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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층에 사는 즐거움_사례1 변화한 생활 따라 재구성한 복층 빌라
주거 공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투자에서 거주로, 사는(buy) 것에서 사는(live) 곳으로 의식이 변하면서 이익보다는 편안함을, 가치보다는 실용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밀도 높은 대단지 아파트에서 한적한 빌라로, 로열층보다 서비스 면적이 많은 꼭대기층 아파트로 눈을 돌린 사람들. 지금 주목하는 ‘복층’의 매력은 작으나마 여유를 느끼고 싶은 욕구, 보다 실용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서 비롯된 것일 듯하다. 높은 천고, 계단, 다락방, 정원 등 실제 복층집이 가진 콘텐츠는 주택에서 사는 것과 닮았으니 공동 주거와 개인 주택의 장점만 모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층간 소음 문제로 스트레스 받지 않는 꼭대기층 아파트, 서비스 면적인 다락방을 레노베이션해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나눠 생활하는 빌라 등 온 가족이 만족하는 실속 만점 복층집 3곳을 소개한다.

상일동의 한적한 빌라 단지에 사는 이수형 씨는 지난여름 살던 집을 레노베이션했다. 복층 구조의 빌라는 넓은 평수에 비해 공간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 왠지 몸에 맞지 않은, 크고 불편한 외투를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위ㆍ아래층에 혼재되어 있던 생활 공간을 분리하고 다시 합치는 과정을 거쳐 효과적인 공간 재구성에 역점을 두었다.


1 아래층과 완벽하게 분리되는 위층. 안쪽 딸 방에서 거실을 바라본 모습. 2 현관에서 바라본 거실. 모던한 디자인에 고재 나무, 철제 소재를 섞어 내추럴한 느낌을 더했다. 3 위층 거실 가구는 작고 캐주얼한 공간에 잘 어울리는 헤이 제품으로 구성. 4 이 복층 빌라의 매력은 1층 거실 오른쪽에 있는서재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계단으로 만든 수직 공간은 또 하나의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오른쪽 계단과 비례를 맞춘 왼쪽의 거대한 패널 벽이 인상적이다.

집주인 이수형 씨는 “7년 전 이 빌라로 이사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라이프 스타일이 확실히 달라졌죠. 아이들이 자라 유학을 갔고, 저는 상대적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라고 한다. 기존 빌라는 아래층에 거실과 침실ㆍ주방ㆍ서재ㆍ아들 방이, 위층에 창고 겸 보조 주방과 딸 방이 있는 구조였다. 주방이 작아 김치냉장고와 저장 식품을 위층에 두고 쓰니 주방에서 창고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동선이 불편했고, 유학 간 아들의 빈방이 아래층에 덩그러니 있으니 더욱 썰렁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얼마 전부터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집주인은 그만의 자그마한 작업실을 꾸미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1 거실 맞은편 딸 방은 건축집단MA가 즐겨 쓰는 소재 중 하나인 합판으로 마감해 아늑하면서도 캐주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닥에 사용한 티크 원목 컬러에 맞춰 살짝 어둡게 스테인 처리했다. 2 철판과 고재 티크 소재로 묵직한 느낌을 더한 주방. 고재 티크는 키엔호에서 수입한 것. 액자를 ㄱ자로 꺾어 벽에 붙인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3 굳이 넓을 필요가 없는 침실은 붙박이장을 짜 넣어 드레스 룸 기능을 더했다.


동선은 줄이고 수납은 늘린다
설계와 시공은 평소 잘 알고 지낸 건축집단MA의 유병안 소장이 진행했다. 공간에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띈 점은 가족사진. 아이들 어린 시절 사진과 친정어머니의 모습까지 부모님과 자녀까지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계를 맡고 집을 방문했을 때 액자들이 공간에 묻혀서 눈에 띄지 않고 다소 복잡해 보였어요. 가족사진도 이 집의 중요한 콘텐츠인데, 잘 매치해 돋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또한 집주인은 퇴임 후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했는데, 바로 그림과 가드닝입니다. 디자인 포인트가 자연스레 ‘힐링’으로 모아졌죠.”유병안 씨는 힐링이라는 테마에 맞춰 내추럴한 나무 소재를 곳곳에 활용했다. 일단 대리석 바닥재를 티크 수종의 나무 바닥재로 교체하고, 계단 옆 높은 벽면을 고재 패널로 마감했다.

같은 티크 수종이라도 광이 덜 나는 것이 한결 고급스럽다는 점을 감안해 인천과 광주 오포의 목재상을 돌아다니며 원하는 수종을 골랐다. 거실과 주방 사이 오픈 구조의 다이닝룸에 자리한 널찍한 고재 테이블 역시 최대한 가공을 안 한 듯 울퉁불퉁한 목재를 켜서 상판으로 활용한 것. 테이블로 가장 많이 쓰는 뉴송에 살짝 어두운 스테인을 발라 벽면의 고재 패널과 톤을 맞췄다. 또한 ‘힐링’에서 빠질 수 없는 조건이 채광과 조망이다. 남향 테라스는 미니 화단으로 꾸미고 북향 다용도실은 단을 높여 다실로 꾸몄는데, 비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면 제법 운치가 느껴진단다. 서재 역시 창이 보이게 창문과 책상 위치를 조정하고 부엌 다용도실도 수납장 위치를 바꿔 창문을 살린 것이 특징.

 
1 박공 지붕의 묘미가 살아 있는 위층 아들 방. 2 계단 배전함 아래 고가구를 매입한 아이디어가 재밌다.

“복층은 천장이나 날개 쪽을 뜯어보면 생각보다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요. 계단 아래처럼 단층집에서는 찾을 수 없는 디테일도 재미있고요. 이 집은 위층 침실의 천장을 털어내 박공 구조를 살리고 낮은 면에 침대를 배치했어요. 지붕 날개 쪽을 확장해 AV룸을 겸할 수 있는 작은 거실을 만들었고요. 박공 구조는 아늑하면서도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침실이나 서재로 활용하면 좋습니다.” _ 건축가 유병안 씨

“사실 이번 레노베이션의 시작이자, 가장 만족스러운 곳은 부엌이에요.부엌이 너무 좁아서 김치냉장고를 위층에 뒀더니 김치 하나를 꺼내려고해도 위생 장갑과 그릇을 챙겨 오르락내리락 하는게 영 불편했거든요. 반면 안방은 지나치게 컸어요. 요즘 시대에 굳이 안방이 클 필요가 없잖아요. 이런 의견을 반영해 디자이너는 안방과 연결된 드레스룸을 줄이고,그 자리에 보조 주방을 구성했죠. 다용도실과 ㄷ자형 주방, 다실, 다이닝룸이 연결된 효율적 동선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어요.” 8월 말 입주 후 몇 달간 살아보니 모든 일이 한 공간에서 해결되는 게 너무 편하다고 소감을 전하는 이수형 씨. 공간이 넓어진 것은 아닌데 정리가 잘되니 생활이 한결 단정해지고 편리해졌단다.

“이 집을 고치기 얼마 전에는 포천에 시골집을 지었어요. 그때 겪은 시행착오 중 하나가 바로 사용자와 설계자의 입장 차이예요. 저한테는 생활인데, 건축가에게는 작품이 되는 순간 결국 불편한 집이 탄생하죠. 통창으로 시원하게 조망을 살렸지만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정리 정돈이 안 되는 집, 그런 집을 만들지 않기 위해 디자이너를 쫓아다니며 수납공간을 강조했어요. 이 집은 TV를 둔 아트월을 비롯해 ‘벽’처럼 보이는 곳곳이 대부분 수납장이에요. 아래층 손님 화장실의 샤워 부스도 굳이 필요 없는 공간이라 슬라이딩 도어 안쪽으로 수납장을 짜 넣고 철 지난 옷과 그릇, 공구 등을 수납했을 정도니까요.”



다락방의 낭만

유병안 소장은 평소 쓰지 않는 자녀 방을 모두 2층으로 배치하면서 1층과 2층의 생활 공간은 물론 스타일까지도 완벽하게 분리했다. 먼저 박공지붕 라인이 살 수 있도록 천장을 털어내고, 지붕 날개쪽을 최대한 확장해 침실과 거실 공간을 확보. 테라스를 기준으로 딸 방과 아들 방을 마주 보게 배치하고, 테라스 반대편 라인 틈새 공간에 욕실과 작은 거실을 구성했다. “자녀들이 1년에 두 달 정도 머무는데, 그 공간을 굳이 평범하게 연출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반적 범주에서 벗어나 오히려 호텔처럼 머무르는, 이벤트성 공간도 재밌을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고요.”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마침 방학이라 한국에 온 자녀들은 오랜만에 오는 집이 확 달라져 낯설 법도 한데 오히려 편안하단다.

경사진 지붕 아래에 침대를 배치해 마치 집이 포근하게 감싸는 듯하고 빛이 들어오지 않아 더욱 아늑하다는 것. 평상 같은 침대에 몸을 누이는 순간 피곤도 잊고 위로받으며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다. 2층 공간 역시 이동식 가구는 거의 없다. 수납장은 목공으로 짜 넣었고, 침대는 평상처럼 단을 만든 뒤 매트리스만 얹어 사용한다. “아들 방이 원래 창고였어요. 복층이 재밌는 게, 천장이나 날개 쪽을 뜯어보면 생각보다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거예요. 이 방도 천장을 털어내 박공 구조를 살리고 날개 쪽으로 2m 정도 확장한 뒤 그 자리에 침대를 배치했어요. 역시 지붕 날개 쪽을 확장해 AV룸을 겸할 수 있는 작은 거실을 만들고, 비스듬한 각으로 생기는 자투리 공간 역시 모두 수납공간으로 구성했죠. 정면에 브론즈경을 붙여 확장 효과도 냈고요.”



1 지붕 라인을 확장해 자그마한 거실을 마련. 소파를 테라스와 등지게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2 위층은 벽을 최소화하고 유리문으로 마감한 것이 돋보인다. 중문에 많이 사용하는 아쿠아 유리는 사람의 실루엣만 보이는 정도로 옷을 갈아입을 때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3 거실과 주방 등 비교적 널찍한 공간이 하나로 트인 아래층은 벽면 마감을 달리해 시각적으로 공간을 분리한 것이 특징이다. 4 취미로 도시락, 그릇 등을 수집해 꽤 많은 수납공간이 필요한 주방. 회색 주방 가구가 심플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자아낸다.

유병안 소장은 다락방의 박공 구조는 아늑하면서도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침실이나 서재로 활용하면 좋다고 귀띔한다. 자칫창문 없는 박공 구조가 답답하지 않을까 염려된다면 벽과 문을 패턴 유리로 마감하는 것도 방법. 패턴 유리 중 아쿠아 유리는 실루엣만 보여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언젠가는 부모에게서 독립한다. 이수형 씨 집처럼 복층 빌라를 비롯해 2층, 3층 수직 구조의 집이라면 이러한 생활 주기에 따라 공간의 역할과 배치를 재구성할 필요가 더더욱 분명해진다. 자녀들이 방학 때 두 달 머무르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위층 계단 중문을 닫아 놓고 지낸다는 이수형 씨. 냉난방비도 줄고, 청소나 관리가 복잡하지 않으니 ‘내겐 너무 편한 집’이다.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