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국내 최초로 독일 패시브하우스협회(Passive House Institute)에서 인증하는 ‘PH 인증’ 주거 부문을 획득한 코오롱글로벌 이플러스 그린 홈e+Green Home. ‘e+’는 에너지energy, 에코eco, 이모션emotion(감성 주거)의 함축적 의미를 담았다.
산의 능선을 닮은 집, 친환경 주택도 디자인 시대 코오롱글로벌 R&BD 센터 친환경건축연구소와 운생동 건축사 사무소(장윤규, 신창훈 소장)가 공동 계획한 용인의 실험 주택 이플러스 그린 홈이 지난 10월 국내 최초로 독일 패시브하우스협회에서 인증하는 ‘패시브 하우스 인증’ 주거 부문을 획득했다. 주택 부문으로는 국내 최초의 수확이다. 또한 12월엔 대한민국 생태환경건축대상에서 기술 부문 대상을 받았다.
보통 친환경 주택이라 하면 시커먼 태양열 집열판을 달고 창문을 작게 낸 답답하고 재미없는 상자형 건물을 떠올리게 마련. 장운규, 신창훈 소장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주택이지만 디자인적으로 일반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었다. “코오롱글로벌과 몇 번의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주거 문화 프로젝트까지 맡게 되었어요. 친환경 건축물로 주제가 결정되고, 자료 조사 차원에서 독일과 영국을 답사했지요. 하지만 선진국 역시 디자인에 역점을 둔 친환경 주택은 드물다는 것을 알았죠.”
디자인을 입은 친환경 주택을 완성하는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우선 기술 자문을 맡은 독일에서도 상당히 회의적이었다(독일의 주택 대부분은 에너지 보존이 용이한 박공지붕 형태다). 굴곡이 생기면 외피 면적이 늘어나고 그만큼 열손실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코오롱글로벌 이성진 소장은 오히려 이 점을 발상의 전환으로 삼았다. 어려운 것부터 성공하면 다음은 더 수월하지 않겠느냐며 아트에 가까운 과감한 ‘디자인’을 받아들인 것. 처음에는 부부만을 위한 20평대 작은 집을 프로토 타입으로 설계했는데, 아무래도 주택 보급 시장까지 연결해야 하는 사업이므로 70평대 전원주택으로 변경해 설계했다.
단열재 개발에 몇 개월, 통창을 시공했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 창 크기를 줄이는 데만 또 몇 개월… 산의 능선을 닮은 디자인을 완성하기까지 커뮤니케이션과 설계에 무려 1년의 시간이 걸렸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집을 완성하기까지 또 1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완공 후 1년이 지날 즈음 드디어 <행복>을 초대했다. 1년 사계절의 모니터링(에너지 생산/소비량)이 모두 이루어졌을 무렵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와 동일하게 연간 10~15% 가량 에너지가 ‘플러스’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5% 정도 웃도는 수치입니다.”
보일러와 전기가 필요 없는 집 현실 세계부터 상상 속 무릉도원까지 아름다운 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몽유도원도’ 그림에서는 사람의 집이 숲인 듯, 바위인 듯 어우러져 구분하기 어렵다. 동양의 옛 그림은 사람이 자연에 합일할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생태계의 순환 원리를 거스르지 않는 집이 가장 이상적인 건축물임을 잘 보여준다. 패시브 디자인은 첨단 기술로 하는 건축이 아니라 ‘다른 생각’으로 하는 건축이다. 값비
싼 설계나 기계 장치 없이 주변에 이미 있는 자연 요소를 똑똑하게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쾌적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다른 생각. 이플러스 그린 홈은 자연의 겉옷을 통해 다른 생각을 실현했다. 건물 파사드에 열손실을 줄일 수 있게 단열재를 씌우고 이끼를 심은 것. 사람이 옷을 입어 신체를 보호하는 것처럼 사계절 밤낮으로 햇볕, 비, 바람, 소음, 공해 속에 맨몸으로 서 있는 건물에 옷을 입혀주는 원리다. 외피 부분을 잘 활용하면 난방 효과를 얻음은 기본이고, 일사량과 바람의 세기를 조절하거나 소음과 공해도 걸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 지난겨울 실제 건물 밖은 영하 5℃일 때 내부는 23℃였다고 하니 겨울에는 난방을 하지 않아도 되고, 여름에는 반대로 냉방이 필요 없다(촬영 당시 30℃를 웃도는 더운 날씨였는데 실내 온도는 쾌적한 23℃를 유지했다). 이를 지붕(roof)에 기술(technology)을 집대성한 건축물(architecture)이란 의미에서 ‘루프텍처rooftecture’라 부른다. “이플러스 그린 홈에 들어간 대부분의 마감재, 기술은 ‘메이드 인 코리아’입니다. 그중에서도 건물 일체형 태양광 전지판(BIPV) 창이라든지 환기 시스템 등은 고효율 기자재 특허를 보유하고 있죠. 사실 국산 제품으로 독일 패시브 하우스 인증을 받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이성진 소장은 국내 건축재를 개발하는 것 또한 고무적인 일이라 설명한다. 미국의 LEED, 영국의 BREEAM, 일본의 CASBEE 등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그 나라에서 만든 틀에 에너지 효율값을 대입하므로 그 나라의 자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코오롱글로벌 R&BD 센터 친환경건축연구소는 이러한 어려움에도 국산 제품으로 기준점을 통과하기 위해 4개월 동안 고군 분투했고, 이 과정에서 무려 1백50회의 이메일이 오갔단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이플러스 그린 홈에는 총 95개의 ‘우리’ 녹색 기술을 적용했다. 각종 고성능 단열재, 고기밀 3중 창호 등을 통해 건물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했다. 건물 틈새에서 새는 에너지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밀 성능을 높였고, 실내 열이 콘크리트에 저장되도록 축열 구조를 적용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추가적으로 필요한 에너지는 태양광, 태양열, 지열 등의 신재생 에너지를 적용해 에너지를 플러스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쿨링 라디에이터, 환기 겸용 자연 채광 시스템 등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쾌적감을 극대화했다.
1, 3 두 자녀가 있는 40대 부부를 타깃으로 한 샘플 하우스는 연면적 70평으로 계획. 1층은 거실과 주방, 부부 침실을 두고 2층은 침실 3개로 구성. 공간 대부분은 자작나무로 마감했다. 거실은 코오롱글로벌의 수납 브랜드인 칸칸을 적용해 최적화하고 이중창으로 기밀도를 높였다.
2 창문 바깥 쪽에 전동 블라인드를 설치. 풍향과 온도, 일사 센서를 갖춰 외부 환경에 맞게 자동으로 열고 닫힌다.
4 설계를 맡은 운생동 건축사 사무소의 장운규, 신창훈 소장.
5 2층 복도 라인의 일체형 태양광 전지판. 건물 코카콜라 페트병을 리사이클링한 에메코 체어 등 리사이클링 가구를 배치했다.
그렇다면 이 ‘미래 주택’은 언제 시용화가 되는 것일까? 코오롱글로벌 측은 2015~2017년 활성화될 것이라 예상한다. 건축비는 같은 평형을 기준으로 실제 예산보다 10~20% 정도 추가해야 한다. 유지 관리비가 5분의 1
정도로 절감되는 5년이면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는 사실. 영국의 전기 요금은 우리보다 2.5배 비싸다. 전기 회사가 민영화했기 때문인데, 전기 회사마다 가격이 모두 달라 개인에게 가장 적절한 회사를 골라주는 애
플리게이션이 나올 정도다. 이제 전기 제품을 선택할 때만 에너지 효율 등급을 따지는 시대는 지났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주택 역시 A부터 G까지 7단계로 에너지 효율 등급을 매기며 임대료와 집값을 책정하는데, 앞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정책이 도입되지 않을까.
설계에 참가한 운생동의 신창훈 소장은 이플러스 그린 홈의 장점으로 ‘쾌적함’을 꼽았다. “여름철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면 머리 아프잖아요. 패시브 하우스가 단순히 에너지를 절약하기 때문에 좋은 것은 아니에요. 사람이 쾌적감을 느끼려면 24~26℃의 온도에 습도 40~60%를 유지해야 합니다. 인위적으로 그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게 아닌, 설계 시공을 통한 빛조절과 자연 환기만으로 쾌적감을 느끼는 것, 그게 친환경 주택의 가장 큰 강점이지요. 절약은 기본, 건강을 지켜주는 집이니까요.”
경기도 용인에 자리한 코오롱글로벌의 실험 주택 이플러스 그린 홈.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벽면 녹화, 수자원을 만드는 굴곡진 형태, 태양 에너지 흡수를 돕는 지붕의 경사면 등 루프텍처 시스템을 도입해 산의 능선을 형상화했다.
|
||
에너지 ‘플러스’를 위해 적용한 녹색 기술
1 대기 전력 차단 콘센트 1분 이상 미미한 전기가 흐르면 자동으로 전력이 차단되는 콘센트. 에너지 소비를 최대 10%까지 절약할 수 있다.
2 수직 채광 덕트 화장실이나 현관, 지하 주차장처럼 주간에도 조명이 필요한 공간에 설치해 자연광을 공급하는 자연 채광 장치로 환기 역할도 한다. 살균 효과도 있어서 욕실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
3 자작나무 사용 공간에 사용한 모든 목재는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성장 속도가 빨라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 소재로 강도와 내수성이 뛰어나다.
4 PCM창호(스마트 창호) 겨울과 여름 달라지는 태양 고도에 따라 빛을 흡수, 반사시키는 개념의 제품. 패시브 하우스 인증을 획득한 프레임을 차용해 단열과 기밀성을 함께 높였다.
5 LED 조명등과 오픈 천장 고효율 친환경 조명등으로 형광등 대비 70%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또한 개방형 축열 천장 구조로 실내의 냉난방 에너지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6 태양광 발전 시스템 건물 창호를 대체하는 투광형 태양광 모듈을 설치해 전력을 생산. 단위 용량당 발전 성능이 높고 균일한 채광을 자랑한다. 빛이 투과하면서 전기 에너지도 생산한다.
7 벽면 녹화 건물 외벽에 이끼를 심으면 단열 성능 향상과 도심 열섬 방지 효과도 낼 수 있다. 산소와 음이온 방출.
8 쿨링 라디에이터(냉각 방열기) 난방 장치로 사용하던 라디에이터에 냉수를 흘려보내 실내 온도를 낮추는 장치. 인위적으로 표면에 결로를 발생시키는 과정에서 실내에 있는 습기를 끌어모아 제습기 역할을 한다.
Interview_코오롱글로벌 R&BD 센터 이성진 소장 ‘전기’ 만드는 집, 5년 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린 테크놀로지 적용으로 건축비가 일반 주택에 비해 높은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우리는 개당 7백만 원이 넘는 독일의 열회수환기 장치 대신 우리가 개발한 제품을 사용해 비용을 10분의 1로 줄였다. 건물 기초 말뚝에 파이프를 함께 설치해 지열 에너지의 열원으로 삼은 것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타운 형태의 공동 주택으로 보급하면 초기 투자 비용을 더욱 줄일 수 있고, 유지 관리 비용이 절감되는만큼 초기 투자 비용을 빠른 시일 내에 회수할 수 있다. 국내 건축사무소에 설계를 맡기고, 국산 자재를 고집한 이유가 궁금하다 설계뿐 아니라 PH 인증을 받기 위한 과정도 모두 연구원들이 하나하나 법규를 배워가며 진행했다. 사실 독일 인증 제도이기 때문에 독일 쪽 기술이나자재를 도입했다면 인증을 더 빠르고 손쉽게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적인 우리 기술을 개발하고, 또 국내 설계팀과 일하면서 PH를 획득한 것은 물론 경험치를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를 둔다. 이제 국내 에너지 건축 기술이 해외에서 서서히 인정받게 되지 않을까.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가장 중요한 목표는 2017년 패시브 하우스 모델을 보급하는 것. 정부의 녹색 건축물 활성화 정책을 보면 2017년 에너지 60% 절감, 2025년 제로 에너지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다. 이에 발맞춰 이플러스 그린 홈의 운용과 성능 평가를 진행하고 에너지 30% 절감 가이드 라인을 완성했다. 이렇게 많이 기사화되어 수요가 늘어나면 그 시기가 좀 더 앞당겨지리라 믿는다. 또 일반인이 이플러스 그린 홈을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생각이다. |
취재 협조 및 도움말 코오롱글로벌(www.kolonglobal.com), 운생동 건축사 사무소(02-764-8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