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house

사진가 허명욱
작업실은 나의 ‘역사’다
경기도 광주, 한적한 길을 따라 높이 뻗은 전나무 사이로 집이 한 채, 아니 두 채가 보인다. “지난 3년간 이 작업실과 동고동락했어요.” 사진가 허명욱 씨는 커다란 테이블에 접시를 올려놓으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후배 집터를 알아보다 우연히 이 전나무 숲길에 마음을 뺏긴 그는 이곳에 작업실을 지으리라 마음먹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 법이니, 땅을 팔 생각이 전혀 없다던 땅주인에게 6개월 후 연락이 왔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두 채의 빨간 벽돌집을 완성했다. 이곳에서 세 번의 겨울을 맞았으며 지붕 각도, 마감재의 종류, 벽돌의 크기와 마모 정도까지 하나하나 모두 그의 손길을 거쳤으니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그에게 작업실은 삶 자체이자 번잡한 일상으로부터의 피난처다.작업 공간에는 그의 모험적인 삶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5m가 넘는 천장고, 모든 것이 거대하다 보니 사람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그 규모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 공간에는 인더스트리얼 빈티지 철제 가구과 그가 만드는 스피커, 수백 개의 미니 자동차, 카메라를 비롯한 빈티지 컬렉션이 리듬감 있게 놓여 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물성을 찍어 캔버스에 프린팅하고, 그 위에 색채를 덧입히는 과정을 2~3회 반복해 완성되는 그의 작품은 이 ‘쉼터’에서 숨 고르기를 하듯 천천히 이루어진다. 자동차, 트렁크 등 대량생산된 산업 생산품이 지니는 기능적 미학이 시간과의 화학반응을 통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물로 다시 태어나듯 공간 역시 그의 손길로 재창조된 것. “작업실 곳곳에 있는 물건들은 제게 중요한 추억의 장소, 소중한 경험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제 인생의 역사로 둘러싸인 이곳에 들어오면 비로소 마지막 퍼즐이 딱 맞아 완성되는 느낌입니다.”

(왼쪽) 3년 동안 손수 디자인하고 꾸민 작업실. 벽, 바닥, 책상, 의자, 소품까지 모두 그의 삶의 팔레트 위에서 낮에도 밤에도 빛나는 보석 같다.


1,3 오래되고 작은 장난감 자동차, 트렁크 등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사진가 허명욱 씨는 카메라와 페인팅을 통해 시간의 흔적을 기록한다.
2 난로, 작업대, 오디오 등은 금속 공예를 전공한 허명욱 씨가 직접 만든 것.


4 새로 산 청바지도 돌에 문질러 빈티지 룩처럼 만들어 입던 그가 빈티지 조명과 가구를 모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스케일이 큰 가구는 지인인 aA디자인뮤지엄 김명한 대표가 구해주기도 한다.
5 컨테이너 창고를 레노베이션한 벽돌집 두채.


그래픽 디자이너 조현
작업실은 ‘두 번째 집’이다
S/O 프로젝트의 조현 대표에게 여유 시간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매일 계속되는 바쁜 일정에도 그는 자신만의 은신처를 찾았으니, 바로 사무실이다. 일하는 사무실이 어찌 휴식 공간이 된단 말인가. “세컨드 홈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머무는 공간이 바로 사무실이니 오피스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는 한남동 골목길에 자리 잡은 다세대 주택을 개조해 1층은 직원들의 사무 공간으로, 2층은 자신의 개인 사무실로 사용한다. 지하 층에는 대학 후배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철민 씨의 작업실이 있다. 처음에는 평범한 주택가 골목이라 망설였는데 옥상에 올라가니 전망이 좋아 바로 계약했다는 그는 눈짐작으로 ‘이렇게 고치면 좋겠다’ 계획하고 직접 레노베이션을 진행했다. 평범한 다가구 주택의 마감에 변화를 주기 위해 철제 소재인 징크와 벽돌, 에폭시 등을 활용. 스무 평 남짓한 사무실은 마감재와 구조를 최대한 덜어내고, 슬라이딩 도어를 활용해 한결 넓어 보이는 공간을 완성했다. 올 11월에는 옥상 층 공사도 마무리할 예정이다. 직원들이 아예 작정하고 놀 수 있는 ‘플레이룸’과 작은 정원을 마련할 예정. 리프레시하는 방법으로 직원들의 자리도 바꿔주고 싶단다. “제가 앉는 자리에서는 창밖이 보이지만 안 보이는 자리도 있으니까요.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리를 순환 배치하기로 했어요.”

글자로 먹고 사는 그래픽 디자이너지만, 그를 매료하는 것은 ‘물성’ 자체였다. 그래서 공간에도, 가구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다. 언젠가 가구 디자인에 도전해보고 싶단다. 종이 접듯이 만든 가구, 폰트를 형상화한 가구…. 과연 그래픽 디자이너가 해석하는 가구는 어떤 형태일까?

(왼쪽) 서가와 사진 작업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슬라이딩 도어는 거대한 보드 역할도 한다.


1 그래픽 디자이너 조현 씨. 예일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2002년 귀국, 2003년부터 S/O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2 통창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철제 프레임이 시원하면서도 안정감을 더한다.

3 그는 9월 14일까지 열린 <타이포 잔치> 전시에 참여했다.
4 4층 옥상 공사를 앞두고 공간 구획을 하고 있다. 조현 씨는 자신이 인테리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5 미송 합판으로 촘촘히 짜넣은 서가는 좁은 공간에 효과적이다. 그동안 작업한 출판물이 모여 있는 그만의 작은 전시장. 
6 재단설치 작업을 위한 공간. ‘진달래’라는 그래픽 디자이너 모임에 속해 있는 조현 대표는 10여 명의 그래픽 디자이너와 함께 다큐멘트 스케치집 <진달래 스케치>를 만든다. 디지털 소묘, 설치까지 책자를 보면 그래픽 디자인의 세계가 굉장히 광범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철민
작업실은 ‘스케치북’ 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이철민 씨의 작업실을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적당한 말을 찾는다면 ‘동굴’ 이다. 어두컴컴한 ‘남자의 동굴’에는 그가 그린 회화 작품과 포스터가 곳곳에 걸려 있고 향 냄새까지 더해져 묘한 기운을 뿜어낸다. “수십 년 세월의 버팀목이 되었던 기존 마감재를 최대한 덜어내니 자연스러운 골조가 드러났죠. 한데 ‘그대로 사용하자’ 했어요. 어차피 색을 입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왕이면 아무것도 없는 바탕이 좋잖아요? ” 털털한 주인 성격을 닮아 공간도 프리 스타일이다. 입구를 시커먼 소파가 턱 하니 가로막았는가 하면, 뒤로 기운 벽에는 그대로 선반을 달아 책장으로 활용하고, 마감재는 제각각이다. 거기에 여성 감성의 샹들리에 조명과 빈티지 가구까지,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쓰던 물건이 어우러져 있다. 재미있는 점은 언뜻 무질서해 보이는 이 공간에도 나름대로 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시조의 운율을 맞추듯 그림 작업에 필요한 물감과 탄산수 병이 줄을 맞춰 서 있고 세계 각국에서 사 모은 향이 서랍 안에 가지런히 들어 있다. 그리고 하나둘씩 모은 자동차 모형도 딱 맞는 상자 안에 일렬 주차. 빼곡한 컬렉션처럼 그의 일상 역시 촘촘하다. 2주마다 마감하는 SK텔레콤의 사내보 <인사이드>의 표지와 내지 일러스트 작업을 해야 하고,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니 몇 달씩 마감이 이어질 때도 많다. 먼 곳에서 원정 경기를 올 정도로 한남동의 명소가 된 게임방(?)은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남자들만의 스트레스 해소 공간이다. 이철민 씨는 치밀한 계획으로 이 공간을 꾸민 것은 아니다. 어떤 방 벽에는 하얀 네모 블록이 칠해져 있다.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면 무언가를 그려넣기 위해 비워둔 곳이란다. “좋은 작업은 스스로 만들어지죠. 이 작업실도 그렇게 이뤄졌어요.”

(왼쪽) 조명 아래 있어 하나의 설치 작품을 연상케하는 탄산수 병. 덱 한켠에는 빈 병을 모으는 중이다. 빈 병을 잘라 컵으로 리폼할 계획이라고.


1 일러스트레이터 이철민 씨. 그의 작업실은 S/O 프로젝트 아래층에 있다(계단식 건물로 앞에서 보면 지하이고 뒤편에서 보면 1층이다). 
2 참을 인忍이라고 적혀 있는 야구 방망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제격이다.

3 2주에 한 번 메인 이슈를 토대로 표지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SK텔레콤 사내보 <인사이드>.
4 화가이신 어머니께 물려받은 화구통을 수납함으로 사용한다.

5 아름드리나무 아래 편안한 휴식처라는 뜻일까? 집 벽에도 나무를 그려넣었다는 이철민 씨. 붉은색은 모든 색으로 통하는 색,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노란색을 더해보라는 컬러 데커레이션 팁을 전한다.
6 책상 아래 스트라이프 슈즈에서 그의 자유분방한 감성이 느껴진다.

7 여행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는 그의 취향이 오롯이 드러나는 월 데커레이션. 
8 일요일 오후, 여섯 살 된 아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게임을 즐기곤 한다. 자상한 아빠이기도 한 그는 동화책 작업을 준비 중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백진
작업실은 ‘비움’이고 ‘담음’이다
디자이너 백진 씨의 진득한 취향으로 채워진 작업실은 삼청동과 가회동 사이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다. 처음 이 공간을 찾는 사람이라면 하얀 회벽의 자연스러운 마감을 빼면 특별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거실의 분위기에 젖어들면 가구 하나하나가 정확히 선택됐고, 배치에도 굉장히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거실의 물건들은 흠잡을 데 없는 신중함과 분명한 취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거실 전체에 정제된 조화를 부여하고 있다.
원래 이곳은 실크로드 박물관 자리였다. 지금과 사뭇 다른 어둡고 묵직한 공간을 부드럽되 강인하고, 환하되 가볍지 않게 연출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는 평소 좋아하는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스위스에 지은 ‘팔스Vals’ 스파를 떠올렸다. 물이 흐르면 그대로 화석처럼 자국이 되고,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스파. 오로지 빛으로 공간에 콘트라스트를 주는 그런 자연 건축물이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가까이 가보자 한 것. 그는 어중간한 마감재를 덧입히는 것보다는 생략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으로 천장, 문짝, 바닥재 등을 모두 걷어냈다. 물론 주거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식가들이 원재료의 맛을 즐기듯이 공간 디자이너는 공간 자체가 주는 자연스럽고 담박한 매력을 살릴 줄 알아야 하죠. 요리로 비유하자면 여러 양념 대신 소금만 쳐서 감칠맛을 내는 것 같은 디자인이 바로 제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 더, 숨바꼭질하듯 예상하지 못한 공간이 탁 튕겨 나오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여기 큰 창이 있고 작은 창이 있어요. 서 있으면 창밖이 집, 집, 집뿐이지만 앉으면 북악산 자락이 눈앞에 펼쳐지죠. 갑자기 세상이 열리는 거예요.”

1 낮게 내려 단 루체플렌의 펜던트 조명등, 블루 컬러 카밀라 체어를 감각적으로 매치했다.
2, 5 작업실 곳곳에는 주인이 도장 찍어놓은 듯한 그의 흔적들이 있다. 책, 꽃, 여행할 때 모은 기념품, 그리고 막 벗어놓은 듯한 신발들.

3 작가주의적으로 그려낸 그럴 듯한 포트폴리오 대신 좋은 건축, 불편하지 않은 집을 짓고 싶는 디자이너 백진 씨. 머리도 비워야 다시 채워지는 것처럼 예산이 부족할 때, 공간이 여의치 않을 때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단다. 
4 ‘빛’과 의외의 공간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을 중요시하는 그는 현관 옆 벽면을 통유리로 마감했다.

6 그는 흔적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책상 위에는 집을 고쳐주고 선물로 받은 민화 한 점, 그리고 너트와 경첩들이 무심히 놓여 있다.

7 디자이너로서 힘을 뺀, 값싼 재료로 재미있게 노는 공간. 그것이 바로 이 작업실의 매력 포인트다. 시리즈 7 빈티지 체어와 에메코 체어, 이젤을 자유롭게 배치했다. 
8 그는 군더더기를 싫어한다. 사진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공간 구석구석 수납장 등을 짜넣은 것을 보면 무척 깔끔한 성격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가구 디자이너 유정민 작업실은 ‘따뜻한 품’이다

암사동에서 방배동으로 이사한 가구 디자이너 유정민의 작업실 겸 쇼룸.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아주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곳은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쇼룸, 오른쪽은 나무를 고르고 켜고 가구를 만드는 작업 공간이다.

언제나 진중한 자세로 나무 작업을 하는 가구 디자이너 유정민 씨가 작업실을 옮겼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토록 숙원하던 쇼룸도 생기고, 옛날 작업실보다 교통이 훨씬 편해졌다며 한껏 들뜬 목소리를 들으니 덩달아 기분이 좋다. 방배동의 한적한 주택가. 홈페이지 사진 속에서만 보던 가구들이 깔끔한 공간에 펼쳐지니 상상만큼 근사하다. 새로 문을 연 밀로드 쇼룸 겸 작업실에서는 그의 완성 작품을 마음껏 볼 수 있다. 그뿐이랴, 바로 옆 작업장에서 나무를 재단하고 자르고, 천연 오일로 마감하는 것까지 전 과정이 오더메이드, 수제 작업으로 이루어지니 무엇보다 믿음이 간다. 그가 만든 가구에선 나무의 온기는 존재하되 투박하고 거친 면은 찾아볼 수 없다. 똑 떨어지는 심플한 라인, 섬세한 디테일은 단단하면서도 강인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언뜻 한국적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방음판이나 앰프를 모티프로 디자인하는 등 그만의 재미있는 상상력이 세련된 방식으로 담겨 있다. 그가 디자인만 하지 않고 이렇게 공방에서 목수 일을 병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디자인을 열심히 하지만 과연 상품화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이거든요. 제가 알아야 주장할 수 있잖아요. 반대로 직접 만들어봐야 그 가구의 문제점을 짚어낼 수 있고요.” 목수는 쓰임에 조응하는 사람이다. 나무라는 재료를 다루어 쓸모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가구를 만드는 일은 사람이 직접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제작 과정이 더욱 녹록지 않다. 모든 작품은 만들고 사용해보고,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사용자, 즉 사람이 우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목수의 작업실은 기계적인 도구들로 가득 찼지만 유난히 따뜻한 기운이 돈다. 소박한 목수, 유정민 씨의 공간도 그러했다.


1 동양적인 조형미가 돋보이는 소파 테이블. 
2 핀율의 45번 체어의 각도를 정확히 재현한 야심작, 1인 체어.

3 스토리가 있는 가구, 쓰면 쓸수록 친구같이 정이 가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가구 디자이너 유정민 씨.
4 쇼룸과 작업장이 슬라이딩 도어 하나로 나뉘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건물 전체가 음반 프로듀싱 작업을 하는 곳이라 천장고가 높고 방음 설계가 잘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5 밀로드에서 만드는 가구는 목취(덩어리 나무에서 필요한 부분을 골라내는 작업)부터 코팅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6 화이크 오크 수종을 사용한 가구는 선이 가늘고 곧으면서도 단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