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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아이디어] 공간에 운치를 더하는 생활 예술, 자개
밀라노 디자인 페어, 2010 디자인 마이애미/바젤 등 국제 디자인 페어에서 우리의 자개가 주목받고 있다. 천연 도료 옻칠로 마감한 친환경 가구, 코리안 빈티지의 정수이자 그 자체로 ‘주얼리 퍼니처’로 평가받는 자개 가구는 현대적 디자인과 만나 더욱 세련된 스타일로 변모한 것이 특징이다. 전통의 맥을 잇는 통영 12공방 나전 장인들의 실용 소품부터 세계를 빛낸 아트 퍼니처까지, 잊혀가는 한국 나전의 명성을 되짚어보았다. 모던한 공간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자개의 이색 풍경.

(왼쪽) 바다에서 태어난 조개껍데기, 보석이 되다
오늘날 자개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나전 螺鈿은 칠공예의 한 장식 기법으로 전복, 소라, 진주 등의 패각을 얇게 갈아 오린 것을 붙여 꾸미는 것을 뜻한다. 나전이라 하면 으레 ‘칠기’를 떠올리는 것은 주로 옻칠한 가구나 소품에 자개를 장식한 때문이다.
나무 위에 천연 방부 효과가 있는 옻칠을 한 다음 자개를 붙여 천년을 영롱한 빛으로 이어온 것이다. 근래에는 자개가 칠기 공예품에 국한되지 않고 단추, 액세서리 등의 장식용품과 디자인 가구, 타일 등 인테리어 건축 자재 등에 이용되어 그 활용 범위가 다양해지고 있다.

코르크 소재 볼은 야스퍼 모리슨 Jasper Morrison 제품으로 비트라에서 판매. 방향제 보관함, 수국 데스크 세트 중 펜 트레이, 사각 트레이는 모두 몬도미오에서 판매. 링 펜던트 목걸이는 꼬세르, 블랙&화이트 롱 네크리스와 뱅글은 아가타 ,사슴뿔 오브제는 선혁구디 제품. 자개 장식 실패는 종이나무 갤러리에서 판매. 반달 모양 머리빗은 나은 크래프트에서 판매. 자개 원석을 꽃잎 모양으로 형상화한 귀고리와 브로치는 반클리프 아펠 제품. 옻칠을 입힌 브로치는 공예가 김경신 씨의 작품으로 경신공방에서 판매. 자개 액세서리 부속 재료는 구구자개에서 판매.

(오른쪽) 자개, 세대와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
1960~70년대 여기저기 양옥집이 들어서고, 집집마다 널찍한 안방에 놓을 장롱을 맞추던 시절. 어린 시절 추억 속 자개농은 대부분 이 시기에 양산된 제품이다. 하지만 자개농의 선풍적 유행은 오히려 그네들을 뒷방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들다 보니 문양의 디테일이 떨어지고, 옻칠 대신 저렴한 화학 칠을 한 제품이 많아진 때문이다. 현대적 미적 가치에 떠밀려 어느새 처치 곤란한 미운 오리 새끼가 된 자개는 그 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예술 공예품 혹은 관광지의 흔한 기념품 등 그 처지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작고한 박경리 선생은 ‘통영 장롱은 나의 예술’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작은 함 하나를 만들더라도 나무를 깎고 정성스레 옻칠하고 자개를 붙인 다음 다시 윤기 나도록 정성껏 갈아내는 등 무려 25가지 공정을 거쳐야만 하는 자개는 사실 우리네 삶을 기품 있고 화려하게 만들어주던 생활 예술이다. 통영의 나전장들은 포인트로 문양을 붙이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좋은 제품일수록 문양대로 자개를 잘라 붙이는 주름질 기법보다 가는 선처럼 자른 자개를 모양대로 끊어 완성하는 끊음질 기법을 즐겨쓴 것도 이 때문이다. 단조로운 끊음질 작업이 막상 완성되고 나면 화려하기 그지없는 나전칠기는 어찌 보면 소소한 일상과 굴곡으로 다져지는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 천년을 잇는 아름다움이라고 했던가. 자개는 늘 가까이에서 만져주고 닦아줘야 수명도 길어지고 더 아름다워진다. 부드러운 솔과 마른 융단으로 먼지를 닦고 광택을 내는 등 섬세하게 관리하면 몇 대는 너끈히 대물림할 수 있다.
예부터 자개, 목가구 등은 모두 쌍으로 갖추는 것을 관례로 여겼다고 하니 자개를 혼수로 장만할 때는 쌍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붉은색과 초록색, 검은색과 붉은색 등 컬러별로 대조를 이루는 제품끼리 매치해도 좋다.

붉은색 사각 함과 혼수함 세트, 팔각 함은 모두 나전장 손대현 씨의 작품, 받침과 함이 분리되는 서랍장과 서안은 나전장 정명채 씨의 작품, 주칠과 흑칠로 완성한 원형 소반은 나전장 최종관 씨의 작품으로 모두 크로스 포인트 소장품. 좌물쇠 모양의 방향제 보관함은 몬도미오에서 판매. 색색의 양단 말이와 자수를 놓은 붉은 원형 통은 금단제에서 판매. 가야 옻칠 항아리는 크로스 포인트에서 판매. 촬영 장소는 논현동 카시나 쇼룸.


가구와 작품 사이
전통 공예는 21세기를 맞았다. 날이면 날마다 먼지를 닦고 윤을 냈을 자개 가구가 어느 순간부터 재활용 센터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우진 씨. 그는 지난 4월 밀라노 디자인 페어 <규방>전에서 자개로 만든 모듈형 테이블을 선보였다. 생활이 바뀌면서 문화가 바뀌고, 그 문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도 바뀌었듯 디자인 또한 현대적 공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지난 6월 바젤에서 열린 2010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서 가구 디자이너 강명선 씨와 이삼웅 씨가 선보인 나전 벤치와 스툴 또한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전시가 개막하기도 전에 이미 판매되어 화제를 모은 이삼웅 씨의 ‘옥토버스’는 “한국의 디자인은 동양적 색채를 띠면서도 무척 현대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은 제품이다. 동양의 정신과 문화유산을 좋아하지만 그 디자인을 사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유럽인의 보수적 취향을 파악해 그 절충점을 잘 찾았다는 평. 이처럼 현대적 미적 가치에 떠밀려 촌스러움의 대명사로 의미를 달리하게 된 자개가 수십 년이 흐른 오늘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절묘한 디자인과 새로운 쓰임새로 돌아온 것이다. 신세대가 좋아할 만한 세련된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톱이나 칼로 자르던 자개를 레이저로 자르는 등 생산성을 높이는 것 또한 대중화를 위한 하나의 방안이다

사각 테이블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우진 씨의 작품으로 사각 면 중 한쪽이 열리면 안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디자인이다. 2010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 선보인 흰색 진주패로 만든 나전 벤치는 가구 디자이너 강명선 씨의 작품, 푸른색을 띠는 나전을 동그란 패턴으로 오려 붙인 의자 ‘옥토버스’는 가구 디자이너 이삼웅 씨의 작품으로 모두 갤러리 서미에서 판매. 진한 브라운 컬러 라운지체어와 오토만, 캐멀 브라운 컬러 데이베드는 모두 카시나에서 판매.


(왼쪽) 시간이 만든 깊이, 블랙 카리스마
거실 TV 옆 사이드 테이블, 혹은 소파 옆 스툴 등 자개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제품과 매치될 때 특유의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옹기 항아리에 검정 옻칠을 두껍게 입힌 다음 얇은 자개 문양을 붙여 다용도 테이블로 완성한 공예 작가 김경신 씨는 자개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바로 천연 광택을 내는 ‘옻칠의 힘’이라고 말한다. 짠 바닷속에서도 몇백 년은 너끈히 견딘다는 옻칠. 단순한 검정 옻칠에 자개 문양을 더하면 임팩트가 강하면서 모노톤의 현대 가구와 잘 어울리는 소품이 탄생한다.
모던한 디자인의 소파 옆에 두어 스툴 혹은 티 테이블로 활용하면 아주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가는 자개 테두리 장식을 더한 사이드 테이블 겸 스툴은 공예가 김경신 씨의 작품으로 경신공방에서 판매. 향초와 나무 함 장식, 찻잔은 아르마니 까사 제품. 원형 차통은 나은 크래프트에서 판매.

(오른쪽) 자개, 빛깔을 보고 골라라
자개는 원산지별로 색이 각기 다른데, 일본 쪽 바다에서 건져 올린 전복 껍데기는 붉은빛을 띠고, 뉴질랜드 바다에서 자란 전복에서 얻은 자개는 연둣빛이나 푸른빛이 많다. 호주산은 노란빛을, 우리나라 남해 쪽에서 얻은 것은 은은한 은빛을 띤다. 좀 더 화려하고 반짝이는 느낌이 난다면 이는 국산 자개를 사용한 것이다. 무엇보다 자개가 가진 매력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에 따라 반짝이는 모습도 함께 변하는 것일 터. 자개가 있는 공간이 때로는 화려하고, 때로는 신비스러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통 목가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콘솔 테이블 위에 자개단추를 하나하나 핀으로 고정해 만든 설치 작품을 놓아 멋스러운 공간이 완성되었다.

자개 설치 작품은 황란 작가의 작품으로 이도 갤러리 소장. 콘솔 테이블은 도예가 원경환 씨의 작품으로 이도 갤러리에서 판매.

* 더 많은 정보는 <행복이 가득한 집> 10월호 78p를 참조하세요.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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