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부암동 꼭대기에 자리 잡은 아담한 한옥. 1층 양옥 위에 계단식으로 지어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인왕산, 북한산, 북악산 등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창문을 열면 모두 시원한 능선이 펼쳐진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온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서울을 둘러싼 바위산의 형국이 마치 밝게 빛나는 연꽃 같다고. 그에 비해 금강산은 바위산이 너무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어 컴컴한 도적 소굴 같다고. 그만큼 한양의 바위 산세를 금강산에 비유할만큼 장엄하면서도 양명陽明한 면에서는 금강산보다 낫다는 평가인 것 같다. 서울 풍광이 지닌 이러한 장엄함과 탈속한 멋을 그대로 보존한 곳이 청와대 뒤편 종로구 부암동이다. 부암동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봤을 때 서북 방향에 자리 잡고 있다. 서북향은 겨울에 찬 바람이 부는 쪽이라 매우 꺼리던 방향이다. 또 풍수에서는 서북쪽이 터져 있는 장소를 좋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서북쪽에 비보裨補(사람이 병이 들어 위급할 경우 혈맥을 찾아 침을 놓는 것처럼 산천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주변에 불상이나 탑을 세우는 일)를 하고, 나무를 심은 것이다. 전통 마을의 비보림裨補林은 대부분 서북 방향에 있다.
그러나 서북쪽이 막혀 있으면 상관없다. 조선시대 역사에서 서북 차별이 있었는데, 평안도가 서북쪽이었다. 서북 차별이 누적되자 홍경래가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통적 방위 관념에서 서북은 살풍殺風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편견의 결과였다. 중국의 오악五嶽을 다녀보니 서북에 해당하는 산이 서안西安 옆에 있는 2200m높이의 화산華山이다. 공교롭게도 오악 중에서 화산이 가장 날카롭고 험한 바위산이다. 칼 같은 모양의 화강암 봉우리가 겹겹이 서 있다. 현재 서울 강남에 있는 대검찰청 청사도 서북 방향이 약하다. 능선이 낮아서 외부 상가 건물들이 검찰청을 넘보는 형국이다. 어느 부분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풍수가들은 이 때문에 검찰총장 임기가 자주 바뀐다고 이야기한다.
서울의 서북은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장동壯洞(통의동의 옛 지명)이요, 다른 하나는 부암동이다. 둘 다 서북쪽이었지만 장동은 안동 김씨 귀족들의 역대 세거지였고, 부암동은 양반들의 일상 거주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하문紫霞門을 경계로 해 장동은 성안에 있었고, 부암동은 성 밖에 해당한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문 안과 밖의 차이는 아주 큰 것이었다. 부암동은 양반들의 별장이 자리 잡았다. 주변의 암봉이 품어내는 전망이 세속을 초월하는 선기仙氣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장 아늑하고 따뜻한 2층 안방. 먹감나무로 만든 문갑과 서안 등 낮은 가구를 배치해 여백의 미를 살렸다.
전통 그대로 구들을 깔지 않은 대청마루. 서까래와 마루 모두 해마다 콩댐을 입혀 정성스레 관리한다.
양옥 위에 지은 2층 한옥
21세기 들어와서 천지개벽이 되었다. 우선 방위 관념의 획기적인 전환이다. 옛날에야 서북이 추운 방향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난방장치가 발전해 겨울의 추위를 극복할 수 있는 발전소와 에너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보일러가 그것이다. 더군다나 지구 온난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평균 기온이 계속 올라가는 시대에는 여름에 시원한 곳이 명당이다. 겨울의 추위보다 여름의 더위를 더 걱정해야 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서북은 시원한 방위에 해당한다. 주역 팔괘에서 방위를 보면 서북은 건방乾方인데, 건乾은 하늘을 상징한다. 고로 가장 높은 사람이 사는 방위로 해석할 수 있는 셈이다. 가장 위험한 장소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법이다. 부암동을 이러한 후천 개벽의 틀에 맞춰 해석해보면 서울의 고급 주택지가 된다. 이 한옥으로 들어오는 길 옆의 바 위에는 ‘청계동천淸溪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동천’은 신선들이 사는 풍광 좋은 선경을 뜻한다. 대개 돌로 된 석문이 그 입구를 막고 있고, 시끄러운 세속과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들이다. ‘청계동천’이라고 새겨놓은 것을 보면 조선시대 양반들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별서別墅를 짓는 터로 안성맞춤이라 생각한 듯하다.
열어 들개문을 올리면 시원한 정자가 되는 누마루.
이 집은 당호가 없다. 그냥 부암동의 한옥일 뿐이다. 집주인이 이름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 집으로 지은 것이다. 필자에게 자신의 이름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한옥은 양옥과 위아래층을 이루는 특이한 구조다. 현대 가옥인 아래층은 부엌과 방 하나, 화장실, 다용도실, 주차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밥 먹고 빨래하고 TV를 보는 생활 공간이다. 2층이 바로 한옥이다. 아래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이 유난히 길다. 겨우 한 층 더 올라가는 계단인데도 3층 정도 오른 느낌이 들정도로 계단이 많다. 그만큼 층고가 높다. 원래 이 집의 터는 경사가 있는 비탈진 언덕이었다. 지형을 살려 집을 짓다 보니 아래층이 지하실 같은 느낌이다. 2층에서 보면 아래층이 지하실 같지만, 아래층에서 보면 자동차에서 내려 바로 들어가는 문이 1층이다. 2층 한옥에는 안방과 책 보는 방 그리고 바닥에 나무를 깐 누마루와 대청마루가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지형보다 2m 정도 축대를 쌓아 높게 터를 올렸다고 한다. 주변 산의 능선을 보는 데 적합하도록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다. 2층의 터를 높이다 보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많아진 것. 그렇게 완성한 이 집의 핵심은 2층 누마루에서 바라보는 전망이다. 그러므로 이 집의 최대 장점은 바로 전망에 있다. 박지원이 기록했듯 멀리서 보면 화강암 바위산이 연꽃 봉오리처럼 둘러싼 서울의 풍광을 가장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지점에 집을 지은 것이다. 연꽃 봉오리 밖이 아니라 꽃봉오리 안에 들어와 꽃을 본다고 할까.
누마루에 앉아서 보면 뒤쪽으로는 인왕산의 바위가 보인다. 집 뒤를 받쳐주는 암봉이 인왕산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나오는 느낌 그대로 인왕산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는 셈이다. 가까이에서 인왕산을 보면 바위에 비가 흘러내린 자국이나 이끼 등 섬세한 바위 결이 자세하게 보인다. 이 집에서 보는 인왕산은 경복궁 서쪽의 효자동 쪽에서 보는 인 왕산의 뒤꼭지에 해당한다. ‘인왕仁王’은 부처를 표현한 말이다. 효자동에서 보면 인왕산이 멀리 보이는 풍광이지만, 부암동 이 한옥에서 보면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까이 보인다. 거대한 바위산을 가깝게 보면 야생의 기를 느낄 수 있고, 서울이라는 도시가 아닌 산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정면을 보면 북한산의 바위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쭉 도열해 있다. 그 대신 이 북한산 암봉들은 멀리서 보인다. 북한산 봉우리가 너무 가깝게 보이면 답답함을 줄 수 있다. 다행히도 멀리 떨어져 보이므로 탁 트인 맛이 난다.
1 인왕산의 정기를 느끼며 반신욕을 즐기는 욕실. 2 한옥의 터를 2m 돋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꽤 높게 느껴진다. 좁은 계단인데도 층고가 높아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구조다. 3 주방, 다용도실, 서재로 구성된 1층 주거 공간.
좁은 골목길에서 바라보면 돌을 켜켜이 쌓은 축대 너머 한옥 처마 끝이 살짝 보이는 정도라 그 누구도 집 위에 한옥이 있을 거라 쉽게 예상하지 못한다.
서울 하늘 아래,천상에 사는 즐거움
삶이 지루해질 때 앞으로 보이는 북한산의 봉우리를 바라보면 지루함이 사라질 것 같다. 인생이 힘겹다고 여겨질 때 이 영봉들을 바라보면 힘을 얻고 위로를 받을 것 같다. 화가 올라오고 분노가 일 때 이 산을 바라보면 화가 가라앉을 것 같다. 나 같은 문필가가 글이 생각나지 않을 때 이 암산들을 바라보면 새로운 영감을 얻어 원고지 수십 매를 일거에 써 내려갈 것 같다. 주변의 친지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기고 싶을 때 이 바위산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면 음악 밴드를 대신해 한층 분위기를 돋울 것 같다. 이 바위산을 앞에 두고 기도를 하면 기도발도 받을 것 같다.
이러한 다용도의 염원이 이루어진다는 근거를 또 하나 풍수적으로 든다면 누마루 오른쪽으로 보이는 백악봉 白岳峰 또는 백악산의 존재다. 백악산(북악산의 옛말)은 바로 청와대 뒷산을 가리킨다. 광화문 쪽에서 백악봉을 보면 고릴라의 두눈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이 집에서 보는 백악봉은 다른 각도가 된다. 마치 나락을 쌓은 노적봉 같기도 하고, 머리를 잘 빗고 단정하게 꾸민 옥녀의 머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다. 이 집의 누마루에 앉아 있으면 인왕산, 북한산, 백악산이 모두 집을 감싸는 형국이다. 그것도 단단한 화강암 암봉들이다. 오직 서울의 부암동에서만 볼 수 있는 전망이다. 세계 어느 나라 수도에서 이런 풍광이 나오겠는가. 아마 대한민국 서울밖에 없을 것이다. 이 풍광을 보면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말한 한양 지세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이 집 마당에는 나이 먹은 소나무도 열여덟 그루나 있다. 원래부터 있던 자연산 소나무들이다. 집주인이 이 터를 사게 된 근원적인 이유도 이 소나무들 때문이었다. 자연산 소나무가 열여덟 그루나 있는 집터. 한국적 차경借景의 미학은 소나무가 반드시 있어야 완성된다는 점이다. 바위와 소나무가 어울려야 자연이 된다. 무정無情과 유정有情의 조합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날씨가 춥지만 꽃 피는 봄이 되면 이 집의 누마루에 앉아보고 싶다. 서울의 풍광을 한손에 잡아보고 싶다. 낮에도 좋겠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5월의 중순에 누마루에 앉아 달을 보면 그 기분이 어떨까. 초고층 빌딩이 줄을 서 있고, 반짝거리는 네온사인이 대로를 장악하고, 수많은 자동차가 빵빵거리며 달리는 서울이라는 세계적 대도시의 중심부에 이러한 야생의 정서를 갖춘 동네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 아닌가! 바위로 둘러싸인 암기岩氣의 터 부암동. 이 집의 황홀한 전망을 써 내려가면서 수년간 연재해오던 ‘백가기행’을 이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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