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 체어스 온 더 힐(02-747-7854)에는 강석현 작가와 컬래버레이션 한 벤치 포 투 bench for two를 비롯해 가구 디자이너 한정현 씨의 작품이 생활 공간처럼 전시되어 있다.
#장면 1
1997년 샌프란시스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프리마켓이 열렸다. 가구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처음으로 만든 습작품을 지역 주민에게 판매하는 행사. 나무 벤치를 사이에 두고 한 여학생과 중년 부인이 한창 흥정을 벌이고 있다.
#장면 2
2005년 파리 가구 박람회. 한 부스에 사람이 북적인다. 전시된 가구는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벤치. 나뭇결을 잘 살려 특유의 동양적인 감성이 살아 있는 이 벤치는 영국의 디자인 잡지 <월페이퍼 Wallpaper>에 소개된다.
#장면 3
같은 해 케이프타운. 한 남자가 덱 deck에 앉아 잡지를 보다 동양의 젊은 가구 디자이너가 만든 작은 벤치 사진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는 디자이너에게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대학 시절 만들었다는 젊은 디자이너의 벤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가로질러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진다.
#장면 4
2007년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제법 멋스러운 나무 벤치를 발견했다. 덱 곳곳에 자리 잡은 벤치는얼핏 불편해보이지만 앉으니 무척 편안해 관람객의 지친 발걸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가구 디자이너 한정현 씨.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 재학 시절 가구 디자인으로 전공을 결정한 후 선보인 첫 과제물이 바로 ‘벤치 포투 bench for two’ 였다.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이 영국 잡지 <월페이퍼>에 소개되면서 가구 디자이너 한정현 씨의 이름은 ‘동양의 약속’이라는 타이틀로 많은 이에게 각인된다. 그는 크랜브룩 아카데미에서 3D 디자인 석사를 마치고 지난 2003년 귀국한다. 첫 개인전 <더불어 홀로>(2003년)전으로 가구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알리고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은 물론 런던 디자이너스 블록, 파리 국제 가구 박람회 등 다수의 국내외 페어에 참여했다. 그리고 결혼 후 처음연 전시이자 두 번째 개인전인 <모던 아날로그>(2009년)전으로 큰 호평을 받으며 디자이너로서 ‘물이 올랐다’라는 찬사를 들었다. 당시 화제를 모은 ‘코르크 앤 코르크 cork n cork’ 의자는 디자이너와 사용자가 함께 만드는 가구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다.
가구, 나의 이야기 19세기 영국의 미술 공예 운동을 이끈 예술 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 디자이너인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는 환상 소설 <에코토피아 뉴스>에서 “노동의 대가는 ‘삶’이다. 그리고 뛰어난 노동에 대한 대가는 ‘창조’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서 오는 창조의 기쁨이야말로 최고의 보상이라고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코르크 앤 코르크’ 의자는 샴페인의 코르크 마개를 하나씩 끼워 사용자가 완성하는 작품이다. 무언가를 축하하거나 누군가를 환영할 때 마시는 이 샴페인을 통해 행복한 순간의 기억을 모으는 것처럼 가구를 완성하는 것. 이 의자는 샴페인 코르크가 바닥과 등받이에 다 채워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데, 이는 ‘디자인의 시작은 디자이너지만 완성은 사용자의 몫’이라는 그의 디자인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윌리엄 모리스의 말처럼 소비자는 이 과정을 통해 ‘창조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1 체어스 온 더 힐 1층에 마련된 작은 전시 공간. 12월 28일부터 한달동안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기획 전시가 열린다.
2 제자들을 위해 공간을 빌려주고 전시 큐레이팅까지 맡은 가구 디자이너 한정현 씨. 의자 ‘텔레사피언스’는 물질만능 시대에서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유머러스하게 담고 있다.
한정현 씨의 가구는 창의력과 기능성이 잘 조화되어 있다. 사용하기에 편하지만, 사용하지 않을 때는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이는 것. 가구를 디자인할 때 그 속에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의 가구는 어찌보면 과거의 추억, 현재의 감정, 또 미래에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와인을 좋아하는 그는(삼청동 붐이 일기 전 와인바 토스 Tos를 운영하기도 했다) 코르크 의자를 비롯해 와인과 관련된 작업을 종종 선보인다. 하이글로시 스탠드형 와인 랙 ‘오프-너 1 open-er 1’은 미니 홈 바와 사이드 테이블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 또 지나간 시간을 사색하는 것을 즐긴다는 그는 ‘시간’이라는 모티프에도 집중한다. 세로 혹은 가로로 걸 수 있는 기다란 거울 ‘랑데부 rendezvou’는 양쪽에2개의 시계가 달려 있어 외국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 때 시차를 계산할 필요가 없다. 또한 그의 디자인에는 언제나 유머 코드가 담겨 있는데 이는 디자인의 중심에 ‘사람’이 있고, 거기에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디자인 철학에 밑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밥 먹는 외로움에서 착안한 ‘텔레사피언스 Tele-Sapiens’가 대표적인 예다. 이 의자는 등받이에 설치된 LCD 모니터로 친구와 화상 통화를 할 수 있고, 아침 일찍 배달된 메일을 확인할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 콘셉트가 재밌다. 친구가 없을 땐 친구처럼 마주 앉아 벗이 되어주고, 친구가 왔을 때는 진짜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의자가 되는 것. 이 역시 오랜 유학 생활 동안 지구촌에 흩어져 있는 그리운 정든 가족과 친구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대중과 대화하는 그의 작품중에는 유난히 의자가 많다. 2007년 가회동에 오픈한 작업실 겸 쇼룸 ‘체어스 온 더 힐 chair on the hill’이라는 이름만 봐도 그가 ‘의자’ 를 편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자는 사람과 가장 오랜 시간, 가장 많이 닿는 가구인 만큼 다양한 오브제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빈티지 싱거 재봉틀 다리는 가구 공방 장인이 다음 작품에 활용해보라며 오리지널 빈티지 제품을 구해준 것. 과거와 현재의 만남, 모던 아날로그를 주제로 모던한 테이블을 만들 계획.
4 이직도 디자이너 한정현을 만나기 위해 체어스 온 더 힐을 찾는 학생들이 많다. 그에게 작업실은 대중과 소통하는 통로이다.
작품과 상품 사이, 아트 퍼니처 심지어 그 ‘의자’가 벽에 매달렸다! ‘체어스 온 더 월 chairs on the wall’은 그의 담당 교수인 알퐁스 마티아 Alponse Mattia 교수가 영감을 준 작품이다. “회화 작품은 가격과 가치가 정비례한다고 믿죠. 이 작품은 가구를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반발심에서 시작한 거예요. ‘그림처럼 벽에 한 번 걸어봐?’ 하는 식으로요.” 의자는 항상 바닥에, 사람이 앉아야만 그 쓰임새가 있다는 개념을 뒤집은 것이다. 그림처럼 걸고 감상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선반(on the floor)’과 공중에 부양한 의자(두 작품은 콤비를 이룬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렇게 실험적인 작품이 ‘잘 팔리느냐?’라고 묻자 어느 도예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도예가가 거대한 원반 형태의 벽에 거는 오브제를 만들었다. 쓰임새를 주기위해 가장자리를 살짝 구부렸더니 접시가 되었다. 하지만 접시가 되자 되레 가격이 떨어졌다. ‘쓰임’이라는 개념은 이처럼 아이러니한 것이다. 쓰임이 있으면 더 비싸져야 하는데, 작품이 ‘용품’이 되는 순간 가치가 떨어지니 말이다. 그가 갖고 있는 고민도 같은 맥락이다. “가구는 쓰임이 필요하잖아요. 사용하기 위한 물건이기 때문에 더 인색해요. 몇 해 전 신문에 전시 기사가 난 적이 있어요. 하루 동안 전화통이 불나고, 심지어 그 기사를 들고 찾아오는 손님도 있었죠. 한 사업가가 고급 세단을 타고 찾아왔어요. 쇼룸을 둘러보더니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림이었다면 ‘비싸다’가 아니라 ‘소장 가치가 있냐?’라고 물었겠죠.”
가격을 낮추려면 양산을 선택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디자인에 또 다른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당연히 새로운 작품을 디자인할 의욕이 꺾일 수밖에. 그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싼 제품을 많이 사서 작가의 의욕을 고취시켜주세요’가 아니다. 아트퍼니처의 매력은 오트 쿠튀르라는 점이다. 모든 가격의 잣대가 대량 생산되는 제품에 맞춰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작품이냐 상품이냐, 디자이너냐 장사꾼이냐. 이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다. 그 역시 여전히 매 순간 고민한다. 나는 작가일까, 장사꾼일까? 상품을 만드는 것일까, 작품을 만드는 것일까?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 명쾌하다. “저는 그냥 작가 할래요. 만들때는 작가고, 팔 때는 장사꾼!(웃음).”
(왼쪽) 독일 디자인 박람회 프로젝트로 만든 윷놀이 세트.
서른다섯, 하프타임 인터뷰 전문가 김서령 씨는 찻집에서 3시간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살림집에 30분 가보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인터뷰는 지난해 봄부터 계획한 것이다. 지난 봄 그의 언니가 가회동 체어스 온 더 힐 건너편에 낡은 한옥을 레노베이션했으니 구경 오라며 초대한 것. ‘집은 불편해야 한다’는 괴팍한(?) 신념을 가진 건축가 조건형 씨의 오랜만의 작업이라 반가웠다. 하지만 더욱 큰 성과는 한정현이라는 가구 디자이너의 숨은 인테리어 감각을 발견한 것이다. “언니와 형부가 모두 대학교수라 집에서 책만 읽고 인테리어에는 문외한이에요. 그래서 인테리어에 관한 모든 것을 제게 일임했어요.” 그는 당시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또 재밌게 작업했다. “저희 부부는 지난해 여름 입주할 집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임시로 살고 있는 신혼집을 제대로 꾸미지 못했거든요. 그 한을 죄다 언니 집에 푼거라 할 수 있죠. 결과적으로는 예행연습이 되었지만요.”
1 그가 직접 꾸민 신혼집. 패치워크 시리즈 식탁과 박선기 작가의 설치 작품이 모던한 공간과 조화를 이룬다. 2 가회동 언니네 집 거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고즈넉한 동네 풍경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3 자매는 취향이 비슷해 가구는 물론 그릇까지 같은 아이템이 많다.
4 언니네 집 지하 서재 공간은 초기작 ‘패션’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거실에는 그의 최신작 ‘우븐 소파 woven sofa’가 자리하는데 창문 너머 기와 지붕과 편안하게 조화를 이룬다. 레드 컬러가 인상적인 1인용 소파 ‘패션 passion’은 책이 가득한 지하 서재 공간에 악센트를 주는 아이템이다. 한국적인 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그의 모던한 가구는 물론, 남다른 데커레이션 감각까지 엿볼 수 있다. 좁은 주방 공간을 더 넓게 쓰기 위해 테이블을 비스듬하게 배치하고 공간을 하나로 튼 서재에는 바퀴 달린 책장 ‘트위스트 twist’를 두어 파티션처럼 활용했다. “원래는 건축을 전공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전공을 선택할 무렵이 마침 가구 디자인과가 다른 디자인 학과에서 분과하는 독립 첫해였죠. 왠지 의미 있을 것 같아 선택한 가구 디자인이 이제는 제게 모태 신앙처럼 되었어요. 집을 짓지는 못하지만 ‘가구’를 중심으로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어요. 집에 맞는 가구를 디자인해주고 데커레이션하는….”
한정현 씨가 디자인한 가구와 남편 박두희 씨가 컬렉션한 스피커, 음반 등으로 꾸민 거실. 우븐 소파는 손잡이에 사이드 테이블 기능을 더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왼쪽) 의자를 벽에 걸면 ‘페인팅’ 같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라는 엉뚱할 발상에서 착안한 ‘체어스 온 더 월’.
(오른쪽) 이제는 딸 서윤이를 위해 키즈 라인을 디자인할 계획이다.
2009년 5월, 결혼 후 그는 자신을 위한 가구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우븐 소파와 트위스트 TV 장, 패치 시리즈가 그것. 그러고 보니 최신작은 기존에 선보인 작품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기존의 작품이 혼자 혹은 둘을 강조한 작품이었다면 최근의 신작은 소재뿐 아니라 부드러운 선의 미학이 느껴지는, 마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느낌. 아마도 결혼과 출산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작용한 듯하다(지난여름, 공식적으로는 첫 신혼집인 주상복합 아파트로 이사한 후 딸 ‘서윤이’를 낳았다). 부부와 갓 태어난 아기가 살기에 적당한 크기의 집은 마감재나 구조 변경 없이 자신을 위해 디자인한 가구와 컬렉션 작품들로 모던하고 심플하게 꾸몄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아트 퍼니처의 매력을 한정판에서 찾곤 해요. 획일적인 아파트 문화에서는 더더욱 이러한 독창성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지요.”
사실 결혼 직후 연 두 번째 개인전이 가구 디자이너로서는 가장 의미있는 작업을 선보인 자리였다. 코르크 의자, 타임플라이즈 시계, 스윙&행 옷걸이, 에지 스툴, 트위스트 책장, 루이스 테이블, 스트라이프 체어…. 좀 더 유머러스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그는 요즘 지난 작업을 돌아보며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다. 앞으로는 자신이 디자인한 가구를 직접 사용해보며 문제점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우븐 소파, 트위스트 책장은 작품의 규모도 크고 원숙한 조형미를 추구한 작업이다. 초반의 작품이 너무 컨셉추얼했다면 최신작은 실용성이 가미됐다. 실험과 실용이 적절히 타협하는것, 그것이 앞으로 선보일 한정현식 가구의 큰 틀이다.
가족, 가장 든든한 후원자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은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장이다”라고 말했다. 곱씹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모름지기 가족이란 생활의 활력소이자 무거운 짐이면서 끝까지 함께 가야 할 삶의 동반자인 것. 한정현 씨에게도 가족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남편이 들으면 서운할 수도 있는데 ‘결혼’과 동시에 가족과 분리되는 느낌이 들어 한동안 힘들었어요. 영문학을 전공하고, 젊은 시절 여성지 기자를 하신 엄마는 평소 미술을 사랑하고 자식과 친구처럼 지내는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분이세요. 카페와 갤러리, 작업실을 함께 구성한 ‘체어스 온 더 힐’도 엄마의 아이디어였으니까요.” 털털한 성격의 언니, 한때 이상형이었을 만큼 멋진 오빠, 언제나 자식과 토론하는 걸 즐기신 일본 사학자 아빠까지, 모두 그의 창작 활동에 끝없는 자극을 주는 든든한 조력자다. ‘코르크 앤 코르크’는 형부가 지어준 이름이고, ‘스트라이프 체어’는 다섯 살배기 조카를 위해 만든 의자다.
어린 시절 독일에서 산 남편은 전공이 토목공학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디자인’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외국 잡지에서 본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여주며 “당신도 이런 디자인 해보지 그래?”라며 은근히 표절(!)을 권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와인을 좋아하고 디자인을 사랑하는 그들은 닮은 점이 무척 많다(어린 시절의 별명이 같을 정도로 외모도 닮았다!). 호텔에서 하는 결혼식이 싫어 서른다섯, 서른아홉의 늦깎이 신랑, 신부는 결혼식은 안국동 안동교회에서, 피로연은 윤보선 생가에서 치렀다. 고즈넉한 가회동 언덕에서 의자를 디자인하고, 고택을 사랑하는 그녀. ‘모던 아날로그’ 시리즈는 그의 이러한 정서가 반영된 것이리라.
가족이란 생활의 활력소이자 무거운 짐이면서 끝까지 함께 가야 할 삶의 동반자이다. 언제나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남편과 생각지 못한 큰 기쁨을 주는 딸 서윤이는 최고의 후원자다.
디자인과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 “앞으로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바뀌지 않을까요? 한국의 디자인 교육은 너무 기술에 집중돼 있어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에 대한 상상력인데 말이죠.” 그는 가구를 ‘디자인’하지 ‘제작’하지는 않는다. 제작은 공방 장인에게 맡긴다. 가구를 직접 만들다 보면 제작이 어려운 디자인은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는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디자인을 양산 가능한 상품으로 컬래버레이션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염두에 둔 작품은 옷걸이 ‘스윙&행 swing & hang’. 나무 기둥에 가지 형태의 걸이가 숨어 있는 옷걸이는 쓰임과 오브제 기능 모두 충실한 아이템이다.
12월 28일 부터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체어스 온 더 힐의 전시 공간을 제공하고 전시 큐레이팅까지 맡을 계획이다. “보통 인터뷰를 하면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자주 질문을 받는데, 사실 작품이 영감만으로 탄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동시에 공부도 해야 해요. 학생 때 기발한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게 바로 그 때문이죠. 항상 탐구하고 책을 많이 읽으니까요.”
그의 지론처럼 ‘액션’이 있어야 ‘리액션’이 있는 법. 지난 15년이 디자이너로 자기매김하기까지의 전반전이었다면 이제는 중견 작가로서 후반전을 준비하는 하프타임이다. 하프타임도 역시 그간 선보여온 작품을 되돌아보고 직접 사용해봄으로써 그 쓰임을 검토하는 ‘액션’중. 이제 곧 맞이할 후반전에서는 ‘가구 디자이너 한정현’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지키면서 한층 성숙해진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 [라이프&스타일]가구 디자이너 한정현 씨 가구, 행복의 시간을 모으는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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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레 소트사스 Ettore Sottsass는 “디자인을 하는 것은 연인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디자인을 통해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며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는 한정현 씨. 그는 가구를 만들며 ‘모든 집을 가정처럼 to make every house a home’이라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실현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