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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백가기행]경남 문경의 운달산방 雲達山房 깊은 산속 운무가 피어오르는 다실
명당에 살면 마음이 밝아지기에 밝을 명 明 자가 들어간다. 문경 운달산 600m 지점 숨은 땅에 얹혀 있는 운달산방은 차를 마시는 그리고 차를 좋아하는 법종 스님이 지은 다실이다. 눈으로는 운무를 바라보며 귀로는 철철철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입으로는 향긋한 차를 음미하는 흥취가 있다. 좌청룡 우백호에 구불구불 휘어지며 내려오는 맥까지, 산중에 좋은 기운이 모두 모였으니 명당 중 명당이다.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명당 明堂에서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명당을 구해 거기에다 거처를 정해서 사는 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행복이다. 왜 명당이냐? 명당에서 살면 우선 몸이 건강하다. ‘신외무물 身外無物’은 철리다. 건강이 망가졌는데, 돈이 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이 쉰 넘어 몸이 건강하다면 그 사람은 인생에서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수많은 삶의 장애물을 통과하면서도 몸을 버리지 않았으니 얼마나 성공한 인생인가! 명당에 앉아 있으면 기운이 몸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지기 地氣의 맛이라고나 할까. 척추뼈를 타고 찌릿찌릿한 기운이 목덜미에 올라오고 다시 양미간으로 넘어오는 기운의 맛을 느끼면 명당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러 가지 맛을 보고 가지만, 이런 맛도 알고 가야 하는것 아닌가!

이를 풍수 용어로는 ‘승생기 乘生氣’라고 한다. 즉, 생기 生氣에 올라타는 것이다. 이 생기가 몸의 피를 타고 온몸에 돌아다니면 새벽 서너시까지 앉아서 이야기를 해도 그리 피곤하지 않다.생기가 미치지 않는 8~9층 아파트에서 살다 보면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이처럼 생기가 올라오는 장소가 명당이다. 이런 기운이 돌면 건강은 덤이고, 마음도 평안해진다. 몸이 잘 돌아가는데, 마음이 잘 돌아가지 않을 리 없다. 명당에 살면 마음이 밝아지는 것이다. 마음이 밝으면 하는 일도 잘되기 마련이다. 자기가 에너지가 충만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기분 좋게 해주는데, 다른 사람도 도와주지 않을 리 없는 이치다. 명당에 살아야 재물이 모이고, 이 재물이 또한 오래가는 이치가 여기에 담겨 있다. 요점은 몸과 마음의 밝음인 것이다. 이 이치와 맛을 아는 선인들이 명당 명당 노래를 불렀다.

(왼쪽) 운무가 피어오르는 산을 바라보며 앞마당에 앉은 법종 스님. 차 애호가인 그가 지은 다실에서도 이 풍경을 두 눈에 담는다.

문경의 운달산 雲達山은 1000m 급의 산이다. 문경은 강원도 쪽 백두대간이 한 번 꺾여서 충청도와 경상도의 내륙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백두대간의 병목 지점에 해당한다. 마치 양의 내장처럼 고산들이 밀집해 배치되어 있다. 1000m 급 고산이 많을뿐더러 그 산마다 각기 기운이 좋다. 화강암이 노출된 산일수록 기운이 좋다. 기운의 강도는 바위 강도와 비례한다. 화강암질일수록 거기에서 품어져 나오는 기운도 단단하고 야무지다. 땅의 기운을 먹고 사는 직업인 승려나 도사는 문경 일대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운달산방은 운달산의 60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높이가 적당하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어 좀 높은 지점에서 사는 것이 좋다. 500m부터 800m까지가 적당하다. 이런 지점이면 삼복더위에도 30℃가 안 넘어간다. 산이라서 복사열도 없고 600m에선 모기도 별로 없다. 사는 게 쾌적한 고도다. 내가 머무는 축령산의 휴휴산방 休休山房은 300m 해발이라 여름에 서늘 하지 않다. 600m 급이 역시 서늘해서 좋은데 운달산방은 이 고도다. 풍수교 風水敎 신자인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 이 운달산방은 명당의 조건을 대부분 갖췄다. 우선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가 좋다. 좋다는 것은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고, 양쪽에 살기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살기는 뾰쪽뾰쪽 튀어나온 바위를 일컫는다. 이런 살기가 청룡 백호에 있으면 아무래도 기운이 사나워진다. 산방의 뒤로 내려오는 맥도 직룡 直龍(일직선으로 뻗어 내려오는 맥)이 아니다. 구불구불 휘어지면서 내려와야 좋다. 직룡은 기운이 너무 강하고, 구불구불하게 내려오면 기운이 걸러져 기운의 맛이 부드럽다. 앞산의 형국도 좋다. 청룡과 백호 사이가 너무 벌어져 있으면 기운이 세고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것도 좋지 않다. 기운이 세지 않고 막혀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앞산이 적당하게 막아줘야 한다.

앞산의 높이가 너무 높으면 사는 사람에게 답답한 느낌과 위압감을 준다. 너무 낮아도 힘이 없다. 일어서서 보았을 때 배꼽 위에서 눈높이 사이에 걸리는 산의 높이가 가장 이상적이다. 이 적당한 높이를 지관은 ‘제상목하 臍上目下’라고 한다. 배꼽 ‘제 臍’자로, 배꼽 위에서 눈 아래 사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운달산방은 멀리 앞에 보이는 조산 朝山이 한일 一자로 가로막고 있어 기운을 막아주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관쇄 關鎖가 참 좋다. 앞이 벌어져 있어 마치 앞니가 두세 개 빠진 것처럼 보이는 터가 많은데, 이 운달산방은 특히 앞이 터져 있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이런 터를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 공부에 있어 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50%이상이다. 명당만 구하면 공부의 반절은 끝난 셈이다. 이런 터를 구하려면 20년 이상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풍수를 참구해야만 한다. 운도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물각유주 物各有主(물건에는 각기 주인이 따로 있다)이기 때문이다.

(왼쪽) 운달산 600m 숨은 땅 위에 지은 운달산방의 외관.

선 禪과 차 茶가 하나로 만난 다실
이 집은 산방 山房이다. 일반 살림집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형식이 불교 사찰도 아니다. 성 聖과 속 俗이 섞여 있는 집이다. 어떻게 성과 속을 섞는단 말인가? 그 중도 노선은 바로 다실이다. 이 운달산방은 차를 마시는 그리고 차를 좋아하는 차 애호가가 지은 다실이다. 다실은 속 俗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성 聖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성스러운 공간이면서도 성스러움의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는 구속감과 중압감을 최소화한 공간이다. 다실은 성스러우면서 동시에 속스러운 공간이기도 하다. 묘한 노선인 셈이다.

(왼쪽) ‛다선일미’라고 쓴 액자가 걸린 좌청룡의 다실은 15명이 앉을 수 있는 큰 방으로 운달산의 풍경을 창 안으로 담아낸다.

운달산방의 다실은 두개다. 좌청룡에 하나가 있고, 우백호에 또 하나가 있다. 좌청룡의 다실이 15명 이상 앉을 수 있는 큰 방이라면, 우백호의 다실은 3~4명이 앉아 차를 마시면 적당한 공간이다. 이 두 개의 다실을 연결하는 연결 부위에는 차를 보관하는 차 항아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생활하는 데 최소한 필요한 부엌과 세면장이 있다. 좌청룡의 큰 다실에는 ‘다선일미 茶禪一味’ 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선 禪과 차 茶가 하나라는 말이다. 참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차 마시는 행위 그 자체가 바로 참선이다.

차를 마신다는 행위를 인수분해해 살펴보면 우선 물을 길어와 무쇠 주 전자에 담아 끓인다. 어떤 물인가에 따라 차 맛이 달라지므로 물의 성질도 중요하다. 물이 깨끗해야 함은 물론이다. 물을 주전자에 끓이는 과정도 흥미롭다. 물 끓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끓는 소리 자체가 의식을 집중하게 하는 동시에 산속의 고요한 적막을 깨뜨린다. 어떻게 보면 삶의 소리고, 생존의 소리고, 존재의 소리가 되는 것이다. 동이 트기 전 새벽녘에 끓이면 폭포 소리와도 같이 들린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이 물 끓는 소리를 듣노라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아, 혼자 있어도 세상은 외롭지 않구나! 홀로 즐기는 독락 獨樂의 경지는 이런 것인가!

이러한 경지는 역시 본인이 직접 체험해보아야만 느낄 수 있다. 물을 끓인 다음에는 찻잔을 수건으로 닦는다. 물기를 없애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찻잔에 차를 부어야만 차의 품격도 살아난다. 찻잔에 차를 부을 때도 꽉 차게 부으면 안 된다. 30%는 여유를 두고 부어야만 여백이 생긴다. 이런 여백이 있어야 삶이 여유로운 것 아닌가. 멈출 줄 아는 지혜를 찻잔에 차를 부으면서 새삼 깨닫는다. 우선 찻물을 흘리지 않아야 한다. 집중력이 필요하다. 긴장하지 않는 것같으면서도 찻물을 흘리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일상생활이 모두 법도에 맞는 셈이다. 반복하다 보면 긴장이 익숙해지는 단계가 찾아온다.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

큰 다실에서 주의 깊게 볼 가구가 하나 있다. 벽을 따라 낮은 자세로 누워 있는 문갑이 바로 그것이다. 대개 문갑은 조선시대 선비의 필수 목가구였다. 사방탁자와 문갑이 필 수품이던 것이다. 문갑은 자질구레한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수납 가구다. 먹감나무 재질이 많지만, 이 다실의 문갑은 장인에게 특별하게 주문하여 보통 문갑보다 약간 큰 크기인 데다가, 그 재질도 소나무로 만들었다. 투박하면서도 튼튼하게 보인다. 이 안에다 차도구, 자질구레한 용품을 넣어두니까 방 안이 깔끔해 보인다.

우백호의 작은 다실에서 차를 마시는 법종 스님.

(왼쪽) 좌청룡 다실에서 우백호 다실로 향하는 문을 바라본다. 운달 산방의 문고리는 유난히 크고 단단하다.
(오른쪽) 비가 올 때 계곡물은 더욱 힘차게 흐른다. 좌청룡 다실에서 바라본 계곡이다.


이 운달산방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호롱불을 켜놓아야 한다. 양쪽 벽면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바깥의 석양과 보름달을 감상할 수 있는 조건이다. 보름달이 뜰 때 호롱불을 켜놓고 차를 마시면 말 그대로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이다. 더 좋은 순간은 비 올 때가 아닌가 싶다. 창밖 솔숲에 운무 雲霧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보인다. 매일 보던 앞산이 갑자기 뿌연 운무로 가려 있으면 방 안에 있는 나는 구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운무가 서서히 걷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녹색 청산이 드러난다. 특히 비가올 때 더 좋은 것은 계곡에서 힘차게 뻗어내리는 물소리다. 차실에 앉아 있으면 계곡물 소리가 귀를 울린다. 물 소리는 근심 걱정을 쓸어내린다.

청산 靑山의 유수 流水는 만고에도 흘렀고 지금도 흐른다. 생과 사가 이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다. 언제 단절된 때가 있었던가! 다실에 앉아서 눈으로는 산의 숲에서 피어오르는 운무를 보면서, 귀로는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듣고, 입으로는 향긋한 차를 음미하고, 손으로는 관음요 觀音窯의 도공이 만든 찻잔을 만지작거리는 흥취가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만하면 되었지, 얼마나 더 바라겠는가!

(왼쪽) 두 개의 다실을 연결하는 통로에 놓인 항아리 안엔 귀한 차가 한가득 담겨 있다.

우백호의 작은 다실에 들어가면 바닥은 다다미로 되어 있다. 몸에 착 달라붙는 듯하다. 예쁜 방이다. 밀착감이라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좌우 유리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큰 다실과는 다르다. 멀리 조산이 보인다. 좌청룡 산맥의 유려한 곡선을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방에 처음 들어오면서 이런 느낌이 들었다. “부지차향 불입차실 不知茶香, 不入此室” 이라고 집주인인 법종 法種 스님에게 써드렸다. ‘차의 향기를 모르는 사람은 이 방에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뜻이다. 이 방은 비밀의 방이다. 차를 모르는 거친 속한 俗漢이 이 방에 들어오면 방의 기운을 오염시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운달산의 정기가 뭉쳐 있는 혈 穴 자리에 비승비속의 운달산방을 지어 차를 마실 수 있게 한 법종 스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청운 靑雲 조용헌 趙龍憲 선생은 ‘백가기행’을 통해 가내 구원 家內救援을 이야기합니다. 위로와 휴식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행복>과 함께 각양각색의 집을 돌아보며 그가 찾아낸 가내구원의 공간은 다실, 구들장, 중정이라 합니다. 그중에서도 현대인이 꼭 갖추어야 할 공간으로 다실을 주목합니다. 저서로는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고수 기행>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그리고 <행복>에 연재되었던 백가기행 칼럼을 엮어 출간한 <조용헌의 백가기행 白家紀行> 등이 있습니다.
글 조용헌 사진 임민철 담당 배효정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