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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한옥 가회동 청춘재
한옥이 멋있고 좋은 줄은 알지만 바쁘고 여유 없는 삶을 살기에 그저 먼 일이라 치부하고 포기하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하지만 청춘재의 주인장은 포기하지 말고 꿈을 꾸라고 말한다. 꿈을 꿔야 꿈을 이루는 기회가 생기는 법. 내 소유가 아니면 어떤가. 하룻밤 묵어가는 청춘재는 그 하루 동안은 온전히 내 한옥인 것을. 작지만 큰 한옥 청춘재靑春齎 이야기.


작가 정광호 씨의 물고기 조각이 곧 비상할 것처럼 걸려 있는 마당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청춘재의 대문은 공간의 한계 때문에 한 짝 대문으로 만들었지만 그래서 더 정겹고 친근하다.


‘자투리 땅’이란 바로 청춘재의 부지 같은 곳을 이르는 하는 말이다. 한옥들이 오밀조밀 밀집해 있는 가회동 31번지 교차하는 골목 사이, 모퉁이에 애매하게 자리한 좁고 삐죽한 땅에 청춘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한옥은 <행복>에도 소개된 적 있는 ‘심심헌 尋心軒’의 주인 조주립 씨의 두 번째 한옥이다. 대지 면적은 고작 19평. 게다가 변형된 마름모 꼴 두 개가 나란히 붙은 형상이다. 조주립 씨는 심심헌 근처에 개인 주차장을 만들 요량으로 이곳에 공사를 시작했다가 이처럼 주차장과 주거용 한옥을 완성하게 됐다. 주거 지역이지만 지형이 워낙 열악했기에 처음엔 이 좁은 땅에 사람 사는 공간이 제대로 완성될지 의문이 생겼다.
무슨 공간을 어떻게 구색 맞춰 넣을지 완벽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지만 일단 원래 땅의 용도대로 집을 지어보자고 마음먹었다. 2010년 완성하고 보니 참으로 신기하게도이 작디작은 한옥에 안방과 대청, 누마루와 화장실 그리고 대청에서 서너 계단 내려가면 나타나는 부엌과 아담한 마당까지 부족함 없이 갖춘 공간이 되었다.
“일단 꿈꾸고 해보면 이루는 방법이 나오게 마련이지요. 집 입구가 좁아서 대문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문을 하나만 달았거든요. 그런데 이 문 크기가 보통 한옥 대문보다 커요. 대문이 두 짝이더라도 결국 출입할 때 쓰는 문은 하나이니, 들고 나는 입구 문만 본다면 청춘재의 대문이 더 큰 셈이지요.” 구석구석 세심하게 고민해 이 한옥을 완성한 조주립 씨의 설명이다. 


1 누마루에 앉으면 창밖으로 기와지붕이 줄줄이 이어지는 근사한 골목 풍경이 보인다. 
2 청춘재라는 이름처럼 조주립 씨는 이곳에 젊은이들이 많이 머물 다 가기를 바란다. 가운데 앉아 있는 젊은이는 조주립 씨의 아들로, 뉴욕에서 건축가로 활동한다.
3 누마루 옆으로는 아래층 주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이어진다.
4 누마루 아래쪽에 있는 부엌 공간. 작지만 필요한 것은 다 준비되어 있다.

안방에는 필요에 따라, 혹은 장식으로 달아 놓은 문과 창이 있다. 각기 다른 문과 창의 문양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청에서 누마루 쪽을 바라본 모습. 넓진 않지만 멋과 풍류가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게 되는 한옥이다.

청춘들이 한옥을 체험하는 곳 조주립 씨의 첫 번째 한옥 심심헌은 북촌에서 사라져가는 한옥을 지키기 위해 2004년 완성한 집으로, 전통 건축 방식을 고수해 한옥의 격과 멋은 살리면서 현대적 기능을 조화롭게 배치해 호평을 받았다. 완공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여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 심심헌이 한옥의 멋을 감상하고 견학하는 곳이라면, 청춘재는 한옥에서 오롯이 하루를 지내며 우리 문화를 체험하는 게스트 하우스다.
조주립 씨는 창의 비율, 조명등을 감싼 한지 등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고친 심심헌의 주인답게 청춘재 역시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도 꼼꼼하게 신경 썼다. 문화재 대목기능인 제1778호 정영수 대목을 비롯, 완성하는 데 3년이나 걸린 심심헌을 함께 만든 목수와 장인들이 청춘재를 위해 또다시 작업에 참여했다.
그래서일까, 청춘재에 들어서면 누구라도 한 번쯤 머물다 가고 싶을 만한, 단아하고 기품 있는 공간의 매력이 느껴진다. 새것처럼 뻣뻣하지도 않고 방치한 것처럼 낡지도 않은, 딱 알맞게 따뜻하고 우아한 질감의 고재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늑함을 선사한다. 정갈하고 담백한 한지 바른 창과 은은한 빛을 받아 그 창에 드러나는 문살 그림자는 바라만 보아도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치유가 되는 듯하다. 공간마다 바깥으로 향하는 작은 창을 열면 각각 옆집의 감나무와 소나무가 그림처럼 눈에 들어오고, 굽이굽이 이어진 기와지붕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차 한잔, 술 한잔을 벗과 나누며 풍경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스트 하우스로 활용 중인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이런 충만함 속에 잊지 못할 하루를 체험하고 갈 듯하다.
“청춘재는 이름처럼 젊은이들이 꿈을 꾸고 가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꿈조차 꾸지 않고 지레 포기하잖아요. 한옥이 좋기는 하지만 여유 없는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라며 포기하고 말죠. 하지만 저는 청준재를 통해 한옥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작게라도 한옥을 소유할 수 있어요. 만약 그럴 상황이 안 된다면 청 춘재에 머무는 그 하루 동안은 한옥이 온전히 내 집이 되는 거죠. 안 된다는 생각 말고 일단 꿈을 꾸길 바라요.”


작은 화장실임에도 아기자기한 수납공간, 옆집 담장 풍경을 볼 수 있는 작은 창까지 갖추었다.

처음 이 한옥이 탄생한 계기가 된 주차장. 긴 삼각형의 한쪽 절반이 주차장인 셈이다.



못난이 땅이 만들어낸 독특한 집 구조 작은 땅, 그것도 네모반듯하지 않은 마름모꼴 두 개가 붙은 모양의 땅에 들어선 한옥인지라 청춘재에는 독특한 구조가 여럿 탄생했다. 코너에 자리 잡은 마당과 화장실은 삼각형 공간이 되었다. 아담한 삼각형 마당엔 보랏빛 물망초가 옹기종기 자리 잡고, 대문에서 집 안으로 이르는 길은 포방전을 모자이크 작품처럼 모양내서 깔아 멋스럽다. 이 한옥과 옆집의 경계가되는 마당 한쪽 담에는 작가 정광호 씨의 거대한 물고기 조각을 설치했다. 넓진 않지만 멋과 풍류가 있어 대청이나 안방에서 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푸근한 마음이 드는 마당이다.
역시 삼각형인 화장실은 이 한옥에서 가장 좁은 공간. 각진 공간 때문에 특별히 그 형태에 맞추어 세면대를 따로 주문 제작했다. 화장실 내부는 옥상 방수용 도료로 흔히 쓰는 초록색 도료로 마감했는데,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것이 사실 바닥용 도료거든요. 바닥에는 적합하지만 벽에 칠하기에는 힘든 재료예요. 벽 부분이 깔끔하게 마감되지 않고 줄줄 흘러내려 물 자국이 계속 생겼죠. 그걸 다시 갈아내 덧칠하고 또 덧칠하고…. 세 번을 다시 칠해 완성한 것이랍니다.”
이 좁은 집의 백미는 누마루. 집을 짓는 도중 부엌 높이를 살짝 낮추었더니 설계 당시엔 수납공간이던 다락이 의젓한 누마루가 되었다. 부엌은 누마루 아래로 계단을 내어 만들었다. 청춘재 안에서 보자면 지하에 해당하는 셈이지만 경사가 진 지대 덕에 밖에서 보면 부엌도 지상에 자리한 셈이다. 그 때문에 작은 살창으로 바깥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답답하지 않은 부엌이 되었다. 세탁기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놓을 자리가 부족했는데, 이것은 부엌에서 대청 아래쪽으로 땅을 더 파내 공간을 확보했다. 아마 청춘재보다 작은 한옥을 만나기는 어려울 듯싶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데 모든 것을 아쉬움 없이 갖춘 한옥을 만나기는 더 어려울 듯싶다. 한낮부터 해 저물녘까지 안방에서, 누마루에서, 마당 쪽마루에서 청춘재의 시간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작아도 한옥이기에 풍요로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 한옥과 면적이 같은 아파트나 오피스텔이라면 이런 풍경과 마당과 하늘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곳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꿈꿔볼 수 있는 공간이기에 ‘청춘’재이고,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늘 새로운 꿈을 꾸는 조주립 씨의 청춘 같은 열정이 담겨 있어 ‘청춘’재다.

청춘재 체험하기 청춘재는 게스트 하우스로, 또는 회의를 위한 공간으로 대여 가능하다.
문의 02-763-3393, www.simsimheon.com


청춘재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아이디어

1 반듯하지 않은 세면대
독특한 땅의 구조상 삼각형인 화장실은 이 한옥에서 가장 좁은 공간. 각진 공간에서 가장 난감하던 것은 세면대를 놓을 위치였다. 네모반듯한 세면대 대신 모서리 공간 형태에 맞추어 세면대를 따로 주문 제작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2 창호 안에 숨긴 거울 전신을 볼 수 있는 긴 거울은 방 안에 놓기에는 부담스러운 아이템. 안방 가장자리 창호(두껍 닫이) 안에 전신 거울을 숨겨 설치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3 필요할 때만 여는 TV장 까만 대형 TV는 특히 한옥 과 어울리기 힘든 가전제품이다. 대청 벽 쪽에 수납장을 짜고 그 안에 TV를 넣어 고민을 해결했다. 사용할 때만 문을 열고 그러지 않을 때는 문을 닫는다.

4 부엌과 통하는 쪽창 누마루 아래로 부엌을 만들면서 부엌과 대청 사이에 작은 쪽창을 만들었다. 이는 전통 한옥에 서 볼 수 있는 구조로, 부엌에서 만든 간단한 음식을 쪽창으 로 건넬 수 있어 정겹고 편리하다.

5 멋스럽게 가린 계량기 대문 왼편 담벼락에는 나무로 계량기 함을 짜서 설치했다. 계량기 함 옆 자투리 공간은 벽 돌을 갈아 만든 ‘백수백복도’의 복福 자로 장식했다.

6 각각 다른 멋을 자아내는 네 개의 창 가로로 긴 창을 내고 싶어 만든 누마루의 창에는 무려 네 종류의 창이 설치되어 있다. 방충망, 유리, 문살, 한지 등 각기 다른 소재 를 사용한 창은 어떤 것을 닫아놓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멋 을 즐길 수 있다.

7 색다른 멋 살린 길 집이 좁다 보니 대문에서 안으로 밟 고 들어가는 길만큼은 마음 설레고, 기대되는 공간으로 만들 고 싶었다. 포방전을 각기 다른 모양으로 갈고 패턴처럼 배열 해 멋을 살렸다.

글 손영선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