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활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기슬랭 비나스가 디자인한 페이지 웨스트 가족의 타운하우스. 가족 공간이 시작되는 3층 리빙 룸은 다양한 미술 작품과 오브제 같은 가구로 꾸며 웅장한 규모감이 느껴진다.
화려한 문양의 아트월로 꾸민 널찍한 전실. 기슬랭 비나스는 사실 많은 컬러를 사용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 선택을 하는 데 굉장히 신중한 편이다. 공간에 원색 컬러를 매치할 때는 화이트 벽면을 선택. 먼저 어떤 컬러로 포인트를 줄지 결정하고 그에 맞춰 가구와 예술 작품을 고른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기슬랭 비나스 Ghislaine Vinas에게 특별히 색상을 강조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단지 어깨를 들썩이며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컬러는 아주 본질적인 것이라 말하는 그는 “당신이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금 당장 페인트 붓을 들라”고 조언한다. 그는 자신의 대담무쌍함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재능이라고 말하며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크레파스 사이에서 자랐다고 회고한다.
“색칠 공부 책들은 제게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공원을 산책할 때 곰이 덮칠까 걱정해본 적은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색상에 대해 두려워해본 적은 없지요. 컬러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요소니까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그는 베이지, 브라운 등의 컬러로 작업하는 데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또한 왜 많은 이가 인테리어에 원색의 밝은 컬러를 사용하는 걸 두려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디자인한 최신작 뉴욕 트라이베카 구역에 자리 잡은 6층짜리 타운하우스는 컬러와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는 그의 스타일을 대변해주는 곳이다. 현관에 들어서면 오렌지색 플뢰르 드 리스 fleur-de-lys(프랑스를 상징하는 백합 모양 장식 문양) 모티프를 차용한 아트월과 오렌지색 테이블이 마주하고, 아이들의 놀이방은 붉은색 두 줄을 평행으로 둘렀으며, 주방의 아일랜드 조리대는 달걀노른자 컬러로 칠했다. 서재에는 마치 초록색 잔디 러그에서 풀을 뜯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양 오브제를 놓아두었다.
(왼쪽) 마르셀 반더스가 디자인한 플로스의 캔캔 조명, 빨간 물병 두 개와 애플 그린 컬러 트레이, 노란색 주물 냄비, 수박까지 마치 계산한 듯 똑 떨어지는 소품 매치가 하나의 광고 비주얼을 보는 듯하다.
(왼쪽) 벼룩시장에서 하나둘 구입한 빈티지 접시. 제각기 다른 형태라 벽에 붙이면 그 자체로 리듬감 넘치는 오브제가 된다.
(오른쪽) 공간에 설치한 예술 작품은 모두 페이지 웨스트가 선택한 것. 그린, 레드, 옐로 등 비비드 컬러로 공간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오래된 창고 건물, 거대한 ‘비주얼 아트’로 변모하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집은 갤러리스트 페이지 웨스트 Paige West와 부동산 개발업자 제이시 킬러 JC Keeler 부부의 공간이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페이지 웨스트는 첼시에 있는 믹스드 그린스 갤러리(www.mixedgreens.com)를 운영하며 약 3천5백여 점의 예술품을 컬렉션하고 있다. 부부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타운하우스에 살았는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높은 층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불편해 이사를 감행했다(현재 다섯 살 난 찰리와 세 살 난 쌍둥이 잭과 프레드 이렇게 세 아이가 있다). 이 집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저 풍부한 색감뿐이 아니다. 남편 제이시 킬러의 말을 빌리면, 이 집은 살기 좋은 최고의 로프트를 표방했다.
1915년에 지은 창고 건물이던 이곳은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건축가인 피트 게리 Pete Guthrie가 레노베이션했다. 기존의 건물 중 바닥 마루 자재와 세 곳의 벽돌담 외벽은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꼭대기층에는 펜트하우스를 배치했고 그 위에는 옥상 정원을 만들었다. 건물 내에는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을 뚜렷하게 나눴다. 아래 2개 층은 손님을 위한 게스트 룸으로, 위쪽 4개 층은 가족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구분한 것. 비록 오래된 건물 외벽을 남편 킬러의 고향인 캐츠킬의 산에서 가져온 푸른색 돌로 교체했지만, 유리창은 원형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이 거리나 이웃집 풍경과 너무 동떨어진 분위기가 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다고 말하는 건축가는 “이번 프로젝트는 페이지와 기슬랭 두 사람이 진정으로 그들만의 색깔을 표현해내고, 이 공간 안에서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건축물의 구조적 디자인을 최대한 절제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20세기 초에 지은 창고 건물은 중앙 홀을 통해 6개 층으로 연결되고, 눈길을 사로잡는 컬러 블록과 조형물 같은 가구가 어우러져 마치 수십 개의 비주얼 아트처럼 변모했다.
이 타운하우스는 페이지 웨스트와 기슬랭 비나스가 함께하는 일곱 번째 프로젝트다. 사실 웨스트는 그동안 기슬랭 비나스가 아닌 다른 디자이너에게 일을 부탁해본 적이 없다. 상대방이 말하는 문장을 이어 대신 마무리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의 속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는 두 사람은 나이도, 국적도 다르지만 취향과 가치관은 많이 닮아 있다.
(위, 아래) 보통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그린 컬러를 많이 사용한다. 기슬랭 비나스는 아이 방은 물론 욕실에 그린 컬러를 종종 사용한다. 화이트 큐브 형태의 공간과 그린 컬러가 만났을 때 산뜻하면서도 그래픽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 양 오브제로 안락하게 꾸민 꼭대기 층 서재.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에서 자란 기슬랭 비나스. 국경을 초월한 감성과 유머 그리고 신선한 열정, 그의 성장 배경은 그가 선보이는 디자인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컬러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마치 하얀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만 있으면 신나 하는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다.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은 수학 공식을 푸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냥 본능적으로 즐기는 것이지요.”
웨스트가 말을 잇는다. “기슬랭은 내 눈높이를 이해하고 접근할줄 압니다. 어떤 것이 좋은 디자인이고, 좋은 제품인지 알지만 현실적으로 여섯 살도 안 된 사내아이가 셋이나 있다 보니 되도록 장식적인 것은 피하지요. 그는 그 점을 이해하고 있어 특별하면서도 살기 편하고, 쉽게 망가지지 않는 디자인을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현관 전실의 에나멜 소재로 감싼 의자 한 쌍이다.
(왼쪽) 쌍둥이의 침실에는 믹스드 그린스 갤러리에 소속된 예술가인 마크 멀로니의 벽화를 설치했다.
코발트블루 컬러의 깃털 조명등이 공간을 압도하는 웨스트의 서재. 책장 안쪽 면도 터키 블루빛 벽지를 발라 장식했다.
이처럼 독특한 디자인에 대한 영감은 개연성 없는 수많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어, 꼭대기 층의 서재는 스칸디나비아 태생인 안주인 페이지 웨스트의 취향을 반영해 자연 원목으로 마감했다. 북유럽 특유의 플로럴 패브릭 소파를 매치해 내추럴하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페이지 웨스트는 자신만의 서재 공간을 디자인할 무렵 잡지에서 앵무새 사진을 보았는데, 밝은 파랑과 노랑 그리고 보송보송한 털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사진을 디자이너에게 보여주며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서재 공간”이라고 말하자 비나스의 반응은 놀라웠다. 불과 며칠 후 코발트 블루 컬러의 깃털이 나풀거리는 커다란 조명등을 가지고 온 것.
거실에는 노란색 눈송이 입자와 면사포 단면의 모티프를 활용한 카펫을 연출했는데, 이는 부부가 아스펜의 스키 리조트에서 결혼식을 올린 사실을 상징한다. 응접실 의자에는 스시, 스파게티 미트볼, 아이스크림 등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도 그려 넣었다. 집은 주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디자이너의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또 이질적인 것이 만났을 때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좋아하는 그는 평범한 가구도 서로 다른 질감이나 형태를 섞을 경우 그 분위기가 전혀 달라진다고 조언한다. 서재의 아크릴 테이블 위에 깃털 조명등을 매치한 것이 그 예다. 주방 벽은 벼룩시장과 차고 세일에서 구입한 수십 개의 접시를 원형 모양으로 붙여두었다. 그중에는 보기 흉한 것도 있는데, 디자이너는 이처럼 “보기 흉한 것들로부터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 또한 신나는 일”이라고 말하며 미소 짓는다.
(왼쪽) 집의 웅장한 규모감을 느낄 수 있는 3층 홀. 계단 사이에 우뚝 솟은 스티로폼 탑은 조각가 제이슨 로젠스의 설치 작품이다.
(오른쪽) 전실에는 아이가 있는 집에서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에나멜 소재로 커버링한 암체어를 두었다.
안주인의 직업상 공간에 예술적 요소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레노베이션을 시작하기 전 웨스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예술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주방에 있는 리사 라이테리의 그림 ‘폭력배’다. 1951년에 제작한 미국 영화와 제목이 같은 이 작품은 빨강과 노랑, 파랑의 매치가 특징이다. “밝고 재미있는 이미지, 제가 바라는 ‘집’에 대한 철학이 바로 이 그림 안에 있습니다.” 웅장한 계단 가운데에 설치한 브루클린의 조각가 제이슨 로젠스의 탑 모양 설치 작품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실 벽에는 사이먼 페리턴 Simon Perriton의 종이를 오려 만든 둥근 작품을 설치했는데, 그는 이 작품을 두고 농담 삼아 “우리 가족의 커다란 케이크 접시”라고 말하곤 한다. 남편 킬러를 위해서는 외관에 신경을 썼다. 킬러는 12m나 되는 암벽 타기 벽을 설치해주길 원했고, 디자이너는 손과 발이 닿는 홀더를 네온 초록색으로 디자인해 건물 외벽에 설치했다.
그는 20년 전부터 콜로라도에서 암벽 등반을 해왔다. 아내는 “산책을 하다가도 벽들을 쳐다보며 자꾸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려 한다”고 말하며 여가 시간에 취미 활동에 몰입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살짝 드러냈지만, 이내 ‘인테리어에 관해 모든 것을 일임해준 것’에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함께 작업하면서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표정이 달라집니다.” 킬러 씨가 말을 잇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감에 대한 아주 확고한 신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점입니다. 공간과 사물이라는 배경 속에서 ‘사는 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이 쇼를 충분히, 잘 진두지휘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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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김미영 자료 제공 파이 인터내셔날 담당 이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