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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소프트의 노매드적 삶 우린 집으로 출근한다
주 35시간 근무, 한 달 3회 재택근무. 해외 연수 지원, 출산 때마다 1천만 원씩 지급하고 1년의 육아휴직 보장, 자녀와 놀아줄 원어민 교사 채용, 수영장이 있고 수영하는 시간도 근무 시간으로 쳐주는 회사. 실리콘밸리의 구글플렉스나 애플 캠퍼스 얘기가 아니다. 출근하는 일이 즐겁고 일탈 또한 자유로운 곳, 바로 기업형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벤처기업 제니퍼소프트가 그 주인공. ‘신의 직장’으로 화제를 모으며 한동안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를 주름잡은 제니퍼소프트의 헤이리 사옥을 찾았다. 도심을 떠나 자연을 선택한 제니퍼소프트의 문화 공동체적 삶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공간 철학.


애플리케이션 성능 관리(APM) 솔루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제니퍼소프트가 지난 8월 헤이리 마을에 사옥을 짓고 이전했다.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만드는 제니퍼들, 왼쪽부터 김동연(케이디KD/ 마케터), 신효미(샐리SALLY/ 디자이너), 김윤희(아이린IRENE/ 마케터), 정성태(케빈KEVIN/ 개발자), 전지훈(알버트ALBERT/ 개발자), 이현철(찰스CHALSE/ 개발자), 김은경(다나DANA/ 경영지원), 김지훈(저스틴JUSTIN/ 엔지니어), 이원영(앤디ANDY/ 대표이사), 칼리드(KHALID/ 엔지니어), 송연주(에이미AMIE/ 마케터), 최영화(요하YOHA/ 디자이너), 문현철(에덤ADAM/ 기획자), 홍철의(테일러TAYLOR/ 개발자). 수평 조직이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영어 이름을 사용, 직원보다는 ‘멤버’라 부르며 인턴사원부터 사장까지 모두 존칭을 쓴다.


일요일 저녁, <개그 콘서트>를 보며 울다 웃다 하지만 마음은 왠지 심란하다. “오늘이 금요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일주일, 한 달, 1년 전에도 그리고 일주일 후에도 메멘토처럼 같은 생각을 반복할 뿐이다. 일주일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공포의 월요일. 직장인 대 부분은 출근하는 대신 일탈하기를 꿈꿀 것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기업 ‘제니퍼소프트’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월요일 아침 10시, 제니퍼소프트 헤이리 사옥. 야생화 정원에 물을 주고 있는 앤디 이원영 대표의 휴대폰에 알림 메시지가 울린다.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에이미 송연주 씨다. “앤디, 오늘 날씨가 너무 좋네요. ‘재택’할게요.” 잠시 후 톡톡, 이번엔 아이린이다. “어머니가 주말에 제주도 가셨다가 아직 안 오셨네요. ‘노라’ 쓸게요.” 노라Nora는 ‘놀아’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한 휴가 관리 애플리케이션으로, 버튼 하나로 잔여 휴가일을 알려주고 누가 휴가인지도 공유할 수 있다. 회사에 나오고 싶어 육아휴직을 6개월만 사용하고 한 달 전 복귀한 아이린 김윤희 씨는 지난주 ‘노라’를 두 번 사용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일요일에는 회사에 나왔단다. 물론 잔업이나 특근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와 남편이 사옥의 수영장을 좋아해 자주 놀러 온다는 것. 수영을 하기 위해서 출근한다? 그것도 가족과 함께라니.


마케팅, 영업, 프리세일즈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근무하는 2층 사무실은 보다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책상이 보일 정도로 낮은 파티션을 설치한 게 특징이다. 제니퍼소프트에는 사장실이 따로 없다. 직원들이 다 앉고 남은 자리가 이원영 대표의 자리.

1층은 공간을 단순히 오픈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서관, 갤러리, 다목적 홀 등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꾸몄다.

2평 남짓한 작은 화장실. 소파와 선반, 액자 데커레이션 등 여느 가정집처럼 꾸민 따뜻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1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스케치 수업.
2 왼쪽부터 바리스타 이종현(존), 셰프 강희철(알렉스), 이한동(루이) 씨.
3 1층부터 3층까지, 계단 중간의 빈 공간에 책장을 설치했다.
4 사무실 바닥에 제니퍼의 철학을 자바 언어로 표현해놓았다. 위는 유토피아를 찾고 판타지아로 간다, 아래는 고정돼 있으면 유연성을 찾고 닫혀 있으면 열고 창의성을 실천하라는 의미.

보통 구내식당은 적당히 한 끼 때우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1층 카페는 매일 먹는 밥인데, 좀 더 괜찮은 곳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고민하다 완성한 공간. 지금은 직원 식당으로 운영하지만 10월 말부터는 일반인에게도 간단한 샌드위치나 음료를 판매하고 수익금은 사회복지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건강한 노동에서 창출되는 근사한 삶 제니퍼소프트 사옥은 헤이리 예술마을 안에 있는 카페들과 외관상 별 차이점이 없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놀라움의 연속이다. 먼저 1층은 오픈 카페. 직원들이 일하거나 쉴 수 있도록 만든 이 공간은 외부인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직원들은 10시에 출근하면서 카페에서 드립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낮 12시부터 1시 30분까지 점심 식사를 한다. 두 명의 셰프는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오후 4시가 되면 간식을 제공하는데 피자, 찹 스테이크, 들통에 끓인 라면까지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또 한 달에 한 번 패밀리 데이에는 마당과 연결되는 폴딩 도어를 모두 열고 직원과 가족이 모여 파티를 즐긴다. 1층 카페 옆 키즈룸에는 상주하는 원어민 교사가 직원 자녀들과 자연스레 친구 가 되어준다. 영어를 배우기보다는 회사 옥상 텃밭에 토마토와 상추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함께 하며, 다양한 미술 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창의적이고 글로벌한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한 것. 사옥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지하 1층의 수영장이라 할 수 있다. 이원영 대표는 혹여 직원들이 수영하는 것을 머쓱해할까 봐 아예 “수영 시간도 근무 시간에 포함한다”며 못 박았단다. 월ㆍ수ㆍ금요일에는 하루에 3타임 강습 시간도 있다. 거의 개인 강습 수준이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아닌 ‘복지를 위한 복지’, 삶의 만족을 높여주는 제니퍼소프트의 복지 제도는 이 밖에도 다양하다. 직원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것은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스케치, 외국어 강의와 심리 상담이다. 물론 모든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한다.

이쯤되면 이렇게 퍼줘도 회사가 운영이 될까, 대체 일은 언제 할까 의구심이 들게 마련. ‘가진 자의 여유’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제니퍼소프트는 국내 애플리케이션 성능 관리 솔루션 분야 1위 업체로, 기업형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7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요즘 시대는 자리에 꼭 앉아서 뭘 할 필요가 없어요. 수영 시간도 근무 시간에 포함한다고 한 건 몰입과 여유의 균형이 창의력을 극대화하기 때문이죠. 몰입은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고, 여유는 장기적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둘의 균형을 맞췄기 때문에 안정된 성장을 할 수 있었겠죠.” 이원영 대표는 복지 혜택보다 그 밑에 깔린 철학에 주목했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인다. 많은 근로자가 건강한 노동을 통해 근사한 삶을 살고 싶은 그 열망을 충족하고 채워줘야 할 기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걸 화두로 삼자는 것이다. 충분한 휴식과 몰입을 통해 더욱 효율적인 노동이 가능하고 근무 시간 이외의 시간에 심신을 편안하게 하면 오히려 적은 시간을 일해도 더욱 집중할 수 있는데, 그 결과가 바로 제니퍼소프트다. “제니퍼소프트의 미션은 삶과 일의 균형을 넘어 삶과 일의 경계를 무너뜨리자는 것이에요. 결국 회사를 삶의 공동체로 보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무엇보다 ‘공간’이 전제되어야 하죠. 사옥을 공들여 지은 이유지요.”


1 원어민 교사와 미술 수업을 하는 키즈룸.
2,4 아이들이 오면 본능적으로 이 집 모양 구멍으로만 다닌다. 수유실로 꾸밀 계획. 
3  안락한 거실 풍경을 자아내는 1층 카페. 휴식과 미팅, 토론을 하는 공간이다.

연구개발 직원들이 근무하는 3층은 보다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파티션을 높게 설치했다. 기둥 대신 고강도 목재인 글루램을 본드로 붙여 천장 보를 만들었다.


공간은 사유를 압도한다 ‘꿈의 직장’을 위한 첫 단계는 2006년, 창업 1년 후부터 본격화됐다. 전 직원이 함께한 실리콘밸리 견학에서 구글 캠퍼스, 야후, 오라클 등을 돌아보며 이들의 기업 문화에 큰 자극을 받았다는 이원영 대표. 그는 이탈리아의 숲 속에 있는 한 건축 사무소를 보고 사옥 계획을 구체화했다. 무엇보다 수영장, 정원, 카페가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단다. 카페가 있으면 차를 마시며 대화할 것이고, 정원이 있으면 꽃을 보면서 여유를 느낄 거라는 생각. 그는 ‘공간이 사유를 압도한다’는 말을 믿는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현실화한 이는 땅콩 주택으로 유명한 광장건축 이현욱 소장이다. 아파트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어놀고, 다락방이 있는 집을 짓는 그의 땅콩집 정신에 충분히 공감했다는 것. “자율적인 문화를 얘기하면서 사각형 박스 안에 넣는 것은 모순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 큰 영향을 받으니까요. 스트레스를 받고 답답한 곳에 있으면 건강한 마음을 지니기 힘들고, 통찰력 있는 생각을 하기 힘들어요. 반대로 자연적인 공간, 여유로운 공간, 아름다운 공간에 있으면 마음도 그런 쪽으로 흐르지 않겠어요?”

이현욱 소장이 신사옥을 설계하면서 중점적으로 고려한 것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내기 위한 건축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실용성을 갖춘 아름다움, 변화와 소통이라는 키워드였다. 먼저 공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과도한 장식은 배제하고 단순한 외관으로 기능적 아름다움을 살렸다. 콘크리트조에 목조가 결합한 준패시브 건물은 기둥 없는 유연한 공간이 특징이다. 이는 각각의 구성원이 수평적 소통을 하고 다양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키워드다. “수영장도 있어야 하고, 도서관도 있어야 하고, 텃밭도 있어야 하고… 이 대표는 참 많은 것을 원했어요. 땅은 2백 평인데, 모든 요건을 다 수용하려면 틈새를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했죠. 그래서 만든 게 계단 책장과 옥상 텃밭이에요. 1층부터 3층까지 연결되는 계단의 중심에 책장을 넣어 자유롭게 계단에 앉아서도 책을 볼 수 있게 했죠.” 설계를 맡은 이현욱 소장이 최대한 공간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면 인테리어 시공을 맡은 김재화 실장은 공간에 온기를 더하는 아이디어에 집중했다. 일하는 데 커다란 책상과 속도 빠른 컴퓨터도 중요하지만, 공간에 따스한 숨을 불어넣어 함께하고 싶은 일터를 만들자는 생각은 그도 공감하던 바다.


수영장은 면적이 넓으면 물을 채우기도 힘들고 관리가 어려운 법. 면적을 최소한으로 하되, 거울을 붙여 확장 효과를 줬다. 월ㆍ수ㆍ금요일은 수영 강좌가 있는 날. 수영 시간도 근무 시간에 포함해 전 직원이 눈치 보지 않고 수영을 즐긴다. 수영장 너머 선큰 공간으로 햇볕이 들어와 여름 내내 선탠을 즐기기도. 직원 강좌를 제외한 나머지 요일에는 일반인 강좌도 마련할 계획이다.


가족은 일보다 우선이다 사실 구글 캠퍼스, 광고 에이전시 TBWA, 트위터의 오피스처럼 일터인지, 놀이터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뭔가 더 유니크하고 활기찬 인테리어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제니퍼소프트는 멤버에게 실제로 두 번째 집이어야 해요.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집이 위시 리스트라도 막상 자신의 집을 꾸밀 때는 내추럴한 스타일로 결정하는 이가 많은 것처럼,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중요했죠.” 김재화 씨는 이곳이 단순히 놀고 쉬는 공간이 아닌 또 하나의 업무 공간이었기에 화이트 마감을 기본으로 내추럴한 원목 소재를 활용했다고 설명한다. 열린 공간이길 원한 1층 카페는 뮤직비디오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빔 프로젝터를 설치했고, 아이들 놀이방은 집 모양의 구멍을 만들어 포인트를 주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공간은 파우더룸. 코너 공간에 작은 소파를 두고 액자 프레임과 조명등 등으로 포인트를 주어 ‘방’처럼 꾸민 파우더룸은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휴게실이 된다.

모든 걸 다 수용할 것 같은 제니퍼소프트에서도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 있으니, 바로 가족 전화를 받고 “나 회의 중이니까 이따 전화할게”다. 가족은 일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 보육 시설과 패밀리 데이를 중시하는 것, 야근 금지, 탄력 근무제 모두 그런 이유다.
“직원 가족들 대부분 회사 문화를 이해하고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편이죠. 서울 살다 파주로 이사한 가족도 많으니까요. 특히 제 남편은 본인이 제니퍼 멤버인 줄 알아요. 한 달에 한 번 파티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니까요.” 김윤희 씨는 처음에는 스탠딩 파티를 힘들어하던 어르신들도 이제는 무척 재밌어 한다고 말한다. 수 영장과 놀이방이 있으니 아이들끼리 따로 놀아 엄마, 아빠도 편하다. 일 년에 한 번 아이 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해마다 커가는 아이를 볼 수 있어 좋다. 이제 곧 겨울이 오면 눈 내리는 날 야외 음악회 이벤트도 계획 중이다. 평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한다는 김윤희 씨는 이러다가 이벤트 전문가가 될 지경이라며 웃음 짓는다.

“한국IBM에 근무하던 시절, 저 역시 별 보기 운동을 했습니다. 아내는 주말이면 아이들과 마트라도 가자고 하는데, 잠자기 바빴죠. 치열하게 산 시절이 있으니 지금이 있지 않냐 반문하지만, ‘추억’을 잃었잖아요. 아, 균형 잡힌 일과 삶,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지금의 철학을 갖게 했으니 얻은 게 있긴 있군요.”
‘저녁이 있는 삶’을 실천하니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성격까지 달라졌다는 이원형 대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두 딸과 번갈아가면서 통화를 하고, ‘사랑해’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한다. 파주로 이사한 뒤 두 딸은 평소에도 제니퍼에 자주 놀러온다. 1층 카페의 롤 스크린을 내리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 함께 말춤을 추는 등 추억을 빚는 중.


1 옥상에 텃밭을 만드니 여름에 덥지 않고, 2, 3층을 목조 골조로 설계해 겨울에 따뜻하다. 엄마 회사에 놀러 온 김윤희 씨의 딸 현서와 문현철 씨가 강아지풀 물 주기에 한창이다.
2 이원영 대표와 설계를 맡은 이현욱 소장. 이원영 대표는 LG-EDS(현 LG-CNS), 한국IBM을 거쳐 2005년 제니퍼소프트를 창업했다. 애플리케이션 성능 관리(APM) 솔루션 시장이 주 타깃. APM은 인터넷 뱅킹이나 온라인 수강 신청 같은 웹 기반 서비스의 성능을 모니터링해 갑작스러운 시스템 다운이나 서비스 지연을 예방하는 프로그램이다.


노매드를 꿈꾸는 행복한 일터 요즘에는 하루에도 수백 장의 입사 지원서가 몰려온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뭘 잘해야 하냐’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냐’다. 대부분의 기업이 마찬가지지만 일할 수 있는 준비된 사원은 경력 사원이다. 신입 사원은 오히려 품성과 자질, 역량, 지성, 꿈과 열정 같은 가능성을 공부하고 배워가야 한다는 것. 제니퍼소프트의 신입 사원은 일 년간 아무 일도 맡지 않고 공부한다. 실제 문현철 씨는 아침에 오면 신문을 보고, 그날그날 공부한 걸 정리하며 하루를 보낸다. 해외 기업 탐방은 필수, 일 년간 어학연수를 보낼 때도 있다. 물론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한다. 한 직원은 비행사 자격증을 따고 싶어 해 지원해줬는데, 지금은 김포에서 강릉까지 경비행기를 몰고 왔다 갔다 한단다. 그리고 ‘정년이 없는 회사’라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업무의 특성상 빠른 흐름에 대처할 수 있는 적응력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스케치 능력, 브레인스토밍 방법 같은 소양을 익히고, 역할별로 전문적 리더십 교육은 필수다. “정년 없는 회사를 꿈꾸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들을 죽을 때까지 제니퍼에 가둬놓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은 단지 뜻이 같기 때문에, 거쳐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제니퍼의 신념인 ‘노매디즘’이지요.” 많은 문명사가가 21세기는 노매드nomad의 시대라 말하곤 한다. 노매드는 유목민을 뜻하는데, 그들은 만들어진 길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떠돌며, 사유한다.

이원영 대표는 잘 살기 위해서 우리는 몸과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지금까지 세계를 움직여온 정착민의 가치와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쇄신과 변화를 강조하는 노매드의 대안적 삶의 방식처럼! “대부분 사람들이 직장이라는 틀에서 생활하는데, 먼저 직장이 온전한 곳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거창한 운동은 아니고, 직장이 제2의 가정이라면 그 공간이 어떠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요. 제니퍼소프트는 분명 같은 자리에 정착하지 않는다는 것, 아마도 10년 뒤에 보면 또 달라져 있겠죠.”

누군가에게 ‘회사’는 어쩌면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하루하루 일상이 쌓이고 현재의 내 모습이 가장 많이 담긴 곳, 그리고 내일의 꿈을 설계하는 곳. 그런 면에서 제니퍼소프트는 꿈을 현실로 실현시킨, 두 번째 그 이상의 집이다. 열여덟 명의 ‘제니퍼’는 오늘도 집으로 출근하고, 집으로 퇴근한다.

글 이지현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