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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갤러리] 프레야&노스 주얼리 대표 백재은 씨의 집 추억이 깃든 ‘그림’으로 공간에 스토리를 입히다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 등 기념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타인 혹은 자신에게 그림 한 점을 선물한다면? 주얼리 회사 프레야&노스의 백재은 대표가 바로 그 경우다. 그녀의 집에 걸린 모든 그림에는 빛바랜 앨범처럼 아롱진 추억이 서려 있다. 그렇기에 세월이 지날수록 소장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그림에 대한 애틋함도 더해질 수밖에….

어느 책에서인가 본 이야기다. 한 부자가 아르누보 디자이너에게 집 안의 모든 것을 ‘예술적’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디자이너는 집주인의 요청에 따라 집 안의 모든 가구와 소품 등이 서로 완벽하게 짝을 이루도록 디자인했다. 심지어 재떨이부터 스위치에 이르기까지 아르누보 장식이 들어가지 않은 게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예술적’ 결과를 본 집주인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누군가가 이미 완벽하게 완성한 공간, 거기서 그는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을 바꾸고 변화시키며 충족할 수 있는 자신의 욕망을 표출할 수 없었기 때문 아닐까.

(왼쪽)북유럽 여신 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자 보석을 사랑하는 ‘프레야’가 자신의 딸에게 빛나는 보석이라는 뜻의 ‘노스’ 라는 이름을 지어준 데서 모티프를 얻어 지은 주얼리 회사 프레야&노스(02-3789-1351)의 백재은 대표. 책을 켜켜이 쌓은 뒤 뜻밖의 오브제를 곁들임으로써 책의 수집과 소유 문제를 색다르게 표현한 김성호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주얼리 회사 프레야&노스 Freya & Hnoss 백재은 대표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한 달에 몇 번씩 가구를 옮기고 그림을 바꿔 걸어요. 전문가처럼 객관적인 정보를 가지고 그러는 건 아니에요. 어차피 집은 한 개인이 사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잖아요. 정확하거나 객관적일 필요가 없죠. 몇 번씩 반복하다 자연적으로 깨달은 건 가구와 그림의 컬러를 통일하거나 화풍별로 분류해 걸기보다 그림을 걸었을 때 그 공간에서 일어날 상호작용을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림으로 일종의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거죠.” 그렇다 보니 백재은 대표는 가구를 옮기고 그림을 바꿔걸 때마다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스토리텔링을 만들기 위해 그림에 얽힌 작가의 의도나 작품명 대신 그 그림을 살 당시의 사연이나 그림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며 상호작용이 일어날 만한 곳에 걸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파리의 한 갤러리에서 첫눈에 보고 마음을 빼앗겨버린 스페인 작가의 동양 여인상은 지금 그녀의 집 현관 옆에 걸려 있다. 어려서 미국에 건너가 청년이 될 때까지 이국땅에 머무르면서 늘 동양 여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10여 년이 넘게 외국 생활을 하다 보니 사고방식은 서양인에 가까울 정도로 바뀌었지만, 서양인이 보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 동양인일 터. 스페인 작가가 그린 동양 여인상을 본 순간, 그녀는 그런 자신의 모습과 꼭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백재은 대표는 집을 나설 때마다 늘 이 그림을 보며 동양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떠올린다. 오래전, 파리의 어느 길거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집은 갤러리와 달라야 한다
그런데 으레 그림 많은 집에 가면 느껴지는 중압감이 이 집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백재은 대표의 지론 때문이다. “갤러리 같은 집은 싫어요. 집에 그림을 걸 때 갤러리처럼 지나치게 반듯하고 정돈돼 있다면 매일 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을 누이는 집에서 조금도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없을 거예요. 집은 집다워야 해요. 작품보다 사람이 주인이어야 하고요.” 그래서일까. 일반적으로 그림이 많은 집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림을 걸기 위해 별도의 아트 월을 만든다거나, 간접조명을 설치한다거나 혹은 갤러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와이어 액자 걸이 같은 것들 말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미국, 이탈리아, 남미 등 전 세계를 누빈 그녀답게 집에는 크리스토, 제임스 브라운, 천경자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여러 작가의 작품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어릴 때는 금전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는 게 부담이 되어 꾸준히 도록을 구입했어요. 도록을 보고 또 보며 훗날 구입할 그림의 위시 리스트를 만들었죠. 위시 리스트 1번인 작품은 도록에서 잘라 액자에 넣어 침대 옆에 두었어요. 그 중 하나가 장 뒤뷔페 Jean Dubuffet의 ‘창녀상’이었어요. 20대에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좋아했는데, 30대가 되니 왠지 모르게 장 뒤뷔페 같은 작가에게 끌려요. 클림트가 부자와 권력자를 그렸다면, 클림트의 제자인 장 뒤뷔페는 창녀 등 소외된 사람을 그렸죠.” 지금 그녀의 집에는 친정어머니께 물려받은 그림이 절반이다. 인터뷰 중 옆에 계시던 친정어머니께서 “딸 결혼 때는 엄마가 할 일이 참 많다고 하는데, 전 그러지 않았어요.
제가 해준 가장 큰 일은 딸아이에게 물려줄 그림 몇 점 고르는 것이었죠. 몇 날 며칠 고민한 끝에 대규모 포장
이나 설치 작품으로 유명한 크리스토의 작품과 왠지 그림에서 오묘한 빛을 발하는 것 같은 제임스 브라운의 작품 등을 최종적으로 선택했죠”라고 말한다.

(오른쪽) 백재은 대표의 동생 백자은 작가의 작품. 그 앞으로 친정엄마에게 물려받은 이영학 선생의 조각 작품이 놓여있다.


(왼쪽) 침실 쪽 입구에 있는 중국 작가의 오묘한 느낌이 나는 작품이 인상적이다. 
(오른쪽) 스페인 예술가 마놀로발드스 Manolo Valdes가 그린 동양의 한 여인상.


(왼쪽) 결혼식 전날, 친정아버지가 결혼 선물로 주신 천경자 씨의 작품. 
(오른쪽) 여류 화가 권옥련 씨에게 결혼 선물로 받은 여인상 작품. 톤 다운된 색감이 침실 분위기를 한층 더 안온하게 해주는 듯하다.


나만의 작품 해석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모녀는 함께 그림 여행도 많이 다녔다. 한번은 파리에 있는한 갤러리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일명 ‘지팡이 의자(평소에는 지팡이로 쓰다가 펼치면 의자가 되는 요술 같은 물건이 있단다)’에 앉아 하루 종일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들이 작품 앞에 지팡이 의자를 펴고 앉아 하루 종일 작품을 감상하시더라고요. 긴 바게트 하나를 가방에 넣어 와서 점심에 잠깐 갤러리 테라스에서 먹은 후 다시 또 들어가서 작품을 보고…. 어느 날인가 그 할머니들처럼 오랫동안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놀랍게도 내가 느끼고, 보고 싶은 것들이 다 보이더라고요. 미술은 객관성을 띤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작품 의도는 별반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 나만의 작품 해석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오히려 그림의 작품명을 너무 빨리 알아버리면 그 작품을 그쪽으로만 보게 된단다. 한마디로 다각도의 감상이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집 안 곳곳에는 친정아버지가 결혼식 전날 선물해준천경자 씨의 작품, 플라멩코를 배우겠다고 의기양양하던 그날 시어머니에게 격려 차원에서 선물 받은 작품, 권옥련 씨와 황정자 씨에게 선물로 받은 그림 등이 걸려 있다. 이렇듯 그림 덕분에 삶의 미세한 결속에 숨어 있는 추억을 늘 기억하며 살 수 있으니, 백재은 대표의 그림 사랑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 더 많은 정보는 <행복이 가득한 집> 1월호 90p를 참조하세요.

글 황여정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