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디자이너들은 최초의 미니멀리스트였죠”
발루아 갤러리 대표 체스카 발루아 . 밥 발루아 부부
짙은 파란 눈에 구불구불한 금발 머리, 파란 스트라이프 니트와 짙은 감색 바지. 언뜻 보아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체스카 발루아Cheska Vallois가 한참 갤러리 내부 정리에 몰두해 있다. 가구와 그림들의 위치를 조정하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파리의 갤러리스트 그대로다. 보헤미안 같으면서도 지적인 분위기에 걸맞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갤러리 안에 울려 퍼진다. ‘발루아 갤러리Galerie Vallois’는 가구 갤러리가 밀집한 센 강의 생제르망 대로 근처에 있다. 아르데코 가구를 전문으로 다루는 발루아 갤러리의 작품 리스트는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신다. 훌만, 루소Rousseau, 그루트, 이리브, 하토 같은 쟁쟁한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들부터 자코메티Giacometti의 조각까지 아르데코의 정수를 모아놓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작품을 다 취급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남편인 밥Bob Vallois과 내가 갤러리를 연 것은 1971년이에요. 그때는 아무도 아르데코에 관심이 없었죠. 당시는 18세기 오브제 아트가 최고 인기였어요. 때문에 우리는 싼 가격에 아르데코 작품을 살 수 있었고 지금보다 작품을 찾아내기도 쉬웠어요.” 이들 부부가 처음으로 아르데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포네 도서관에서였다. 귀족의 서재를 개조해 만든 그곳은 알찬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 도서관. 오브제 아트에 관심이 많았던 밥과 체스카 두 사람은 도서관 서가를 거닐면서 연애를 했는데, 어느 날 책장 구석에 꽂혀 있던 아르데코 자료를 발견하면서 그 멋에 매혹되었다. 모던한 디자인, 상어가죽과 양피지, 상아와 금속까지…. 고급스러운 재료로 완성한 가구에는 당시 유행하던 18세기 가구와는 전혀 다른 현대적인 느낌이 담겨 있었다. 1971년 그들은 센 강 갤러리 지역에서 최초의 아르데코 전문 갤러리를 열었다. “이 시절의 디자이너들은 최초의 미니멀리스트였어요. 그러면서도 온갖 고급 재료들을 섬세하게 가공하던 옛날 장인들의 수공 기술을 수용했죠. 클래식하게 균형 잡힌 형태에서 재료로만 그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이 아르데코 스타일입니다. 프랑크의 이 서랍장을 보세요. 단색으로 마감된 상어가죽과 검은 나무와의 조화, 단순하지만 화려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잖아요?”
장 미셸 프랑크Jean Michel Frank는 요즘 체스카 발루아의 뜨거운 관심사다. 장 미셸 프랑크는 1930년대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자코메티와 협동 작업을 하기도 했었으나 그동안 소수의 컬렉터들을 제외하고는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전설 속의 가구 디자이너. 올해 파리 앤티크 비엔날레에 출품하기 위해 체스카는 1년 전부터 부지런히 그의 작품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30점의 오브제를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희귀한 장 미셸 프랑크의 작품이 출품된다는 사실에 프랑스 언론은 흥분했고, 체스카는 지난 한 달간 각종 잡지와 신문 인터뷰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최근 아르데코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2000년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상어가죽으 로 마감된 프랑크의 작은 가구 한 점 가격이 48만7천7백 파운드를 기록했죠.” 그뿐만이 아니다. 작년 파리의 한 경매장에서는 랑방 아파트를 장식했던 하토의 테이블이 2백만 유로에 거래되기도 했다. 체스카는 자신이 갤러리를 처음 열었던 시절에는 아르데코의 대표적인 작가인 훌만의 옷장도 1천 프랑(현재 1백50유로 정도)을 넘지 않았고 하토의 작품이라도 1만 유로면 살 수 있었다며 빙그레 웃었다. “아르데코는 다른 시기와 달리 작품 수가 많지 않아요. 이미 가격이 오른 대가들 외에 프랑크같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가치가 있는 작가를 발굴하는 일은 그래서 무척 중요하죠.”
아직 아시아권에는 아르데코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며 체스카는 가구와 함께 전시해놓은 도자기들을 보여주었다. 아르데코 디자이너들은 동양 문화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 단순한 형태, 오묘한 색채가 조화된 동양 자기들은 이 시대의 유행 품목이었다. 아르데코 가구는 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고급스러운 오브제들과 잘 어울린다고. “그러나 아르데코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빛을 발한답니다. 진짜 아름다운 것들은 어디서나 말없이 빛나죠.” 아르데코의 작품과 30년이 넘게 사랑에 빠져 있는 체스카의 눈 역시 반짝반짝 빛났다
1 체스카 발루아 . 밥 발루아 부부는 지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영락없는 파리지엔이다. 사진 제공 Vallois
2 1923년산 피에르 샤로Pierre Chareau의 테이블. 기하학적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3 상아 손잡이가 달린 칠기 뷰로는 아르데코 시대의 여성 건축가 엘렌 그레이의 디자인이다.
4 갤러리 발루아의 내부. 이곳에는 훌만, 루소, 그루트, 이리브 등 쟁쟁한 아르데코 디자이너의 작품이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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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쓰기에도 여전히 멋스러운 가구지요”
리프러덕션 가구 컬렉터 최은희 씨
최은희 씨는 가구 계통 일을 했던 부친 덕에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가구들에 둘러싸여 자라는 행운을 누렸다. 때문에 가구를 보는 그의 안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그가 최고로 치는 가구 스타일은 단연 아르데코. 세련되면서도 고전적인 아르데코 가구는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테리어와 가구에 진정 관심이 있다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긴다. “가구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집에 두고 감상하는 것으로는 모자라 작년에는 드디어 숍을 열게 되었어요. 이곳에서 요셉 호프만, 엘렌 그레이 등 유명한 아르데코 시대 디자이너의 리프러덕션 가구와 여기에 어울리는 모던 가구를 함께 선보이고 있죠.” 그의 숍인 신사동 네오필의 쇼윈도에는 헤리트 리트펠트의 ‘레드 ?블루 체어’와 요셉 호프만의 ‘하우스 콜러Haus Koller’ 소파가 진열되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이탈리아의 존타, 독일의 필립 플레인 등 현대 디자이너의 작품이 과거 아르데코 디자이너의 작품과 함께 사이좋게 전시되어 있다. 인체상, 추상 조각 등 예술적인 오브제와 영롱하게 빛나는 유리 오브제도 눈에 띄는데, 이는 아르데코 가구의 멋을 한층 배가시켜주는 아이템. “사실 이곳에도 가구가 많지만 정말 아끼는 멋진 디자인의 가구들은 집에 있어요.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아르데코에 어울릴 만한 멋진 집을 짓고 디자인이 뛰어난 가구들만 엄선해서 놓고 사는 것이 꿈이죠.” 미술을 전공한 최은희 씨의 뒤를 이어 그의 딸 황세원 씨는 프랑스 낭시국립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교수들도 호기심을 나타내는 독특한 가구를 디자인한다고 하니, 곧 아르데코 스타일을 뛰어넘는 멋있는 가구를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1 최은희 씨가 앉아 있는 매끈한 스티치 라인이 아름다운 블랙 소파는 요셉 호프만의 1911년 디자인이다.
2 기하학적 디자인과 거울 장식이 멋스러운 장은 이탈리아 가구 디자이너 존타의 디자인.
“독특하고 혁신적이기에 끌릴 수밖에 없어요”
앤티크 도자기 컬렉터 한동숙 씨
한동숙 씨가 앤티크 도자기를 컬렉션한 것도 올해로 벌써 10년째에 접어든다. 그 시간 동안 앤티크 도자기의 매력을 더욱 깊이 알게 되기도 했지만, 경매 시장에 종종 등장하던 아르데코 도자기에 어느새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1백 년이 넘어야 ‘앤티크’라는 수식이 붙는 까닭에 1920년대 양식인 아르데코는 아직 앤티크라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기하학적이고 독특한 디자인에 반해 기회가 될 때마다 몇 점씩 컬렉션을 했다. 아르데코의 대표적인 디자이너인 셸리Shelley의 티포트 세트, 르네 랄리크의 유리 오브제는 내놓고 자랑할 만한 컬렉션 목록이다. 더불어 마이센의 화기와 로열 우스터의 그릇 등 아르데코 양식의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그릇과 테이블웨어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아르누보 스타일에 더 매력을 느꼈어요. 장식적으로 기교를 부려 꼬아내린 곡선하며 현란한 색채가 일단 눈길을 사로잡잖아요. 그런데 아르누보는 시간이 지나니까 너무 현란해서 오히려 지치고 싫증이 나더라고요. 그에 비하면 아르데코는 혁신적인 디자인이 지금 보아도 여전히 세련되었고, 오히려 현대의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줄 정도지요.” 그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함께 간결하면서도 우아하고 고급스럽다는 점을 아르데코의 매력으로 꼽는다. 아르데코 특유의 기하학적인 모티프는 도자기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는데, 도자기의 경우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각을 만들어 기하학적인 형태로 완성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가 깊다고 한다.
앤티크 도자기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더욱 발전해 최근에는 경기대학교에서 식공간 연출을 공부하고 있다. 이 배움을 응용해 연말쯤에는 자그마한 갤러리를 꾸밀 계획.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냥 소박한 개인 박물관이 될 거예요. 일본에는 이런 소규모 박물관이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보기 드물어서 참 아쉬워요. 나중에 저의 갤러리에 놀러 오시면 많지는 않지만 제가 소중하게 모은 도자기 컬렉션과 아르데코 그릇 또한 접할 수 있으실 거예요.”
1 대표적인 아르데코 디자이너인 셸리의 티포트 세트, 기하학적 디자인이 영락없이 아르데코 양식임을 말해주는 마이센 화기 등 자신의 컬렉션을 보여주는 한동숙 씨.
2 아르데코 디자인은 재떨이와 포크 같은 생활 속 작은 부분까지 적용되었다.
3 아르누보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는 그릇. 로열 우스터 제품.
4 1930년대 와인 잔. 잔의 기둥이 육각형 형태를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