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은 이맘때면 더위를 피해 대청마루에서 뒹굴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루한 장마도 끝나는가 싶더니 신기하게도 이날이면 꼭 비가 내렸는데, 바로 칠석 七夕이다. 칠석날은 부침개, 밀국수 등 시절 음식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때는 집집마다 지난 유둣날(음력 6월 보름) 전후로 수확한 햇밀을 빻은 햇밀가루가 넉넉하다 보니 이즈음의 먹을거리나 밥상에는 이것을 활용한 음식이 자주 올랐다. 게다가 여름내 지천이던 애호박도 이즈음에는 달착 지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든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칠석날이면 애호박 부침개를 어김없이 해주셨다.
애호박을 곱게 채 썬 후 소금에 절였다가 물기를 슬쩍 짜고 햇밀가루를 풀어 아주 야들야들하게 애호박 부침개를 부쳐주셨는데, 어찌나 얇고 색이 고운지 입에 넣으면 사각거리는 것이 입맛을 돋웠다. 취향에 따라 애호박이 약간 말캉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사각거리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부침개를 할 때도 사각거리는 신선한 맛을 더 좋아했다. 이렇게 하려면 썰자마자 호박에 소금간을 약간 해야 한다. 채 썬 애호박에 소금을 흩뿌리고 키로 곡식을 까부르듯 위아래로 섞고는 밀가루를 넣어 반죽한다. 애호박전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썰자마자 소금 간을 한 뒤 빨리 부쳐 먹으면 가운데 부분은 말캉하고 초록빛 겉 부분은 사각거리는 식감이 절묘해 지금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밤이면 애호박 부침개며 애호박전이 사무치게 그립다.
별미로 애호박과 호박잎 찐 것도 자주 즐겼다. 어머니는 애호박을 큼직하게 듬성듬성 썰고, 호박잎은 줄기 끝을 잘라 껍질을 벗긴 다음 밥이 우르르 끓으면 밥솥 뚜껑을 열고 애호박을 먼저 넣어 잠시 뚜껑을 덮었다가 다시 호박잎을 넣고 쪄내셨다. 나중에 밥상 위에 오른 것을 보면 애호박에도, 호박잎에도 밥알이 붙어 있는 것이 못마땅해 떼어내고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입맛을 돋우는 별미로 빼놓을 수 없는 게 노각 생채다. 더위에 지쳤을 때 이만한 반찬이 없는데, 수분 함량이 높고 칼슘과 섬유질이 많아 갈증 해소에도 좋다. 열심히 껍질을 벗기고 길게 채 썰어 소금에 절인 뒤 베보에 싸서 비틀어 물기를 짜면 양이 한 줌밖에 안 되어 허무하기까지 하지만, 초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무쳐 보리밥에 얹어 쓱쓱 비벼 먹던 맛이 일품이라 땀을 질퍽하게 흘린 날에는 노각 생채 생각이 간절하다. 씹히는 소리도 어찌나 꼬독꼬독 아작아작한지 먹다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8월의 여름 밥상은 채소 일색인지라 간혹 소금에 절여 보관해둔 자반고등어를 굽거나 조려 먹기도 했다. 함지박에 젓갈이며 자반고등어, 임연수어, 전갱이 같은 것을 이고 다니는 행상 아주머니가 들르는 날에는 자반고등어가 어김없이 밥상에 올랐다. 윤기 자르르 흐르게 굽거나 아니면 고춧가루 살짝 뿌려서 찜을 했는데, 따끈한 밥에 얹어 먹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애호박 부침개
재료 애호박 1개(300g), 밀가루 1컵(100g), 물 1컵(200ml), 소금 약간, 식용유・참기름 적당량
만들기 1 애호박은 곱게 채 썬 뒤 체에 담고 소금을 뿌려서 위아래로 까부른 다음 10분 정도 절인다.
2 밀가루에 물을 붓고 소금을 약간 넣어 잘 푼다. 여기에 절인 애호박의 물기를 살짝 짜낸 다음 넣고 고루 섞는다.
3 식용유와 참기름을 섞어 팬에 두르고 ②의 반죽을 올려 얇게 펴서 앞뒤로 노릇하게 지진다.
호박잎과 애호박찜
재료 호박잎 20장, 애호박 1개, 된장 적당량
만들기 1 호박잎은 줄기 끝을 1cm 정도 꺾어 쭉 잡아당겨 질긴 섬유질 부위인 껍질을 벗긴 다음 씻어서 물기를 뺀다.
2 애호박은 길이대로 열십자로 잘라서 씨 부분을 약간 저며내고 3cm 크기로 토막 낸다.
3 김 오른 찜통에 ②의 애호박을 얹어 5분 정도 찐 다음 호박잎을 넣고 다시 5분 정도 찐다. 애호박과 호박잎을 채반에 담은 뒤 된장을 곁들여 낸다.
노각 생채
재료 노각 채 썬 것 500g, 소금 1작은술 양념 고추장 11/2큰술, 식초 1큰술, 설탕・참기름 1작은술씩
만들기 1 노각은 껍질을 벗겨 10cm 길이로 토막 낸 다음 0.5cm 두께로 넓적하게 썬 뒤 길게 채 썬다. 그런 다음 소금을 뿌려 절였다가 물기가 생기면 꼭 짠다.
2 넓은 볼에 ①의 노각과 분량의 양념 재료를 모두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미리 무쳐놓으면 국물이 생겨 맛이 덜하므로 먹기 직전에 무친다.
자반고등어찜
재료 자반고등어 1마리, 홍고추 1개, 실파 2~3뿌리, 참기름 1/3작은술, 물 1컵
만들기 1 자반고등어는 구입 시 지느러미와 내장 등을 손질한다. 손질한 고등어는 씻어서 물기를 걷고 토막 낸다.
2 고추는 반 갈라 씨를 털어내어 채 썰고, 실파는 어슷하게 썬다.
3 냄비에 ①의 고등어를 담고 물과 참기름을 넣은 뒤 뚜껑을 덮어서 끓이다가 마지막에 ②의 홍고추와 실파를 고명으로 얹거나 고춧가루를 살짝 뿌린다.
요리 노영희(스튜디오 푸디)
- [노영희의 철든 부엌] 햇것과 늙은 것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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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이란 게 참 묘합니다. 7월 보름 ‘백중’과 7일 7일 ‘칠석’ 즈음이면 희한하게 무성하던 잡풀들도 서서히 기가 꺾입니다. 이때부터 열매들은 가을 결실을 앞두고 제맛을 내기 시작하지요. 여름내 지천이던 애호박도 이때 먹는 것은 달착지근한 맛이 각별해 부침개며 찜이며 밥상 위에 단골 메뉴로 오릅니다. 여기에 늙은 오이와 자반고등어를 더해 한 상 차려내던 엄마의 밥상이 문득 그립습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