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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젓가락 갤러리 저 집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땅 밑으로 수줍은 듯 숨어 있는 하얀 집이 등장했다. “저 집 뭐지?” 궁금증이 일던 집. 정체를 알고 나면 더욱 의아한 저 집은 젓가락 갤러리 ‘저 집’이다. 이곳은 우리 식문화의 근간이 되는 생활용품이건만 그간 평가 절하한 젓가락을 재발견할 수 있는 곳이요, 젓가락 하나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 알고 보면 더욱 ‘당기는’ 공간이다.


천장의 구름 오브제는 3.5m 크기로 일일이 대나무 빗을 꽂아 완성한 것. 금속 작가 한송준 씨와 협업한 작품으로 공간 중심부를 장식한 연잎 소반의 철사 다리도 그가 제작한 것. 안쪽 벽면은 먹물로 그러데이션한 한지로 동양화의 정취를 더한다.

낮은 지반 위에 지어진 저 집. 마당에는 철거 당시 나온 화강암과 비슷한 가공석을 깔아 공간을 꾸몄다.

1 수저와 수저받침 컬렉션.
2 간결한 젓가락을 모티프로 한 입구 손잡이.
3 소반을 액자 형식으로 장식한 VIP 룸. 
4 ‘저 집’의 1백여 종 젓가락 중 인기 제품들로, 가격은 3만~20만 원. 흑목단에 금속을 결합한 젓가락은 지난 9월 4일 박근혜 대통령 러시아・베트남 순방길에 ‘대통령의 선물’로 선정된 것. 종이접기 수저받침 등 디스플레이는 스타일리스트 김승희 씨가 맡았다.


1백 년 앞을 내다보는 저 집 밥상에서 유일하게 곧게 뻗은 것이 젓가락이다. 밥상 위를 넘나드는 젓가락질은 우아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른바 젓가락의 미학美學이다. 게다가 우리가 젓가락으로 잡지 못하는 것은 거의 없다. 국물만 빼고 말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저서 <미래혁명>에서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이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지배한다”고 했을 정도로 손재주를 키워주고 두뇌 발달을 돕는 역할도 한다. 이런 이유로 젓가락은 서양에서 고급문화로 대접받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선 평가 절하한 것이 사실. 그래서 서울 부암동에 막 문을 연 젓가락 갤러리 ‘저 집’이 유독 반갑다. ‘저 집’은 책갈피 아이템 하나로 국내 시장을 평정하고 해외 5개국으로 수출하는 ‘굿윌’의 박연옥 대표가 수년간 고민한 끝에 선보인 젓가락 브랜드이기도 하다.
“일본 바이어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가면 늘 젓가락 자랑을 한참 늘어 놓았어요. 젓가락 하나에 가지는 자부심이 내심 부러웠지요. 그러던 어느 날 머릿속에 섬광 하나가 스쳤어요. ‘아, 왜 이걸 생각 못했을까.’ 생활 공예품은 우리의 정체성이 담긴 것이고, 일상에서 늘 쓰는 것이니 고부가 가치 상품인 데다 더없이 좋은 선물이니까요.” 해외 출장이 잦다 보니 늘 우리 것을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는 그는 젓가락이라면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단다. 무엇보다 일본과 중국의 젓가락에 밀려 있는 한국 젓가락의 위상을 회복하고 싶었다.
“젓가락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좋은 콘텐츠와 품질, 디자인 모두 자신 있으니까요. 제 꿈은 저 집을 ‘1백 년 가는 집’으로 만드는 거예요.”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기본에 충실해 제대로 만든다. 디자인 젓가락으로 식탁 위에 스타일을 더하고, 옻칠과 나전을 입혀 건강까지 생각한다. 젓가락은 워낙 면이 좁아 디자인이 쉽진 않지만 그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 역시 디자인이다. 그래서 옻의 고장 원주에 있는 장인에게 의뢰할 젓가락의 모형과 디자인도 ‘저 집’에서 직접 한다. 천편일률적인 배꼴(젓가락 모형)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라고. “앞으로는 나무 외에 스테인리스, 유기 등 재료를 다양하게 다룰 거예요. 숟가락도 물론이고요. 12월에는 ‘저 집’을 지은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젓가락도 전시할 계획이에요. 젓가락 하나로 밥상에 재미와 취향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왼쪽 앞부터 박연옥 대표, 스튜디오 베이스의 장병익・ 원장은・전범진 소장, 오피스324의 이호승 실장.

내부 공간 디자인 스케치.

창에 망으로 필터링 효과를 주어 흑백사진을 보는 듯하다.

상자, 포장지, 카드 등의 그래픽 디자인은 오피스 324 (www.office324.com)의 이호승 실장이 맡았다. 젓가락의 평행선이나 ‘저 집’의 획들을 구분한 것. 다식 느낌의 오브제는 획들을 동심원으로 돌린 것.

알고 봐야 더욱 의미 있는 저 집 ‘저 집’은 건축 가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하얀 박공지붕이 부암동 주변의 산세와도 잘 어우러지는데, 낮은 지반 위에 건물을 세운 탓에 언뜻 보면 마치 땅에서 지붕만 쑥 솟아오른 듯하다. 이 집만 하얗게 떠 있는 듯도 하다. 땅이 수 줍은 듯 숨어 있던 덕에 외려 하얀 지붕으로 고개만 내 밀어도 회색 일색인 공간 사이에 포인트가 된 것. ‘저 집’ 이름의 의미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젓가락집이라는 뜻 외에, 지시어 ‘저기’, 나를 낮추는 말 ‘저’의 의미도 담는다. 지리적 특색과 지역의 분위기를 건물 디자인뿐 아니라 이름에도 일관성 있게 반영한 것. 구석구석 드러내기보다는 비어 있는 공간으로, 숨은 것을 찾아내는 곳인 셈이다. 그래서 이곳은 외려 눈에 띈다.
공간 디자인과 시공은 스튜디오 베이스(02-3444-5804)의 전범진·원장은·장병익 소장이 맡았는데, 설계부터 완공까지 들인 기간은 약 5개월. 20평 남짓한 공간임을 감안하면 여간 공을 들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마음에 은근히 스며드는 매력이 구석구석 자리해 있다. 박공지붕 한 편의 작은 옥상은 이 건물의 수평적인 공간으로 바깥의 도로면과 높이가 비슷하다. 휴식 공간이자 도로의 움직임과 주변 풍경을 만끽하는 전망 공간인 것. 굳이 외부에 계단을 둔 것도 ‘불편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계단으로 이어지는 ‘저 집’의 중심 공간인 내부는 외부와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다란 젓가락을 모티프로 한 철사 위에 놓인 반상이다. 연잎을 형상화한 소반은 만지면 살살 움직이는데, 이 또한 물 위에 떠 있는 아슬 아슬한 감성을 내주면서 공간의 효율성도 높인다. 또한 구름을 연상시키는 오브제의 소재는 대나무 빗자루로, ‘저 집’ 젓가락의 주요 소재이자 시잣이 나무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VIP 룸 벽면에는 소반이 액자처럼 걸려있다. 상 위에 올린 젓가락 모습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다. 공기, 부피감, 밀도감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도 신경 써 갤러리 안 가득 편안한 기운이 흐른다. 젓가락이라는 모티프와 부암동이라는 장소성을 깊이 있게 해석하고 조화시켜 오늘날의 한국적인 정서를 충실히 담아낸 공간이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42-1 문의 02-3417-0119

글 신민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