은 우리 전통 장으로 현대화한 새로운 음식을 제안한다.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양식에 우리 발효 식품과 천연 장 소스인 연두를 약간만 넣어도 맛과 향이 더해져 세상에 없던 음식이 탄생할 것이다.”


샴페인은 클라우디베이 테 코코로 MH샴페인즈&와인즈 코리아. 샴페인 잔, 테이블 매트, 실버 포크, 스트라이프 냅킨은 쉬즈리빙. 화이트 수프 볼, 오목한 블랙 접시, 기하학적 블랙 패턴 접시, 블랙 테두리 화이트 접시, 유리잔은 무겐인터내셔널. 나비 패턴 접시는 까사미아.



요리 이홍란, 정서영(샘표 지미원, 02-3393-5593) 푸드 스타일링 강혜림, 김지나 패션 스타일링 정소정 


글 신민주 기자 | 사진 김정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