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닝 룸의 장식장에 야도르 인형이 놓인 풍경은 마치 가구가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천장에 은은하게 깔린 몰딩은 은색 위에 금박을 입혀 만든 것. 집주인 최선희 씨는 원하는 톤의 몰딩을 제작할 정도로 ‘골드’ 사랑이 극진하다.
첫째 딸 김지민 씨의 방은 서로 다른 디자인이 어우러져있다. 벽에 걸린 작품은 중국 작가 인준 Yin Jun의 ‘우는 아이’ 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레이스 베딩이 깔린 여성스런 침대는 어린 시절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플라스틱 튜브를 꼬아 만든 의자를 매치해 재미를 줬다. 속이 빈 플라스틱을 꽃부리 형태로 만든 이 의자는 깜빠냐 형제가 디자인한 에드라의 아네모네 Anemone로 웰즈에서 구입할 수 있다.
뉴욕의 로프트가 연상되는 모던한 캔버스를 가진 이 아파트에 10년 전 입주할 시기는 모던한 스타일이 대세였지만 최선희 씨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아파트 전체에 젠 Zen 스타일이 유행이었어요. 집이 모던하다고 취향까지 바꿀 순 없으니 제 식대로 꾸몄어요. 꽃과 나비, 그리고 골드 컬러를 좋아하는 취향 덕분에 우리 집 가구는 매우 클래식하고 화려했죠. 새로 산 가구보단 오랫동안 사용한 가구가 대부분이었고요.”
점차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가구에 조금씩 싫증을 느끼던 때 그는 평소 친분이 있던 이선 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두 사람은 가족처럼 아끼는 애완견 이야기는 물론 클래식 가구, 예술품까지 영역을 넘나들며 서로 대화가 잘 통했다.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비에쎄와 부티크 살롱 루이엘 DA 347(02-558-8789)을 운영하는 이선 씨는 평소 이 집이 품은 스토리가 좋았다고 말한다. “스타일링을 하기 전 흔히 무슨무슨 스타일로 정의된 범주 안에서 디자인을 결정하지만 이 집은 이미 소장한 예술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여행에서 건진 다양한 수집품부터 그림, 조각품까지 혼재된 예술 작품을 잘 버무릴 방법을 찾고, 인테리어는 가구를 위한 완벽한 캔버스가 되길 바랐어요.”
(왼쪽) 지민 씨의 방에서 거실로 나가는 복도. 거대한 오드리 헵번은 김동유 씨의 작품이다. 최선희 씨가 우연히 김동유 씨의 작업실에 놀러갔다 그가 처음으로 그린 오드리 헵번을 발견해 구입한 것.
(오른쪽) 최선희 씨의 첫째 딸 김지민 씨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예비 디자이너로 자신의 방 맞은편 서재를 아틀리에처럼 활용한다. 기존 공간에 책꽂이만 맞춰 넣고, 심플한 책상 하나 두어 작업에 매진하는 장소다.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것은 조명으로 이 방은 천장에 여러 개의 할로겐 조명을 달아 공간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얻었다. 이곳엔 펜트하우스만 누릴 수 있는 ‘풍경’이란 선물이 있다. “밤이 되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야경에 영감을 얻어 디자인에 반영하기도 해요. 어디에 가도 집보다 훌륭한 작업실은 없을 거예요.” 정면에 보이는 ‘해골’ 작품은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의 작품.
집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공간은 강렬해야 한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다이닝 룸에 주인공 자리를 내주었다. 핑크와 그린의 컬러 대비가 사랑스러운 다이닝 룸은 그야말로 그림 같은 공간이다. 주방 대신 다이닝 룸이 전면에 드러나 거실과 연결되는데 처음엔 큰 그림이나 조각품을 둘까 고민했다. 하지만 최선희 씨가 수집해 온 야도르 llador 인형과 빈티지 그릇이 모태가 되어 작품 같은 가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여자라면 누구나 예쁜 그릇장에 새하얀 그릇이 가득 찬 주방을 꿈꾸잖아요. 베르사유 궁전에서 발견한 듯 장식장 그 자체로 그림이 되는 풍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최선희 씨는 무아쏘니에의 클래식하고 화려함을 좋아하는데 정작 한국에서 원하는 디자인을 찾지 못해 제가 프랑스 무아쏘니에 본사로 날아갔어요. 딥 핑크와 그린의 보색 대비가 강렬한 장식장부터 식탁까지 다이닝 룸의 가구를 주문 제작 했어요. 특히 장식장은 장식적인 수납과 기능적인 수납이 결합되어 이 집의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답니다.” 최선희 씨의 컬렉션은 비단 야도르 인형에 그치지 않는다. 애완견을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은 강아지 오브제가 장식장 하나를 가득 채우고, 청자부터 백자까지 디자인이 남다른 도자기가 거실 한편에 줄지어 서 있다.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나 용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소품이라면 시대나 디자인, 컬러 등에 관계없이 한데 모아두었을 때 의외로 멋스럽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1 침실엔 가벽을 세워 남편을 위한 미니 서재를 만들었다.
2 화려한 거실의 중심에 놓인 소파는 이선 대표의 제안대로 약간 틀어 사선으로 배치했다. 거실이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3 유난히 통로가 긴 이 집에 꼭 두고 싶었던 작품이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 아트. 최선희 씨의 지인이 소장한 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은은히 비치는 불빛이 썰렁했던 통로를 갤러리처럼 만들었다.
4 뉴욕에서 구입한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테이블. 테이블의 배경이 되어준 카펫은 나니 마르퀴나의 포르모사 Formosa 제품으로 웰즈에서 판매.
집 안 곳곳을 채운 미술품은 최선희 씨와 첫째 딸 지민 씨의 합작품이다. 오랫동안 미술을 공부한 딸과 엄마의 호기심이 더해져 집 안을 예술적 풍미로 가득 채웠다. 그렇다고 값 비싼 작품을 무리해 구입하기보다는 신진 작가의 처녀작을 구입한 경우가 많다. 운 좋게도 모녀가 고른 작품의 작가가 몇 해 뒤 인기 작가로 뜨는 경우가 많았다고.
“엄마와 뉴욕에서 갤러리를 지나다 우연히 조각가 데이비드 걸스타인 David Gerstein의 전시를 보고 단숨에 매료됐어요. 컬러풀하고 생동감 넘치는 그의 작품을 구입해 지금은 거실 테이블로 사용 중이에요. 미국에서 작품을 가져올 때 배송에 어려움이 있어 네모난 유리 상판을 뺐어요. 대신 우리 집에 어울리는 라운드 형태로 상판을 제작했답니다. 거대한 오드리 헵번 작품은 김동유 작가의 작업실을 찾은 엄마가 첫 오드리 헵번 작품을 발견하고 구입한 거래요. 요즘은 갤러리에서 공동으로 여는 아트페어를 둘러보고, 원석을 찾아낸답니다. 이러한 과정은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제게도 많은 도움이 돼요.”
(왼쪽) 화려한 테이블을 장식할 화룡점정은 샹들리에. 골드 샹들리에 너머 걸린 작품은 박성민 씨 작품이다.
구조변경 없이 가구 배치만 달라져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구조가 바뀐 건 부부 침실뿐. 서재가 딸 지민이 씨의 작업실이 되면서 아빠만의 공간이 사라져 침실 한쪽에 가벽을 세워 미니 서재를 만들었다. 라운드형으로 디자인한 MDF 가벽은 입구에서 봤을 때 침대를 가려 프라이버시도 보호한다. 이선 씨는 침대를 벽에 붙여놓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침대 헤드보드 뒤편이 실은 기관실이에요. 이 벽을 가리고자 커튼을 내렸고, 기존의 침대에 헤드보드를 커버링했어요. 과감한 패턴의 용무늬를 선택한 건 집주인 최선희 씨예요. 패브릭 샘플의 작은 용을 보고 침실에 쓰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패브릭과 함께 침대의 위치도 바꿨어요. 예전엔 침대를 한쪽 벽면에 붙였지만 침실 기능을 수면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침대를 방의 중심에 놓았죠. 이러한 변화는 침대 헤드보드의 디자인을 강조하는 데도 효과적이에요.”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듯 패브릭이나 소품, 작품 등에 변화를 준다는 최선희 씨는 지난 10년간 부지런히 집을 가꿔왔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물으니 쉬어갈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얼마 후 두 딸이 미국으로 떠나는데, 아이들의 방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에요. 밥 먹고 잠자는 휴식 공간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평온한 그림처럼 바라만 봐도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오른쪽) 애완견에 사랑이 남다른 최선희 씨가 수집한 강아지 조각품. 여행을 다니면서 하나씩 모은 것이 어느덧 장식장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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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 분위기를 바꾸는 작은 아이디어 1 작은 차이지만, 주방을 향해 소파를 30° 정도 틀어보자. 침실과 마찬가지로 거실에서도 가구 배치가 벽이 아닌 공간의 중심으로 이동하면 훨씬 풍성한 공간을 완성할 수 있다. 2 거실에서 가구의 배치만큼이나 중요한 게 창문. 이 집은 펜트하우스의 장점과 강렬한 햇살을 막아줄 창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 양옆으로 여닫이식 갤러리 도어를 설치했다. 3 사적인 이야기를 담은 오브제를 활용하자. 친정아버지가 선물한 야도르 인형, 애완견을 닮아 여행길에 산 조각품 등 비슷한 것끼리 한데 모아두면 믹스 매치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이렇게 모인 물건은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인테리어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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