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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심장, 부엌으로 초대합니다
분명한 취향으로 공간을 채워나가는 과정은 에너지 넘치는 순간의 연속이다. 사람 불러 모으는 게 낙이자 손맛 깃든 집을 원한 집주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스타일리시하게 구현한 아파트. 이 집의 심장부는 부엌이요, 이 부엌에서는 매일 파티가 열린다.


붉은 벽돌과 인더스트리얼 모티프의 구로 철판 소재를 더해 완성한 주방. 천장에서 내려오는 랙 타입의 행잉 선반은 자주 꺼내 쓰는 프라이팬, 냄비 등을 걸어두기 좋다. 600kg 정도의 하중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천장 보강 작업을 확실히 했다.


편리하면서도 아늑한 ‘집 다운 집’
홍콩, 미국 등 오랜 기간 외국에서 생활한 집주인 이재희 씨가 원하는 것은 한 가지. 모델하우스 같은 집 말고 ‘집다운 집’이었다. 들어서는 즉시 따뜻하고 편안하게 반겨주면서 동시에 개성 넘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
“미국에 살면서 주택 생활에 회의를 느꼈어요. 아이들이 어리면 뛰노는 맛에 살겠는데, 이제는 편한 게 최우선이더라고요. 생활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주상 복합 아파트를 선택한 이유죠. 대신 사람을 불러 모아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 게 낙인 만큼 부엌은 힘주고 싶었고, 주택을 포기한 아쉬움 때문인지 어느 공간이든 벽돌을 사용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완성한 공간이 바로 이 집의 주인공, 레스토랑 콘셉트의 주방이랍니다.”
누군가 갑자기 찾아왔을 때 냉장고에 있는 재료 몇 가지로 뚝딱 일품요리를 차려내는 집주인 이재희 씨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은 스트레스가 아닌 활력소다. 그러니 주방은 손님을 맞이하고 마주하며 요리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사교의 장이 될 수밖에. 그는 다이닝의 영역을 거실까지 확대하기 위해 소파 맞은편에 TV를 두지 않고, 식탁을 가장 전망 좋은 곳에 배치했다. 또한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팔을 뻗치면 닿는 곳곳에 주방 기구와 그릇을 정리해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고, 음식을 담아내기까지 이리저리 방향만 돌리면 모든 일을 원스톱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치 홍콩의 코즈웨이베이와 흡사한 전망을 자랑하는 고층 아파트의 매력을 한껏 만끽하기 위해 거실 조명 기기를 과감히 생략했다. “집 안 분위기를 더욱 아늑하게 만들고 싶다면 형광등보다는 매입이나 레일 조명등 같은 간접 조명이 좋아요. 스위치 대신 조광기를 설치해 원하는 대로 밝기를 조절하면 빛에 따라 다양한 공간 연출이 가능하죠. 조도를 최대한 낮추면 야경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즐길 수 있어요.”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은 이길연 실장의 귀띔이다.


1 침실은 헤드보드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볼 수 있게 침대를 배치했다. 높은 헤드보드 뒷면은 수납장으로 구성.
2 쓰던 가구와 새로 산 물건이 어우러지는 공간도 중요한 포인트. 중국 가구는 해외로 이사할 때도 늘 함께 다닌 가구로 하상림 작가의 회화 작품과도 잘 어우러진다. 
3 오토바이, 오디오, 스키, 등산 장비 등 모든 레저용품이 모여 있는 남편의 취미 방. 남편은 매일 아침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 
4 구로 철판으로 마감한 벽에 무지주 선반, 같은 소재로 맞춤 제작한 그릇장을 배치해 평소 자주 쓰는 그릇을 수납했다.

5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주방.
6 가벽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책장, 한쪽은 삼각 미니 책상을 구성한 아이디어가 재밌다.

호텔 욕실처럼 물기 없이 편안하고 쾌적한 건식 욕실. 욕실 한쪽 벽면에 벤치를 배치하고 돌의 거친 질감이 느껴지는 타일로 마감해 마치 휴양지에 온 느낌이다.


자유로운 가구 배치로 공간의 틀을 깨다
주방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색감과 재질, 디자인이 다른 마감재와 가구가 공존하는데 신기하게도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는 스타일이 다른 물건과 가구를 무작정 나열하기보다 한 덩어리씩 묶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했기 때문. 아일랜드 작업대를 중심으로 한 행잉 수납공간, 그릇이 가득한 선반 수납장, 응접실 기능을 하는 낮은 테이블과 소파, 모던한 다이닝 테이블 등 가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간을 구분하고 범위를 지키니 따로 또 함께 있는 열린 공간이 완성된 것.
반면 침실과 욕실은 최소한의 데커레이션으로 최대한 편안하게 꾸민 것이 특징이다. 침대는 헤드보드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했으며, 욕실은 욕조 대신 샤워 부스를 설치하고 건식으로 연출해 마치 호텔에 머무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보통 드레스 룸이나 작은 거실로 꾸미는 빈방을 남편을 위한 취미 공간으로 구성했어요. 선심 쓰듯 내줬지만, 사실 제가 편안히 살아갈 방법이기도 했죠. 이 방이 없으면 취미 생활과 관련한 여러 가지 용품이 집 안 곳곳에 흩어져 있을 테니까요.”
취미 방은 오디오, 오토바이, 스키, 등산 장비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레저용품을 모아놓은 쇼케이스이자 거대한 수납장 역할을 한다. 디자이너는 남자의 공간임을 부각하기 위해 건축 자재로 러프한 느낌을 강조했는데, 합판을 대고 컬러 MDF의 일종인 발크로매트 선반을 달아 완성한 책장과 구로 철판으로 마감한 수납장이 그 것이다. 또한 디자인을 위한 구조 변경보다는 생활의 편의를 위한 공간 구성과 동선에 초점을 맞췄다. 현관 입구에 있는 머드룸 개념의 다용도실은 옷을 걸고 가방을 두는 선반장을 구성해 자주 손님을 맞는 라이프스타일에 꼭 필요한 맞춤 공간이다.
“드라이어를 서랍에서 꺼내 콘센트에 꽂아 사용하는 단계를 줄이기 위해 디자이너가 아예 서랍 안쪽에 콘센트를 설치했어요. 욕실에서 매일 아침 머리를 말릴 때마다 감동을 느낄 정도죠.” 일상에서 비롯되는 소소한 감동이야말로 레노베이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라고 강조하는 집주인 이재희 씨. 특히 다이닝룸은 식구들과 주말에 브런치를 즐기며 마음 터놓고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폼 나는 술안주 하나로 밀린 수다를 풀어놓을 수 있는 ‘무장해제’의 공간 아닌가. 사람, 따뜻한 음식, 웃음소리가 함께할 수 있는 주방이 집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기본 마감을 화이트로 정했다면 나무 소재 가구나 컬러 소품으로 포인트를 주는 것도 방법. 응접실 역할을 하는 거실은 낮은 패브릭 소파와 1인 의자, 모듈 타입 커피 테이블로 라운지처럼 꾸몄다. TV 대신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가장 전망 좋은 곳에 다이닝 테이블을 두었다.



 디자인 및 시공 이길연(디자인 파트너 길-연)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