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실 누비, 그 은근한 화려함이란!
바늘방석과 쌈지, 안경집 등 액세서리에 주로 활용한 색실 누비는 한지를 가늘고 둥글게 말아 이를 두 겹 천 사이에 배열해 골을 만든 후 그 간격을 매우 촘촘하게 바느질하는 것. 그 결과 정교하고 화려한 패턴이 수놓인 색실 누비는 전통의 색을 띠지만 새로운 감흥을 선사한다. 그동안 박물관에 유물로만 자리했을 뿐,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리기 힘들었던 색실 누비는 지난 30년간 이를 복원하고 재현해낸 색실 누비장 김윤선 씨 덕에 요즘 우리 곁에 다양한 아이템으로 선보이고 있다.
바늘꽂이 무명천에 명주실로 꽃문양 패턴을 누빈 바늘꽂이. 재봉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정교한 표현이 백미다. 바늘을 꽂는 게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색실 누비 바늘꽂이는 작은 액자에 넣어 오브제처럼 연출해 감상해도 좋을 듯. 색실 누비장 김윤선 씨 작품.
한글 브로치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지닌 조형성이 색실 누비의 정교한 입체감을 통해 독특한 미감으로 연출된 브로치. 브로치 칸칸마다 누비 골을 최대한 조밀하게 작업해 더욱 들여다보고 싶게끔 호기심을 자극하는 디자인이다. 색실 누비 브로치는 색실 누비장 김윤선 씨 작품으로 아원공방에서 구입할 수 있다. *색실 누비가 궁금하다면 오는 6월 13일부터 22일까지 아원공방에서 열리는 색실 누비장 김윤선 씨의 전시를 관람해보길 바란다.
안경집 전통 색실 누비 안경집은 주로 사선 누비를 바탕으로 기하학적 추상 무늬를 더한 디자인이 전해온다. 빨간색 안경집은 붉은색 명주를 사선으로 누비고 그 위에 삼족오三足烏 문양을 더한 것으로, 비취 구슬과 색실 명주 매듭을 달아 정교한 멋을 강조한 작품. 호박 모양의 안경집은 조각보 모티프를 적용하고, 모란꽃을 장식으로 더해 화려하면서도 기하학적인 세련미까지 느낄 수 있다. 모두 색실 누비장 김윤선 씨 작품. 도자기 연적과 벼루 모두 우일요 제품.
규방에서 태어난 실용미학
원래 누비는 천과 천 사이에 솜을 넣어 이를 고정하기 위한 바느질로 방한용 의복에 많이 썼지만, 누비 기법 자체의 장점을 인지하면서 점차 생활 소품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누비는 직물을 견고하게 만들고, 표면적을 상대적으로 작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때도 덜 탄다. 또한 여름에는 옷감이 몸에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고 통풍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 신윤복의 그림 ‘기방무사’에는 푸른 나무가 드리워진 별당에서 누비 이불을 덮은 선비가 나오는데, 이를 보면 누비는 단순히 솜을 누비는 데만 쓰지 않고 다양하게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광목 방석, 실패&바늘집 누비의 옹골진 패턴은 시각적 즐거움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방석을 누비로 만들면 피부에 닿는 톡톡한 질감으로 인해 기분 좋은 자리가 된다. 광목을 보다 튼튼하고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가운데 부분을 누빈 방석은 소유 제품. 실을 감고 바느질할 때마다 보기에도 아름답고 손끝으로도 생동감 넘치는 패턴 미학을 감지할 수 있는 색실 누비 실패와 바늘집, 골무는 김윤선 씨 작품. 백자 항아리는 우일요 제품.
조각보 누비이불 명주와 비단 같은 견직물의 부드럽고 고운 느낌을 사계절 잠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비결, 바로 촘촘한 세줄누비이불이다. 특히 얇게 누빈 누비이불은 속을 분리할 필요 없이 그 상태로 세탁할 수 있기 때문에 관리하기도 간편하다. 섬세한 누비의 직선과 기하학적 조각보 패턴의 만남이 경쾌한 세련미를 선사하는 이불. 조각마다 누비의 방향을 달리해 한층 생동감이 넘친다. 이불은 김영석 전통한복, 백자는 우일요 제품.
선을 따라 변주되는 모던 누비
반복되는 선으로 연출하는 누비. 장식적 면에서 자칫 지루하고 고루하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누비에는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누비는 간격, 형태, 재봉법에 따라 구분한다. 간격에 따라서는 0.3cm 잔누비, 0.8~1cm 중누비, 6cm 드문누비, 형태에 따라서는 납작누비, 오목누비, 재봉법에 따라서는 솜누비와 솜 없이 두 겹의 천을 잇는 겹누비, 홑누비 등으로 대별한다. 이 밖에 손누비와 기계누비, 홈질누비와 박음질누비가 있는데 현재 누비를 모티프로 활용하는 제품의 대부분은 재봉틀로 박는 기계누비 기법을 택한다. 그리고 누비 간격을 하나로 통일하기보다는 다채롭게 믹스매치해 색다른 조형미를 추구한다.
누비 슬리퍼 쾌적한 느낌을 선사하는 모시로 만든 슬리퍼는 2cm 이내 간격으로 바느질한 ‘중누비’로 제작했다. 모시를 견고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처리한 것은 물론, 현대적이고 중성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보편적인 디자인으로 즐길 수 있다. 흰색 모시 슬리퍼는 모두 당초문 김인자 한복, 명주를 곱게 누며 전통 버선 느낌을 연출한 보라색 슬리퍼는 김영석 전통한복 제품.
손줄누비 광목 이불 자연에 존재하는 직선은 수평선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지하면 전통 누비가 추구한 직선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밖에 없을 터. 이러한 수평과 직선의 조형미를 규모 있게, 시원스럽게 표현하되 스티치는 손맛이 살아 있도록 정교하게 표현하는 모던 누비가 등장하고 있다. 소박하면서 자연미 넘치는 광목 소재에 손줄누비 기법으로 건축적 조형미를 표현한 엘투엔스타일의 침구 세트가 바로 그 대표적 예. 사계절 사용할 수 있으며, 플라워 프린트를 가미한 패치워크 장식 포인트가 이국적인 멋을 선사한다. 베갯모에 꽃수를 놓은 광목 누비 베개는 효재, 전통 지장은 LVS크래프트 제품.
세모시 모란 색실 누비 이브닝 백 곱디고운 세모시에 색실로 모란꽃을 누빈 장식의 이브닝 백. 모란꽃 뒷면에도 겉면과 같은 세모시를 덧대어 바느질했기 때문에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세모시의 섬세한 조직과 닮은 세밀한 바늘땀 또한 색실 누비의 장식성을 즐기는 포인트. 이브닝 백은 색실 누비장 김윤선 씨 작품.
장식과 보온,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누비는 수를 놓는 작업보다 더 어렵고 힘든 바느질 기법인 데다, 소요 시간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도 그 옛날 여성들이 누비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장식성과 보온 및 보호 등의 실용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 의복을 제외한 생활용품 중 이런 지혜가 돋보이는 것은 보자기와 쌈지다. 중요한 물건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한 누비보 중 누비 겹보는 파손되기 쉬운 물건을 싸고, 누비 식지보는 음식을 보온하기 위해 사용했다. 한편 오늘날 지갑이나 가방에 해당하는 쌈지는 소재의 단순함에 변화를 주고 직물 자체의 내구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이는 색실 누비로 표현해 화사한 장신구로서 역할도 톡톡히 했다.
명주&무명 누비 도시락 맛있는 음식을 따뜻하고 멋스럽게 즐기고 싶다면 그 옛날 어머니가 정성스레 누빈 식지보 같은 누비 보자기에 도시락을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보자기 형태지만 끈을 풀면 바로 도시락을 쏙 담을 수 있는 입구가 나오는 도시락 가방. 얇은 솜을 넣은 중누비와 플라워 패턴이 조합을 이룬 명주 식지보, 천연 염색한 무명을 잘게 누빈 식지보는 빈콜렉션 제품으로 하이핸드코리아 판매.
스타일링 김지영 어시스턴트 황인영 플라워 스타일링 project0+ 제품 협조 김영석 전통한복(02-2234-0153), 당초문 김인자 한복(02-765-4333), 빈콜렉션 by 하이핸드코리아(02-736-5760), 소유(02-546-1454), 아원공방02-734-3482), LVS크래프트(02-3443-7475), 엘투엔스타일(070-8823-8133, www.ltonstyle.com), 우일요(02-763-2562), 효재(02-720-5393),
- 감성을 일깨우는 데코 아이디어 누비 일상을 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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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땀 한 땀 정성 들인 바느질로 올곧은 직선을 표현했을 뿐인데 세상에 둘도 없는 조형미가 완성되는 누비. 최소의 요소로 최대의 효과를 연출하는 것이 모던 미학의 정점이라면, 조선 시대 대중화를 이룬 우리나라 고유의 누비는 이미 그 미감을 꿰뚫고 실생활에 두루 사용했다지요. 은은하게 도드라지는 입체 패턴, 다채로운 색실이 자아내는 화사한 라인….기능성뿐만 아니라 장식성으로 그 진가가 더욱 빛을 발하는, 지금의 누비를 만나봅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