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 율(1912~1989년)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하는 집과 함께 그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위한 인테리어 역시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치 하나의 공간을 설계하는 것처럼 만든, 굳이 형태에 ‘디자인’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은 핀 율의 가구는 정교한 예술 작품이자 하나의 완성된 건축물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화려한 기교 없이 이음매를 자연스럽게 휘어 장식 효과를 낸 가구는 반백 년이 훌쩍 지난 현재에도 멋스럽다.
1 그의 재치를 엿볼 수 있는‘109번 체어’는 1946년 작품. 팔걸이 앞쪽에 파인 홈이 장시간 계속되는 회의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준다.
2 상판 부분이 분리되며, 흑과 백의 양면으로 사용 가능한 ‘트레이 테이블’.
핀 율이 처음 가구를 제작한 것은 1930년대로, 이제 그 가구의 나이는 산수 傘壽 (80세)에 가깝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내 ‘한네 빌헬름 한센 Hanne Wilhelm Hansen’과 덴마크의 가구 제작 회사 ‘원컬렉션 Onecollection’의 확고한 의지와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핀 율이 죽은 후 그의 가구가 제대로 명맥을 잇지 못 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 그의 미망인은 부군의 훌륭한 디자인이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랐다.
다행히 핀 율의 디자인에 경외심을 갖고 있던 원컬렉션과 인연이 닿아, 이제 그의 가구를 산 넘고 바다 건너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원컬렉션은 핀율의 정교한 디자인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도록 숙련된 장인을 찾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목재를 다루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일본의 ‘기타니 キタニ’사를 찾아 냈다. 미망인과 원컬렉션 모두가 고집한 핀 율 디자인 그대로의 목제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공수한 원목 소재 월넛을 사용해 기타니사의 장인들이 만든 가구 프레임은 다시 덴마크로 보내 핀 율의 완벽한 마스터피스로 재탄생한다.
3 자신을 위해 설계한 첫 번째 집이자 최고의 걸작품. 1942년부터 1989년 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4 그의 집에서 가장 뛰어난 방으로 손꼽히는 거실. 어느 한 부분도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코펜하겐의 오드럽 Ordrup에 보존돼 있다.
5 1946년 작품‘108번 체어’는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6 거실 한쪽에 있는 서랍장. 가운데를 벌리면 산뜻한 컬러가 나오는 기발한 디자인이다.
7 그가 제작한 첫 의자인 ‘펠리칸 체어’는 다양한 색상과 패브릭으로 재생산하고 있다.
8 핀 율은 덴마크 디자인을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산업 디자이너다. 1951년 뉴욕의 UN 본부 내 이사회 회의실 건축을 성공적으로 완공해 미국에 처음으로 덴마크 모던 디자인을 소개한 인물로, 1950년대 트리엔날레 디자인 박람회에서 5개의 금메달을 수상했다.
핀 율의 가구를 청담동 매장 쇼룸에 전시하는 사피 SAFI의 이석민 대표는 “핀 율의 가구는 혼자서 무게를 잡는다거나 공간을 압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웃게 하는 동시에 공간에 재미를 더해주지요”라고 전한다. 그의 첫 의자인 ‘펠리칸 체어’가 대표적.
현재 다양한 색상과 소재로 재생산하고 있는 펠리칸 체어는 21세기의 그 어떤 가구보다도 유쾌한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그의 가구는 결코 쉽게 태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구조적 면에서 그의 의자는 완벽함 그 자체이며, 지금까지도 많은 가구 디자이너에게 편안한 의자 디자인의 바이블로 통한다. 아마도 핀 율의 가구라고 인식할 수 없었겠지만, ‘45번 체어’의 디자인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45번 체어’는 ‘현대 의자의 어머니’라는 칭송을 받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
는 자신이 만든 의자의 바닥과 등판 사이의 각도, 팔걸이 길이, 등받이 높이 등 모든 부분을 인체 공학적으로 만들었다. 또, 일명 추장 의자라고 불리는 ‘치프테인 체어 Chieftain Chair’는 바른 자세로 앉기보다는 다리를 팔걸이에 올리고 몸을 의자에 맡겨 편안하게 푹 기대고 앉아야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핀 율 자신과 아내가 사용하기 위해 디자인한 ‘포엣 Poet 소파’는 ‘시’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곡선 형태의 콤팩트한 디자인으로, 거실에서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안락함은 그대로 살아 있다.
(오른쪽) 사피 매장 3층에 전시 중인 핀 율의 가구와 국대호 작가의 그림. 앞쪽에 놓인 가구는 치프테인 체어와 아이 테이블 Eye Table, 뒤쪽에 보이는 것은 109번 체어.
또 다른 그의 대표작 ‘109번 체어’에서는 재치를 엿볼 수 있다. 길어지는 회의 시간, 109번 체어의 팔걸이 앞쪽에 파인 홈은 오랜 시간 계속되는 회의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준다. 2012년은 핀 율이 탄생한 지 100주년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덴마크 자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많다. 원컬렉션에서는 핀 율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일정 개수만 생산하는 한정판 의자를 선보일 계획. 이런 뜻깊은 전시가 한국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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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협조 SAFI(02-517-5111) 자료 제공 원컬렉션(www.onecollec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