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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한, 최은미 씨 부부와 은보, 규보의 카톡으로 지은 집
외관이 점잖고 평범해 보이는 ‘이보재’는 겉보기와 달리 버라이어티한 내부 구조를 갖춘 듀플렉스 하우스, 땅콩집이다. 건축주가 해외 파견 근무를 나갔던 10개월 간 SNS 채팅방에서 소통하며 지어 더욱 특별한 ‘이보재’의 별난 건축 일지를 들여다보면 집 짓기에 대한 즐거움이 차고도 넘친다.


이보재의 입구 쪽 외관. 세로로 긴 형태의 집 두 채가 앞뒤로 붙어 있는 땅콩집이다.

은보와 규보, 두 아이의 이름을 딴 땅콩집 ‘이보재’에서 만난 심재한ㆍ최은미 씨 가족. 미끄럼틀로 연결되는 위층에는 두 아이의 방과 부부 침실, 다락방 느낌의 취미실 등이 스킵 플로어 구조로 이어진다. 심재한 씨와 규보 뒤로 보이는 공간은 가족실로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개방감을 살렸다.

‘카카오톡으로 지은 집’이란 별칭에 걸맞게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한 디렉션을 제시한 건축주 심재한 씨의 다이어리와 이미지 노트들. 그 못지않게 꼼꼼한 건축가 김동희 소장 역시 이 집이 완성되어가는 모든 과정을 한 권의 건축 노트로 엮어 선물했다.

집을 짓는 일이 녹록지 않다는 것은 집을 지어본 사람은 물론, 집을 짓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이 이미 겪었거나 우려하는 사실이다. 집을 지으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는데, 이러한 이들의 어깨에 힘을 실어준 사건(?)이 바로 2011년 등장한 ‘땅콩집’이 아닐까 싶다. 하나의 택지에 두 채의 집을 맞붙여 지은 이른바 땅콩집은 땅값과 건축비를 두 가구가 나눈다는 면에서 비교적 경제적이며 아파트의 한계를 벗어나 집주인의 개성을 살릴 수 있다. 물론 땅을 밟고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도심에서 멀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다양한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협소 주택의 대안이자 대명사처럼 자리 잡은 땅콩집은 심재한 씨 부부가 ‘이보재’를 짓는 계기이자,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땅콩집 ‘집’을 곧 ‘가족’이라고 여긴 심재한 씨 부부에게 집 형태나 규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15년 아파트 인생을 바꾼 계기는 바로 땅콩집이었다. 집을 짓고 살겠다는 사람들의 막연한 동경을 가능성 있는 현실로 제시한 땅콩집의 강렬하던 여파가 심재한 씨 부부에게도 통한 것이다. 땅콩집을 알게 된 이후 단번에 집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심재한 씨 부부에게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추진력이 있었다. 아내를 설득하는 대신 땅콩집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공유하며 집을 짓고자 하는 로망을 공감하기 시작한 게 이보재의 산뜻한 출발이 됐다. 먼저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자면 함께 집을 지을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와 동시에 땅을 구하는 일도 시작했다. 부부의 직장을 감안해 동탄, 동백, 판교 등 주택 단지가 조성된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물색했다. 그러던 와중에 공교롭게도 심재한 씨의 프랑스 파견 근무가 결정됐다. 파견 근무 기간이 거의 1년이던 터라 온 가족이 함께 떠나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변수도 심재한 씨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빠듯한 시간 탓에 함께 집을 지을 사람을 찾진 못했지만 땅은 세심하게 비교한 끝에 판교로 정했다. <두 남자의 집 짓기>의 저자인 건축가 이현욱 소장을 시작으로 그가 소개한 여러 건축가를 만나면서 자신의 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하나하나 완성해갔다. 그 시간만큼 건축 그리고 집에 대해 연구하고 탐닉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과정에서 만난 건축가가 바로 김동희 소장이었다. “제가 아무리 충분한 자료 조사를 거치고 구체적 인 그림을 완성했다고 해도 건축가가 해결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전문적이고 확고한 분야예요. 어떤 면에서 볼 때 건축가는 특별한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김동희 소장의 창의적인 면모가 좋았습니다.” 출국 시기는 2012년 2월로 정해졌다. 심재한 씨 부부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2012년 1월 30일 건축가 그리고 시공사와 각각 계약을 마친 후 한국을 떠났다. 그들이 돌아올 10개월 뒤를 기약하면서 말이다.

 
세로로 긴 평면에서 주방의 반대쪽, 계단실 뒤쪽에 자리한 서재 겸 AV룸. 건축주가 원한 서재 가구를 완벽하게 재현한 공간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음악을 듣는 가족실이다.

계단 중간에서 바라본 아이 방. 보라색과 파란색의 싱그러운 대비가 인상적이다.

1, 2 2층 큰딸 은보의 방은 보라색으로 칠했다. 동그란 창이 재미있는 풍경을 만든다.

3 다락방이라 불러도 좋을 심재한 씨의 취미실. 오디오와 책들이 낮게 자리한 모습이다.
4 아들 규보의 방은 파란색이 포인트다.

5 계단 앞에 자리한 주방. 보 느낌의 천장 구조물과 공중 수납장, 주방 가구는 모두 용도에 맞게 같은 수종의 나무로 제작했다.
6 주방은 왼쪽으로는 현관, 오른쪽으로는 계단, 정면으로는 발코니 창이 자리한 구조다. 색색의 쪽창은 건축가의 재치가 드러나는 부분.

건축주 없이(?) 지은 집 인생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듯이 심재한 씨 가족의 귀국은 2013년 2월 초로 늦춰졌다. 입국 날짜를 감안해 건축 일정을 짰고 기존의 집과 살림은 모두 정리한 상태였다. 입국하자마자 아이들은 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자칫 겨울이라 공사가 중단되면 족히 반년은 집이 없는 상태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집을 짓기 시작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상 불가능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던 심재한 씨는 추석이 지난 지난해 9월 이후 건축가와 건축주, 현장 소장이 만날 수 있는 SNS 그룹 채팅방을 열었다. 이보재를 위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한 것이다. 시공사도 꼼꼼하게 비교한 끝에 골랐으며 건축가와도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 뒤라 건축주 심재한 씨는 ‘일단 믿자!’라는 심정으로 공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SNS를 통한 실시간 대화 덕분에 시공간을 초월한 그들의 합작품은 빈틈없이 채워지고 다져져갔다. 물론 모든 과정은 서로를 신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택은 삶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살아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고 생각하면서 지었어요. 그러니 미팅 때부터 즐거워야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건축주가 집에 대한 열정이 워낙 강했고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에 저도 특별히 걱정하지 않았어요. 조금 별난 건축 과정이었지만 어떤 작업보다 즐겁게 일했지요. 결과도 만족스럽습니다.” 2010년 건축사 사무소 케이디디에이치KDDH를 시작한 이후 첫 주택 작업을 맡은 김동희 소장은 이보재를 기분 좋은 작품으로 회상한다. 건축 작업 못지않게 회화나 설치 작업 등을 통해 자신의 건축관과 예술관을 접목하는 재주를 지닌 건축가에게는 꼭 맞는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이보재는 협소 주택의 단점을 보완한 스킵 플로어skip floor(각 층의 바닥 높이를 층계참마다 반 층 차 높이로 설계하는 방식)를 적용한 집이다. 층간 소음이란 시대적 고통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계단 대신 미끄럼틀을 타고 다니며 집을 누빈다. 심재한 씨는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장소도 마련했다. 스킵 플로어를 적용한 덕분에 각 공간은 효율적으로 분리됐다. 주방과 가족실이 1층, 아이들 방이 2층, 반 층 위에 부부 침실, 반 층 위에 취미실과 서재인 다락방 등이 각각 대각선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거실 바닥은 입식 생활에 적합하도록 타일로 마감했고, 벽면의 경우 회벽을 발라 환하고 넓은 공간감을 살렸다. 전체 분위기는 목조 주택의 쾌적함과 따뜻함을 잘 살렸다. 특히 계단실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세로로 긴 평면 구조의 집 구석구석을 환하게 밝힌다.

외관은 예산에 맞춰 경제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보이는 스터코 마감으로 단순하게 마무리했다. 불규칙과 규칙을 교묘하게 교차한 창과 컬러풀한 진입로를 통해 건축적 포인트를 더한 것은 건축가의 제안이었다. 이보재는 심재한 씨 가족이 살고 있는 111㎡(34평) 규모의 집과 83㎡(25평) 규모의 집 두 채가 나란히 붙어 있는 형태다. 옆집 역시 평면이 약간 다를 뿐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 스킵 플로어는 그대로 적용했다. 지금은 임대를 준 상태인데 젊은 신혼부부가 살고 있다.


1 각진 나선형 계단실을 통해 보이는 천창 덕분에 훌륭한 채광 조건을 갖췄다.
2 위층에서 바라본 계단실 모습. 길게 늘어뜨린 펜던트는 심재한 씨 부부가 프랑스에서 공수했다.

3 1층에 자리한 손님용 화장실은 건식으로 미니멀하게 완성했다.
4 빨간색으로 명랑한 포인트를 더한 이보재의 현관. 

이보재에 깃든 건축주의 열정 ‘항상 빛이 들어오는 집’ ‘미끄럼틀’ ‘스킵 플로어’라는 세 가지 요구 사항에서 시작한 이보재는 건축주의 구체적 요구와 건축가의 창의성이 빚은 옹골찬 집이다. 인테리어는 건축주가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거실과 아이들 방, 메인 천장, 가족실 등에 설치한 조명등과 오디오 시스템은 프랑스 파견 근무 시절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둘 사 모은 것으로 직접 배송하거나 들고 와 설치한 것이다. 건축주는 냉장고가 들어갈 나무 장이며 가족실의 서재 가구도 직접 그려 시공 담당자에게 보내는 꼼꼼함도 잊지 않았다. 욕실 타일과 집 안 곳곳의 페인트 컬러는 물론 아이들 방의 벽지 역시 은보와 규보가 직접 골랐다.

묶으면 족히 백과사전 두께가 될 만한 자료를 수집한 심재한 씨는 평면도며 입면도, 조감도까지 그려가며 가상의 이보재를 리얼하게 완성해갔다. 자신이 그린 설계도가 하나하나 현실화되는 시공 현장을 지켜보는 것은 고맙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건축가는 건축주와 나눈 대화 내용과 전달받은 이미지를 모두 스캔했고, 이것을 묶은 한 권의 건축 일지는 집이 완성됨과 동시에 심재한 씨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 건축주에 그 건축가라 할 만한 궁합이다. 하지만 심재한 씨 가족의 이보재 일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에게 더 알맞은 집을 완성하기 위해 오늘도 이보재는 채워가며 다듬어지는 중이다.

건축가 김동희 씨는 건축사 사무소 케이디디에이치(KDDH, 02-2051-1677, dimdimdim.com) 대표 소장이면서 서울건축사협회 청년 건축사 유니온 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부기우기 행성 탐험’ ‘붉은 미친’ ‘욕망채집장치’ 등의 드로잉과 설치 작품 전시를 통해 창조적인 공간 창출을 또 다른 은유로 표현해왔다. 기존 작업으로는 다수의 상 공간이 있고 이보재는 주택으로는 그의 처녀작이며 현재 오산 큐브 하우스, 전주 주택 등을 작업 중이다.
글 곽소영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