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디자인 빌리지 서울을 찾은 줄리오 카펠리니. 카펠리니 브랜드만의 독특함을 창조한 그는 국제적인 디자인 필드에서 상징적 인물로 여겨진다. 뛰어난 감각과 열정으로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 하는것은 물론, <타임>에서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트렌드세터 중 한 명이다.
이탈리아의 카펠리니 쇼룸. 컨템퍼러리와 아방가르드 디자인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공간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의 전체적인 퍼니싱을 가능케한다.
줄리오 카펠리니Giulio Cappellini. 새로운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데 그만큼 선견지명이 뛰어난 사람이 있을까.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 톰 딕슨Tom Dixon, 마르셀 반데르스Marcel Wanders와 마크 뉴슨 Marc Newson까지. 이들의 처녀작을 탄생시킨 것만으로도 산업 디자인계에 그가 세운 공은 지대하다. 전 세계 디자이너의 재능을 이탈리아화하는 창조성, 그 능력과 열정은 이탈리아를 디자인 디렉터 강국으로 만들었다. 한결같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한결같지 않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그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왜 이제야 한국에 왔나? 일찍부터 당신을 만나고 싶었다.
앞으로 한국을 자주 찾을 것 같은 예감이다. 현재의 한국은 가장 획기적 (innovative)이고 현대적(contemporary)인 나라다. 이번 방한은 폴트로나 프라우 그룹의 아트 디렉터로서 우리와 함께 일할 젊고 능력 있는 한국 디자이너를 발굴하기 위해서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한국 고객과 만나 카펠리니의 제품을 소개하는 시간도 준비했다.
폴트로나 프라우 그룹의 임원으로서 어떤 일을 하는가?
매달 3백 개가 넘는 포트폴리오를 본다. 그 안에서 재능 있는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한다. 디자이너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이것을 제품화하는 과정에서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나라와 문화, 성향이 다른 디자인을 브랜드로서 융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당신의 눈에 띄려면 어떤 재능을 갖춰야 하는가?
아시아의 젊은 디자이너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은 오래된 디자인을 답습하는 경향이 있다. 마에스트로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덜 받은 새로운 디자인을 찾고 싶다.
지금 가장 주목하는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넨도Nendo. 함께 일한 지 8~9년쯤 됐지만, 여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로 놀라게 한다. 일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그와의 작업은 늘 흥분되고 즐겁다. 요즘 벨기에와 이스라엘 출신 학생들과 작업하고 있다. 젊고 신선한 감각의 제품을 내년쯤 선보일 예정이다.
2012 밀라노 가구 박람회 카펠리니 존. 대표적 디자인 아이콘을 활용해 실제 집처럼 꾸민 공간으로 다채로운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카펠리니 제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만 꼽자면, 재스퍼 모리슨이 1988년 디자인한 싱킹 맨스 체어 Thinking Man’s Chair다. 그와 함께한 첫 작품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 재스퍼 모리슨은 아트 스쿨 학생이던 시절 스카우트해 올해 카펠리니 멤버로서 25주년을 맞이한다. 기념작도 준비 중이다. 그는 나와 가장 많은 영감을 소통하는 디자이너다. 부인이 일본인이라 유럽과 일본에서 한 해의 반반을 나눠 살지만, 만날 때마다 한 시간쯤 제품에 대해 상의하고, 네시간 넘도록 글로벌 스토어나 세계 디자이너에 대해 얘기한다.
부르키나파소를 직접 디자인했다. 제품에 대한 평가는?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공화국의 시골 마을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제품이다. 사용자의 상상력과 그들의 공간에 맞춰 디자인할 수 있는 트랜스포밍 가구로, 생동감 넘치는 컬러가 특징이다. 많이 판매됐고, 실용적인 만큼 주변 반응도 좋았다. 그렇지만 나보다 다른 디자이너의 제품을 프로모션하는 것이 더 즐겁다.
2012 밀라노 가구 박람회 전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카펠리니 부스가 가장 눈에 띄었다.
우리 브랜드에는 각각의 언어가 있다. 카펠리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하모니’를 주제로 카펠리니의 디자인이 고객과 소통할 수 있도록 부스를 꾸몄다. 부스 한쪽은 따뜻한 집처럼 연출해 카펠리니 홈 공간을 마련했고, 신제품 전시는 카펠리니 넥스트 존을 통해 선보였다. 천장에 가구를 매달았는데, 안전상의 문제로 허가받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모든 제품의 무게 중심이 달라 천장에 가구를 설치하는 일이 쉽지않았는데, 이때 함께 작업한 이들은 모두 날 미워할 거라 생각할 만큼 고생스러운 작업이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움직이는 가구를 보며 많은 사람이 놀라는 것을 봤다. 2013년 전시를 준비 중인데, 1월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있다. 작년보다 더 새롭게 계획 중이니 기대해도 좋다.
밀라노 디자인 빌리지의 미래와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늘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것, 현대적 디자인을 이끌어가고 싶은 것이 꿈이다. 얼마 전 두바이와 인도 뉴델리에 숍을 오픈했다. 이 두 나라와 중국시장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받아들이기에 완전하지 못한 상태다. 판매도 중요하지만, 디자인 교육을 통해 꾸준히 투자하는 것도 브랜드로서 해야 할 역할이다. 개인적으로는 감각이 영원히 늙지 않길 바란다.
그룹 대표로서 코리아 마켓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테리어나 라이프스타일에서 서울은 이미 완숙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신제품 론칭에서도 유럽보다 먼저 제품을 소개하는 트렌디한 나라다. 그리고 한국 디자인은 일본보다 모던하고 컨템퍼러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 디자인은 보수적 성향이 강해지는 반면, 한국은 아방가르드한 느낌이 더해지고 있다. 아직 정확한 일정을 얘기하기 힘들지만, 한국에 카펠리니 카페를 오픈할 예정이다. 이름만 카펠리니가 아닌 우리의 철학이 담긴 공간으로 컨템퍼러리와 모던이 결합된 곳일 것이다.
일정 중 10꼬르소꼬모 서울에도 방문했다. 무슨 이유에서였나?
10꼬르소꼬모에서 전시 중인 카펠리니 제품을 둘러봤다. 이곳 설립자이자 디렉터인 카를라 소차니Carla Sozzani와는 막역한 친구 사이다. 그녀에게 서울에 간다고 하니 “10꼬르소꼬모 서울에 방문해 꼭 감상평을 얘기해달라”고 하더라. 사실 10꼬르소꼬모 밀라노를 통해 톰 딕슨, 시로구라마타 등의 디자이너 작품을 여러 번 전시한 바 있다. 카를라 소차니는 옛것과 모던을 조화롭게 연출하는 재주가 있어 배울 점이 많다.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4년 전쯤 이사한 곳으로 피에로 리소니Piero Lissoni가 디자인했다. 온통 하얀 컬러를 콘셉트로 완성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하얗기만 한 집에선 살 수 없다고 하더라. 아이들 공간은 각자 좋아하는 컬러를 입혔고, 메인이 되는 공간만 화이트 컬러를 베이스로 했다. 카펠리니를 비롯해 비트라 등 다양한 브랜드 가구를 사용한다. 실생활에서 제품을 사용해보는 건 디자이너로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개선점을 찾기도 하고, 그것이 곧 새로운 영감을 준다. 1950년부터 컨템퍼러리 아트를 수집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몇백 년 된 조그만 도자기와 글라스는 우아함의 극치라 표현하고 싶다. 심플하면서 똑떨어지는 선은 아시아 디자인에서만 볼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친구들이나 디자이너가 집에 놀러 왔을 때 오래된 아트 피스가 많다 보니 뮤지엄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1 2013년 출시될 제품을 미리 볼 수 있었던 카펠리니 넥스트 존. 춤 추듯 움직이는 가구로 주목받은 전시다.
2, 3, 4 현대적인 디자인 가구와 아시아 전통 공예품이 조화를 이룬 줄리오 카펠리니의 집.
당신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집의 공간 개념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 예전엔 용도에 따라 섹션을 나눴다면, 지금은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일례로 주방은 요리하는 공간을 넘어 컴퓨터를 하거나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소통하는 곳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소는 리빙룸인데, 집 안의 중심이자 내 가족과 내 집을 찾는 모든 사람과 삶을 즐기며 대화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 가득한 집’이란 무엇인가?
집은 주거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나를 그대로 비추는 척도가 돼준다. 가족과 친구,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집이 곧 행복이 가득한 집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이든 호기심을 갖고 크리에이티브하게 접근하는 것. 사람과의 관계 또한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생산되기까지 수많은 미팅과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마음이 맞아야 좋은 제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컴퓨터에 앉아 교류하는 것이 아닌, 디자이너들과 교감을 통해 얻는 만족감은 나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준다.
5 일본 디자이너 넨도의 리본Ribbon 스툴.
6 재스퍼 모리슨의 카펠리니 첫 작품 싱킹 맨스 체어.
7 마르셀 반데르스의 노티드 체어.
취재 협조 밀라노 디자인 빌리지(02-516-1743)
- 통찰력의 마법사, 줄리오 카펠리니 창조적 디자인의 시작은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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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트로나 프라우 그룹의 대표이자 현 시대의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를 발굴한 주인공 줄리오 카펠리니.그가 재스퍼 모리슨과 톰 딕슨, 넨도의 계보를 이을 차세대 영 파워 디자이너를 찾고자 서울에 왔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